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89화
389화. 천상계(4)
올림픽이 끝났을 때쯤엔 이미 네티즌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황금세대의 3인이 더 런닝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팬들에게는 굉장히 희소식이었다. 솔직히 팬덤의 규모와 비교하면, 활동 자체가 너무 적었다.
그 아쉬움을 라이브 방송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팬들은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가 TV에 나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그걸 보면서 자신도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게 더 좋았다.
잘되고, 또 잘되고.
팬은 스타가 그렇게 잘 됐으면 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흔히 조공이라는 걸 하려고, 팬 카페에서 회비도 걷어서 준비하고 있었다. 커피는 기본이고, 스태프들 아침,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했다. 그것도 상당히 고가의 도시락을. 그런데 일방적으로 촬영 스케줄이 터졌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이상하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뒤이어 터진 캐스팅 불발 기사까지 나오니 문제가 터졌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됐다.
그래서 다방면으로 알아봤고, 결국 진실에 도달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해 왔던 선수단 만찬회.
이 만찬회에 황금세대가 불참을 선언하자, 호스트 쪽에서 훈장 수여 취소와 함께 더 런닝 출연 자체에 제동을 걸어버렸다. 아니, 제동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막았다. 그리고 이 소문이 연예계에 퍼지자, 거의 90% 이상이 기존의 태도를 뒤바뀌었다.
여기까지 알아내는 건, 솔직히 어렵지도 않았다.
일을 결정하는 건 어느 조직이든 수장이지만, 일을 진행하는 건 그 아래 직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의 입에서 퍼진 얘기는 금방 연예계로 흘렀고, 다시 그곳에서 일반 네티즌에게도 흘렀다.
네티즌은, 분노했다.
정말로, 대분노했다.
-와 미쳤네…….
-미친 거 아니냐, 진짜……?
-훈장 취소 ㅋㅋㅋㅋ 그런 업적을 쌓았는데 그깟 만찬회 좀 안 갔다고 취소 ㅋㅋㅋㅋ
-이 새끼들 분명 의도 있었다 진짜 와…….
-돌은 거 아니냐, 진짜?
-진짜 고작 그딴 이유로 나라의 영웅을 그런 취급한다는 게, 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이러다가 방탄 꼴 나는 거 아님? ㅠㅠ
-설마 진짜 미친 거 아니고서야…….
-가능성 있음. 방탄도 결국 짜증 나서 2년 있다가 전부 동반입대 했잖아요.
-그건 전략적으로 그런거임. 전역할 때쯤엔 자기네 싫어하는 정권 거의 바뀌기 직전일 테니까.
-이번에도 그럼?
-가능성 개 높지…….
네티즌의 분노는 매우 합당했다.
하지만 풀 곳이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차에, 팬의 분노에 불을 지피다 못해 기름을 끼얹는 소식이 들어왔다.
속보)- 독일! 강지영 공로십자상 수훈 확정!
속보)- 프랑스! 강지영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 확정!
속보)- 미국도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 결정!
-한국이 취소한 훈장 수여자 강지영, 3국 훈장 수여 결정. 과연 받을까?
이런 기사가 앞다투어 올라왔다.
한국은 취소했다.
-X발 진짜;; 이게 뭔 개엿같은 상황임?
-강지영 설마 훈장 받나? 아무리 그래도 안 받겠지?
-뭔 소리임? 받아야지. 엿먹여줘야지!
-그럼 진짜 더 찍힐 텐데? ㅠㅠ
-강지영이 어디 그런 거 신경 쓰는 인간이었음? 내가 봤을 땐, 받는다, 무조건.
-그리고 받는 게 맞음. 한 번 조때봐야지, 이 새끼들…….
-저물어가는 새끼들이 어딜 하;;
-비즈 엔터 공식 오피셜 뜸. 훈장 받겠다고 함. 3국 전부.
-……X발.
-개같네, 진짜…….
팬뿐만이 아니라, 일반 네티즌의 분노도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솔직히 지영은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장미 PD와 미팅을 가진 하루 뒤, 갑작스럽게 3국에서 지영에게 훈장을 주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건을 외교부 라인이 아니라, 직접 비즈 엔터와 접촉해 진행했다는 점이었다.
먼저 자국 내에서 기사를 낸 뒤에, 한국에 이 소식이 알려져 기사화되자 즉시 연락해 기사가 사실임을 알렸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이 같은 상황이 정말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전부 일어났다.
훈장이라는 게 심사도 복잡하다.
그런데 이렇게 거의 동시에 훈장을 주겠다고 한 걸 보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판은 한국 정부가 아주 예쁘게 깔아줬다. 최고 등급의 훈장을 줘도 부족할 판에, 훈장 취소.
그렇게 하면, 길들 줄 알았나 보다.
멍청하게도.
3국에서 훈장을 수여하겠다는 결정 덕분에, 한쪽은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온갖 비난이 날아갔다.
이건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치적 이유가 살짝 끼어들어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지영은 받기로 했다. 당장 받는 건 양쪽 다 시간이 촉박해, 1박 2일로 촬영 예정인 노는 언니들 이후 받기로 했다.
그렇게 3일 만에 완전히 뒤바뀐 입장.
지영은 촬영 장소인 강원도로 향했다.
장소가 강원도인 건, 간단했다.
지영을 포함해 어떤 선수도 올해는 휴가를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작가들이 조사했을 때, 압도적으로 ‘휴가’란 답변이 나왔다.
운동선수에게 휴가도 일반인과 비슷하다.
일반인들은 보통 여름 겨울 휴가를 간다고 치면, 운동선수들도 보통 그때쯤 휴가를 다닌다. 남들과 같이. 같이 움직여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같이 사는 세계에 있는 것 같으니 심적으로도 좋다.
그래서 보통 시합 시즌과 안 맞물리면 여름에 휴가를 많이 다녀온다.
하지만 올해는 거의 모든 선수가 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이유? 당연히 올림픽 때문이었다. 휴가 시즌은, 선수들이 마지막 훈련 스퍼트를 올릴 때쯤이었다. 경기를 2주 정도 앞두고 나서는 실제적으론 컨디션 관리에 들어간다. 팀마다, 선수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시합 일주일 전부터는 거의 컨디션 관리만 한다.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건, 거의 휴가였다.
캠핑, 계곡, 바다 등등, 강원도에 마치 그 전부를 갖춰 놓은 곳이 있어서 그쪽으로 갔다.
또한, 대인원이 갔다.
원래 방송팀의 인원이 많기도 하지만, 장세리 대표는 아예 회사 야유회까지 그날로 정했다. 물론 방송 공간과는 좀 떨어진 쪽에 잡았다.
지영은 새벽에 움직이는 게 그래서, 전날 움직였다.
늦은 밤 촬영장 근처에 도착한 지영은 짐을 풀고, 바로 대본을 꺼냈다. 그리고 막 펼치고 읽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강한결이었다.
“어, 한결아.”
-도착했어?
“응, 좀 전에 막. 너는?”
-나는 이제 출발하려고. 아, 난 석이랑 갈 거야. 효중이랑 성진이는 12시 넘어서 출발한대.
“그렇게 늦게?”
12시에 출발하면 여기 도착하면 정말 오밤중이다. 그런데 그때 출발?
“너무 늦는데? 그리고 누가 운전해서?”
-한솔 매니저님이 해주시지. 소영이 아파서 병원이래.
“어? 왜?”
-맹장. 급성이라서 바로 수술받아야 한대.
“아…….”
정소영의 가정은 뭐, 이성진만큼이나 최악이었다. 양부와 의붓오빠의 성희롱, 성폭행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어머니가 아팠는데, 여전히 아프시다는 점이다. 좋아지고는 계시지만, 아직 병원을 퇴원하기는 이른 상태였다. 그래서 보호자가 없었다. 이성진은 아마 이걸 해결해 주기 위해 늦는 것 같았다.
“알았어. 여기 주소는 알지?”
-응, 전달받았어. 중간중간 전화할게.
“응.”
지영은 대본을 내려놓고, 폰을 들고 그대로 발코니로 나갔다. 촬영장에서 20분쯤 떨어진 곳의 펜션인데, 조용하고 혼자 쉬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발코니 의자에 앉은 지영은 임효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짧게 네. 라고만 대답하는 임효중 특유의 전화 받는 방식. 아침에도 목소리를 들었는데, 또 들어도 여전히 반갑다.
“소영이 아파서 병원이라며.”
-응, 30분 있다가 수술 들어갈 거야.
“급성인데?”
-응, 수술실이 꽉 찼대. 주변에 다른 병원도 비슷해서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야.
“아 진짜.”
-근데 소영이도 잘 참고 있고, 괜찮을 것 같아.
“성진이가 난리겠네.”
-응. 눈에서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중. 야, 오히려 소영이가 성진이한테 괜찮다고 다독이더라.
“하하하.”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았다.
세상에 마음 둘 곳이 별로 없는 이성진이다. 친구들을 제외하면, 속마음을 터놓는 곳은 정소영의 품이 유일하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응석을 부리기도 하고, 옆에서 보면 주먹이 저절로 쥐어지지만, 이해하려고 노력 중인 지영이었다.
-뭐, 어쨌든 그래. 잘되겠지. 크게 심각한 상태도 아니라고 했고.
“그래, 다행이네.”
-나는 소영이 수술 끝나면 출발할게. 음, 좀 늦을지도?
“어, 안 자고 있을 테니까 얼른 와.”
-아이고, 됐거든? 도착하면 새벽 3시는 될 텐데. 그냥 자. 아침에 보자.
“그건 내 마음이지. 알았어. 조심히 와.”
-그래.
전화를 끊은 지영은 다시 폰을 뒤져 다른 연락처 하나를 찾았다.
정소영.
전화는 당연히 힘들고, 메시지는 보내는 게 예의였다. 격려와 위로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메시지를 보내고, 지영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또 며칠 안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당장 촬영이 끝나면 대사관을 돌며 훈장을 받게 될 거고, 이걸 받는 순간 또 일파만파, 좋든 좋지 않든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영은 전부 감수할 생각이었다.
‘견뎌야지.’
지영은 물론, 임은진과 장세리 대표, 그리고 친구들 전부 여기서 지영이 굽히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신념의 탑이 무너지는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한 번 무너지면 결국은 굽혀야 하고, 한 번 굽히기 시작하면 결국은 계속해서 굽혀야 했다.
친구, 가족, 연인, 지인을 위해 계속, 계속해서 굽혀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지켜져야만 하는 신념이고, 고집이었다.
바람이 선선했다.
지영은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대본 중반을 보는 중이었다. 나의 무사님 종장 중반은, 탄력을 받은 느낌이 제대로 났다. 지영은 정은정 작가가 이 부분을 쓸 때는 거의 무아지경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영이 그렇게 느낀 이유는.
‘이건 거의 한 호흡이야.’
소설에도 당연히 흐름이란 게 있었다. 아무리 같은 작가라고 하더라도, 가끔 글의 분위기가 살짝 달라질 때가 있었다. 작가 본인의 그 날 집필 컨디션, 정서, 심리 상태 등의 영향을 받아 아주 미세하게부터, 혹은 아주 진하게 차이가 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정은정 작가는 이건 같았다.
아주 똑같은 텐션에서 쓰인 소설이었다. 흔히 필 받았다고 하던가? 진득한 감정에 취했지만, 그래도 갈피를 잃지는 않은 상태에서 주르륵 써진 소설이었다. 실제로 확인도 했다.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쉬지 않고 3일이란 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게 분량이 상당했다.
중반부다. 24부작이니까, 8에서 16까지의 흐름이다.
소설로 쓰였기에 책으로는 분량으로 따졌을 때 절대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다. 소설책 2개 반 정도?
‘이걸 3일 만에…….’
진짜 축복받은 재능인 거다.
축복받은 이가 쓴 소설과 대본을 정독한 지영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잠시 올라왔던 임은진도 그런 지영의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결국 이렇게 되나…….’
중후반.
극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
2부는 불화였다. 그렇다면 3부는? 화합일까? 보통은 그렇게 예상할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신념의 화신, 후를 넘어서려면 결국엔 서로 다시 함께해야 하니까.
하지만 역시 정은정 작가는 그런 예상을 벗어났다.
그렇게 예상을 벗어남이 지영은 역시 마음에 들었다.
“지영아.”
“어, 왔어?”
지영은 강한결이 도착하고 나서야 대본에서 벗어났다. 비시즌이라 살짝 살이 오른 강한결과 황석. 둘은 제법 피곤한 얼굴이었다.
“운전 직접 해서 왔어?”
“응. 번갈아 가면서. 괜찮아, 이 정도는.”
“으휴, 일단 씻고 나와. 뭐라도 먹자.”
“응. 일단 씻고 나올게.”
둘은 바로 씻으러 들어갔다.
지영은 씻으러 간 둘을 보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열었다. 역시, 먹을 게 채워져 있었다. 지영은 밥은 임은진이 해놓아 둔 게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고기를 꺼내 구웠다. 저녁을 너무 가볍게 먹어 그런지 지영도 배가 고팠다.
그래서 씻고 나온 친구들과 함께 고기 두 근을 그냥 가볍게 해치워 버렸다. 더 먹고 싶었지만,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니 이 정도로 참기로 했다.
친구들은 맥주도 한 잔씩 했지만, 지영은 여전히 금주 중이었다.
하지만 술에 욕심이 별로 없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2층 발코니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다가, 이성진이 출발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쯤 지영은 결국 졸려서 잠에 빠져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나서는 예능에, 설레는 마음을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