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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87화 (38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87화

387화. 천상계(2)

분위기가 이따위로 어둑어둑하려면 뭔가 터졌어야 했다.

지영은 강한결의 옆자리에 앉으며, 그냥 대놓고 물어봤다.

“이거 만찬 초청 거절해서 모인 거 맞지?”

“음, 아무래도?”

“역시.”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치졸한 복수가 들어왔다. 하긴, 그쪽 입장에서는 생각할수록 괘씸하긴 했을 것이다. 어딜 감히, 누가 부르는데 초청을 거절해? 이런 마음으로 열이 제대로 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훈장까지도 까버리자, 뚜껑이 팍 열린 거고.

뚜껑이 열리자 행동도 빨라졌다.

지영이 거절한 건 얼마 되지도 않았다. 아까 치료받고 있을 때니까, 오후 3시쯤이다. 그런데 강한결에게 전화가 온 게 저녁 6시쯤이니까, 3시간 만에 더 런닝 측에 압박을 넣었다. 더 런닝이 타깃이 된 이유는 지극히 간단명료했다.

더 런닝은 강한결과 임효중, 황석이 게스트로 출연하고 곧 촬영에 들어간다며 장작을 신나게 불구덩이에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며칠 간이나 검색어 10위 안을 수성중이던 게 황금세대였다.

그러니 더 런닝은 당연히 타깃이 됐다.

지영은 이번엔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 이해는 전부 했는데, 그래도 궁금증은 생겼다. 그래서 PD를 향해 물었다.

“이런 일 옛날에는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25년도잖아요? 쌍팔년도도 아니고, 아직도 이런 게 있어요?”

지영의 말에 최민성 메인 PD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선배님들 시대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이걸 제가 당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도…… 선배 언니들한테 종종 들었는데. 솔직히 도시 전설인 줄 알았거든요.”

도시 전설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도시 전설이 아니었다. 이건 지금 지영에게 실제로 일어났다.

“정확히 어떻게 하라고 한 건가요?”

“간단합니다. 황금세대 말고, 다른 선수들을 게스트로 출연시켜라. 이번에 역대급 올림픽이잖아요. 메달도 정말 많이 나왔고. 그러니 일본이 ‘종주국’인 유도 선수 말고 다른 종목 선수들 내보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직접 입으로 들으니 이거 참, 기가 찼다.

“저…….”

한 작가의 말에 지영이 고개를 돌리자.

“그, 만찬회에 불참한다고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네, 아마도요.”

“그럼 조금 양보해서…….”

“그건 안 됩니다.”

그 작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결이 굳은 얼굴로 칼같이 거절했다. 얼굴상이 워낙에 선한 임효중만큼은 아니어도, 평소의 강한결은 충분히 선한 얼굴이다. 그런데 표정을 싹 지우고 거절하니, 말을 꺼냈던 작가는 찔끔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저희 섭외하기 전에 충분히 알아보지 않으셨어요?”

“알아는 봤죠.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하.”

문제는 당장 내일 촬영이라는 것.

그래서 솔직히 PD도 작가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올림픽 특수 중에서도 가장 빅 이벤트다. 꼼꼼히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 촬영 자체가 시작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 때문에.

“더 런닝 측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임은진이 묻자, 최민성은 잠시 고민 끝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들이 만찬에 가줬으면 하죠. 하지만 절대 그게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요?”

“타협점이 극단적이라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포기하시겠다?”

“그…… 죄송합니다.”

아하. 그런 선택을 내리시겠다면야, 뭐.

더 런닝은 그다지 좋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었다.

조금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성진이 고개를 들어서 담당 PD와 작가를 보더니, 굳은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그럼 저도 하차하는 걸로 할게요.”

“어? 어어?”

“성진아!”

이성진의 폭탄 발언에 최민성 PD가 펄쩍 뛰었다. 이성진은 이제 더 런닝의 주축이다. 완벽하게 멤버들 사이로 녹아들었고, 시청률과 화제성 기여에 이성진의 지분이 상당했다. 그런 이성진의 하차?

장담하는데, 벌떼처럼 들고일어날 것이다.

예전에 배신 기린 캐릭터를 가진 배우도 하차할 때 아예 스토리를 써서, 그 정당성을 계속해서 어필하고 또 어필해서 겨우 큰 출혈 없이 끝낼 수 있었다. 예능도 멤버의 하차에 그만큼 빌드업을 한다. 그래야 후폭풍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어떤 문제도 없다가 갑자기 훅 그만둬 버리면?

진심으로 성난 팬들이 더 런닝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달려들게 분명했다.

이는, 기정사실이었다. 특히 이성진의 누나 팬은, 무서웠다.

“제 친구들이 이런 꼴을 당했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한 번 삐뚤어지면 또 사정없이 삐뚤어지는 게 이성진이었다. 방송에서 작정하고 자기 가정사를 터뜨리는 성깔을 보면, 이건 그냥 애교였다. 지영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듯이, 이성진에게도 공공연히 알려진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에 기인해 한 번 돌면, 미친 짓을 저지르고도 남는 게 이성진이었다.

예를 들면, 세계 선수권에서 턱에 니킥을 맞은 게 자신이 아니라 지영이나 다른 친구들이었으면, 이성진은 경기장에 난입해 상대의 턱을 돌려 버렸을 것이다. 왜?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은 그런 이성진의 트리거가 당겨진 것과 같았다. 그런 이성진의 모습에 지영은 강한결을 바라봤다. 친구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 상황에 강한결이 말리지 않는다는 건, 이걸 용인한다는 건 이성진을 밀어준다는 뜻이었다.

즉, 더 런닝에서 하차해도 된다는 뜻이다.

‘아, 그러고 보니 더 런닝 말고도 많이 섭외 들어온다고 했지.’

그것도 메인 MC로. 혹은 투톱 MC 체제로.

그리고 어젯밤에 친구는 섭외가 하나 또 들어왔다고 했다. 바로 더 런닝의 메인 MC 우정혁의 OTT 쪽 프로그램에 섭외가 왔다고 했다. 즉, 이성진은 이미 발을 뻗을 곳이 있다는 뜻이다. OTT 쪽은 일단 기반 자체가 달라서 웬만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성진은 아마 그쪽으로 이 짧은 순간 생각을 정리한 게 확실했다.

“성진아. 그건 조금 섣부르니까 상의 좀 하고 얘기하자.”

왕 실장의 말에 이성진은 잠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표정은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그리고 왕 실장님도 그걸 알지만, 모든 것엔 절차가 있고, 그 절차 때문에 한 말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일반적인 연예인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길을 걷는 게 황금세대다.

앞길을 막는다?

그건 옛날에나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가능했다. 연예계 쪽은 어쩔 수 없이 영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방통위 같은 조직들 때문이었다. 거대 OTT는 그런 것쯤은 그냥 무시해 버린다. 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건드릴 수 있는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맞았다.

‘나의 무사님에도 제재 들어오겠는데?’

지영은 홍진아 감독에게 따로 연락을 넣기로 했다.

“아, 이거 참. 아 미치겠네…….”

최민성 PD는 답답한지 가슴을 두들기며 어쩔 줄 몰라 했고, 작가분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 수가 없었다. 일단 자리를 파했다가, 다시 모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왜? 당장 내일 촬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결정을 내려줘야 했다.

“결정을 내려주세요. 확실하게.”

왕 실장님의 말에, 최민성 PD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후우, 죄송합니다.”

“네, 그게 더 런닝의 선택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는 여기까지 할까요? 먼저 일어날게요. 가자.”

회사 이인자 왕 실장님의 말에 다들 우르르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있는 더 런닝 측과는 이렇게 끝나는 거다. 다른 미팅룸으로 들어가, 상황을 논의했다. 사실 이제부터 중요했다. 황금세대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니면 활발히 활동 중인 비즈 엔터 전체에 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후자가 되면 솔직히 매우 곤란했다. 왕 실장님도 그 부분을 걱정했다. 하지만 강한결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글쎄요. 실장님,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응? 왜?”

“지금 지영이 명성 생각하면…… 부는 바람을 역풍으로 틀고도 남거든요.”

“어?”

“지금 언론에 이미 우리가 출연하기로 했던 사실이 파다하게 알려졌어요.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촬영이 엎어지고, 성진이가 하차해 봐요.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 거예요. 여기에 지영이가 한마디 하면? 역풍이 안 불까요?”

“아…….”

“아마 진짜 어마어마한 비난이 향하게 될 겁니다.”

강한결의 말에 왕 실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의 위치는 천상계다. 이곳 주민의 한마디는, 진짜 어마어마한 파장을 만들기도 한다. 지영이 초청을 거절했고, 그것 때문에 촬영이 엎어졌으며, 이성진이 이에 대한 서운한 감정으로 하차를 결정했다고 하면?

장담하는데, 어디서 진행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쪽은 정말 끔찍한 융단폭격을 맞게 될 것이다.

아무리 언론이 정부의 편이라고 해도, 전부일 수는 없었다.

거기에 요즘은 SNS가 있다. 눈치 따위는 이미 한참 전에 가져다 버린 황금세대다. 지영을 필두로 단체로 나서서 이걸 공론화시키는 순간, 몇 시간 내로 어딘 가엔 펑-! 거대한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날 것이다.

지금의 지영은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화약고. 요즘 들어 지영을 칭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제는 언론사도 건드리기 쉽지 않았다. 솔직히, 강지영에 관한 조사가 안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강지영을 파헤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언론과 척진 걸 빼면, 이 인간을 끌어내릴 수 있는 흠결이 없다는 것을. 물론, 만들면 된다. 만들면 되지만…… 굳이 그럴 메리트가 없었다. 굳이 강지영을 건드려서 이득 볼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언론은 대동단결이 힘들다.

“와, 지영이 생각해 보니 정말 장난 아니구나? 매번 보고는 받으면서도,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체감이 되네.”

왕 실장님의 감탄에, 강한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천상계 위엄이죠.”

“호호, 그러네. 천상계. 이야…….”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아니 세계 어디서라도 지금의 지영을 까는 건, 슈퍼 태풍급의 역풍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됐다. 그걸 강한결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성진아.”

“응?”

“정말 하차할 거야?”

지영의 물음에 이성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봤잖아? 언제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팽하고도 남아. 그 PD님은. 나를 지키기보단 버리는 쪽을 택할 거라는 거지.”

“……뭐, 그건 그럴 것 같긴 하더라.”

이번만 해도 그랬다.

강단이라고는 개뿔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뭐, PD의 입장을 본다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해해도 인정해 줄 생각이 없었다. 이성진은 이런 압박에 대항하지 못하고 친구들 출연을 취소시킨 PD에게 어지간히도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유는 더 있었다.

“그리고 안 그래도 너 좀 어떻게 섭외해 달라고 엄청 귀찮게 하고 있었어. 지영이 넌 안 된다고 했는데도, 계속 그러더라.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그래서 안 그래도 정떨어지고 있었어.”

“……그래.”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진이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면야 뭐. 지영은 그걸 굳이 돌리고 싶지 않았다.

“이 건은 상황 봐서 해결하자. 먼저 건드리진 말고, 저쪽에서 치고 나오면 조용히 입장 표명만 하면 돼. 솔직히 그럼 거기서 게임은 끝나. 딱 한 번만 더 참아주는 거로. 알았지?”

“응.”

참아주는 건, 여기까지였다.

여기서 만약 만찬 초청을 거절한 지영이나 황금세대를 까는 공식 보도가 나오면? 그땐 공식 채널을 통해 제대로 들이 받아줄 거다. 그러니 지영은 부디, 여기서 멈춰주길 바랐다. 이 같은 선택을 한 게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후폭풍을 계산하는 머리가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결정을 내렸으니, 짧은 대책 회의는 그걸로 끝났다. 이 회의는 이어서 곧장 독일에 있는 장세리 대표에게도 전해졌고, 그렇게 하라는 인가가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부디 그런 일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황금세대의 더 런닝 출연이 무산되고, 올림픽이 공식적으로 끝나며 방송가의 올림픽 특수 2차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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