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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84화 (38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84화

384화. 휴식(5)

“나 왔…….”

쉬잇.

문을 열고 들어온 이연은 두 여자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보낸 신호에 저도 모르게 천천히 인사를 멈췄다. 그러곤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창가에 앉아 대본을 읽느라 고개도 들고 있지 않은 지영이 보였다.

누가 들어왔는데도 낌새도 못 차릴 정도로 집중한 모습.

이연은 그런 지영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암.

‘아암. 배우는 저래야지.’

대본에 몰입하는 모습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본을 통해 작품을 상상하는 능력 또한 배우라면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연기 스승을 통해 그런 말을 질리게 들었고, 그 스승의 고집은 그녀에게도 장착되었다. 꼰대 같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바닥은, 그런 꼰대들이 결국 성공하고 롱런하니까.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의자에 앉은 이연이 세 사람을 향해 물었다.

“언제부터 저랬어?”

소곤소곤.

귓속말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묻자 홍진아 감독이 손가락 2개를 펴 보였다. 2분은 아닐 거고, 2시간은 여기 오기도 전일 거니, 20분쯤 됐다는 뜻일 거다. 20분간 저렇게 집중하는 중이라는 것은, 정은정의 대본에 깊숙이 몰입했다는 뜻이다.

몰입됐다는 뜻은, 재밌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연이 고개를 돌려 보자, 정은정 작가는 뿌듯한 얼굴이었다. 천재의 작품을 천재는 이해했다. 뭐, 이런 그림이었다. 살짝 시샘이 올라왔지만, 그녀는 그 정도쯤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었다.

이연은 곧장 같이 온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대기. 지영이 대본 읽는 중. 이렇게 짧게 보냈다. 눈치가 빠른 이인만큼 당연히 뜻을 이해하고 밖에서 기다려 줄 것이다.

이연은 다시 지영을 바라봤다.

스윽.

살랑이는 머리카락이 거슬리는지 귀 뒤로 쓸어넘기는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마스크 자체가 상당히 중성적이라 저대로 화장만 해도 웬만한 여성보다는 나을 거다. 물론 체격 자체는 절대 호리호리한 편이 아니기에 여자로 보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스크 자체만큼은 정말 ‘수려’하단 말이 어울렸다.

옛날에 인기가 많았을 마스크.

요즘 방송가는 호남형 마스크를 선호한다. 그러나 요즘은 지영 때문에 다시금 중성적 매력을 풍기는 마스크가 뜨고 있었다. 심지어 지영은 작품 때문에 긴 머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다시 저물었던 남성 장발이 떠오르는 트렌드가 되었다.

이미 그녀의 기획사에서도 자체적으로 장발 트렌드로 바뀌었고, 본래 장발이었던 남배우 둘은 곧장 작품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장발 자체에 메리트를 가지게 된 거다.

강지영이란 인물 한 명 때문에. 흐름, 트렌드를 본의 아니게 주도하기 시작한 게 바로 저 강지영이었다.

이연은 그런 지영이 정말 신기했다.

처음에 그녀는 지영이 정말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예인 대본리딩 때 살짝 곤조를 부리기도 했었다. 작가 픽이었지만, 외모 하나로 들어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연기는 곧 잘한다는 느낌이었다.

딱히 나쁘다는 느낌은 없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그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시작한 순간 그녀는 정말 서건이 앞에 서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종종 느꼈다.

그렇게 느낀 이유를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엔 알 수 있었다.

천재.

이유는 강지영이 진짜 천재여서였다.

비록 연기 천재는 아니고, 극 중 서건처럼 예술계의 천재는 아니었으나, 다른 분야의 천재였다. 그래서 지영에게는 천재의 아우라가 있었다.

오로지, 오직, 천재만 가진 것.

이연 그녀에게는 없는 것.

그녀가 제일 처음 본 게 연예계에서 막 데뷔했을 때였고, 그걸 가장 또렷하게 본 게 바로 정은정 작가를 통해서였다. 집필에 몰두 중인 정은정 작가는 몰골과는 상관없이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가히, 찬란한.

그런 정은정 작가와 같은 아우라를 지영도 가지고 있었다. 그걸 느끼게 된 뒤, 그녀는 인정했다. 이 아이는 연기력이 개똥 같지만 않으면, 저런 특징을 가진 배역은 기가 막히게 소화하겠다고.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는 못 되어도, 한 분야는 찢어 놓을 배우가 되겠다고.

그런데 골때리게도.

‘연기에도 재능이 있어. 그것도 상당히.’

지영은 연기력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작품을 거듭할수록 강지영이 가진 연기력은 빠르게 상승해, 저 높은 하늘의 별 위치로 향했다. 이연은 그걸 나의 무사님 시즌1이 끝날 때쯤에 깨달았다. 그리고 인정했다. 이 애는 종종 질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만큼, 꼭 옆에 붙어 있는 게 질투를 드러내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이득이라는 것도.

그렇게 인정하고 나자, 그녀는 좋은 누나가 되고 싶어졌다.

삭막한 연예계다.

괜찮은 후배들도 있고, 믿고 의지하는 선배 언니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뭔가 특수했다.

위치는 천상계인데, 정작 애는 지상 1층에서 산다.

서민 코스프레면 재수 없어서 손절해야 하나 고민하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천상계임을 알면서도 굳이 그곳에서 노닐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제는 강지영이란 캐릭터를 아는 만큼, 그 행동 자체에 거짓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것 말고도 신기한 건 많았다.

그런 동생이 지금 저 앞에서 대본 삼매경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게 이연은 기꺼웠다.

“눈에서 꿀 너무 떨어지는 거 아냐?”

홍진아의 작은 놀림에 이연은 씩 웃었다.

“사심 없는 꿀이니까, 오해는 말자?”

“응, 그래 보여. 그래 보여서 다행이고.”

“이 언니가?”

이제는 친해져서 사석에서는 농담도 편하게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벌써 몇 년째 한 작품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은정 언니는 기분이 어때?”

“나? 좋지. 저렇게 집중해서 봐주는데.”

“그게 끝?”

“응? 뭐가 더 있어야 해?”

“……아냐.”

이래서 천재란 것들은…….

이연은 다시 한번 속으로 혀를 찼다. 좀 더 뭔가 극적인 반응이 있을 줄 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지영이다. 강지영의 몸값이 진짜 너무 어마어마한 만큼, 작품을 같이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수준이었다.

솔직히.

“언니, 지영이 추정 몸값이면 우리 드라마 총제작비랑 비벼지는 거 알아?”

이연의 질문에 홍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진짜였다. 유명한 히어로 영화의 배우는 1편을 찍을 때 출연료로 당시 5억을 받았다. 그러나 시리즈에서 하차하는 마지막 작품을 찍었을 때는 기본 출연료 222억에, 러닝개런티로 천억에 가깝게 받았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도 천이백억 정도 받았고.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몸값이었다.

그게, 그의 출연료였다.

그럼 대충 잡아도 천억이 넘는다. 물론 지영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그 배우가 그렇게 받은 건 그 히어로 시리즈의 중심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지영은 그쪽에 필모가 전혀 없었다.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명성이란 게 있었다. 올해 있었던 포드 사건과 올림픽 사건, 그리고 올림픽 명경기로 인해 지영의 몸값은 다시금 위로 뛰었다. 지금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지영의 몸값은…….

“응. 할리우드로 따지면 지금 지영의 몸값은 700억에서 800억 수준이라며?”

“응. 그 정도 받는데. 그리고 그 정도면…… 우리 제작비 충당하고도 남지?”

“남지는 않지. 그 정도 있으면 다 써버릴 거니까.”

“헐, 쓸 수는 있고?”

“못 쓸 건 뭔데? 가뜩이나 우리 CG 약하다고 하잖아. 아예 제대로 발라버리면 그 돈 금방 써.”

“아…… 하긴.”

나의 무사님 드라마의 약점 중 하나가 바로 CG였다. CG는 진짜 돈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바르면, 돈은 진짜 어마어마한 속도로 빠져나간다.

“시즌2 마지막에, 재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신도 CG 조금 허접하다고 얼마나 말 많았는데.”

“맞아. 그러긴 했지.”

조금,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 조금의 어색함도 용서치 않았다. 어딜 감히 어설픈, 어색한 CG를 우리 지영의 뒤에 붙이냐며, 팬들이 대놓고 뿔이나 버렸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쉬운 점은 당연히 눈에 띈다.

당시에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아닌.

그런 편집의 실수들과 구도의 실패 등등은 당연히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판에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한 번 타협한 게, 뼈아픈 실책이 되기도 했다.

그게 지영의 마지막 신이었다.

하지만 만약 지영의 몸값만큼 제작비가 있으면, 아예 덕지덕지 발라버릴 수도 있었다.

“이번에 제작비 얼마나 나와?”

“역대급?”

“뭐야, 비밀이야?”

“응. 아직 자체 엠바고 중. 금방 풀리니까 그때 그냥 기사로 읽어. 대신 하나 말해줄 수 있는 건, 이번엔 확실히 넉넉할 거라는 거지. 무려 포드가 메인 후원사로 붙었거든.”

“헐. 진짜? 아니 근데. 포드가? 거기는 제대로 PPL도 못 넣잖아.”

“응. 못 받지.”

포드의 주력은 자동차다.

그녀가 요즘 잘 끌고 다니는, 여전히 잘 나가는 운명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나의 무사님은 사극이다. 사극이니 협찬으로 들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로 따지면 아직 총기도 나오지 않은 시대다.

그런 시대에 포드의 차량을 등장시킨다? 이는 억지 PPL을 넘어 작품설정 파괴였다. 그런데도 포드는 메인 스폰서사가 됐다.

이는 단순한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

PPL에 작품을 노출하지 못해도, 그만한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단 자신감 때문이었다. 특수하다 못해 기이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작품의 메인 스폰서. 작품 마지막에 메인 스폰서 포드! 이런 문구가 딱 지나가면 사람들은 전부 포드를 의리 있는 기업으로 생각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거짓말 같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홍보 효과는 똑똑히 나왔다.

거기에 작품 외적으로 홍보는 충분히 가능했다. 메이킹 필름이란 게 있고, 그걸 통해 충분히 노출 효과를 볼 수도 없었다. 그러니 계산기 다 두들겨 보고, 들어온 일이었다.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전문가들이 계산기 두들겨서 고개를 저어 놓고도 들어왔을 리는 만무했다.

그런 얘기를 설명해 주자, 이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쯤 지영도 대본에서 벗어났다.

“어, 누나 왔네요?”

“응. 왔지. 너 때문에 차도 못 시키고 이러고 있었다.”

“하하, 죄송해요.”

지영은 다시 자리를 옮겼다. 지영이 임은진의 옆에 앉자, 정은정 작가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어땠어요?”

“어, 음…… 최고?”

지영이 뜸을 들이다가 대답하자, 정은정 작가의 얼굴이 활짝 폈다. 집중하고 봐주는 모습에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직접 들으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럼, 재의 등장 신은 어땠어요?”

“2화 마지막 장면이요? 딱 클리셰를 따라가는 등장 장면이긴 했지만, 반대로 이게…… 왕도 아닐까요?”

“그렇죠. 왕도……. 저도 그런 느낌으로 썼어요.”

왕도.

정석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사실, 그 상황에서 재의 등장은 그런 식으로밖에 뽑아낼 수 없기도 하고요. 그게 아니면 아예 재를 등장시키지 않는 게 낫죠.”

“동감해요.”

지영은 하라면 하라는 대로 연기하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견을 물어보면 굳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아,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네.”

홍진아의 말에 지영은 자세를 바로 했다.

“선발대가 먼저 가서 촬영하고 있을 생각이에요.”

“선발대요?”

“네. 스케줄은 이미 나왔거든요. 그런데 지영 배우는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음…… 아무래도요.”

“그러니 필요한 신을 위해 우린 그대로 먼저 갈 거예요. 가서, 지영 씨 제외한 신들을 먼저 소화할 거예요.”

“…….”

홍진아 감독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케줄이 나왔으면, 스케줄대로 가는 게 맞다. 자기가 다쳐서 촬영 순서가 꼬인 것만 해도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일단 대본이 나오긴 했는데, 지영 배우 부담스러우면 액션 신을 좀 쳐낼까 하는데, 어때요?”

액션 신을 쳐낸다?

재의 지탱하는 것 중 가장 큰 기둥은 액션이다.

그러니.

‘액션을 죽여서는, 재라는 캐릭터가 살지 않아.’

이런 판단이 바로 들어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재의 진가는 누가 뭐래도, 칼을 뽑았을 때 드러난다.

지영은 그런 재의 진가를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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