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70화
370화. 라이벌(1)
한일전.
종목에 상관없이, 무조건 한일전은 단두대 매치가 된다. 그런데 이게 좀 다르다. 일본인은 라이벌 감정을 가졌다면, 한국은 역사의 증오와 분노가 기반이었다.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딱 100년 전에 벌어진 그 참혹한 역사.
말하기 시작하면 한없이 구구절절해지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 시절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정서가 기반이었다.
그렇기에.
-천하의 강지영도 ㅅㅂ…… 지면 개쌍욕처먹어야지
-ㅇㅈ 강지영이 아무리 잘났어도, 한일전 지는 건 다르지.
-강지영빠들도 이번은 실드 못 칠걸?
-한일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도 알아욧!
-맞아요! 그리고 왜 진다고 전제를 깔아요?
-신지가 상대잖아…….
-네?
-미야모토 신지. 일본의 천재가 상대라고요…….
-그게 왜요? 우리 지영이가 여태 전부 이겼는데!
-그건 몸이 성했을 때…….
-ㅇㅇ 심지어 몸이 성했을 때도 진짜 겨우 이겼음
-유일하게 강지영이 상대하기 버거워했던 선수가 미야모토 신지임
-솔직히 둘 시합하는 거 보면, 실력 차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음
-그 정도예요?
-그래서 우리 지영이 져요? ㅠㅠ
-솔직히 1회전부터 지금까지는 그래도 강지영이니까 이기겠지 하면서 봤는데요.
-결승전은 좀 힘듦. 솔직히 준결때도 좀 버거워 보이던데요.
-막판에 발목받치기 할 때도 좀 힘이 덜 받는 느낌이었음. 타이밍이 진짜 대박이었으니까 저렇게 날아간 거지…….
현실 직시.
강지영의 팬덤 중, 가장 양반들만 모이는 공중파 인터넷 중계 채팅창에 모인 이들 중에는 전문가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당연히 전문가라 함은, 선출을 말하는 거였다. 이들에게는 시합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들은 강지영이 우승하기를 당연히 기도했다.
질투도 질투지만, 올림픽이라는 축제의 특성이 질투를 이기게 해준 것이다. 그러나 우승을 기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연히 저도 모르게 시합을 냉정하게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본 결과…… 강지영의 경기력에 문제가 있음을 거의 모두가 눈치챘다.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일단 발목은 확실히 좋지 않은지 무의식적으로 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힘을 주지 않고 이동하려고 할 때는 티가 날 정도로 절었다. 그것만 봐도 강지영의 자세는 정상이 아니었고, 시합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강지영 특유의 유도가 없어졌다.
그때 상황에 맞춰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는 느낌이지만, 그것도 발목 때문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준결승은 솔직히,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부상 입은 선수에게 가장 불리한 게, 힘이 좋은 선수다.
힘으로 끌고 다니면 부상 입은 선수는 진짜 곤란해도 너무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용케 이겨내고 결승까지 갔지만, 결승전 상대는 솔직히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였다. 제3 자가 보기에 강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실력 차는 진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아주 미세한 차이.
그러나 아주 조금, 정말 조금 강지영에게 실력의 추가 기울어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걸 숫자로 수치화한다면 아마 강지영이 51에서 53이고, 미야모토 신지가 49에서 47쯤 될 거다. 이쯤 되면 솔직히 미야모토 신지가 한두 판쯤 이겼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강지영이 1패도 주지 않고 승률에서는 앞서고 있지만, 그래도 그날 컨디션이 만약 조금 좋지 않은 선수가 있다면 분명 그 선수가 졌을 게 분명한, 그런 실력 차였다.
그런 실력 차인데.
강지영의 발목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전문가들은 이 부상 때문에, 실력의 추가 극단적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다.
-미야모토 신지가 이길 확률이 못해도 9할은 되겠죠.
-헐…… 진짜요? ㅠㅠ
-ㅇㅇ 1할도 봐준거임. 신지 정도 실력이면 솔직히 거의 무조건 이긴다고 봐야 하는데…… 그마저도 상대가 강지영이라 봐준 거.
-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
냉정하다 못해 아픈 평가였다.
그리고 유도 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유도 선출 출신들은 그 의견에 다들 동의했다.
발 하나가 봉인됐다.
이건 복싱에서 그냥 팔 하나를 밴드로 감아 봉한 다음 경기를 붙이는 그런 영역이 아니었다. 하체 하나를 못 써서 생긴 경기력 손실은, 솔직히 너무 극단적이다! 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컸다.
-고수끼리의 대결은 원래도 한방 싸움임.
-그런데 거기에 주축이 될 발목이 다친 건 진짜 치명적이지…….
-그럼 진짜 못 이겨요?
-저 일본 유학 중인데, 여기도 지금 난리임.
-뭐로 난리?
-신지가 강지영 잡고 올림픽 금메달 땄다고 자축으로…….
-…….
-…….
안 그래도 건드려 놓은 게 있었다.
지영은 경기장에 이른 아침에 나오며, 한 일본 기자의 질문을 받아 굉장히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그 얘기는 강지영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그러나 시합 중인 선수를 붙잡고 개소리를 한 일본 기자에게 쏟아낸 지영의 언사는 확실히 과했고, 그렇기에 일본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래서 경기 시작 전부터 일본은 뜨거웠다. 그쪽도 키보드 배틀로는 꿀리지 않는 인간들이 많은 만큼, 인터넷은 벌써 난리가 났다.
그들에게 올림픽 기간의 유도는, 한국으로 따지면 주모 혹사 종목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성적.
사실 이번 대회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60, 66은 실패했지만 73은 결승전까지 새로운 유도 황제 미야모토 신지가 결승까지 갔고, 어제는 아베 우타가 금메달을 땄으니까. 그만큼 유도는 일본인의 자긍심, 자부심을 강력하게 올려주는 종목이었다.
그렇기에 인기가 정말 상당했다.
애초에 유도 인프라 자체가 타국과는 아예 다르다. 나라에서 해주는 처우 또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베 히후미로 인해 떨어졌던 자부심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회가 지금이었다.
부상이지만, 그렇게 말이 많았던 한국의 강지영을 잡을 완벽한 찬스가 왔으니, 일본은 지금 축제 분위기였다.
반대로, 한국은 침울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지영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강지영이 결승까지 간 건 너무 고맙지만, 너무 대견하고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만, 하필이면 결승전 상대가 라이벌 미야모토 신지고, 객관적으로 봐서는 절대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기권하는 게 나을 듯……. 그럼 적어도 ‘패’배는 아니잖아.
-하긴 그러네……. 근데 하겠냐?
-안 하지. 올림픽 결승전인데…….
-때려죽여도 못하지 ㅠㅠ
-에휴…… 그래도 이겼으면 좋겠다 ㅠㅠ
-안 다쳤으면 좋겠어요 ㅠㅠ 우리 지영이 이 대회 끝나면 나의 무사님 바로 들어간다는데 ㅠㅠ
-……그게 중요해요, 지금?
-중요할 수 있지. 우리 같은 사람이나 올림픽을 최우선으로 보지, 여자들은 올림픽보단 드라마일 수 있잖아.
-…….
-불편해할 거 아니다. 이해해야 할 부분이지.
끝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지영의 전 경기가 리플레이 되기 시작하자 다시금 흐름이 ‘유도’로 돌아갔다.
새벽.
은메달이 확정되었음에도, 한국의 분위기는 극히, 좋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로 일본은 축제 분위기였다.
한국이 냉정하게 살펴봐, 강지영의 승률이 정말 얼마 되지 않음을 알아 침울하듯이, 이들도 냉정하게 살펴봐 미야모토 신지의 승률이 매우 높음을 알아서였다.
-wwwwwwwww!
-금메달 헌납하려고 이 악물고 올라온 지영 고마워!
-신지 상! 금메달 축하해요!
-아직 경기도 안 했는데?
-발목 다쳐서 쩔뚝이는 선수한테 설마 지려고? www
-www 맞아! 굳이 올라와서 우리의 승리 제물이 되어준 강지영에게 짧게나마 고마움을 표하자고 다들! www
-그런데 그를 너무 얕보는 건 좋지 않아. 잊지 말아야 해. 신지가 그에게 3번이나 졌다는 사실을.
-그때도 실력 차이는 거의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발목을 절룩이는 반푼이 신세지www
-그런 상대한테 우리 신지 상이 질 리는 없으니까! 금메달 축하해요!
-축하해!
-제물이 되어준 강지영은 고맙고www
그래서 아주, 난리가 났다.
벌써 금메달을 딴 것처럼 굴었다.
양국의 분위기는, 이렇듯 크게 차이가 났다.
이제 단두대 매치에서 한쪽이 승리하는 순간, 조롱과 멸시로 시작으로 키보드 대전이 발발하게 될 것이다.
* * *
그런 판을 만든 지영의 마음은 생각보다 편안한 상태였다.
결승전에 관한 부담? 당연히 있었다. 애초에 황금세대가 언론과 척지게 된 계기의 시작이 바로 이 한일전이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튄 언론의 저격이, 여론까지 등에 입으며 황금세대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1년의 상당 기간을 연예인으로 살면서도 언론과 함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터뷰는커녕, 기자들과는 마주 보고 서지도 않는 게 황금세대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한일전이 주는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지면 어떤 반응이 올지, 그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다쳤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진 않겠지.’
숨죽이고 있던, 강지영이라면 아주 이를 가는 일단의 ‘무리’가 아주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강지영이란 한 개인을 죽이기 위해 말이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필사적일 게 분명할 거고, 여기에 동조하는 여론도 생길 거다.
왜?
한일전이라는 단두대 매치에서 패배했으니까.
한일전에서 진다는 게 솔직히 그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영이기에 문제가 된다. 이미 경기 전에 일본 기자에게 뭐라고 해놓은 것도 있었고. 일본 유도협회와도 척진 게 지영이기에, 지영은 솔직히 이겨야 본전인 상황이었다.
그걸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떨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대기실을 나와 선수 대기석에서 패자 결승을 관람했다. 언제나 그랬듯, 여자부 경기가 먼저였다. 패자 결승 두 경기, 그리고 결승전 경기가 이어졌다. 한국 선수는 그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여자부 경기의 금메달은 그루지야에서 가져갔다.
에테리 리파르텔리아니.
도쿄 노메달의 한을 일본의 후나쿠보 하루카를 잡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경기도 극적이었다.
하루카의 강력한 굳히기에 걸렸지만, 절반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왔다. 이어서 고작 20초 남기고 뒤로 빠지는 하루카를 쫓아 들어가며 찍은 손밭다리가 기가 막히게 작렬하면서, 한판으로 이어졌다.
앉아서 스트레칭 중이던 지영이 저도 모르게 박수 쳤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었다. 그렇게 여자부가 끝나고, 남자부가 시작됐다.
패자 결승.
올림픽이란 축제가 허락하는 마지막 메달 기회.
지면 5위로 떨어지고, 승리하면 동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니 물러설 수 없는, 어쩌면 준결승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간절함이 닿아, 경기 결과가 나왔다.
가브리엘 팔카오와 알레코가 승리하면서, 동메달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경기장의 분위기는 이미 변했다.
진행요원이 경기장을 점검하는 동안, 진행석에서 마지막 금일 마지막 경기 안내 멘트를 내보냈다. 여러 단어 중에 불쑥 캐치된 단어. 라스트 매치. 지면 지영이나, 미야모토 신지나 한동안 언론의 포화를 맞아야 할 테니, 어쩐지 느낌이 살짝 비슷했다.
지영은 시선을 돌려 건너편에 있는 미야모토 신지를 바라봤다. 자신처럼 앉아서 몸을 풀고 있는 신지의 표정도 크게 특별한 감정 없이 차분해 보였다.
경기전 마인드 컨트롤이 이미 완벽하게 끝나 있는 모습이었다.
하여간 정말, 반칙 같은 인간이었다.
총명함으로 빛나는 눈빛. 신이 유도란 스포츠를 위해 굳이 ‘손수’ 빚어 내린 것 같은 인간이 바로 미야모토 신지였다.
그럼 자신은?
‘그게 꼴 보기 싫었던 악마의 장난 같은 존재일까?’
자신은 반칙인 존재니까.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공평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하던 지영은 자신을 부르는 진행요원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
잡생각은 내던지고, 집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