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68화
368화. 함부르크 올림픽(14)
남은 시간은 2분.
스코어는 알레코가 절반 하나로 우세 중이다.
하지만 알레코에게는 지도 두 개나 있었고, 지영은 절반을 빼앗겼지만, 고작 1분 40초 만에 상대에게 지도를 두 개나 먹였다.
이를 본.
“정말 대단하군.”
“경기 운영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더니, 그게 과언이 아니었어.”
“영상으로 보면서 왜 저렇게 빤한 수에 당하나 했는데, 그럴 만도 해. 관중석에서 보는 우리도 이렇게 프레셔를 받는데, 바로 앞에 선 선수는 어떻겠어.”
“오, 그렇군. 압박. 지금 보니 알레코 저 친구의 표정도 상당히 별로야.”
전문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지영이 경기 운영이야, 질리도록 비디오로 확인했다. 자기가 맡은 선수가 지영과 붙을 수도 있으니 전력 분석은 당연히 필수였다. 질리게 보면서도 참, 말도 안 되는 경기 운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영상은 애교였다.
“더 무서운 건, 저 모든 게 순간의 판단으로 시작됐다는 거지.”
“시합 중에 저 정도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투기 종목 선수에게는 신의 축복이지.”
“음…… 공감할 수밖에 없군.”
이들 모두는 유도라는 종목이 접전이 붙는 순간, 얼마나 자신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거야 실력의 영역이지만, 그 실력을 집행하는 전제에 저 차가운 이성이 있다는 것에, 그들은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절반을 빼앗겼을 때는, 이변이 생기나 했다.
아니, 발목을 다쳤으니 이변까지는 아니어도 결국 부상으로 무너지나, 이런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절반을 빼앗기고, 아주 미묘하게 변한 운영을 이어가더니 결국 2분을 남기고 시합을 거의 원점으로 되돌렸다.
“아직 알레코가 유리한 건 사실이지.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절반을 딴 알레코의 승리니까.”
점수 자체로는 알레코가 앞서고 있었다.
옛날에야 지도로 세 개가 절반과 같았지만, 그 룰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고 가정하면 알레코의 승리다.
하지만 2분이다.
2분이면, 한판이 서너 번은 나올 수도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지금 기세는 강지영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먼저 절반을 따놓고, 운영에서 밀리면서 기세에서도 밀려버린 알레코는 다시 다부진 표정을 짓고 있지만, 한번 넘어간 기세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기세를 그렇게 중시하는 게, 그런 연유에서였다.
이런 기세는 단체전에서 정말 눈에 보일 정도로 드러나지만, 개인전이라고 해서 그게 티가 안 나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분석관들 말고.
“이건 뒤집기 힘들겠군.”
“강지영의 운영을 생각하면…… 알레코가 넘기는 힘들 거야.”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않나? 대체 어떻게 저 나이의 선수가, 백전노장의 전술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강지영의 나이가 이제 스물인가 그렇지 않던가?”
“한국 나이는 다르다고 들었어.”
“그래 봐야 스물 전후, 그 정도쯤이지. 보통 저 나이의 선수면 아직 성인 무대는 데뷔도 전인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강지영도 세계 대회는 그리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 않나?”
“그럴 거야. 메이저 대회는 다 한 번씩만 출전했으니까. 아시안 게임? 그건 아직 출전도 안 했고.”
“……정말 반칙 같은 친구군.”
“유도 하나만 놓고 보자면, 정말 그렇지.”
“질투 나, 정말…….”
“…….”
선수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리고 선수들은 질투심을 품었다. 스포츠란 장르뿐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란 나오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노쇠했지만, 축구만 봐도 세계를 떨쳐 울리던 메시와 호날두가 존재했다.
이견이 없는, 축구의 천재들.
그런데 이 천재들은 과연 칭송만 받고, 사랑만 받았을까? 아니었다. 시가와 질투에 지독히도 시달렸다. 이 천재들은, 그 시기와 질투를 이겨낸 이들이었다. 이겨내고, 세계 정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쳐 울린 천재들이었다.
그 시기와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추락한 천재도 많았다.
같은 장르,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시기와 질투. 강지영은 그 시기와 질투를 일으키기에 지독히도 안성맞춤인 선수였다.
솔직하게 예체능에 종사하는 인간이라면, 유명해져서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는 상상쯤은 누구나 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해, 방송에도 출연해 이름을 알리고, 그렇게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그런 상상쯤은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면서도. 자신이 몸담은 종목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걸 깨닫고 나면, 그 상상은 상상으로 끝나겠구나란 것도 같이 깨달아 체념하게 된다.
즉, 자신에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게 현실이 맞으니까, 그저 현실을 자각하는 것뿐이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지 않는 이상은, 웬만해서는 일어나기 힘든, 그런 현실이었다. 금메달을 땄다고 해도 잠깐 반짝이고 다시 사라진다. 그게 비인기 종목의 현실이자 설움이었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완전히 깨부순 존재가 나타났다.
유도. 쥬도라 부르는 이 종목은 특정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이런 비인기 종목에 종사하면서, 메달과 상관없이 유명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조건 중 가장 확실한 게, 외모였다.
이 외모로 유명해진 선수 중, 가장 유명한 거야 당연히 지영이었다. 하지만 지영 이전에 이미 유도에도 외모로 유명해진 선수가 있었다.
다리아 빌로디드(Daria Bilodid).
정신 나간 ‘지도자’로 인해 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로, 경량급 중의 경량급인 -48kg 뛰는 선수다. 이 선수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첫날 -48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도쿄에서도 3위를 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이런 다리아 빌로디드가 지영보다도 먼저 주목받은 예였다.
하지만 지영은 이런 다리아의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가 바로 강지영이었다. 열강의 대통령도 아니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도 아니고, 증권가의 큰손도 아니고, 대단한 기업의 수장도 아닌 유도 선수이자 배우인 강지영이 현재 세계 1위였다.
며칠 전의 사고와 그 이전의 그가 보인 행보는 정말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정도였고, 이제는 뭐 그냥 유명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그런 놈이…….
유도도 더럽게 잘한다.
“뻑…… 불공평한 세상.”
“……동감이야, 친구.”
그의 시합을 보는 ‘선수’ 중 일부는 그의 경기를 순수하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빌었다.
알레코 파이팅.
* * *
힐끔. 2분.
지영은 2분밖에 남지 않았으면서, 2분이나 남은 시간을 보며 지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발목이 지끈거리지만, 그 통증은 이미 의식 저 너머로 빠졌다. 지영의 머릿속은 이다음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제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올 거야. 내가 압박하려고 하면, 발작하듯이 밀고 나오겠지.’
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 뒤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정도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영이 압박하려고 움직이면, 반드시 맞불을 놓을 거다. 이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걸 받아서 되치기를 노릴 생각이라는 것도 과연 알까?’
오늘 2번의 경기가 다 그렇게 끝났다.
1회전은 밀고 오는 걸 받아 빗당겨치기로 끝냈고, 2회전도 빗당겨치기로 자세를 무너뜨린 다음 굳히기로 들어가 끝냈다. 알레코가 힘만 좋은 선수라 그걸 모른다고 해도, 그의 팀 그루지야는 아닐 가능성이 컸다.
하지메!
심판의 시작 사인에 맞춰 자세를 잡으면서 지영은 그루지야 코치를 살폈다. 말로만 하면 전달이 잘 안 되니, 당연히 손짓 발짓 수신호가 섞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지영은 그루지야 코치가 알레코에게 어떤 코칭을 내렸는지 파악했다.
‘역공.’
지영이 지금까지 압박을 걸었다면, 반대로 압박을 걸라는 내용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손바닥을 내리누르는 신호를 보낸 거로 보아, 차분하게. 혹은…….
‘자세를 낮추고.’
카운터를 조심하란 뜻. 지영이 느끼기엔 후자 같았다.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밀고 들어가는데, 여기서 중심이 뜨면? 1회전처럼 그 힘을 받아서 빗당겨치기를 때리기 딱 좋다. 실제로 그게 알레코의 약점이기도 했다. 그걸 그루지야 코치진도 당연히 할 테니, 압박을 가하되 자세는 낮춰라. 정도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자세를 한껏 낮춘 알레코가 그 힘을 무기 삼아, 밭을 가는 소처럼 밀고 들어왔다. 소는 느리다. 하지만 그래도 밭은 갈린다. 그 우직한 걸음으로 쟁기를 끌고 가는 소처럼, 알레코는 전진해 왔다.
지영은 결코 그런 알레코를 경시하지 않았다.
뭐든 궁극에 이르면 그 자체가 경지에 올랐다고 보는 게 맞다. 옛날 표현을 빌리자면, 일가를 이룬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알레코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올림픽 입상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알레코는 아직이었다. 오늘 지영을 이기고. 혹은 져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하고 메달리스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이었다.
‘그러기엔…… 연륜과 경험, 그리고 성적이 부족하지.’
아직은 그루지야의 신성이다.
그리고 지영은 그런 그루지야의 신성을, 다시금 요리하기 시작했다. 첫 의도가 너무 잘 먹혔지만, 이후로 계속 밀렸던 게 알레코는 좀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마치 너 따위가 감히!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툭, 탁!
뻗은 손을 쳐내서, 지영은 쳐낸 뒤 날아든 손을 받아 당기며, 그대로 안뒤축을 쳤다. 중심을 낮췄어도 알레코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경직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힘이 비정상적으로 좋지만, 반대로 유연성과 반응속도 등은 상당히 떨어졌다.
특히 두 번째,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건 모든 종목이 그렇겠지만, 유도에서도 제법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기술에 걸렸을 때, 혹은 기술이 들어올 거라는 걸 인지한 순간 방어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방어는 기술에 걸린 직후부터 시작될 거다. 알레코는 이 약점을 지금까지 우악스러운 힘으로 이겨냈다.
기술에 걸려도, 힘으로 오히려 상대에게 역으로 압박을 가해 기술을 풀거나, 깨뜨려 되치기로 연결하곤 했다.
‘그런데 그건 잡혀줘야 가능한 거고.’
업어치기나, 허리기술이나.
그런 기술은 나와 상대가 붙어있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적어도 최소한 상대의 중심이 내 쪽으로 오게끔 하거나. 변칙기술 쪽은 뒤로 밀면서 차거나 업기도 하지만, 일단 기본은 그렇다.
하지만 발기술은 다르다.
발기술은 깊숙하게 파고드는 안다리 같은 경우가 아니면 굳이 상대와 바짝 붙을 필요가 없었다.
그건 곧.
알레코가 기술을 방어하는 조건 자체를 생략했다는 뜻이다.
“큽!”
툭 때린 안뒤축에 중심이 휘청거리는 알레코.
지영이 아주 정확하게 발의 중심이 이동해 매트에 닿는 순간을 노려 뚝 쳤기 때문에, 발바닥이 매트를 쓸며 쭉 미끄러졌다. 그러나 중심만 무너졌다. 아예 넘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영도 그걸 노리고 때린 안뒤축은 아니었고.
다만 소득은 제대로 봤다.
‘이제 발기술도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을 것이다.
그렇게 알레코가 조심해야 할 게 또 추가됐다.
업어치기, 허리기술, 운영, 반칙, 발기술 등등.
조심해야 할 게 이렇게 많아지면? 선수는 그 전부를 조심할까? 선수에 따라 당연히 다르겠지만, 지영은 알레코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갔다.
무시.
알레코는 모든 주의사항을 무시하고, 본인의 플레이로 돌아갔다.
경기 진행 중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그루지야 코치가 급히 소리쳤지만, 알레코의 귀에는 닿지 않았는지, 그는 곧 지영을 향해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지영은 그걸 받으면서도, 카운터를 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