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55화
355화. 함부르크 올림픽(1)
함부르크 올림픽 개막식은 시작부터 확실히 도쿄나 베이징 올림픽보다는 훨씬 많은 관심 속에서 시작됐다. 도쿄는 방사능과 코로나 문제가 있었고, 베이징은…… ‘역대’ ‘최악’이란 평가가 따라붙는 올림픽이었으니 굳이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함부르크 올림픽은 그래도 근래에 가장 정상적인 국가에서, 정상적으로 치러질 예정이었기에 관심이 폭발했다.
거기다가 독일은 EU 가입국이다.
가입국끼리의 혜택으로 개막전부터 독일로 가입국의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관객이 모으면, 축제는 당연히 흥행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전염병과 전쟁의 홍역을 치른 세계가 다시금 맞이하는 축제. 그렇기에 기대감은 남달랐다. 개막식은 그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줬다. 올림픽의 기본 슬로건이 화합이고, 주최 측은 그 화합에 부합되는 개막식을 만들었다.
특히 ‘전쟁 반대’에 관한 메시지가 곳곳에 박혀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올림픽은 당연히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이 시기만 되면 다시 재조명되고, 인기를 얻기 시작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참 역대급인 게 개막하기도 전에 강지영이란 한 인간이 역사에 남을 미친 짓을 저지르면서 그 관심도를 가히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가뜩이나 팬덤이 어마어마한 강지영이다.
아직 군 복무 중인 세계급 아이돌에 비할 정도는 아니나, 일이 년이면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평가가 나오는 선수이기에, 애초에도 관심도는 높았다. 그런 선수가 보여준 희생정신에 전 세계가 들썩이는 중인데, 한국이라고 잠잠할까. 오히려 더했다.
초미의 관심은 역시 개막식 다음 날부터 곧장 시작되는 유도 경기였다.
60부터 시작하니, 지영의 경기는 3일째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절대 회복이 불가능하고, 시합에 나오는 것마저 불투명하단 얘기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 강지영은 경기 참가를 천명했고, 편의나 형평성 따위는 거절하면서, 그 어떤 특혜도 없이 시합에 임하겠단 각오를 밝혔다.
물론 대리인을 통한 발표였고, 강지영은 공식 석상에 애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편의 따위 필요 없고, 나는 경기에 나간다. 그 말 이후 그 어떤 공식 입장이 없으니 몸이 달 수밖에 없는 팬들이었다.
-아 낼모래 지영이 진짜 나올까?
-나오지 않을까요? 본인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아직 안 나았을 것 같아서 ㅠㅠ
-낫진 않았지……. 못 낫지. 고작 3일로는. 중요한 건 최대한 컨디션을 올려서 나갈 수 있냐 없느냐지.
-우승할 수 있을까요? 유도한 분 안 계세요? 저렇게 다치고도 우승할 수 있어요?
-윗분. 유도 안 해도 알 수 있는 얘기 아닐까요? 장염 빡세게 와서 진이 싹 빠졌는데 수능 잘 볼 수 있겠어요?
-아…….
-근데 지금은 장염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겁니다. 장염은 어쨌든 힘은 없어도 몸은 불편하지 않을 건데, 지금은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 테니까.
-ㅠㅠ 그럼 지영이 금메달 못 따요?
-그건 또…….
-음…….
보통은 힘들다.
불가능하다. 어렵다.
이런 대답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왜?
그 정도의 부상이었으니까.
아무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아니,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냥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생각해도 지영이 당한 부상은 그 정도였다. 그런 부상으로 투기 중에서도 레슬링, 복싱만큼이나 격렬한 유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전문가라면 상대를 곰 인형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거라고 답할 거다.
그런데 그런 대답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왜?
강지영이니까.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대회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으니까.
진실로 ‘천재’라 부를 수 있고, 같은 종목에 종사 중인 선수에게는 ‘재앙’이라 평가받는 선수니까.
이런 선수라서 또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선뜻 아 힘들지. 라는 대답은 올라가지 않았다.
-쯔쯔, 설레발 치더니 꼴좋지 뭐.
-맞음. 지가 뭔데 ㅋㅋ 봐준다고 할 때 좀 봐달라고 하지 등신 ㅋㅋ
-운도 좋아. 솔직히 소피? 걔도 나서지 않았어도 살았음. 벤츠 브레이크 시스템 미쳤는데 왜 끼어들어가지고 위험을 자초함?
-애 잡을 뻔한 거지 ㅉㅉ
잠시 침묵하니, 숨죽이고 기다리던 이들이 지영을 노리고 악의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나 어마어마한 팬덤의 화력에 순식간에 가루처럼 부서졌다. 이곳에서 일상인 일이었다. 어떻게든 지영을 흠집 내고 싶은 자들이 있다는 것은, 뭐 이제는 모두가 아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세력인지도 팬들은 이제 알고 있었다.
따라서, 흔들리지 않고 지영을 지지했다. 걱정과 기대, 개막식의 날이 저물고 올림픽 1일째가 밝았다.
모두의 기대 속에 시작된 유도 경기.
남자 60은 광탈했고, 현소연은 8강까지 올라갔다.
* * *
본래라면 경기장에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병원에서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남자 경기는 지영도 못 봤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는 다른 종목에서 화면조정 후, 넘어올 때쯤 이미 패해서 나가고 있었다. 해설의 얘기를 들으니 업어치기 한판이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현소연이 들어갔는데, 역시 현소연은 강했다.
더 챌린저에서 스타가 된 이연두와도 호각으로 싸운 현소연이었다. 아니, 사실은 조금 압도했다. 이연두는 지영이 봤을 때도 가히 천재성이 빛나던 선수였는데, 현소연은 그래도 현역 국대의 위엄을 지켰다.
비록 연장까지 가서 반칙승을 거뒀지만 그래도 경기 내용 자체만 봤을 때도 현소연이 조금 위긴 했다.
그런 현소연은 그래도 8강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8강에서, 절반 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오…….”
첫날인데 스타트가 좋았다.
한국 유도는 사실 남자가 강세였다. 예전에 조인선, 김민정 선배님 때는 한국 여자유도가 강국이었는데, 이후 이렇다 할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입상권에는 가도 한판승의 달인이나 전기정 감독, 조인선 교수처럼 압도적인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대를 이을 유망주 선수는 언제나 나왔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고도 단단했으며, 한국 여자유도 선수들의 등반을 허락하지 않았다. 도쿄는 참담했으며, 브라질에선 그래도 선방하긴 했으나 딱 그 정도였다.
그래, 올림픽이니 입상도 잘한 거다.
하지만 그건…… 대중적인 시각이다. 관계자, 그리고 선수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세대가 변하고 축제를 즐기는 자세도 변하고 있지만, 정작 그 축제를 즐겨야 하는 플레이어들은 변하지 못한 거다.
현소연 또한 그 압박을 받는 세대다.
지영은 카메라가 잡은 현소연에게서, 여유가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현소연은 도은정 사건 후,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훈련에만 몰두했다. 그 정도가 좀 심해 스태프들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금메달을 걸어야 한다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 각오를 넘어선 집념만 내보이며 오히려 역으로 스태프가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도 실력 면에서는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현소연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준결쯤 되면…… 여유가 그 무엇보다 필요한데.”
아쉽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나, 준결승 상대가 무려 크라스니키 디스트리아다. 도쿄올림픽 챔피언이며, 그 이후 대회도 휩쓰는 여자 48 체급의 왕이다. 이제 서른 줄에 오른 이 선수는, 완숙미까지 완벽하게 갖추며 가히 상대가 없단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그녀의 정보를 잘 아는 이유는 지영이 분석 능력이 뛰어나 스태프들과 함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전원의 경기를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전부 말이다. 크라스니키는 현소연으로서는 쉽지 않았다.
일단 결점이 없었다.
실수로 패배하는 경기는 있어도, 베스트 컨디션에 실수가 없으면, 패배도 없는 선수였다. 유일하게 라이벌이라 불리던 일본의 도나키 푸나가 예전 대회에서 부정 판정 때문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멘탈이 터져 은퇴한 지금은 더더욱, 상대가 없었다.
현소연은, 그런 두 선수의 레벨까지는 아직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다.
멘탈부터 시작해 모든 게 베스트여야만 그나마 크라스니키와 붙어볼 만할 텐데, 육체 컨디션은 몰라도 멘탈 컨디션은 지영이 볼 때 아직이었다.
물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고, 패자전이 끝나고 난 뒤에 본경기가 시작되면 결국 결과는 나올 거다.
“파이팅.”
그래도 지영은 현소연을 응원했다.
지영은 현소연에게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현소연이야 자신을 포함한 황금세대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건 그녀고 지영은 별로 감정이 없었다. 그저 올림픽이란 축제까지 왔으니, 부디 온 실력을 다해 자신을 증명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가길 바랄 뿐이었다.
잠시 브레이크 타임.
지영은 다른 종목으로 채널을 돌렸다.
“지영아.”
“네, 누나.”
임은진의 부름에 지영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원래는 어머니가 있겠다고 했는데, 임은진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버텼다. 그리곤 오히려 사람을 불러 두 사람을 경기장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그건 지영의 부탁이기도 했다.
“손님 왔는데?”
“손님요?”
“응. 일본 선수들.”
“일본…… 아. 들여보내 주세요.”
“응.”
일본 선수라는 말에 지영은 대번에 누군지 감이 왔다. 임은진이 잠깐 나갔다가, 역시 예상했던 이들과 함께 들어왔다.
미야모토 신지.
안자이 히카리.
복장이 운동선수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머리도 다시 기르기 시작한 니카이도 마사루까지. 역시 예상했던 3인이었다. 지영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곤 미야모토 신지를 빤히 봤다. 시합 전에는 사실 아는 척도 안 하는 그가 병원까지 찾아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영은 어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안 물어볼 수도 없어서, 임은진이 차를 가져다주고 가자 가볍게 인사하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내가 시합에 정말 나오나 안 나오나 궁금했나 보네?”
지영의 말에 신지는 씩 웃었다.
자신감이 있는 미소였다. 이 친구는 참 특이했다. 흔히 천재가 가지는 속성은 모조리 가진 데다가, 멘탈마저 밉상은 아니었다. 가끔 못된 성질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걸 빼면, 가히 완벽에 가까운 유도 선수였다.
거기에 외모까지 받쳐주니 일본 만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천재 왕자님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견 무례하기까지 한 이런 행동 또한, 이상하게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힘이 있었다.
“궁금했지. 정말 나올까 말까. 근데 보니까 딱 알겠다.”
“하하, 그래?”
“응, 시합 포기하지 않은 눈이야. 그 눈.”
패자의 눈빛이 아니라고 하는 거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실의에 빠질 필요도 없었다. 만약 대회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면, 우울하긴 했을 거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려야 했다면 신지는 아마 보는 즉시 알아차렸을 거고.
“잘 봤네. 너는. 컨디션 어때?”
“좋지. 우울했다가, 네 발표 듣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어. 하하.”
신지의 웃음에 지영도 피식 웃었다.
앞에 앉은 친구는 분명 라이벌이었다. 예전에 안호진에게 했던 짓 때문에 확실히 짜증 나서 적대시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미야모토 신지라는 ‘인간’ 자체는 밉지 않았다. 서로의 상태를 알았으니, 지영은 마사루를 바라봤다.
파리에서 봤던 마사루는 없었다.
느낌 자체가 달라졌다. 게다가 관리를 놨는지 다부졌던 체격이, 우람해지기 직전이었다. 근력을 잡지 않아 퍼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와 딱 같았다.
“그만뒀나 봐?”
“네, 가업을 잇기로 했습니다. 하하.”
“가업?”
“라멘 집입니다. 유서 깊은. 그 길을 잇기로 했습니다.”
“……후회하진 않고?”
그렇게 물었더니, 마사루는 씩 웃었다.
“신지 상과도 진심으로 붙어봤고, 지영 상도 진심으로 저를 상대해 줬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음, 네. 알게 됐습니다. 하하.”
“그래.”
지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어차피 알 것 같았으니까. 안자이 히카리와도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금방 일어섰다. 의중을 물어보러 직접 행차하긴 했으나, 지영과 신지는 이틀 뒤 시합이다.
그러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이 돌아가고, 지영은 체중계에 올라갔다. 72.70. 운동을 못 해서 최대한 먹지 않는 방법으로 결국 체중을 맞췄다.
그래서 솔직히 컨디션은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개의치 않았다.
몸은 그래도, 정신은 어서 경기를 치르고 싶어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경기에 목을 매는 강지영이 나오고 있다는 뜻은, 갈망의 증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신지가 이곳을 찾은 이유와도 결이 비슷한…… 강자와의 시합. 그걸 기대하는 무의식 때문이었다. 특히 신지를 봤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후우.
후우.
“후우…….”
그래서 지영은 심호흡까지 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다시 평정을 찾은 지영은 다시 TV를 틀었다.
현지로 오후 5시. 준결승전이 시작됐다.
현소연 패배했다.
그리고 패자 결승 역시 패배했다.
두 경기 전부, 이기고 있다가 뒤집혔다. 현소연은 패자결승에서 10초를 남겨두고 누르기 패배를 당한 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얼굴을 덮은 흉터 가득한 손 사이로 흐르는 눈물은, 올림픽이 가진 무게를 실감하게 했다.
이런 거다. 올림픽이란 축제는.
모두가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도, 정작 본인은 저렇게 통한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그런 무거운 무대였다.
첫날 경기는 그렇게 끝났고, 이틀째가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