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54화
354화. 운명처럼 그렇게(6)
편의 따윈 필요 없다!
내 사정 봐주지 않아도 충분하다!
라고 호언장담을 하긴 했으나…….
“별로긴 별로네.”
찌릿, 끙…….
제대로 된 상태를 알기 위해 전문가와 함께 몸을 굴려보던 지영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고작 며칠인데, 근육의 가동범위가 아주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깁스와 보호구로 채워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정도야 천천히 공을 들여 스트레칭해 주면 풀리긴 하지만, 문제는 역시 통증이었다.
스트레칭 자체야 정상적일 몸일 땐 몸을 풀어주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지만, 근육이 상한 상태에서의 스트레칭은 그 자체로 혹사였다.
무조건 쉬어야 할 근육을 강제로 잡아 비틀고, 늘리고 하는 게 스트레칭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스트레칭이, 지영의 상태에서는 좋은 수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일단 몸 상태를 가장 확실히 알아보려면, 스트레칭으로 관절과 근육의 가용범위를 알아보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함부르크 전체가 올림픽의 열기, 기대로 달아오른 오늘, 개막식이 열리는 오늘 지영은 깁스와 보호구를 풀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고작 3일이다.
제대로 휴식을 취한 지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쉬는 거야 푹 쉬었지만, 문제는 역시 이 시간 동안 근육이 얼마나 회복됐느냐였는데, 역시나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분명 불편하다.
발을 디디는 순간 불쑥 올라온 통증은 분명 아! 아직 걷지 말라고! 발목이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영에게 이 정도 불편함은 너무나 익숙한 거였다. 비록 지난 몇 년간 정상인의 몸으로 편하게 살았지만, 그 이전의 근 10년은 누구보다 불편하게 살았다. 특히 발목은…… 최악이었다.
사고와 함께 망가졌던 어깨는 그래도 쓰지 않으면 되었다. 어깨를 쓰지 않는 방법은 그래도 많았으니까, 어떻게든 괜찮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발목은 아니었다. 차 바퀴가 발목을 밟고 지나가면서 복사뼈를 중심으로 파삭! 깨져버렸다.
어깨도 어깨였지만, 지영의 몸을 실질적으로 가장 크게 망가트린 건 바로 이 발목이었다. 너무 크게 깨져서, 조각난 뼈를 이어붙인다고 이어붙였지만, 결국 완전하지 않았고 그래서 걸을 때마다 통증을 유발했다.
수술이 끝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말이다.
그런데 지영은 그런 통증에 익숙해진 삶을 살았고, 심지어…….
‘어떻게 걸어야 가장 부하를 적게 주는지도 알고 있지.’
다리가 불편하면 필연적으로 걷는 게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픈 발에 힘이 실리는 걸 막고자, 다른 다리에 부하를 더 주며 걷게 된다. 이 경우 걸음의 밸런스가 깨지며 당연히 다치지 않은 쪽의 발에도 무리가 가게 된다. 절룩이는 걸음걸이는 그래서 나온다.
지영은 그걸, 10년간이나 해왔다.
그래서 그사이 어딘가에서 절묘하게 중심을 잡으며 걷는 법을 저도 모르게 터득했다. 사실 이건 지영이 대단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정말, 최소한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발악에서 나온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주 절묘하게…… 중심을 잡아갔다.
이건 영혼이 기억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
지영은 그 통증을 반대쪽에 나눠줬다. 그러자 당연히 부하가 걸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조금씩 뻑뻑해졌지만, 지영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지영의 하체는 웬만한 축구 선수보다도 강하게 발달해 있었다.
다수의 종목이 그렇지만, 유도도 하체가 부실해서는 결코 대성할 수 없는 스포츠다. 그래서 경지에 오른 선수들의 하체는 일반인이 보기에 살벌한 정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하체는 잠시 움찔한 것처럼 먹먹해졌지만, 이내 천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귀 전보다 좋아.’
생각해 보니까 그땐 부상 이후라 하체가 많이 빈약해져 있을 때였다. 쓰지 않는 근육은 당연히 죽는다. 쓰지 않는 지식이 뇌리에서 사장되는 것처럼, 근육도 마찬가지로 써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쪼그라든다. 흔히 근육이 풀렸다. 같은 상태가 되는 거다. 그런데 지영은 그때도 결국 밸런스를 맞췄다. 자세 자체야 절룩이긴 했지만, 그래도 양쪽 다리에 가해지는 부담 자체를 절묘하게 컨트롤했었다.
그렇게 약해졌던 하체로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였다. 고작 며칠이라서 근육이 죽을 리도 없었다. 조금 쉬고 있긴 했으나, 가히 완벽할 정도로 부하를 흡수해갔다.
“오…….”
그걸 본 재활 전문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독일 하면 또 스포츠 재활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뮌헨의 거대병원에서 근무하는 미카엘의 눈빛에 지영이 내린 선택은 사실 미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근육이든 뼈든, 상처를 입었을 때는 무조건 쉬어줘야 한다.
특히 스포츠를 업으로 삼은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올림픽.
미카엘은 올림픽이 가지는 의미를 당연히 일반인보단 훨씬 잘 안다. 수많은 선수를 담당하며 그들이 올림픽이란 축제에 얼마나 목숨을 거는지, 얼마나 진심을 담아 노력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축제.
대부분 종목에서 올림픽은 그 목표의 끝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다치고 깨져도, 와서 치료받고 노력해 그 축제 참가를 노리고, 축제에서 정점에 서길 원한다. 거기까진 이해한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의학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딱 봐도, 오랜 시간을 정양하거나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을 당했다.
올림픽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는 부상을 입어왔으면서도, 시합을 뛸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선수들을 그는 꽤 자주 봐왔다. 그리고 지금 지영처럼 그런 몸으로 시합에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자주 봤었다.
이름난 재활 전문가이기에, 누구보다 많이 말이다.
그가 본 지영의 몸은 시합에 나갈 수 있는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 천운에, 다시 천운이 따라줘서 겨우 그 정도에서 끝난 부상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봤을 때 부상의 정도가 얕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본래 그의 소속은 뮌헨에 있는 병원이었다.
그 도시에 연고를 둔 축구팀의 선수가 주 전담 선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연락받고, 급히 날아와 상태를 들었을 때 미카엘은 단번에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시합에 나가는 거야 할 수 있다. 종목이 유도니까 도복을 입고 나가면 된다. 다만 경기력 자체는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경기다운 경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부상의 정도로 보아, 제대로 걷는 것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봤다. 데이터를 봤으니, 그런 판단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양쪽의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 그거야 공을 들여도 되고, 그냥 반사적으로 다치지 않은 발에 부하를 더 줘가며 멀쩡하게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무리한다면.
지금 지영의 모습처럼.
지영은 걷고 있었다.
아주 멀쩡하게, 극히 평범한 걸음으로, 그냥 뚜벅뚜벅 걸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발을 딛는 순간 올라온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으면서, 지금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걸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완벽한 걸음이었다.
부상 당한 사람은 보여줄 수 없는.
그는 재활 전문가로 많은 운동선수를 봐왔다.
그래서 많이 도왔고, 많이 말렸었다. 운동선수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역시나 하체 쪽이 많았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하는 스포츠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수들을 맡아 재활하다 보면, 걷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로 몸이 회복됐는지를 이제는 대충 가늠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미카엘이었다. 제대로 걸으려고 해도, 발목이나 무릎에 부상이 있으면 걸음 밸런스는 무조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식하고 걸으면 그냥 멀쩡하게 걷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었다.
근데 그건 하체 전체에 부하를 잔뜩 주는 꼴이라 재활 전문가로서는 가히,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연기’다.
툭 치면, 깨지는.
그래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연기가 바로 멀쩡한 ‘척’이었다. 지금 강지영의 모습 또한, 그가 용납할 수 없는 연기였다.
아니, 연기일 게 분명했다.
멀쩡한 척, 제대로 걷고 있지만 분명 하체에 잔뜩 부담을 주는. 그래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입을 벌렸다.
예전과는 다르다.
요즘엔 정밀 기계가 많이 나와서 걷는 모습에서 중심 밸런스가 어디로 쏠렸는지, 그걸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었다. 이걸 통해 걸음걸이도 고칠 수 있기에 요즘엔 제대로 걸어야 하는 전문 모델들도 자주 쓰고 있었다.
그 기계가 측정한 지영의 걸음은, 완벽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완벽한 걸음이었다. 마치 모델의 워킹처럼 시원하고, 산뜻함마저 느껴지는.
“큼!”
하지만 이건 단순한 걸음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걷는 연기일 뿐이었다. 어쨌든 말이다. 이 상태에서 격렬한 운동을 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Echt!”
휘익!
팡!
평행봉 바를 잡고, 시원하게 다리를 차올리는 지영 때문에 미카엘은 기겁했다. 순간적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부족할 판이다. 지금도 지영이 어느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지, 딱 그것만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런 동작을 펼친 거다.
미카엘은 놀라는 중에도 다리를 차올린 지영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지는 걸 놓치지 않았다.
“미스터 강! 미쳤습니까!”
“아 선생님. 죄송해요.”
“아니! 갑자기 그렇게 무리한 동작을 하면 어떻게 해요! 근육 더 찢어지면 어떡하려고!”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안 괜찮습니다!”
미카엘은 정말 기겁했다.
고작 동작 하나라고 하겠지만, 지금 지영의 몸은 저런 동작 하나가 근육을 쫙 찢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이런 무리한 동작을 한 지영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지영은 그의 화를 이해하면서도, 좀 전의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벽 짚고 허벅다리.
유도 선수라면, 특히 허리기술 선수라면 필수적인 훈련이다. 이 훈련은 벽 짚고도 하고, 지금처럼 바 같은 걸 잡고도 할 수 있었다. 이 훈련의 목적은 하나다.
팡!
소리가 날 정도로 차올리는 것.
허벅다리는 상대의 오금에 내 오금을 걸어, 감아 굴리기도 하지만 본래는 지금처럼 시원하게 팡! 차올려서 던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기본적으로 훈련 시킬 때도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켰다.
일단 차올리는 것.
이걸 해본 이유는 간단했다.
이 훈련은 발목, 그리고 허벅지, 무릎에 당연하게 강력한 부하를 걸기 때문이었다. 특히 발목과 종아리에 엄청나게 힘이 들어갔다. 좀 더 깊게 차면, 발바닥이 아닌 발레리나처럼 발가락과 그 안쪽의 면적 조금으로 지탱한다.
그게 허벅다리 차올리기 연습이다.
이걸 한 이유는, 당연히 상태 체크였다. 그리고 솔직히 해본 심정은…… 시렸다. 차올리는 순간 시큼한 통증이 무릎에서 올라왔다.
당연히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그때와 비교하면…… 감지덕지를 넘어 베스트 컨디션이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지영은 기술을 많이 거는 부지런한 선수 스타일이 아니었다. 열 번 걸어서 한 번만 넘어가라! 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영은 사장된 방어유도를 관짝을 열어 끄집어 입은 뒤, 자신만의 스타일을 입혀 진화시킨 스타일을 갖췄다.
따라서, 지영은 기술을 거는 비중 자체가 정말 적었다. 현대 유도의 공격적인 흐름에서도 지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상대의 스타일 자체를 이용하는 것에 굉장히 특화되어 있고, 그에 맞춰 상대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걸 이용해 역으로 먼저 선공을 점해 유리한 포지션을 잡아나가는 경기 운영 자체에 있었다.
그렇기에 지영에겐 기술 자체를 많이 걸 컨디션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한 번이면 족해.’
카운터.
애초에 지영의 카운터는 일격필살에 가깝다. 보통 이런 종류는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어마어마하지만, 지영은 그 리스크 또한 최대한 죽인 기술을 구사했다. 그래서 반칙이란 소리를 듣는 선수가 지영이었다.
따라서, 지영은 자신에게 필요한 게 한 경기에서 전력으로 기술을 한두 번은 걸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몸 상태는 딱 그에 부합했다.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제대로 집중된다.
통증이 없는 건 아니나 이 정도는 웃으면서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은 이미 회귀 전에 차도록 갖춰 놓은 지영이었다.
“괜찮네요. 시합, 역시 나가야겠습니다.”
통역이 전해준 말을 들은 재활 전문가 미카엘의 표정은 요상하게 일그러졌고, 통역의 얘기를 같이 들은 지영의 어머니와 임은진, 그리고 양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아들의, 내 배우의, 내 남자의 고집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표정들을 지영은 봤지만, 외면하고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펑!
퍼버벙!
창밖에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