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6화
346화. 올림픽 준비(3)
올림픽.
세계인의 축제.
뭐 정의는 그렇다만…… 과연 올림픽을 정말 축제로 즐기는 이들은 몇 %나 될까? 따로 통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적지는 않을 거다. 성적보다는 정말 순수하게 올림픽 그 자체를 즐기러 나오는 선수들이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아니, 그러지 못한 선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올림픽은 축제이긴 하지만, 축제라고 보기엔 걸려 있는 명예가 너무나 컸다.
축제를 즐긴 자와 메달을 딴 자.
과연 이 둘 중 누구를 더 승리자로 볼까?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으면 무조건 후자다. 후자의 경우는 그 뒤로 축제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많은 이권과 그보다 많은 문제가 걸려 있는 게 올림픽이었다.
그래서 올림픽은 즐기는 이보다, 즐기지 못하는 이가 사실상 더 많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은 아주 대표적으로 즐기지 못하는 나라였다.
대한민국이 스포츠를 즐기는 방식은 지독했었다.
1등 지상주의.
90년대 후반이나 20년대 초반에도 무려 올림픽임에도, 1등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2등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은과 동은 시합 과정에서 제대로 된 스토리가 있지 않은 이상은, 관심을 받는 게 거의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1등 지상주의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1등도 중요하지만, 축하하지만, 2등도 축하해 줬다. 3등도 축하해 줬고, 입상하지 못했어도 축하해 주는 분위기로 조금씩, 성숙하게 여론이 변해갔다. 여유가 없던 시절에서, 여유가 조금씩 생기자 스포츠를 즐기는 마음가짐도 변하게 된 것이다.
좋은 흐름이었다.
1등이 제일 잘한 게 맞지만, 2등도 잘한 거고, 3등도 잘한 게 맞았다.
단적인 예가, 도쿄 올림픽의 여자 배구라 할 수 있었다.
여자 배구는 정말 열심히 했고, 정말 잘했다. 하지만 결국 메달 입상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큰 인기와 관심을 받은 종목은 단연 여자 배구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시청률이 증명했다.
입상하지는 못했으나, 누구보다 축하를 많이 받은 종목이 배구인 걸 생각하면 그만큼 여론이, 시민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는 뜻이었다. 대한민국도 스포츠를 대하는 자세는 이제 여느 선진국 못지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선수는 아니었다.
축제를 즐기는 선수?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에서도 있긴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축제를 정말 축제처럼 즐기고자 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전체로 따졌을 때 한 줌 정도였다. 정말 한 줌. 그럼 나머지는?
축제를 즐기는 건 즐기지만, 입상 자체가 더 중요한 선수들이 과반을 훌쩍 넘어 거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군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선수들은…… 가히, 살벌했다.
군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아주 높은 장벽이었다. 운동선수들도 당연히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실력은 좋은 선수들이야 당연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입상해 군 면제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상무를 비롯한 대체 체육 단체에서 해결해야 했으며, 그 안에 끼지 못하면 닥치고 현역 입대다. 그리고 현역 입대면 사실상 선수 커리어는 끝이라고 봐도 좋았다.
애초에 올림픽에 나갈 정도면 사실 입상을 못 해도 상무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면제와 대체복무는 그 느낌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으로 봐도 완전히 달랐고. 아직 어린 선수들이야 기회가 더 있으니 괜찮았지만, 이미 서른 줄에 가까운 선수들은 아니었다.
마지막 기회.
올해와 내년의 아시안 게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상무나 현역이고, 입상하면 면제다. 그러니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고작 군대 때문에 이렇게 변할 수 있냐고? 가능했다.
군대라는 게, 남자들에겐 그렇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현역으로 떨어지는 순간, 선수 커리어는 끝장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도 했다. 특히 상무팀에서 리그로 나가는 경기가 없으면, 더더욱 그랬다.
지독히 불편한 진실이지만, 진실은 진실이었다.
그래서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위기 끝내주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공기에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친구는 황석이었다. 묵묵한 황석마저 식당의 공기가 너무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다. 이제 한 달. 고작 한 달.
독일 함부르크 올림픽은 조정 끝에, 9월 초로 결정됐다. 본래는 파리처럼 7월쯤에 하려다가, 역시나 갑작스럽게 결정됐기에 몇몇 종목 경기장 준비가 미진해, 좀 더 미뤄졌다. 그렇게 최종결정된 게, 9월 6일이었다. 이날 개막식을 시작으로 올림픽이 성대하게 열린다.
8월 1일이 된 지금, 이제 올림픽까지는 한 달하고 조금 더 남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공기는 무거웠다.
긴장, 각오 등이 전신을 덮쳐오는 시기가 맞긴 했다. 시합 전에 바로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현지 적응을 위해 이제 곧 팀별로 전부 독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동과 동시에 진짜. 코앞으로 다가오게 되는 거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오히려 마인드 컨트롤이 끝나 있어서, 오히려 편해지는 시기다. 그에 비해 지금은 온갖 부담감에 짓눌리는 시기인 거고.
숨이 턱, 막히는 진짜 지랄 맞은 분위기.
개인 종목, 단체 종목, 구기 투기 가리지 않고 분위기가 너무 끝내줘서 풀떼기를 먹어도 체할 것 같았다.
그런 숨 막히는 시기는 근데 또 신기하게, 일주일쯤 지나니 사라졌다.
다들 실력이 경지에 올라서고 있는 선수들이고, 마인드 컨트롤 따위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선수들이라 대부분 부담감, 걱정 등을 이겨내고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 너무 동떨어진 채, 지영은 그저 평소처럼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사실 이 시기쯤 되면, 이제 훈련보다는 다른 선수들처럼 마인드 컨트롤과 상대 선수 스타일에 맞춘 대응법을 몸에 익히는 게 나을 때다. 괜한 하드트레이닝이 부상을 불러오면 불러왔지, 좋은 방향으로 올라오기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기정 감독은 정확히 3주 남기 전까지 고강도 트레이닝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영은 거기에 불만은 없었다. 전기정 감독의 훈련 방식은 지금까지 잘못됐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따지고 보면 상당히 옛날 사람이지만, 옛날 방식만을 고수하진 않았다.
과학이란 학문에 기반을 둔, 매우 전문적인 훈련법을 그는 선호했다. 물론 체력 훈련만큼은 예외였다.
그러던 중, 대진표가 떴다.
체급별로 미팅 룸에 모이기도 전에 지영은 당연히 먼저 대진표부터 확인했다.
가장 먼저 찾은 건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었다.
1번 시드, 두 번째 자리.
즉, 독일 선수와 첫판이었다.
지영은 독일 선수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다음, 일장기를 찾았다. 미야모토 신지는 아래로 주르륵 긁어봐도 바로 보이지 않았다. 일장기, 미야모토 신지의 이름이 나온 건 가장 아래였다.
신지가 4번 시드를 배정받은 걸 확인한 지영은.
“대진 드라마틱하네.”
사실상 73체급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기는. 아니, 주목받는 선수는 독특한 관계인 대한민국과 일본의 국적을 가진 강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였다. 그래서 유도 팬들은 과연 두 선수가 맞붙을까? 와, 붙게 된다면 어디서 붙을까? 여기에 관심을 많이 줬었다.
그런데 딱 결승전이다.
백척간두, 외나무다리라 말할 수 있는 결승에서 맞붙게 됐다는 사실에 지영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운명의 신은 어쩌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지. 운명의 신이 아니라, 이 경우는 축제의 신이려나?’
73 체급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게임이다.
미야모토 신지야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다. 현재 세계랭킹 순위권이기도 하면서, 실력과 성적은 현재 73에서 최고였다. 랭킹 안에 있는 선수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신지에게 털렸다.
세계 선수권.
아시아 선수권.
아시안 게임.
파리 오픈.
마스터즈. 가노컵 등등에서 신지는 전부 금메달을 차지했다.
무적.
문자 그대로 데뷔전인 아시안 게임부터 지금까지 미야모토 신지는 최고의 실력을 보여줬다. 성인 무대 데뷔 이후 패배는 지영에게 당한 세계 선수권 1패가 전부였다. 그 1패를 안긴 것도 지영이고, 성인 무대 이전에 2패를 먹인 것도 지영이었다.
오직 강지영에게만 잡혔던 미야모토 신지였다.
하지만 경기를 살펴보면, 강지영이 이겼던 모든 경기가 쉽지는 않았다. 정말 한 끗 차이. 실력을 수치화하면, 99와 98.5의 경기였다. 0.5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 같지만, 언제고 뒤집힐 수 있는 게 운동 판이었다.
아주 정말, 지극히 미묘한 차이였다.
멘탈이 아니라, 실력에서 나는 차이면 더더욱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빅매치.
물론 둘 다 결승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지금 73에는 둘의 적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 중론이 생긴 이유야 당연히, 두 선수의 승리 행진 때문이었고. 그런 둘의 매치가 성사됐다.
벌컥.
문이 열리고 들어온 친구들이 지영을 보며 씩 웃었다.
“역시 강지영. 대진 진짜 죽이게 붙었던데?”
“그러게. 와, 어떻게 딱 결승에서 붙냐?”
“빅게임이지. 가만 보면 지영이가 이런 운은 진짜 타고났어.”
“…….”
짰나?
차례대로, 체급별로 나온 친구들의 말에 지영은 그냥 씩 웃었다. 이런 빅매치가 붙은 게 부담스럽기도 하나, 오히려 이렇게 붙어주면 남다른 각오가 생긴다. 큰 게임에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지영은 사실상 이게 신지와 자신의 실력을 가르는 마지막 시합이 될 거로 예상했다.
‘아시안 게임이 있긴 하지만, 전적으로는 이미 내가 너무 앞서지.’
지영이 유일하게 라이벌이라고 인정한 상대다. 쉽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아주 찰나의 방심만으로도 천장을 즉시 보게 되는 상대다. 그러니 분명 조심해야 할 상대인 건 맞지만, 지영은 시합에 목말라했던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대진이 더욱 좋았다.
그게, 좀 민망하나 자신을 더욱 불타게 함을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너넨 대진 어때?”
지영의 질문에 다들 괜찮다는 답을 줬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친구들 대답이 괜찮다면 사실 다 괜찮은 거였다. 그리고 사실, 대진에 좀 연연한 건 지영이 유일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고만고만하고, 지영처럼 라이벌리 관계가 형성된 선수가 없었다.
아, 강한결이 그의 등장 이전의 챔피언이던 베카우리 라샤와 비슷한 관계에 있긴 했지만, 지영 정도의 관심을 받진 않았다. 그저 요주의 선수 정도로 정리될 뿐이었다.
이런 지영의 대진표는 일반에 그날 바로 공개됐고, 빅게임이 성사됐다며 다들 관심을 보냈다.
천재라 불리는 선수에게 유일하게 제동을 걸었던 선수.
반대로 천재에게 유일하게 제동을 걸었던 선수를, 유일하게 잡을 가능성이 있는 선수. 둘의 관계는 서로 물리고 물렸다.
그렇기에 기대가 몰렸고, 그만큼 말이 많았다.
다들 강지영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날을 갈았을 게 분명한 미야모토 신지의 실력은 확실히 무시할 레벨이 절대 아니었다. 심지어 올림픽 전, 마지막 점검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한 대회에서 신지는 우승까지 고작 4분도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인 경기력.
올림픽 레이스 마지막 기회를 노리고 나온, 애매한 랭킹의 선수들은 신지에게 선수당 1분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일본은 자국에 생중계로 냈다.
강지영의 대항마로 떠오른 유일한 선수인 미야모토 신지 또한 대단한 선수임을 어필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제대로 불이 붙었다.
일본만.
일본 언론은 미야모토 신지와 지영의 경기를 분석해 방송에 내보냈다. 그리고 승률은 유도에만 전념한 신지가 좀 더 높다고 결론 내리고는 좋다고들 낄낄거렸다.
하지만 한국은 조용했다.
너넨 떠들어라, 우린 우리 선수 믿으니까 그냥 열심히 올림픽 준비만 하련다. 하고 무시하는 모양새였다.
적응이 필요한 종목별로 독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유도는 딱히 그 정도는 아니라서, 거의 가장 마지막에 출발하는 거로 되어 있었다.
선수 배웅을 위해 나온 지영에게 한 선수가 다가왔다.
“저…… 나 허그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
평소 인사를 하고 지내던 선수가,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볼이 발갛게 익었는데도 용기 내어 지영에게 그렇게 말했다.
올림픽.
지영은 곧장 용기 낸 그 선수를 꼭 안아 줬다.
“꼭, 금메달 따세요.”
“어? 어허어! 어어! 응!”
진짜 지영이 해줄지 몰랐는지 목소리가 완전히 나간 대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