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34화
334화. 파리 오픈(2)
한 번의 말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온다.
특히 공인의 말실수는, 힘들게 올려놓은 인지도를 단방에 박살 내는 아주 큰 악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요즘은 말할 때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특히 연예인들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게 말실수였다. 다른 공인들과는 다르게 인기 자체를 얻어먹고 사는 직종인지라, 말실수 한 번 크게 잘못하면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떨어지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아예 지하를 뚫고 들어가 나락 그 근처 어딘가쯤으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 이런 연예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직종이 있다면 바로, 국가대표였다.
태극마크.
대한민국의 국기를 가슴, 어깨에 박은 이들은 연예인만큼이나 공인으로 인정받았고, 그렇기에 국민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매우 많았다. 특히 인기 있는 종목의 선수일수록, 매우 엄격한 시선에 노출되었다.
축구, 야구, 배구 같은 인기 종목은 실수 한 번 하면, 그냥 게임 아웃이다.
그리고 요즘 그 급으로 올라온 종목이 있으니, 유도였다.
이런 관심 종목의 선수 도은정의 실수는, 그 급이 너무 컸다. 말실수로도 완전히 한 방에 가는데, 행동은? 예를 들어, 폭력 사건 같은 건? 그건 아예 회생의 여지가 없다. 그럼, 팀 내 왕따 주동 같은 건?
그건, 사회적 매장을 불러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문제는 도은정의 행동이 왕따를 연상케 했다는 점이었다. 같은 팀의 선수가 매우 부당한 행동 때문에 아주 크게 다쳤다. 심지어 코뼈가 주저앉아서, 응급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도은정은 그런 이성진이 걱정되어 아래로 내려가려던 여자팀 선수 몇 명을 말렸다. 괜히 내려갔다가, 작정하고 심판의 권위를 짓밟은 황금세대와 함께 징계를 먹을 수도 있다는 순간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자기 여자팀 선수를 지키려고 했다는 걸로 볼 수는 있지. 볼 수는 있는데…….
-그 자체가 X나 이기적인 거지 ㅅㅂ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딱 X나 이기적인 년이네! 여기까지임. 이 이상 내려가면 천하의 쌍년으로 만드는 거 진짜 개쉽겠지만 하.
-그래도 동료를 지키려고 했던 거잖아요?
-네, 윗님. 지키려고 한 거죠. 다른 동료를 버려서요.
-맞음. 윗양반아. 실드칠 걸 치셔야지. 저건 어떻게 봐도 개이기적인 마인드로밖에 안 보이는 거임.
-맞아요. 마음은 이해하는데, 방법이 잘못됐음. 요즘 특히 희생이란 단어에 개민감한 시대인데. 왜…… 하.
-유도계 종사 중인 사람인데, 도은정이 쟤, 리더십은 있음. 확실히 카리스마는 장난 아님.
-진짜요? 혹시 막 왕따 만들고 그랬어요?
-ㄴㄴ 절대. 전형적인 카리스마형 리더임. 체격도 체격인데,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함. 중고딩때 부당한 구타나 훈련, 얼차려 같은 거 경찰이랑 학교, 이런 데 싹 신고해서 털어버리기도 했음.
-얼차려가 아직도 있어요?
-운동계에서 얼차려는 안 사라짐. 아니, 못 사라짐. 정말 진짜, 쌍팔년도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지만 그래도 선배랍시고 권위 세우고 싶은 인간들은 어디에나 꼭 하나둘씩 나오기 마련이라서…….
-ㅇㅇ 그게 맞죠. 아는 동생 운동하는데, 얘기 들어보면 고생 겁나 했대요. 운동보다, 선배들이 더 힘들었다고…… ㅠㅠ
-어쨌든, 도은정 성격이 확실히 쌍칼자매 같은 건 아니라는 소리죠?
-ㅇㅇ 아님. 절대 아님. 따르는 애들도 엄청 많았음.
-현역 선수인데, 저 말이 맞아요. 은정 언니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고, 좀 무섭긴 해도 절대 누구 괴롭히거나 할 사람은 아니에요 ㅠㅠ
도은정의 지인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과 네티즌 사이의 파이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분위기는 거의 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럼 실수라는 건데.
-실수를 쳐도…… 너무 거하게 쳤음.
-ㅇㅇ 하필이면 강지영 사단…….
-리더는 한결이임. 영상 보면, 지영이도 한결이 의중을 따르는 게 보임.
-맞아요. 우리 한결이가 리더예요!
-뭐 누가 리더인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어쨌든, 실수의 대상이 커도 너무 컸음.
-한결이고 지영이고 이게 문제가 아닌 게, 이성진 팬덤도 어마어마함…….
-ㅇㅇ 더 런닝 팬들도 이제 이성진 완전히 자기 식구로 받아 들인지 오래고, 예전 방송 때문에 누님 팬덤이 진짜…… 장난 아님.
-팬 자체는 강지영이 넘사벽이지만, 소수정예 화력에선 이성진이 훨씬 앞서죠…….
-벌써, 누님들 행동 시작했을걸요?
-헐, 진짜요?
-ㅇㅇ 우리 친척 누님이 이성진 팬인데, 거기 팬카페 간부임. 이성진이 따로 글 올려서 자중 부탁하지 않았으면 도은정 테러당해도 벌써 당했음.
-와…….
-그 와중에 이성진, 이걸 자중시키네? 햐;;
-나 같았음 빡쳐서 그냥 뒤지든 말든 냅뒀을 건데 ㅋㅋ
-애들이 인성 하나는…… 죽여주잖아요.
-지영이 기부도 그렇고, 한결이랑 애들 후원 계속 하는 것도 그렇고…… 진짜 대단하긴 해요 ㅎㅎ
-그니까요. 그런데 이거 어떻게 되려나요? 이쪽 커뮤야 이 정도지, 딴 데 가면 장난 아님. 도은정 천하의 쌍년으로 벌써 몰고 가는 중이던데.
-에휴…… 답 없죠, 뭐. 이건 애들이 인터뷰를 해줘도 풀릴까 말까임.
-맞음. 애들이 용서하는 건 용서하는 거고…… ㅠㅠ 팬 마음은 또 다르니까요 ㅠㅠ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음……. 그냥 지켜보는 것밖엔 ㅠㅠ
-애들이 나서서 진화하려고 하면, 손 좀 보태주고 그 정도?
-ㅇㅇ 그 정도……. 그런데 조용한 걸 보니, 애들도 이번엔 도와주고 싶진 않은가 보네요 ㅠㅠ
-맞음. 아는 친구 선수촌 파트너로 들어갔는데, 도복 훈련만 같이 하고 다른 훈련은 아예 따로 한다네요……. 서로 마주쳐도 그냥 고개만 까닥하고. 대화는 일절 안 나눈대요.
-…….
-그럴 만하죠, 뭐.
-냉정할 땐, 지독하게 냉정한 애들이니까…….
-에휴.
-이건 본인이 본인 무덤 판 거라 뭐…… ㅠㅠ
여론은, 아주 당연히도 황금세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아니,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과 순간 선택의 실수가 있었던 상황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 * *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중에도, 지영은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새벽엔 극한 유산소.
오전엔 굳히기 및 자유 연습.
오후엔 자유 연습.
야간엔 개인 훈련 및 근력 훈련.
하루 훈련 시간이 거의 10시간에 달하는 극한 고강도 훈련 스케줄이었다. 이제 파리 오픈까지 3주가 남았고, 그 3주간 지영은 다시 폼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총 10일에 가까운 휴가 간 몸에 쌓인 노폐물은 훈련 시작 이삼일 만에 모조리 뽑혀 나갔다.
하루에 수분만 거의 3-4㎏씩 빠지다 보니 당연했다.
지영은 원래도 땀이 잘 나는 체질이어서, 한 번 제대로 훈련하고 나면 기본 1㎏ 가까이씩 수분이 빠졌다. 그렇다 보니 휴가 동안 쌓인 노폐물은 순식간에 지영의 몸속에서 지워졌다. 그렇게 노폐물이 나오자, 컨디션이 다시금 올라왔다. 처음엔 조금 무거웠던 몸이 완연히, 아주 확실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정상으로 돌아온 몸은 지영의 사고에 거의 즉시 반응했다.
반사신경.
지영의 유도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강력한 재능 중 하나였고, 이게 돌아오자 지영은 곧장 이전의 실력을 되찾았다.
실력을 되찾은 지영은 정말 날아다녔다.
“와, 한 체급 윈데, 가지고 노네. 놀아.”
“야, 90도 어제 셋이나 터졌다.”
“덕호 깨지는 건 봤는데, 나머지는 누구?”
“성재랑 준이.”
“……대학부에선 거의 1티어 애들 아니냐?”
“다 졌어. 카운터에 두 판씩.”
“…….”
지영이 거의 날뛰는 훈련을 지켜보던 실업팀 선수들의 대화에 다른 선수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국가대표는 강하다.
당연히 그 체급에서, 그 무리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뽑히는 게 국가대표였다. 그러니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도 것이라는 게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파트너들은 대부분 2선발, 혹은 3선발이었다. 혹은 대학 유망주들이거나. 추후 국가대표가 될 가능성이 남다른 선수들이 보통 선수촌 파트너로 뽑혔다.
한숨의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실력 차.
보통은 그렇게 크게 나지 말아야 한다.
좀 비벼볼 만해야, 그래야 정상이었다. 아니, 정상은 아니더라도 그래야 나중에 국가대표를 노려볼 희망 같은 걸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실력 차가 너무 났다. 여기서 문제는, 강지영의 나이였다.
이제 스물하나.
혹은.
고작 스물하나.
보통은 아직 전성기가 오지도 않을 나이가 바로 스물하나였다. 날고 긴다는 이전의 천재들도 이때는 이름 없는 무명이거나, 유망주 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한판승의 달인도.
한때 유도 이미지를 나락으로 처박은 선수도.
스물한 살 때는 두각을 나타내긴 했어도 세계 정상에서 노닐고 있을 때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영은 고작 스물하나다. 고작 스물한 살인데, 벌써 세계를 제패해 가고 있었다. 그럼 국내는? 압살이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이 인간도 진짜 천재다, 라고 불리는 이우진과 구혁도 지영을 단 한 번도 넘어선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 차이.
이 차이가 너무 컸다.
여기 있는 선수들은 이우진과 구혁을 넘은 적이 없던 선수였다.
그리고 지영은 그런 둘을 무참히 깨고 올라온 선수고. 거기에 심지어 강지영은 연승은 끊겼어도, 무패행진 중이었다.
이성진을 제외한 모두가 고1 때부터 지금까지, 전승 행보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가장 메이저 대회인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 올림픽은 치르지 않았지만 각 체급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던 선수들 전원이 황금세대에게 꺾였다.
이게, 이러한 사실이…… 절망감의 원천으로 변했다.
절망.
운동선수에게 있어서는, 아니, 일반적으로 인간을 가장 빠르게 밑바닥으로 내리꽂는 감정의 1순위가 바로 절망이다. 한 번 절망하고 나면, 이 감정은 웬만해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엘리트 종목에 종사하는 선수들 태반이 운동하는 이유가 아마 그냥 하게 돼서가 아닐까 싶다.
운동하게 됐는데, 초기에는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그만두지 않고 이 길로 갔는데, 알고 보니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나보다 재능이 좋은 놈이네?
자신은 뛰는 놈이었고, 나는 놈이 있다는 걸 깨닫긴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 태반이었다.
이미 대학까지 운동으로 오게 된 상황이면, 여기서 그만두기엔 더더욱 애매해졌다.
시대가 변하며 학업에도 집중하게 해주지만, 한평생 엘리트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고 일반학생으로 진학한다? 할 수는 있었다.
할 수는 있는데…….
진짜 공부만 하던 이들은 또 넘어서기 힘들었다.
공부계에도 나는 놈은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붙잡고 있게만 되는……. 강지영은. 아니, 황금세대는 선수들을 그 단계로 밀어 넣고 있었다.
압도적인 실력은 지켜보면 경외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와 비슷한 절망을 던지기도 했다.
쿵!
90 체급 대학부 1위를 두 번이나 한 선수가 강지영의 모두걸기 카운터에 쓸려 한판 떴을 때, 우와…… 소리도 나왔지만 누군가는.
“X발…….”
“하아, 90도 가지고 노는 놈을 뭔 수로 이기냐…….”
누군가는 한탄과 함께 절망했다.
천재의 등장은 수재와 범재를 절망시킨다는 얘기야 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공기로, 피부로 전염병처럼 주변을 잠식해 가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후끈한 열기 사이로, 마치 안개처럼 퍼지고 있는 절망이란 독은 바로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독이 퍼진지 일주일쯤 지나자, 티가 확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