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33화 (33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33화

333화. 파리 오픈(1)

한국으로 들어온 지영은 곧장 본가로 향했고, 집에서 이틀간 쉬었다. 이틀간 여독을 푼 지영은 다시 선수촌으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당연히 전기정 감독의 호출이 있었다. 지영은 전기정 감독에게 상황을 적당히 풀어 설명했다.

“그래. 잘했다. 잘 해결됐다는 거지?”

“네. 좋아졌습니다.”

“그거면 됐지. 우리가 아무리 운동선수고, 네가 아무리 유명해도,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맞다. 무술은 본래가 살과 활을 동시에 갖추고 태어난 거야.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지.”

뜬금없이?

하지만 지영은 가만히 있었다.

전기정 감독이 멋이 들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기정 감독은 자기가 한 말이 좀 어색하고 민망했는지, 바로 화제를 돌렸다.

“몸은 어떻고?”

“이틀간 여독 풀면서 컨디션 조절했습니다. 바로 도복 입어도 됩니다.”

“그래? 그럼 오후부터 바로 시작하자. 대신 몸풀기라 생각하고.”

“네.”

“참, 그 다른…… 선수들이랑은 그냥 이렇게 갈 거지?”

“……네.”

상황이 바뀌었다면 그렇다고 얘기를 해줬을 거다. 그러나 강한결은 물론이고 톡방에서도 대표팀 관계 개선에 관한 얘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었다. 그건 곧, 변한 게 없다는 소리고, 변한 게 없다면 지영도 굳이 바꿀 생각이 없었다.

“하아. 그 애들은 왜. 쯔쯔.”

전기정 감독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날 전기정 감독은 정말 크게 화를 냈다고 했다. 사실 대표팀에 들어올 정도면 혼날 일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한 선수들일 가능성이 컸다.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들었던 선수란 뜻이다. 가끔 욕을 먹어도 그건 해이해진 정신을 다잡아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악의 없이 치는 호통에 가깝다.

사실이 그렇다.

예를 들어 황금세대로 본다면, 황금세대처럼 잘하는데 욕하고, 매도하고, 압박하고, 훈련을 안 한다고 쫀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감독이나 코치의 자질 자체를 의심해 보거나, 아니면 뒤로 돈을 받은 게 있나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다른 의도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대표 정도 되면, 정신이 빠지지 않는 이상 혼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실력이 이미 한계치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혼내서 끌고 간다고 해서 실력이 급상승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전기정 교수는 운동이 아닌, 팀워크에 관한 문제로 대표팀을 소집해 놓고 숙소에서 가루가 되도록 깠다.

팀워크.

사실 개인 종목인 만큼 팀워크가 경기에 영향을 끼치는 게 엄청나다 할 수는 없었다. 축구나 농구, 야구처럼 구기 종목에 비하면 영향이 거의 없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모든 스포츠에는 기세라는 게 있었다.

이 기세가 무서운 게, 단단한 팀이, 아니, 실력이 별로인 팀도 기세가 한 번 붙으면 무지막지한 실력 상승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냥 하는 말이 진짜로 그랬다. 이런 기세가 가장 잘 나타나는 게 바로 단체전이었다.

분명 실력은 아래인데, 한 번 불이 붙은 기세는 한 수 위의 선수와도 동등하게, 혹은 이기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게 바로 기세였다.

이런 기세는 완벽한 팀워크에서 출발한다.

서로 견원지간인 팀에 기세가 붙는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렇게 기세가 오르면 개인전에도 영향을 끼칠 때가 있었다. 괜히 첫 경기 선수가 좋은 스타트를 끊어주면 후발로 경기에 들어가는 선수들이 힘을 받기도 했다.

기세를 타지 않으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지만, 기세를 타면 개인전에도 영향을 주는.

이게 가능하게 하려면 일단 팀워크가 무조건 전제로 잡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대표팀 선배들은 이런 팀워크를 완전히 박살 냈다. 누구 한 명 내려오지 않고, 위에서 눈치만 봤다. 아주 순간적으로 든, 시합에 대한 불이익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전기정 감독은 불처럼 화를 냈고, 사실상 그 순간 팀워크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거기에 제대로 열 받은 강한결은 이 관계를 개선할 생각 자체를 접었다. 그리고 그건 세계 선수권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훈련 중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훈련은 또 각자다.

한 공간에서 하지만, 어차피 서로 잡고, 잡아주지 않는다.

훈련을 도와주는 건 보통 훈련을 들어온 타 팀 선수들이나, 아니면 파트너로 들어온 선수들이다. 새벽이나 오전, 야간도 마찬가지였다. 강한결은 야간은 작정하고 따로 돌았다. 선배들이 웨이트면 황금세대는 체력훈련이나 기술 연구 등을 했고, 그 반대면 웨이트를 했고, 이렇게 아주 확실하게 내외했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도 불편하지만, 지도자들도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서로를 배척했다. 거기에 여자부도 자존심이 있어 사과할 생각이 없었고, 강한결도 굳이 사과받을 생각이 없었다.

같은 팀이라지만, 어차피 개인 종목이다.

훈련도, 경기도 따로 하니까 그냥 이렇게 가기로 한 것 같았다. 그 중심에 있는 선수가 있고, 다들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그 이상 관여하진 않았다.

“알았다. 가봐.”

“네.”

감독실을 빠져나온 지영은 앞에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선배와 마주쳤다.

도은정.

여자팀 주장.

이 상황의 발단과도 같은 존재다.

“넌 뭔데 지금 들어오냐?”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도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와 갑자기? 왜 이제 들어오냐고? 딸깍,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 버튼을 누르며 지영은 몸을 돌렸다.

“개인 사정이요.”

“그게 전체 소집보다 중요하냐?”

“네.”

“뭐?”

“감독님한테 사전에 허락받았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무단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

할 말이 없는지 혀를 차는 도은정.

이 모든 일의 원흉과도 같은 선배다. 실제로 그날 몇몇 선배는 벌떡 일어나 내려오려고 했는데, 도은정이 말렸다고 했다. 그걸 나중에 한 선배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지영이었다. 참고로 그 선배와는 잘 지낸다. 내외하지 않고. 따돌림당할까 봐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 않아도, 그 양심 있는 선배만큼은 사정을 이해해 줬다.

“가보겠습니다.”

꾸벅.

살짝 인사까지 한 뒤에 지영은 자리를 떴다.

지영은 짐을 가진 채 그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지금은 점심시간이고, 밥부터 먹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지영이 들어서자, 시선이 와다다 달려들었다.

반짝반짝.

이런 시선에 지영은 순간 멈칫했다.

처음 선수촌에서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지영은 연예인의 연예인이라 불리는 중이었다. 수많은 연예인 중에 지영의 개인 연락처를 가진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그리고 공식 석상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태어난 모 연예인만큼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요즘 이름값이 아주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기부 건까지 터지며, 지영의 명성은 지상계가 아닌 천상계로 이동했다.

그래서 같이 운동하는 선수들도 지영을 우러러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시샘이 없지는 않았다. 시샘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태 지영과 척지고 제대로 형체와 태를 유지한 이들이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라, 티 나게 시샘을 보내거나 하진 않았다.

“지영아, 여기!”

이성진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큼지막한 누런 귀와 꼬리만 달면, 영락없는 강아지 모습이라 지영은 그냥 웃음이 났다. 그쪽으로 간 지영은 가방을 옆에 놓고, 밥부터 퍼왔다. 아침도 먹었으니까, 점심은 평소 훈련 식단으로 퍼왔다.

“은정 선배 감독실 가던데. 안 마주쳤어?”

임효중의 물음에 지영은 입에 있던 풀때기를 삼킨 뒤 대답했다.

“봤어. 시비 걸던데?”

“진짜? 너한테도?”

“응. 넌 뭔데 지금 들어오냐면서. 그래서 허락받았고, 무단이탈도 아닌데 뭔 상관이냐고 되받아쳤지.”

“와우. 그러니까? 뭐라디?”

“하. 하고 말던데. 할 말 없지. 지가 감독도 아닌데.”

지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디 하나 틀리지 않은 말인 게, 도은정은 여자팀 주장일 뿐이다. 주장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권력은 있지만, 그게 감히 지영을 건드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데?”

지영의 질문에 강한결이 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때 세계 선수권에서 했던 행동, 소문 퍼졌나 보더라.”

“그게? 그게 어떻…… 아, 안에서 퍼졌겠네.”

당시 스태프들도 있었고, 심지어 강한결, 임효중, 황석은 여자팀과 같이 경기장에서 가까운 현지 교민들 관중석 쪽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 교민들 틈에서 퍼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이 간 코칭스태프들이나, 그도 아니면 여자팀 내부에서 퍼졌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게 퍼지면…… 여론은 박살 난다.

그걸 우려해 강한결이 이 일은 절대 얘기하고 다니지 말자고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에게 전부 강하게 주의 줬었다. 그런데 결국, 어딘 가서 퍼졌다.

마치 세상에 영원하며, 완벽한 비밀은 없다고 누군가가 비웃는 것처럼.

“상황 안 좋나 보네? 식당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응. 안 좋아. 이런 소문 알지? 금방 퍼지는 거.”

“……하긴.”

주변을 둘러봤더니 정말 아는 여자팀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지영과 이성진에게 백배 사과한 마이너스 57체급의 추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지영은 이걸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나쁘게 꼬여서 기분이 좀 별로였다.

일 하나 끝내고 왔더니.

“일이 하나 더 생겼네?”

“그러니까. 어떻게든 너 오기 전에 해결 보려고 했는데, 이게 복잡해. 해결하는 게 쉽지 않겠어.”

“음…….”

강한결이 저렇게 고개를 저을 정도면 진짜 어려운 상황이 맞는 것 같았다. 지영은 한숨과 함께 추미소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전화 좀 달라고. 그러자 거의 바로 전화가 왔다.

-어! 지영아!

“누나. 통화돼요?”

-응, 지금 화장실 왔어. 너 입촌했다며?

“네. 좀 전에 와서 감독님 뵙고 밥 먹고 있어요. 누나, 일 터졌다면서요. 분위기 어때요?”

-힝…….

대번에 울상이 되는 추미소다.

지영이 아는 한, 여자팀 중에서 가장 마음이 착한 선배다. 용인대 졸업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한 끝에 국대에 선발된 선배였다. 지영을 처음 봤을 때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지금도 났다. 문제가 터졌을 때, 이 선배만큼은 도와야겠단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일단 제가 좀 알아볼게요. 최악의 경우에도 누나는 어떻게든 해줄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밥 먹고 운동할 때 조심하고요.”

-……응, 고마워.

진짜?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랬으면 아, 계획이었네? 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 더욱 돕고 싶었다. 지영은 전화를 끊곤 친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지친다, 지쳐.”

“그러니까. 그래도 미소 누나는 바로 챙긴다고 하네?”

“그럼. 착한 누나잖아. 왜. 너넨 싫어?”

“설마. 이렇게 일 터지고 성진이가 미소 누나는 꼭 챙겨야 한다면서 이미 열변을 토했어.”

하긴, 추미소는 이성진한테 미안하다고 계속 메시지를 보냈고, 전화도 해서 울고 그랬다고 들었다. 마음이 정말 착한 사람이다.

“여왕벌 하나가, 진짜 개판으로 만들어놨네.”

지영이 툭 던진 말에 친구들은 하하, 하고 난처하게 웃었지만 다들 수긍하는 눈빛이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여자팀을 이끄는 건 좋다. 좋은데…….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쉽지.”

그래. 강한결의 말처럼 정말 안타까웠다.

도은정은 천상 리더다. 강한결과는 결이 다르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끄는 재능을 갖췄다.

그래서 도은정보다 선배도 있는데, 감독은 도은정을 여자팀 주장으로 낙점했다. 그리고 잘 이끌었다. 선배들까지 전부 아울러가며 얼마 전까지는. 그런데 저번 세계 선수권에서는 정말 큰 실수를 했다. 그리고 그 실수가, 선수촌에서 그녀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씁쓸했다. 인터넷을 보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이미 퍼지는 중인 것 같기도 했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도 이걸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이번에는 정말 막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