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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30화 (33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30화

330화. 포드의 운명(13)

조나단의 말에 지영은 기뻤지만, 바로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바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런 지영을 조나단은 빤히 올려다봤다. 넓은 벤치. 서로 간의 거리는 1m 정도. 저 멀리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작게 말하면 들리지도 않는 거리.

체온은커녕, 서로 남남이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

이 거리에서 날아드는 조나단의 눈빛엔 순수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조나단은 정말 궁금한 것 같았다. 왜 동양 사람이, 자신에게 이렇게 자꾸 다가오는지. 그게 궁금한 것 같았다.

그런 시선에 지영은 고민, 또 고민하다가 답을 내놓았다.

“불편하니?”

“…….”

혹시 몰라서 그렇게 묻자, 다행히도 조나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시선을 다시 운동장으로 향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도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 사람들보단 나아.”

“그래? 그게 불편했구나.”

“응. 혼자 있고 싶은데, 자꾸 막 다가오려고 하니까. 나한테 마음의 문을 열라고 하니까. 그래야 도울 수 있다고 하니까.”

“…….”

지영은 조나단의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지영은 정신과 쪽으로는 말했듯이 야매다.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근래 좀 찾아보긴 했지만 그래 봐야 라포란 단어부터 시작해 제대로 아는 건 몇 개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영에겐 그런 전문가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경험.

본인이 그 세계의 주민이었었던 경험.

뭘 해도 소용없고, 오히려 자극받으면 덧나는 세계의 주민이었던 경험은 조나단을 대함에 있어 극히 조심하고, 섬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옆에 앉아 있었다. 이것만 해도 상당히 접근한 거지만, 지영은 절대 안녕? 하는 인사조차 먼저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공유했다.

이 시간은 지영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사실 지영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조나단도 조나단이지만, 조나단을 보며 과거의 트라우마가 자극된 지영도 심리적으로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애초에 심리가 정상이었다면, 조나단을 보고 무시하는 게 맞았다. 정상이라면, 조나단을 보고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게 맞았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트라우마가 있기에 조나단을 무시하지 못했다.

인종,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그냥 무의식적으로 저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 그리고 상태를 알아봤고, 자신의 과거 기억이 살아나면서 트라우마가 자극됐다. 그 자극의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었다. 이러니 지영의 멘탈이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저 끝내주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조나단이 왜 여기서 저걸 보는지, 순수하게 궁금하기도 했다.

“난 강지영이야. 한국에서 왔어.”

“알아. 나는 조나단 필러스. 음, 여기 살아.”

10살인데, 어조가 매우 차분했다.

본래도 성숙했던 아이일 수도 있고, 사고 후 성숙해진 거일 수도 있고. 그래서 조나단과의 대화는 슬프게도 거의 또래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저 나이 때의 순진함이, 그 천진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매우 슬픈 일이었다.

“맞다. 아까 내 질문에 대답 안 해줬잖아.”

“응? 아아. 왜 다가오냐고 물은 거? 음, 그냥 궁금했어. 여기서 저 운동장 너머를 바라보는 풍경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는. 너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조나단은 저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감정을 느낄까? 이런 거?”

“거짓말.”

“들켰네? 근데 반은 진짜야. 반은…… 나도 치유받고 싶었고. 저걸 보면서.”

처음엔 뭔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지영은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않기로 했다. 생각나는 그대로, 그냥 순수하게 쏟아내기로 했다.

‘이 아이와 대화에 계산을 넣는 건 오히려 독이 될 거야.’

심리 치료할 때는, 특히 아픈 아이를 상담할 때는 그 아이의 트라우마가 자극될 만한 단어 전체를 빼는 게 좋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가정폭력이면 그 대상자인 부모를 가리키는 엄마나 아빠라는 단어 같은 걸 빼야, 아이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지영은 교통사고란 단어였다.

그런데 그런 걸 의식하면, 의식하는 순간 조나단은 멀어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영은 자신을 조이고 있던 경계심을 풀었다. 그래서 나가는 날 것의 대사들.

“지영도 아팠어?”

“아팠지. 많이. 지금의 나는 건강하지만, 몇 년 전의 나는 상처투성이였거든. 아무도 모르지만…….”

“왜?”

“사고가 있었어.”

지금은 없는 사고.

회귀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니 지영을 나락으로 떨군 사고는 이번 삶엔 없었다. 하지만 그 사고는 지영이 분명히 겪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거짓말이란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많이 다쳤어?”

“응. 많이. 정말 많이. 나도, 내 친구들도.”

다시 생각나니까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 끔찍했던 시간.

지영은 자신도 완전히 망가졌지만, 친구들의 사고를 듣고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당시에도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기에 언론에선 천재의 몰락이란 타이틀로 조명하기도 했었다. 그 시간은 정말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나중에 조나단이 찾아보면?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역시 상관없단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언론에 지영이 겪었던 그 모든 게 있는 건 아니니까. 조나단이라면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을 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나단은 지영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영의 눈빛에 담기기 시작한 아픔을 보며, 공감하기 시작했다.

“지영은 잘 이겨냈구나. 난 아직 아파.”

“이해해. 언제까지고 계속 아파도 돼. 괜찮아. 아픈 게 당연한 거고, 아픈 건 오래가니까.”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 시작할 거야.’

정말이지 틀에 박힌 그 말은, 얼추 정답이기도 했다. 인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성장하고, 나약해지고를 반복하는데 보통의 상처들은 이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많이 아물어간다.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영도 이 과정을 겪었다.

시간이 금이 되고.

그 금이 상처를 치유하고, 천천히 아물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게 조나단에게도 통용될 거라고 확신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조나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영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시간이란 연고에 아물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 그때까지 조나단이 못된 생각을 하지 않게 잡아주는 것. 아니, 지켜봐 주는 것.

“아픈 건 오래가? 아, 오래가는구나. 음, 오래가.”

이런 의미심장한 혼잣말에도 지영은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해도 될까?”

“응. 해.”

“저 멀리 강과 산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참 그대로구나, 하는 생각?”

음…….

속에서 절로 침음이 나오는 대답이었다.

이제 고작 10살짜리의 아이가, 이런 대답을 한다고?

‘나처럼 인생을 회귀한 것도 아닐 텐데?’

그런데 이런 대답이라니?

지영은 조나단의 대답에 순간적으로 아찔해졌다.

그런 지영의 귀로 조나단의 목소리가 재차 들어왔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그대로였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었어.”

“…….”

“그런데 그건 너무 나만 생각한 생각이라서, 되게 슬펐어. 우리 엄만 매일 아팠거든. 매일 내가 잠들면 숨죽여 울었어. 아파서. 그런 엄마가 저 산이랑 강처럼 그대로였다면, 엄만 영원히 고통받았을 거잖아.”

“…….”

“그게 슬프고, 무섭고, 싫었어. 그런데 그래도 엄마가 저 산이랑 강처럼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하고 있어.”

미치겠다…….

사고력의 수준이 어마어마했다.

성인이 되어도 과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영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조나단이 시선을 정면에서 거둬, 지영에게 돌렸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슬픈 미소였다.

지영은 순간적으로 이 아이가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 아이의 엄마에게,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 분노는 속에서 삭인 뒤, 지웠다. 절대 풀어둬서는 안 될 감정이었으니까.

조나단은 이후, 다시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냥 또 멍하니 저 멀리 있는 산과 강만 바라봤다. 지영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은 이거면 됐다. 정말 지금은 이거면 충분했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했다.

산과 강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시작하자, 조나단은 일어났다.

인사 없이 떠나는 조나단. 그게 조금은 서운했지만, 지영은 당연히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이 짧은 대화에 만족하기로 했다.

조나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지영도 벤치에서 일어났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어땠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이 바로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슬슬 돌아갈 준비 중인 매니저 팀도 같이 지영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얘기 좀 했어.”

“어? 진짜?”

지영의 기행 아닌 기행은 이미 친구들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매니저 팀도 알고 있었고. 임은진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지영의 기행이야 뭐, 그녀는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같이 온 매니저 팀은 걱정이 앞섰다. 전후 사정을 전해 듣고, 지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시작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걱정되면서도, 궁금했다.

며칠간 무응답을 넘어 개무시당한 걸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대화했다고 하니 궁금증이 절로 일어난 것이다. 지영은 그러나 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도 섞여 있다.

조나단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걸 말하는 건 역시나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이 그냥 웃기만 하자, 지영의 의도를 깨달은 강한결과 임은진이 얼른 상황을 정리했다.

“자, 자. 우리 갈 준비해야지. 이성진. 너 짐 다 쌌어? 안 쌌지? 빨리 가서 싸라. 내일 또 갈 시간에 부산 떨지 말고.”

“어? 다 쌌. 큭! 어어…….”

다 쌌는데, 그래서 다 쌌다고 대답하려던 이성진은 임효중의 옆구리 치기에 헛숨을 들이켜곤 얼른 말을 취소했다. 그리고 2층으로 질질 끌려갔다. 와르르 몰렸다가, 우르르 흩어졌다. 지영은 강한결과 임은진에게 눈빛으로 고맙다고 답하고는, 방으로 돌아와 샤워부터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자 찬바람을 맞으며 으슬으슬해졌던 몸이 도로 노곤해졌다.

씻고 내려가자, 다들 마지막 밤을 축하하기 위해 거실에 모여 있었다.

그래, 친구들은 내일 간다. 더불어 임은진만 빼고, 매니저 팀도 전부 떠난다. 일주일간의 휴가였고, 그걸 백업하기 위해 온 매니저 팀이었다.

다만 원래는 지영도 함께 가는 게 맞지만, 지영은 조나단 때문에 남기로 했다.

이렇게 가는 건, 지영이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돌아간다고 해도 신경이 쓰여 훈련도 제대로 못 할 게 빤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임은진에게 허락받은 다음, 전기정 감독님에게도 직접 전화해 양해를 구했다.

본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인해 소집일에 늦는 건. 하지만 지영은 기본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인간이었고, 이제 전기정 감독도 그런 쪽으로는 포기했다. 그래도 그나마 그가 이걸 이해해 주는 이유는, 지영이 훈련 중엔 지독히도 성실하고 실제로 성적도 최상으로 내는 게 컸다.

그렇게 며칠간의 말미를 더 얻었다.

물론 그 안에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대화의 물꼬를 텄으니 앞으로 조금씩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파티 준비가 끝나고, 가볍게 웃고 떠들면서 먹고 마셨다.

휴가다.

술은 최대한 조금, 맛있는 건 많이. 어차피 돌아가면 다시 빡센 훈련이 시작되니까, 먹어둘 수 있을 때 먹는 게 최고였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휴가의 끝은 언제나 아쉽고, 또 아쉽다. 운동선수에게 휴가는 천금보다 귀한 가치를 가지는 성역과도 같았다.

선수에게 휴가가 없다면, 아마 1~2년 내로 정신력이 고갈되어 은퇴하는 선수가 우르르 나오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훈련 강도가 빡셀수록 휴가는 가능한, 최대한 알차게 보내는 게 좋았다. 그런 의미로 이번 휴가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지영이야 중간에 일정이 변해 함께 하지 못했지만, 친구들은 디트로이트를 충분히 즐겼다. 그리고 다음 날, 미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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