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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28화 (32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28화

328화. 포드의 운명(11)

마리나 수녀는 롤시와 놀아주다 말고 우연찮게, 정말 우연찮게 고개를 돌렸다가 한쪽 벤치에 앉아 있는 지영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영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이상했다. 저 청년의 눈빛은 우수에 젖은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가리고 과거 어딘가를 손으로 더듬는 것처럼 보였다.

길을 잃은 어린 양.

지영이 바라보는 곳엔, 조나단이 있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조나단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위험한 상태였다. 당시 조나단의 정신은 붕괴 직전에 있었다. 엄마가 생명을 끊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았고, 숨이 멎었을 때 911에 신고한 것도 조나단이었다.

조나단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신고하려고 했지만, 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신고할 수 없었다. 그의 엄마는 정말 몹쓸 짓을 했다. 조나단의 어머니, 에슐리는 마리나 수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늦게 들어왔지만, 한동안 이곳 보육원에서 지냈다가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에슐리는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끝까지 보살피고 싶었지만, 혼자 자립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잡을 수 없었다. 그런 에슐리는 아이를 가졌고, 천신만고 끝에 조나단을 건강하게 낳았지만, 본인의 건강은 급속도로 잃어버리게 됐다. 그래서 결국 신의 품을 향해, 스스로 여정을 떠났다.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아니, 실행했을 때 조나단이 보고 말았다.

멈추고자 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었고, 아들을 간절한 애원으로 붙잡았다. 조나단을 품에 안고, 에슐리는 신의 품으로 향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싸늘하게 식어가던 그 순간 자체가 조나단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픔 때문에 스스로 문을 걸어 닫기 시작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만들어내는 자기만의 세계. 그 세계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몇 날 며칠이고를 지냈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웃지만, 마음은 엉엉 울었다.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으르렁거렸지만, 마음은 아파서 여전히 울었다.

마리나 수녀는 이런 아이들을 자주 봤다.

이 보육원은 마음의 상처를 받아 온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아니, 아무리 좋은 케이스라고 해봐야 부모에게 버려진 케이스니, 다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조나단은 그중에서도 유독 심한 케이스였다.

길을 잃은 어린 양을 위해 살리라는 신념과 신앙을 품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마리나 수녀는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치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나단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고, 지속적인 관심과 당장 마음에 품고 있는 응어리가 조금은 물렁물렁해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으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조나단을 바라보는 지영의 눈빛이 마리나 수녀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동조, 동화?’

그냥 아이를 따스하게 보는 것도 아니고, 호기심을 가지고 보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다 안다는 눈빛. 그래서 아파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실제로 떠오르는 기억에 고통을 느끼지는 간혹 인상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왜? 마리나 수녀는 그게 이상했다.

강지영의 일생을 자세히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저 동양인 청년이 언제부터 유명세를 탔고, 과거에는 어땠고, 유명세를 탄 뒤에 어땠었는지 등은 전부 확인했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아는 지인에게 부탁하니 금방 알아줬다.

그걸 봤을 때, 어디에도 강지영의 괴로움에 관한 파트는 없었다.

승승장구.

위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이겨내고 정상의 자리에 올라온 훌륭한 청년. 미래가 정말 기대되는 전도유망한 청년. 이 정도였다. 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 있지만, 그걸로 그 친구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조나단의 저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없다는 뜻인데 왜 저런 눈빛이지?’

단순히 상상으로?

힘든 아이 같아 보이니까 연민을 가졌을까?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강지영은, 아픈 아이였다.

동화가 동감이 아니라, 본인이 아파봤기 때문에 나오는 괴로움이었다. 같은 상처를 공유한 이를 봤을 때 나오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어떻게 저런 감정을 내보일 수 있는 걸까?

마치, 알아. 나도 겪어봐서.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에 타고난 마리나 수녀는, 그런 지영이 신기하기보단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리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잠시 다른 수녀님에게 맡기고, 지영에게 다가갔다.

“오늘도 나왔군요.”

“아, 수녀님.”

마리나 수녀가 지영의 옆에 앉으며, 시선은 지영이 여태 보고 있던 아이에게 줬다.

“저 아이, 이름은 조나단이라고 해요.”

“조나단. 멋진 이름이네요.”

“네, 그리고 슬픈 이름이죠. 음……. 외부인이지만 어쩐지 지영 군에게는 얘기해 주고 싶네요.”

“…….”

“조나단의 엄마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같이 힘들어했죠. 애초에 그 몸으로 조나단을 얻은 건…… 무리인 일이었어요. 얻고 나서는, 당연히 더욱 힘들어졌고.”

“…….”

담담한, 마치 점심은 스테이크 어때요? 하듯이 이어지는 말이었다.

“잘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그 이상은 버티지 못했어요. 이제 편해지고 싶어 조나단이 10살이 되던 날, 스스로 신의 품으로 향했지요.”

“아…….”

“조나단은 그런 엄마가 신의 품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부터 보고 말았답니다.”

“…….”

그 말에 입을 꾹 닫는 지영. 마리나 수녀에게 그런 지영의 모습은 마치 그럴 줄 알았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청년은 단순히 조나단의 아픔에 공감하는 게 아냐. 공감하는 척은 더더욱 아니야. 아는 거야, 진짜. 저렇게 아팠던 순간이. 저 친구에겐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저 잿빛은 말이 되질 않으니까.

하지만 마리나 수녀는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보았을 때 이 청년에겐 남들이 모르는 큰 상처가 있었다. 큰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아는 사람이 없다? 그건 곧 이 청년은 그 아픔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걸 자신이 먼저 들쑤실 필요는 절대 없었다.

그걸 들쑤시는 건, 타인의 아픔을 좀먹으며 크는 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나단은 지금 이 보육원에서 가장 많은 케어를 받는 친구였다.

저렇게 혼자 두는 것 같아도, 뒤로는 아이의 행동을 관찰, 감시하는 분들이 있었다. 가톨릭 계열의 보육원이지만 디트로이트시와도 연계되어 있어, 전문가 선생님들이 항상 주마다 며칠씩 와 아이들을 봐주는데 그럴 때마다 조나단을 상담한 이들은 언제나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힘들다.

마음의 문이 견고하다.

강제로 열면, 크게 사고가 난다.

시간이 답이다.

잘 지켜보고, 아이가 여는 문을 막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 답만을 들어 마리나 수녀도 여태껏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볼 생각이었다.

조나단과 한국에서 온 강지영을.

물론, 저 길을 잃은 어린 양이, 길을 찾은 양을 쫓아 엄한 곳으로 가지 않게, 철두철미하게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약 방문이 오늘 하루라면?

마리나 수녀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반백을 살아오며 이런 경우를 지켜봤을 때, 눈에 밟히는 아이를 무시하고 발길을 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열에 여덟에서, 아홉은 다시 이곳을 찾았다.

그들이 가진 신념, 자애로운 마음 등이 상황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상황을 무시하게 하는 건, 그것보다 좀 더 중차대한 일이 있는 아주 소수의 경우뿐이었다. 그러니 마리나는 지영이 다시금 이곳을 찾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 * *

지영은 밤새 잠을 설쳤다.

조나단 그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제, 마리나 수녀에게 조나단에 관해 들은 얘기는 사실 거기서 끝이었다.

다른 보육원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공격성을 가끔 보이는데, 이때는 말리기 쉽지 않다.

타인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

대화를 나누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체온을 나누는 것도 싫어한다.

차가운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등등.

이상이 조나단에 관해 들은 얘기였다.

지영은 그 얘기를 듣고, 마리나 수녀가 다시 아이들의 부름에 일어났을 때 겨우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은 어떤 식이었냐고.

손을 그었고, 욕조에서 아이와 엄마가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다는 대답. 충격적이었다.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은 조나단에게 정말이지…… 너무 몹쓸 짓을 했다. 아이들의 지극히 예민하고, 민감한 정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웠다.

자신이 편해지고 싶다고.

‘그랬으면 안 되는 거지…….’

아무리 편해지고 싶었어도, 아무리 괴로웠어도.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건 부모의 책임론을 떠나서, 그냥 인간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독하게 얘기해서 만약 그런 경우였다고 해도, 아이가 없었을 때 선택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지영의 상식으로는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갔다. 그 아이가 그 세계의 주민이 된 것도 그래서 단번에 이해가 됐다.

“새벽부터 뭐 해?”

흠칫.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드니 정면 계단에서 강한결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그냥, 일찍 깨서. 넌?”

“나도 그냥 깨서. 뭐야. 무슨 일인데 새벽부터 얼굴이 그래?”

“내 얼굴이 왜?”

“또 세상 오만 가지 슬픔은 다 품은 얼굴이잖아.”

“하하, 그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또? 또는 뭔 소리야.”

“너 가끔 그래. 가끔 정말 이해 안 가게, 그냥 우수에 젖은 것 이상으로 아파 보일 때가 있어. 아, 육체적으로 말고. 심적으로.”

“…….”

역시 예리하다.

가끔 지영은 그런 상념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당연히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는데, 그럴 때 아무래도 본 것 같았다. 강한결의 눈치는 자신 못지않으니, 이건 발뺌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지영은 바로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엔 왜 또?”

“어제 혹시, 운동장에 혼자 나와 앉아 있던 친구 기억해? 왜, 마리나 보육원에서.”

“아 조나단?”

“이름도 알어?”

“응, 물어봤지. 음, 아픈 친구라고 하던데, 아이들이.”

아이들의 눈은 거의 정확하다. 멋있으면 멋있다. 슬프면 슬프다. 배고프면 배고파 보인다. 보통 이렇게 직관적으로 답이 나온다. 그런 아이들의 눈에도 조나단은 아픈 아이로 보였던 거다. 다행히 나쁜 애, 이상한 애 등의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그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그 애는 왜?”

지영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 어제 들었던 얘기를 해줬다. 그러자 강한결의 얼굴은 즉시 침중해졌다. 진지하게 뭔가를 생각할 때의 표정. 지영은 저럴 때의 강한결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한결이도 힘들 수 있겠어.’

조나단이 가진 아픔은, 웬만해서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딱 들었을 때, 큰일이다. 정말 힘들었겠다. 어떻게든 해야지. 하는 생각은 들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나오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지영은 이런 일은 이상하게 남에게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성진이 아직도 다가가고 있는 정소영에게 그렇게 진심으로 나섰던 것도, 전부 자신은 진짜 그 힘듦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왔어.’

그러니 모른 척하는 건 아무래도 양심이 너무 걸렸다. 온 세상을 뒤지며 힘든 사람을 찾아 도움을 주는 건 무리지만, 이렇게 우연히, 아니, 인생이란 길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 경우에는, 피하지 않고 싶었다.

후원부터 시작해 이번 기부까지, 전부 그런 마음이 바탕이 되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무시하고 싶지 않았고, 이상하게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아니, 나도 잘 아니까 나에게 맡겨봐.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

‘분명 전문 선생님들도 상담 중이라고 했어.’

그러니 거기에 자기 하나 그냥 슬쩍 더 보태지는 거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2나 3에서, 4로 그냥 한 명 더 늘어나는 거다. 딱 그 정도. 지영은 그 정도에서 움직이기로 정했다. 정하고 나니까 할 일도 정해졌다.

“오늘 미국이…… 토요일이네. 여기도 토요일은 학교 쉬겠지?”

“응? 어, 아마도. 왜. 가게?”

“응.”

지영이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생각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생각만 하는 편은 절대 아니었다.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항상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영은 일단 뛰었다. 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씻고 아침을 먹자마자 나갔다 온다는 말과 함께 바로 출발했다.

디트로이트 관광이라는 본래의 스케줄에서 벗어난 독단적인 스케줄에 제시카 감독이 한소리 했지만, 죄송하다고 정중히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이곳에 온 게, 저 아이 때문이라는 거죠?”

“네.”

이른 오전.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 또 밖에서 뛰어놀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 스윽, 힘없이 나타나 벤치에 앉는 조나단. 제시카 감독은 단번에 이상을 파악했다.

“음, 함부로 막 찍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원장 수녀님과 상의해 보세요. 저도 조심스럽게 다가갈 거라.”

“알겠어요. 일단, 카메라에 아이 안 나오게 담아는 볼 테니까 먼저 움직이셔도 돼요.”

“네.”

제시카 감독이 건물로 들어가자, 지영은 조심스럽게 걸어 조나단의 옆에 앉았다.

힐끔. 볼 줄 알았는데.

조나단은 옆에 앉은 지영을 쳐다도 보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가 사는 성은 대화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그 행동에서 나온 메시지는 지극히 간단했다.

말하기 싫어.

그 누구와도.

지영은 시작부터 높은 성벽에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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