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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27화 (32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27화

327화. 포드의 운명(10)

“아니! 성진! 왜 그쪽으로 가!”

“아? 쏘리! 하하! 이쪽이 뻥 뚫려서 그만!”

“잘 뛰어봐 좀! 빨리! 아! 수비! 빨리 돌아와!”

“어! 알았어!”

이성진의 목소리와 낯선 앳된 목소리.

지영이 저 중 하나의 목소리가 이성진이라는 걸 알아차렸듯이, 마리나 수녀도 저 대화의 목소리 중 하나가 지영의 친구라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마리나 수녀는 잠시 그쪽에 귀를 기울이다가, 온화한 미소로 일어섰다.

“잠시 가볼까요? 친구분들이 벌써 저희 아이들과 어우러진 것 같은데.”

“네.”

마리나 수녀를 따라서, 아까 정문으로 들어올 땐 벽에 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보육원의 운동장으로 나갔다.

‘와…… 넓네.’

넓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축구 경기장 두 개는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슥 훑듯이 본 것과 직접 눈에 담은 거랑은 역시 급이 달랐다. 특히 뻥 뚫려 있어서 해방감이…… 어마어마했다. 저 멀리, 어제 캠핑을 했었던 세인트 클레어 호로 연결된 강줄기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산.

그냥,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풍경이었다.

그런 배경을 두고, 친구들은 둘씩 나뉘어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활동력이 좋은 이성진은 아이들과 축구를. 임효중은 다른 쪽 코트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럼 강한결과 황석은? 신기하게 두 친구는 여자아이들과 있었다.

“어머, 재들이 벌써?”

특히 한 아이는 황석의 넓은 등에 업혀 있듯이 매달려 있었다.

황석의 외모는 굵직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부터 호감을 느낄만한 외모는 아니다. 그런데 벌써 등에 업혀 있다? 아이들과 친화력이 뭐 어마어마하게 특별한 것도 아닌데? 그럼 아이의 친화력이 좋은 걸 거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에서, 황석은 조금도 위협적인 인간이 아닌 거고.

여자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강한결이 있었는데, 한결이는 책 하나를 가져와 펼쳐 놓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었다. 롤시? 아까 지영을 보고 도망쳤던 소녀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한결을 보고 있었다.

“저분이 여러분의 리더라고 하던데, 맞나요?”

“네.”

자랑스러운, 우리 강리더다.

만약에 정말 극적인 상황에서, 강한결이 불구덩이 너머에 저기에 살길이 있다! 이렇게 외치면 아마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전부 그 불구덩이로 뛰어들 거다. 리더를 향한 신뢰. 절대 저 친구는 내게 안 좋은 방향으로 걸으라 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래서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벌써 아이들과 동화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네요. 마치…… 신앙이 깊은 신자처럼 보여요. 혹시 저분은 신을 믿나요?”

“아니요. 따로 믿는 종교는 없는 걸로 압니다.”

강한결은 한 번도 종교적인 언사를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주말이 되면 교회보다는, 짐을 바리바리 싸서 캠핑가는 친구기도 했다. 그러니 무교다.

“그런가요? 음, 그런 저분이 가진 충실한 신념 때문이겠군요.”

“운동을 그만두면 남을 돕는 일에 삶을 바칠 생각이라고 했어요. 대학도 그쪽으로 진학했고요.”

“그렇죠? 역시…….”

실제로 강한결은 대학교 과를 사회복지과로 선택했다.

이 선택 때문에 고3 때 선생님들이 모여 얘를 다른 길로 어떻게 해야 인도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수능은 보지 않았지만, 아마 봤어도 전국에서 순위권이었을 거다. 강한결이 진짜 넘사벽인 게, 지영과 친구들이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빡센 인문고인 연희고에서 중간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강한결은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전교 상위권을 넘어 순위권에서 놀았다.

특목고, 민사고 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성취도를 자랑하는 연희고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건, 전교 상위 0.1%라는 뜻이었다.

그런 미친 성적을 3년 내내 유지했다.

아, 중학교부터 따지면 6년이다. 그런데 지망학과가 사회복지학과니, 언제나 믿고 터치도 일절 없던 담임선생님이 놀라 교무실로 호출했을 정도였다. 사회복지학과를 폄하는 게 아니었다. 강한결의 성적이면, 보다 좋은 곳을 노려서 보다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강했다.

지영은 강한결의 고집을 그때 처음 봤다.

그리고 한 번 정하면,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렇게 좋은 성적으로 사회복지를 선택하다니……. 대단한 친구네요.”

“저도 몰랐는데, 이미 한참 전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었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마리나 수녀의 되물음에 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친구 자랑을 이어갔다.

“네. 나중에 운동선수도 은퇴하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아마도 수녀님처럼 살지 않을까 싶어요.”

“어머…….”

“그래도 전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저런 생각을 이미 확고하게 세우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앞으로 나아가고 있거든요.”

“지영 군은 그런 계획이 없나요?”

“있긴 있는데, 끝이 명확해요.”

그랜드 슬램.

회귀 후부터 자신을 잡고 있던 족쇄는 누가 뭐래도 유도다. 지영은 유도를 좋아한다. 하지만 싫어하기도 했다. 가장 잘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유도! 라고 대답할 수는 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하고 물으면 유도! 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싫은 건 아니지만, 힘들었다.

‘유도가 싫어질 만큼.’

훈련 때문이 아닌, 그냥.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그러니 애증이다.

좋아하지만, 증오도 하는.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지영은 유도에게 느끼고 있었다.

“오래 걸리는 일인가요?”

“아니요. 길면 2년, 잘못되면 4년. 그 정도면 끝나죠.”

“후후, 한창때겠네요. 그럼 그 이후에는 뭘 할 건지 정했나요? 지영 군을 알아보니 장래가 촉망한 배우기도 하던데. 역시 배우 쪽으로 가는 건가요?”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길을 열어두기 위해 겸업한 건 맞다.

하지만 운동 그만두면 배우나 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진 건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마리나 수녀는 그렇군요. 하고 지영의 말을 받았다. 그녀는 어쭙잖은 위로나 힘내라는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대단한 건 대단하다. 칭찬하지만 괜찮다. 힘내라. 다 지나가는 일이다. 같은 틀에 박힌 위로는 건네지 않았다.

“원장님!”

지영과 서 있는 마리나 수녀를 본 아이들이 달려오다가, 10걸음이나 넘게 뛰고 난 뒤에야 지영을 발견하곤 멈칫 섰다. 지영의 친구들과는 벌써 저렇게 잘 노는데, 이상하게 지영은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지영은 그래서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마리나 수녀의 미안하다는 눈웃음을 뒤로하고, 지영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성진은 잘도 뛰었다.

벌써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된 제임스? 그 친구와 패스를 주고받더니 뻥! 후지산 대폭발 슛을 쏘고는 앞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푸하하! 성진! 그게 뭐야! 내 동생이 차도 그거보단 잘 차겠다! 하하하!”

“아 이번엔 발등에 너무 제대로 실려서 그래! 다시! 다시 한번 제대로 패스해 주면 내가 진짜 잘 넣을 수 있어!”

이성진의 사정에 이제 10살 정도 된 제임스는 마지막이야? 하면서 오히려 이성진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기했다. 임효중은? 농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제일 큰 애들이라고 해봐야, 이제 10살 내외다.

하지만 다인종 피지컬의 나라 미국답게, 벌써 한국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고학년의 스펙으로, 제법 배운 티가 나는 자세로 슛과 패스를 하니 그나마 공놀이가 익숙한 임효중도 거기서는 크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작은 신체를 이용해 키가 큰 임효중을 상대하는 법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걸 보니 역시, 농구는 미국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한결은 여전히 책을 읽어주고 있었고, 황석은 그 옆에 고목 나무처럼 앉아 있었다. 그러다 가끔 비행기도 태워주고. 지영은 그런 황석의 모습을 보며 육아는 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영은 벤츠에 앉아 그런 정경을 즐겼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카메라가 담았다. 익숙해졌다. 이연은 질색팔색했지만, 지영은 의외로 그냥 괜찮았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질문 같은 것도 없어서 뭔가에 답해야 하는 상황도 없었다. 그냥 진짜 지영이 하는 걸 찍기만 했다.

그렇게 편히 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지영의 옆 벤치에 와 앉았다. 옆 벤치라지만 간격이 엄청나게 넓어서 소리쳐 불러야 아이가 바라볼 수 있을 거리였다.

작은 아이.

이제 고작 10살 내외.

그늘 가에 앉았지만, 그늘 때문인 게 아니라 아이의 피부색이 거뭇한 걸로 보아 흑인 계열 아이였다. 미국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넘쳐나게 보는 게 다인종이다. 동남아계, 슬라브계 등등, 세계 각국의 인종이 전부 보였다.

공항만 해도 그랬다.

그러니 저 흑인 아이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했다.

분위기가, 지극히 익숙한 분위기가 저 아이에게서 풍겼다.

회귀 이후, 지영이 반 학우를 봤을 때 느꼈던 그 분위기였다. 그 학우는 정말 삶의 끝에 머물러 있었는데, 다행히 지영이 먼저 발견해서 겨우 살릴 수 있었던 친구였다.

절망감.

우울함.

온통, 잿빛의 세계.

회귀 전 지영이 살았던 세계의 주민이, 저기 또 있었다. 신기하지만 이건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구했던 학우, 정소영을 스쳐 지나갔을 때 본능적으로 느낀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그냥 보는 순간, 저 아이는 저기 뛰어노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란 걸 알아버렸다.

10살 내외.

저만한 나이의 아이가 저 세계에 입주하게 된 계기라면 솔직히 몇 개 없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계기들이었다.

지영은 섣부르게 다가가지 않았다.

저 세계의 주민은, 같은 세계의 주민끼리도 소통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번, 그러니까 회귀 전에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직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 고충을 토로하는 그런, 틀에 박힌 프로그램이었다.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소된다는 의사에 말에 참가했지만, 지영은 그때 거기서 느낀 걸 아직도 잊지 못했다.

다들 겉으로는 웃었다.

사고로 다리를, 팔을 잃은 사람도 웃었다.

조금씩 청각이, 시각이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도 웃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면을 포장. 혹은 감추기 위한 웃음이었다. 지영은 거기서 아우성을, 숫제 비명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지영은 두 번 다시 나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느낀 건, 자신만 소리 지르고, 악을 쓸 수 있는 견고한 성이었으니까. 각자가 그 성을 세계 삼아 나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을 욕할 수 있나?

‘없지.’

덜커덕, 인생에 걸린 제동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그 세계에 갇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그 사람들을, 하, 쟤는 너무 거리감을 둔다. 진짜. 하면서 욕할 수 있나?

자신도 들어갔던 세계. 한참을 살았고, 회귀 전까지 나오지 못했던 세계.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걸로 자신은 그 세계에서 나왔지만, 그래서인지 그 세계의 주민이 너무 잘 느껴졌다.

정소영도 그랬고, 저 아이도 그랬고.

저건 그냥 두면 반드시. 아니,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으니 높은 확률로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지영은 섣부르게 다가갈 수 없었다. 성인의 경우 오히려 더 낫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어느 정도는 익혔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이다.

아직 혼자 서는 것은 물론, 감정을 통제하는 법은 아직도 서투른 아이들이다. 괜히 이런 애들에게 접근해 뭐가 힘드니? 하는 건 가슴에 정을 대고 망치질을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접근은 신중하게 해야 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해도 되나……?”

외지인이고, 외부인이다.

자신은 오늘만 오고, 내일부터는 안 올 수도 있었다.

계속 오더라도 언젠가 떠나야 할 거고.

지속적인 관심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서는 건 애초에 매우 별로인 선택지였다.

“오늘도 나왔군요.”

“아, 수녀님.”

마리나 수녀가 지영의 옆에 앉으며, 시선은 지영이 여태 보고 있던 아이에게 줬다.

“저 아이, 이름은 조나단이라고 해요.”

“조나단. 멋진 이름이네요.”

“네, 그리고 슬픈 이름이죠. 음…… 외부인이지만 어쩐지 지영 군에게는 얘기해 주고 싶네요.”

“…….”

“조나단의 엄마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같이 힘들어했죠. 애초에 그 몸으로 조나단을 얻은 건…… 무리인 일이었어요. 얻고 나서는, 당연히 더욱 힘들어졌고.”

“…….”

담담한, 마치 점심은 스테이크 어때요? 하듯이 이어지는 말이었다.

“잘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그 이상은 버티지 못했어요. 이제 편해지고 싶어 조나단이 10살이 되던 날, 스스로 신의 품으로 향했지요.”

“아…….”

“조나단은 그런 엄마가 신의 품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부터 보고 말았답니다.”

“…….”

말문이 콱, 틀어막힐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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