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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26화 (32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26화

326화. 포드의 운명(9)

성 마리나 보육원.

디트로이트의 도심과 외지 경계의 드넓은 벌판에 존재하는 보육원이다. 사방이 뚫려 있어서 차라리 보육원 말고 축산업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텅 빈 벌판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주변의 풍경 말고, 보육원 하나만 뚝 떼어놓고 보면 멀리서도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그건 곧 보육원 자체가 화목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아직 도착 전이지만 마음이 안정됐다. 사전에 방문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에 입구에서 가볍게 신분 체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은 아이들의 노는 곳과 아예 정반대였다.

아마 차가 오는 걸 보지 못하게 막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사방이 이렇게 뚫려 있어서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는 없었다.

카메라가 대기하자, 포드의 운명에서 내린 지영에게 머리가 하얗게 센 수녀님 한 분이 다가왔다. 가톨릭 신도이신 수녀 마리나의 이름을 걸어 만든 곳. 이곳을 세운 마리나 수녀 본인은 뭐랄까……. 이런 사람이 수녀다. 라고 생각하게끔 생겼다.

일반인이 보통 생각하는 수녀는 자애의 상징이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온화하고, 자상한.

신을 믿는 이가 모든 것을 내려두고, 그 신의 가르침을 본인의 의지로, 본인의 방식으로 행사하기 시작할 때 나오는. 신앙을 중심에 둔 행동 그 자체가 품은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마리나 수녀와 마주하는 순간, 기이하게도 경건해지는 마음이 생겼다.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진짜 수녀라는 것을.

꾸벅.

미국의 인사법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지영은 한국방식으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뒤이어 내린 친구들이 오, 하는 표정으로 지영을 바라봤다. 지영이 평소에 인사를 잘 안 하는 편은 아니었다.

인사는 사회관계의 기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해야 할 사람에게는 절대 거르지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먼저 인사하는 편이었고. 하지만 인사도 보면, 진심과 가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진심 가득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하면, 그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반드시 티가 난다.

인사에 굳이 가식이란 단어를 넣고 싶지는 않으니, 그냥 무성의하게 하는 인사와 진심을 담은 인사.

친구들은 강지영이 그리 건방진 인간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은 정말 처음 봤다. 아, 한 번 있었다. 연희 재단 박옥순 이사장님과 대면했을 때, 그때 지영은 저런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설렁설렁, 건성으로 하는 인사가 아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이 우러나는 인사.

“뭐지?”

그에 역시 놀란 건 친구들이었고, 강한결은 그렇게 인사한 지영과 마리나 수녀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천하의 강한결도 지영이 이렇게까지 존경을 보이는 이유를 대번에 파악하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지영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게 회귀자의 특수한 능력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눈을 마주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진짜야, 이 사람은.’

수녀님!

쪼르르!

뒤에서 달려온 한 아이가 마리나 수녀의 등 뒤에 붙으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지영을 올려다봤다. 이제 넷? 다섯 살 정도 여아다. 세상 천진난만한 나이. 그리고 그런 나이답게 아이의 눈빛은 정말 순수했다.

고민이라고는, 아픔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건 곧, 이 마리나 보육원에서의 생활과 보육원의 케어가 저 아이가 저런 눈빛을 하게끔 유지해 주고 있다는 뜻이어서 지영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롤시. 수녀님이 지금은 놀아주지 못할 것 같은데?”

“그럼 언제요?”

“이따가, 조금 이따가? 우리 사랑스러운 롤시. 그때까지만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네! 기다리는 건 저 잘해요!”

기다리는 건 잘한다는 롤시의 말은 이상하게도 아프게 들렸다.

도도도!

아이는 다시 마리나 수녀에게서 떨어져 보육원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 아이가 달려가는 걸 보면서 지영은 빼꼼, 문 근처에 툭 튀어나온 머리통 서너 개를 발견했다.

아이들이었다.

손님인 지영의 등장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쪼르르 달려온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자, 아이들은 꺄아아! 하며 다 도망쳤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나자 지영은 다시 마리나 수녀를 마주 보고 섰다.

싱긋.

포근?

정말 근사한 미소와 함께 마리나 수녀가 지영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마리나 보육원을 책임지고 있는, 마리나예요.”

성을 빼고, 아마도 세례명일 이름만 담백하게 말하는 마리나 수녀. 지영은 그 소개를 받고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강지영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호호, 잘 안답니다. 지영 군 덕분에 이 보육원도 수혜를 입었으니, 밖에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네.”

보육원은 넓었다.

뭐든지 다 크다는 말이 있는 미국이다.

그래서 큰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예전에 공장으로 쓰이던 곳을 사들인 다음 보수했기 때문에 크다는 말을 해줬다.

보육원이 되기 이전에는 이곳에서 군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해줬다.

“제 선대께서 남북전쟁 전쟁고아셨거든요. 그래서 가업이 성공하고 난 뒤, 언제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보면 적지 않은 돈으로 지원하면서도 내내 마음 아파하셨어요. 유언으로 힘이 없어 내쳐진 아이들을 절대 외면하지 말라는 가르침까지 내리셨죠.”

“…….”

“본래는 후원만 했지만, 제 대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이렇게 아예 보육원을 차리게 되었답니다. 호호, 사실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요. 이제 10년? 조금 더 넘었을 뿐이니까요.”

“역사가 중요한가요.”

이곳에서 사랑받고 있는 아이들이, 저렇게도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적당히 보육원을 둘러보고, 자연스럽게 원장 수녀의 집무실로 이동했을 때였다. 마리나 수녀는 직접 차를 타 가져다줬다. 지영은 음료보다는 차를 선호해서, 차가 입맛에 맞았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어째서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한 건가요?”

아, 그거…….

아주 많은 사람이 가진 의문이었다.

사실 지영도 원래는 굳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굳이 만약, 기부해야 한다면 해외보단 내 나라에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에게 기부하는 게 더 낫다고 여태껏 지영은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듣기로 그 돈으로 한국에 기부하면 더 좋았을걸,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고 말해주기도 했었다. 이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뜻. 그리고 지영도 그중 하나였고.

지영은 일단 생각을 다듬었다.

왜 그때 자신은 그런 선택을 내렸을까?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그 많은 돈을 기부한다는 선택을 내렸을까?

잠시 생각 끝에, 얼추 대답이 정리됐다.

큼, 차로 목을 축인 지영의 입이 열렸다.

“기부에 반드시 숭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요. 옳은 일을 행함에 있어 사명감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서는 안 되지요.”

맞다.

길 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구하는 게 숭고한 사명을 가진 이만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돌보아야 하는 게,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다.

“비슷합니다. 저는 제가 받은 그 큰돈을 이곳에 두고 가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좀 특수한 상황에 처해 광고를 계속 거절해 왔거든요. 물론 그게 기분 나쁘진 않았습니다. 비록 남들은 애가 어려서 뭘 잘 모른다고 수군거리긴 했지만, 적어도 그게 제겐 정의였어요. 그런데 그 정의가 이상한 욕망에 꺾이게 될 위기에 처하니, 저도 모르게 욱!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즉흥적인 기부 결정을 내린 거군요?”

“네. 기부금이 쓰일 곳이 미국이 된 건, 저와 계약한 회사가 포드고, 포드가 미국에 적을 두고 있어서예요. 그러니 솔직히 머리를 좀 굴린 편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당시 제 상황이 좀 어려워서, 편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지른 거다.

덕분에 여론이 아주 화르르 불타올랐다.

지영과 애초에 감정이 없던 미국의 언론은 상황을,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그렇기에 미국 내에서 강지영이란 이름이 몇 달간 쉬지 않고 여기저기서 나올 정도였다. 특히 이번에 대회를 끝내고 미국으로 왔을 때, 공항에서부터 땡큐, 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은 지영이었다.

그 인사에는 미국을 생각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걸 지영도 모르지 않았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돼라! 이런 영악한 생각을 하진 않았다. 말 그대로 그때 당시 장소가, 위치가, 상황을 타개할 선물을 들고 있던 게 미국이고, 포드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 당시 위치가 프랑스였다면, 이탈리아였다면, 하다못해 중국이었다고 해도, 아마 지영은 손을 잡았을 거다.

‘아, 중국은 좀 무린가?’

어쨌든, 미국이 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마리나 수녀는 왜 이런 걸 물어봤을까? 지영이 그런 속내를 숨기며 찻잔을 들었는데, 궁금증을 알려주는 답이 건너왔다.

“어떤 사람인지, 사실 궁금했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걸 잘 알지 못해 미안하게도 기부금을 받았을 때, 강지영이란 이름을 듣고 많은 의문이 들었어요. 들어본 적이 없는 동양인의 이름이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아보긴 했는데, 알면 알수록 매우 인상 깊었어요.”

“어느 부분이요?”

“꽤 많았지만, 제게는 꺾이지 않는 그 강인함. 정신력이 가장 돋보였어요.”

“…….”

꺾이지 않는 강인함이라.

좋게 포장해 준 거다.

저걸 기자들이 쓴다면 반드시 고집불통, 이란 단어로 대체될 거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그런 놈이라는 욕도 슬쩍 뒤따를 거고. 뭐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자신이라는 걸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독특한 행보, 눈에 보이면서도, 숨기는 선량함. 드러난 선량함을 감추는데도, 또 이상하게 드러나는 모습들. 이런 걸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응원하게 되는 그런 걸음을 해왔더군요.”

“…….”

마리나 수녀의 말에 지영은 대답을 다시 멈췄다.

낯 뜨거운 칭찬이기 때문이었다. 감정표현에 솔직한 나라라 그런 건지, 아니면 본래 그런 건지, 어느 쪽이든 대답하기 곤란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방문해 준다 했을 때, 여러 의심을 접을 수 있었답니다. 지영 군도 알다시피 보육원은 소위 있는 자들의 놀이터가 간혹 될 때가 있잖아요?”

“아 그건…… 네.”

지영은 뭐라 대답하려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건 지영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 아이들을 후원하려 한다는 생각을 내비쳤을 때, 강한결의 어머니인 김지영 여사님이 이 부분을 정말 강하게 꼬집어주셨다. 하는 건 좋은데, 중간에 하다가 멈추면 그건 그것대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지영이 했던 건,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정기적인 후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지영 여사님은 아주 강하게 이 부분을 짚고 갔고, 지금도 주기적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좀 전에 마리나 수녀가 말한 놀이터란 말은, 아마 기부를 자신의 이미지 포장에 쓰는 이들을 꼬집는 얘기 같았다.

한국도 문제가 심하다.

선거철만 되면, 전국의 보육원을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말이다. 이 중에는 진심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지만, 목적이 확실한 방문일 때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

이 부분도, 김지영 여사님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들었다.

혹시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오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아이들과 만날 땐 처신 잘해야 한다고.

여기 오면서 사실 그 얘기를 다시 상기했고, 조심 또 조심하기로 정한 지영이었다.

그리고 본래는 오면서 아이들 말고,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 지영은 오래 살지 않았지만, 감각적으로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자부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주목적이란 뜻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친구들에게만 알리고, 다른 스태프들한테는 알리지 않았다. 괜히 자신이 현장 책임자를 감시하러 가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다행입니다. 지영 군의 눈빛은 놀이터에 온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서요.”

마리나 수녀의 자애로운 그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안도의 웃음이었다. 말을 듣는 순간 긴장하긴 했었다. 조심하자고 했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인 거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영은 안도했다.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서였다.

그렇게 안도한 순간.

“헤이! 제임스! 패스! 패스!”

창문 밖에서 이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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