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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22화 (32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22화

322화. 포드의 운명(5)

아시아 선수권이 성큼 다가왔다.

이번 개최지는 싱가포르였다.

동남아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인 싱가포르는 화려하고, 깔끔했다. 마천루처럼 높게 솟은 호텔에 짐을 푼 지영은 곧장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도착했으면 실제로 쓰일 체중계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여자팀, 60과 장대호가 먼저 선발대로 가고, 황금세대는 좀 나중에 움직이기로 했다.

사실 본래는 버스 하나로 전부 움직이는 게 가장 좋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일 이후, 강한결은 대표팀 측에 정중하게 요청했다.

훈련은 같이 받겠지만, 움직이는 건 따로 움직이겠다고.

이런 선택을 내린 건 당연히 그날 사고 때문이었다. 이성진이 수술 후 정상 컨디션을 찾을 때까지 대표팀이 사과하긴 했다. 하지만 이미 관계는 매우 불편해져 버렸다. 그날 내려오지 않고 관중석에서 대기하던 그 모습은 이미 뇌리에 제대로 각인이 되어버렸고, 강한결은 어색해진 관계를 개선하는 것 대신, 아예 벽을 쳐버렸다.

이렇게 되면 팀워크야 당연히 무너진다.

하지만 강한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편한 관계 개선보다, 그냥 훈련만 같이하고 행동은 따로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대로 밀고 갔다. 이러한 강한결의 선택을 전기정 감독은 당연히 반대했다.

유도는 개인 종목이다.

응원으로 동료에게 힘을 줄 수는 있겠지만, 사실 경기 중엔 정신이 없어서 응원이 콕콕 귀에 박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세는 탈 수 있다. 단체전 같은 경우에서. 하지만 개인전 경기에서 승패를 가르는 건, 결국 본인의 실력이었다.

체력과 기술, 의지, 투지 등으로 이루어진 실력만이 승리와 패배를 반듯하게 가르는 작두가 된다.

이걸 아니까, 강한결은 아예 관계 개선보단 아예 철저하게 내외하기로 한 거다.

이런 선택을 당연히 서운해했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강한결은 냉정해지기로 했는지 다른 대표팀과는 대화조차 섞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건 그래도 친분이 있던 장대호한테도 마찬가지였다.

통보.

이걸 받아주지 않으면, 대표팀 소집에 불응하겠다는. 따로 훈련하고, 따로 시합장으로 출발하겠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협박까지 할 생각이었던 강한결이었다. 그런 대신, 훈련에는 매우 충실히 임했다. 코치진과 전력분석팀과 협조도 전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직, 불편한 선배들과만 따로 움직이겠단 뜻이라 전기정 감독도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세계 선수권 이후, 팀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싱가포르에 도착했고, 예고했던 대로 따로 움직였다. 시합장에 도착한 지영은 기다리고 있던 김재정 코치와 함께 바로 체중을 재러 갔다.

72. 80.

“아슬아슬한데?”

김재정 코치의 말에 지영은 조금 불만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체중 감량이 유독 힘들어서 이렇게 여유가 없이 뺀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72. 30 정도였는데, 여기 체중계가 아무래도 좀 높게 나오나 본데요?”

“그래? 그러면 곤란한데. 다른 친구들도 올라가 보자.”

넵!

기운차게 대답하고, 체중계에 올라가는 이성진.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이성진은 휴식보단 시합을 택했다. 턱에 보조대를 차고 하긴 하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점수가 부족했다. 지영도 부족하고, 다른 친구들도 전부 부족했다. 그러니 이 부족한 점수를 채우려면 시합은 필수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부상 때문에 쉰다?

그건 올림픽을 떠나보내는 결정이 된다. 그래서 이성진은 식단으로만 감량하다가, 시합 출전 2주 남겨두고 복귀해 유산소로만 남은 체중을 빼냈다. 제대로 몸도 못 풀었지만, 지영이나 친구들은 이성진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음에 혹여 만나게 된다면 턱을 날려버리고 싶은 아베 히후미는 일본 협회와 같이 중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 올림픽 출전도 불투명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물 건너가 버렸다. 그를 대신해 기무라 히로가 나오겠지만, 그도 점수는 충분해 이번 대회는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일본 선수가 참가하긴 했지만, 한국으로 따지면 이제 고등학생인 유망주였다.

실력으로 이성진의 근처에도 못 온 선수라, 실수만 하지 않으면 무난하게 우승이 점쳐지고 있는 이성진이었다. 그 외의 강자들도 이미 점수가 충분해서, 다들 후보가 나온 상태라 더욱 우승은 문제없을 거라 점쳐졌다.

그런 이성진의 체중은? 잘 뺐을까?

“65. 90? 어후, 아슬아슬하네.”

역시, 좀 높게 나온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체중계보다 400에서 500그램 정도 더 높게 나오는데, 다행히 커트라인에 걸리거나 오버되는 친구는 없었다. 애초에 그것도 염두에 두고 감량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행인 건 오늘 계체는 아니라는 것. 계체는 내일 저녁이니까, 충분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체중을 다 재고, 바로 몸을 풀었다.

시합장 매트야 뭐 다 똑같으니 넘어가고, 다른 나라 선수들 실력을 대충 눈대중으로 확인하며 1시간 정도 몸을 풀었다. 땀은 별로 나지 않았다. 마른오징어에서 물 짜내는 게 힘든 것처럼, 이미 수분은 한계까지 뽑아낸 상태라 숨이 트일 때까지 몸을 움직였는데도 땀은 많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티가 좀 젖을 정도는 나왔다.

이 정도면 커피 한잔 정도는 되니, 가볍게 저녁을 먹을 정도의 여유는 나왔다.

몸을 풀고 돌아가 씻고, 역시 따로 저녁을 먹었다.

원형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다섯.

식사의 시작은 불만이었다.

“아, 뱀 나오겠네.”

휘이익. 휘이익.

“야 씨!”

이성진의 말에 임효중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거기에 또 발끈하는 이성진. 그 모습에 낄낄거리는 임효중. 둘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리는 세 사람. 평소와 같은 황금세대였다.

“지영이는 시합 끝나고 바로 미국으로 간다고 했지?”

“나? 응. 바로 미국으로 가려고. 질질 끌어서 뭐해. 바로 하는 게 낫지.”

강한결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먹은 샐러드. 포크를 내려놓고 물로 입안을 헹구고 다시 붙어냈다. 대답한 것처럼 지영은 아시아 선수권이 끝나면 곧장 미국으로 간다.

나탈리 포드는 지영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돌아가 회의 끝에, 결정됐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지영의 다큐멘터리는 여름 중으로 미국의 NBC를 통해 공개되기로 결정됐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줬다. 그래서 이를 위해 지영은 올림픽 전까지 대회 이후 휴가 전체를 이용해 다큐를 찍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당장은 예정이다.

더 자세한 건 이번에 미국으로 들어가 정리하고, 조율해서 합의를 봐야 했다. 그걸 위한 미국행이었다.

“우음, 으씨. 그럼 한국엔 언제 와? 입촌 때 와?”

한 조각 남은 닭가슴살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인상을 팍 쓰며 한 이성진의 질문에 지영은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언제 들어올지는 모르겠는데? 감독님한테 허락은 맡았는데, 그쪽 일정 봐서 이삼일 정도? 그 정도는 더 늦어질 수도 있어.”

“음, 바쁘겠네. 체력은 괜찮겠고? 쉬지도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데.”

“이 정도야 뭐.”

웃으면서 버틸 수 있었다.

연희고 황금세대, 아이돌이라 함께 불리는 친구들에게도 오픈하지 않은 게 바로 과거였다. 즉, 회귀에 관한 건 절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가끔 이성진이 이놈 이거, 인생 2회차 아녀? 하고 푹푹 찔렀는데 그런 건 그냥 웃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고.

상식적으로 인생 2회차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걸 얘기하지 않는 건, 아무리 친구들이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게 빤해서였다.

‘날 제일 믿어주는 석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겠지.’

잘못하면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자신을 끌고 갈지도 몰랐다. 그런 오해를 굳이 사느니, 그냥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나았다. 그런 과거. 그 과거에서 지영은 이렇게 바쁜 삶을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이유?

조금 세게 말하면, 당연히 그냥 반병신이 된 몸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로 망가졌느냐면, 빠르게 걷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몸이었다. 당시 차량이 발목을 밟고 지나갔는데, 지영의 발목이 원래 유리 발목이었는지 아예 쨍그랑! 깨진 유리처럼 조각이 났다.

그걸 몇 번의 수술로 최대한 붙여놨지만, 한번 깨진 발목은 지영에게 ‘자유로운’ 움직임 자체를 앗아갔다.

거기에 보너스로 어깨까지.

이런 몸으로는, 몸을 사리는 게 먼저지 바쁜 게 먼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정상급으로 만든 건 역시 타고난 재능 덕분이었다. 직접 시범을 보여줄 수 없지만, 영상 데이터를 통해 철저하게 교정해 주는 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면 지영은 바빠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것도 10년 가까이.

그게 진짜 지영을 미치게 했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몸이 바쁜 거? 그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웃으며 반길 수 있었다. 게다가 억지로 하는 일도 아니었다.

“나한테 그렇게 크게 투자했는데, 내가 불성실하면 안 되잖아. 망하면 더욱 곤란하고.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게.”

이런 지영의 대답에 친구들은 씩 웃었다.

지영은 그런 친구들을 보며 속으로.

‘지들도 그러면서…….’

다들 노력이라는 재능 하나는 타고났다.

가끔 눈부신 천재성을 지니고도 노력하지 않아, 정상의 문턱에서 추락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지영이 코치로 있을 때, 그리고 선수로 있는 지금도 종종 아 저 인간은 진짜 운동에 타고났구나, 하는 선수들을 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천재성만 믿고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정상의 근처, 그 언저리 어딘가다.

천재성으로 메달권의 성적은 확실히 내지만.

그 이상은 힘든.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재능도 있는데, 노력하는 재능은 더 큰.

지영이야 인생 2회차라 그렇다 쳐도, 얘들은 1회차다.

‘혹시?’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분명 자신처럼 어딘가 돌출되는 행동들이 있었을 것이다. 강한결은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정상 범위다.

“멋있다, 내 친구. 잘되겠지. 이렇게 노력하니까. 음, 가는 김에 우리도 갈까?”

“응?”

“아니, 방해는 안 할게. 그냥 우리도 가서, 휴가나 즐길까 하고. 너도 그렇지만 나나 얘네도 제대로 쉰 적 없으니까.”

“나야 좋은데, 진짜?”

“음, 생각해 볼게. 강요는 할 수 없으니까. 하하.”

원래는 시합이 끝나면 당연히 같이 귀국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다른 대표팀과는 따로 움직이기로 정했으니 이런 이동은 자유로웠다. 제대로 힘을 써주지 못한 협회도, 이제는 그냥 황금세대는 포기했다.

하거나 말거나.

니들 멋대로 해라. 그냥 이렇게 방치하고 있었다.

“시합 끝날 때까지 생각들 해보고. 슬슬 올라가자.”

“응.”

저녁은 이걸로 끝.

숙소로 올라온 지영은 양치를 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와 통화 후, 양유진과도 통화했다.

늦지 않은 시간에 자고 일어난 지영은 새벽에도 땀을 좀 뺐다.

호텔 주변의 러닝 코스가 제법 잘 되어 있어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며 몸을 풀고 시합을 준비했다.

오전은 팀 미팅.

오후는 몸풀기 겸. 계체.

시합이 시작됐다.

지영의 1회전 상대는 개최국이라 일 번 시드를 받은 싱가포르 선수였다. 그리고 지영은 바로 그 시드권 선수 아래에 붙었다.

싱가포르 선수는 신장이 크지 않았다.

피지컬만 보면 66 선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렇다고 탱크처럼 벌크업이 된 몸도 아니었다. 그런데 73을? 잡는 순간 느낄 수 있었던 게, 절대 73 피지컬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게중심은 높고, 힘은 없다.

거기에 상대가 강지영이란 점 때문인지, 긴장까지 했다. 상대를 이기겠다는 각오와 다짐은 눈빛에서 보이지 않았다. 마치 태풍을 맞은 것처럼 흔들리기만 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아니까, 어떻게 해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완전히 체념한 상태에서 받아들인 경우에서나 나오는 그런 모습이었다.

중학생 선수가, 고등학교 최강자와 붙으면 아마 이런 심리 상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상대를 경시하지 않았다.

서로 한 개씩 지도를 받고, 움직이라고 악을 쓰는 코치의 말을 따라 제대로 잡지도 않고 업어치기를 들어오는 상대 마띠. 지영은 마띠가 위장 공격으로 지도를 받을까 봐 급히 일어나는 걸 그대로 잡아, 밭다리를 찍었다.

마띠는 피하지 못했고, 버티지도 않았다.

1회전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 싱거움은, 결승전이 끝날 때까지 유지됐다.

전 경기 한판승.

총시합 시간. 8분 49초

금메달을 목에 건 지영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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