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19화
319화. 포드의 운명(2)
물이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한다.
포드의 현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포드의 신형 라인은 지금까지 포드가 선보인 것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머스탱, 레인저, 익스플로러처럼 중후한 멋이 아닌, 유려한 곡선을 기본으로 하는 세련미를 갖췄다. 좀 더 현대적인, 좀 더 도시적인, 좀 더 미래적인. 이 느낌에서 태동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디자인은 포함해 차 자체는 잘 뽑혔다.
하지만 차가 잘 뽑혔다고 해서 이 차가 잘 팔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기업이 신제품을 야심 차게 내놓았지만, 그 야심과는 달리 저기 태평양 깊숙한 바다에 빠진 것처럼 망하는 사례가 더 많은 건, 실패할 요소가 가득한 신제품이었거나, 뭘 해도 안 될 만한 제품이었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제품 자체가 별로 거나 등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차는 그런 의미에서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큰 제품군 카테고리에 속했다.
일단, 고가였다.
핸드폰처럼 천 달러 정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신제품이면 기본 4에서 5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게 신차였다. 그러니 안 팔리면 진짜 손해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기에 정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하는 게 신제품의 출시였다. 이에 기획에서 까이는 사례도 더럽게 많았다.
포드의 새로운 라인도 당연히 이런 리스크를 떠안고 출발했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신제품을 만드는 모두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사명을 안은 상태라 이 실패 요소를 줄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성능은 애초에 당연히 따라가야 하는 거고.
그럼 성능을 제외하고 실패 요소를 줄일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이런 회의가 끝없이 이어졌고 한 사원의 입에서, 마케팅이 언급됐다. 마케팅 또한 당연했다. 기업의 대대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프로모션이야 당연한 거고, 그것 이상의 마케팅을 찾던 중, 일대 사건이 터졌다.
건너편 프랑스 파리의 한 브랜드에서 시작된 뜬금없는 열풍은 세계를 열광시켰고, 예술가의 개입과 죽음은, 동양의 한 청년을 아주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이거다.
저거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모델로 잡아야 한다.
루이비통을 걷어찬 저 청년을 신차에 태워야 한다.
가방 대신, 지갑 대신, 우리 차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당시의 열기를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게 한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경쟁업체도 그를 잡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포드가 아는 것만 해도 독일의 세 개 회사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의 회사도 접촉해 봤고, 일본도 손댔었고, 하여튼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모두 거절했다.
포드의 제안 역시 같이.
700만 달러를 깠을 때부터 슬슬 모두 포기했다.
그건 과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걸 까는 순간 진짜 CF 자체를 찍을 생각이 없구나란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마케팅을 맡은 나탈리 포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돈으로 살 수 없다면, 신념을 살 다른 것을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인 끝에 배를 물 위에 띄울 수 있었다.
이제, 노만 저으면 된다.
노만 저으면 되는데…….
“아니요. 지금 기획으로는 안 된다니까요? 기존에 준비했던 건 전부 엎어야 합니다! 모르시겠어요? 지금 상황이 변했잖아요! 강지영 그 친구가 전액을 미국의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이 ‘운명’의 스토리는 변했어요!”
“그럼 바꿔서 어떻게 가게요? 아이들을 위한 희망찬 미래! 공익 광고라도 찍자는 겁니까? 애초에 모델명만 해도 현실 스토리와는 맞지 않는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의논하자고 모인 자리 아닙니까!”
“링컨 타고 밭 갈자는 스토리로 가자는 거면! 저는 이거 못 합니다!”
노가 문제였다.
이미 강지영을 섭외하기 전에, 신차의 이름인 데스티니에 맞춰 스토리를 짜뒀다. 우리 다 같이 손잡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자! 하는 느낌의 스토리는 당연히 아니고, 운명에 맞춰 현시대에서, 미래를 ‘개척’하는 스토리에 가까웠다.
잿빛 느낌으로.
그래서 좀 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강지영이 보인 사건으로, 그가 갖춘 이미지의 수면 아래에는 따스한 에너지가 가득 고였다.
풀이하자면 외모는 차갑지만, 마음은 따뜻한? 그런 느낌이다.
한 히어로 시리즈에서 로키로 열연하며 초반엔 세상 교활한 느낌을 준 배우의 실제 모습은 봉사 활동도 자주 하고 기부도 많이 하는 아주 따스한 그런 반전미? 그것과 비슷했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수백만 달러의 기부.
지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도 아니고, 구글의 회장도 아닌데 단방에 수백만 달러의 기부를 때려버리는 바람에 이미지의 아래에는 아이들을 위하는 아주 따스한 마음. 그 뜨거운 마음이 추가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니 서로 상충되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지금, 미국에서 강지영의 이미지는 최고조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단하다, 멋있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직접 기부의 손길을 받은 미국은 인종차별주의자 빼고는 모두 강지영을 마음씩 따뜻한 선량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거기에 차가운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지금 가진 그의 이미지를 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거다.
하지만 또 다른 한쪽은 차량 자체가 가진 이미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기존의 포드가 가진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중후한 멋 대신,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래서 자체 디자인 자체도 P사의 느낌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차를 가지고 ‘아이가 미래다’ 같은 이미지를 씌우면 차 자체의 이미지가 망가질 걸 우려하고 있었다.
즉,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탈리 포드는 처음엔 좋았다가도, 이 같은 문제에 봉착하자 골이 지끈거렸다. 둘 다 포기하기는 너무 아까웠다. 모델의 이미지도, 차의 이미지도 전부. 전부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포드는 기껏 물 위에 배를 띄우고도, 노를 젓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 * *
지영은 한국으로 날아온 포드사의 직원을 임은진과 함께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메리 킴입니다.”
실무자로 온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어색하지 않은 한국어를 구사해 대화에 불편함은 없었다. 같이 온 직원 둘도 한국어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아서, 따로 영어 통역이 필요치는 않았고 이런 배려가 지영은 마음에 들었다.
“강지영입니다. 앉으세요.”
“전담 매니저 팀 팀장 임은진이에요.”
서로 통성명을 하고,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사실 이 안부가, 이 미팅이 잡힌 이유였다.
“아 벌써 그럼 선수촌에 들어간 건가요?”
“네, 다음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아…….”
다음 대회까지 이제 한 달 남았다.
매달 대회가 있고, 세계 선수권을 날려 먹은 황금세대는 이 대회에 무조건 참가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점수가 간당간당하기 때문이었다. 올림픽은 랭킹 16위권 안에 든 선수들에게 참가 자격을 준다.
지영의 현재 순위는 20위대로, 점수로 따지면 1,500점 정도였다.
랭킹 16위가 1,900 정도이니 두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점수를 획득해 못해도 2,500 이상은 넘겨야 안정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래는 세계 선수권에 파리 오픈까지 잡으면 딱 안정권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꼬여서 아시아 선수권과 파리 오픈으로 변했다. 그리고 상황 봐서 한두 개 오픈 컵에 더 참가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는 지영에게도 스트레스지만, 임은진이 내민 대회 스케줄을 본 메리 킴에게도 큰 문제였다.
지영의 대회 스케줄은 5, 6, 7, 8월까지, 전부 있었다.
함부르크 올림픽이 대미의 장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8월에 열리니 결국은 매달 대회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선수에게 잠깐 시간 내서 촬영 좀 하시죠? 라고 말하는 건 싸대기 맞을 짓이었다.
특히, 메리 킴은 동생이 현역 태권도선수고, 미국 대표이기도 해서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종일 운동하고, 또 운동만 한다.
남는 시간에도 어떻게 운동해야 효율적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동생은 그렇게 해서 겨우 미국의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그 와중에 시간 내서 연애는 빼먹지 않고 하긴 한다만.
어쨌든, 메리 킴이 이번 미팅 담당자가 된 건, 아니, 앞으로 미팅 전체의 담당자가 된 것은 유창한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운동선수 남동생을 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그 고된 훈련 중에 모델님, 시간 좀 잠시 빼서 CF 찍으시죠? 라고 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하자니, 어렵게 모신 모델이다.
거기다가 그랬다간 전 미국인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이 스케줄 문제를 계약서에 딱 명시했으면 좋겠지만, 애초에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협의 후, 정한다로 못 박아둘 수밖에 없었다.
대회 스케줄 표를 보던 메리 킴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중간에 시간을 빼기 진짜 쉽지 않겠네요.”
“그 점은 사전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올여름은 정말 대회에 집중해야 한다고. 나탈리 포드 씨도 이해해 줬고요. 하지만 이렇게 찾아오신 걸 보니 아무래도 내부 반응은 다른가 보네요?”
임은진의 물음에 메리 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장 뜨거울 때, 포드와 함께하는 모습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당장 저만 해도 동생이 태권도를 해서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음에도, 시간을 내줘서 CF를 찍어주면 안 될까 하는 말을 꺼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태권도. 운동 생리에 대해 좀 아시겠어요. 아, 혹시 남동생?”
“네, 사이는 나쁘지 않답니다. 그리고 동생도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어 맹훈련 중이거든요. 매일 같이 녹초가 되는 모습을 어렸을 적부터 질리게 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해도 정상에 서기 힘든 게 또 스포츠잖아요?”
“음, 그렇죠.”
“그걸 저는 아는데도, 욕심을 내고 싶거든요. 지금 미국에서 강지영 씨의 이름이 가지는 인기는 어마어마해요. 특히 일리노이와 오하이오, 켄터키, 미시건, 미주리주에서 지영 씨의 인기는 절대적이에요. 당장 선거에 나오면 당선될 수도 있을 정도로.”
“그 정도예요?”
“네, 그쪽은 직접적인 수혜를 듬뿍 받았잖아요.”
지금 언급한 지명은 포드의 공장이 있는 곳이고, 지영은 그곳에 1년 차 기부금을 내놓기로 정했다. 포드에서 받았으니, 포드 노동자가 있는 곳에. 물론 직접적으로 노동자가 수혜를 입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서 힘들게 사는 아이들을 위해 쓰이는 거다.
그런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은 주였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는 얘기였다.
그런 쪽으로는 열광하는 기질이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지영은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이런 열광을 이용하고 싶지 않으면, 그게 어디 기업이겠나?
지영은 포드의 그 마음을 당연히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다 받아줄 수는 없었다. 계약서에 무조건 포드의 스케줄에 맞춘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면 모를까, 분명히 추후 스케줄을 협의로 정한다고 명시해 놨기에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지금의 미팅이 있는 거였다.
합의점을 찾아봐도, 쉽게 역시 잡히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나면 9월 초순, 음……. 이건 포드가 원하지 않겠죠?”
“호, 호호. 아무래도요?”
메리 킴이 난감하게 웃으며 수긍하자, 같이 온 직원 한 명이 촌철살인을 날렸다.
“그 스케줄 표 받아 가면 팀장님 시말서 확정입니다.”
“반대로 제가 이 기간에 무리한 스케줄 표를 받아 가면, 저도 시말서를 써야 하는데요?”
“……그렇겠군요. 하하.”
그 직원의 말을 임은진이 멋지게 받아쳤고, 양측이 난감함 가득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 반드시 여기서 정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얼추 조율은 필요했다. 상황에 따라 지영이 양보한다. 상황에 따라 포드가 양보한다. 이런 조율 말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나왔나요? 그때 포드 씨에게 듣기로는 일반적인 CF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방향으로 간다고 들은 것 같은데.”
지영이 그때 툭 던지듯이 묻자, 직원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난감함이 스쳐 갔다. 지영은 그걸 당연히 놓치지 않았다.
“무슨 문제 생겼어요?”
“어, 음, 그게……. 팀장님?”
직원은 메리 킴에게 구조요청 눈빛을 보냈고, 잠시 고민하던 메리 킴이 대신 답을 했다.
“그게, 안 그래도 그쪽도 조금 문제가 있긴 해요. 기존 차량 데스티니의 이미지와 지금 지영 씨가 갖춘 이미지가 서로 부딪치거든요. 그래서 의견 조율이 조금…….”
“이미지가 부딪쳐요? 저랑 차랑?”
“네. 그, 차 디자인을 보여주면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게도 이건 강력하게 통제되는 사항이라서요. 이점 양해 부탁합니다.”
“네, 그건 이해했어요. 음, 이미지가 부딪친다는 건……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네요.”
“어? 그래요?”
“네. 저를 모델로 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 이미지랑 지금 이미지. 그리고 차 이미지 생각하면 답은 얼추 나오잖아요?”
“아…… 그게 나오는군요? 호호.”
“그럼요. 설마 저를 픽업트럭에 태우려고 그 큰돈을 쓰진 않았을 거잖아요.”
지영의 말에 메리 킴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굳이 레인저에 태울 거였으면 할리우드의 마초남을 섭외해 태우는 게 나았다. 예를 들면, 오딘의 망치를 든 배우나 별 모양이 박힌 비브라늄 방패를 던지는 아메리카의 영웅을 태우던가. 그럼 이미지에 확 맞아떨어질 거다.
그러나 그런 모델이 아니다.
디자인은 포드가 가진 중후함과 육중함을 훅 내던진 쪽이다.
그래서 차갑고, 냉정하면서도, 잿빛의 우울한 미래도시가 연상되는 모델이 필요했다.
그게 지영이었다.
파벨로 부인이 지영에게 무릎을 꿇는 그 장면에서. 이들의 머릿속엔 무조건 지영을 잡아야 한다로 가득 차버렸다. 그 정도로 집착이 생기지 않았으면 강지영의 적을 ‘주시’해 신념을 살 총알을 마련한다는 미친 짓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 포인트를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