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14화
314화. 세계 선수권(10)
차라라락!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와 불빛 터지는 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연결됐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때문에 앞이 환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지영은 의자에 앉아 계약과 동시에 나탈리 포드가 보여준 자료를 확인했다. 어제 본 자료지만 새삼 감탄이 나왔다.
감상?
와, 대단했다.
그리고 포드도 진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의 시작은 작년부터였다.
작년부터 이미 이번 일이 기획됐고, 새해인 1월 1일부터 시작됐다. 로비스트 마크 켄고가 일본에 입국해 이번 일의 기획자인 일본유도협회의 인물들을 만났고, 새해에 일이 시작된 거다.
포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시작점을 포착하지 못했으면 절대 끝까지 추적 불가능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미국에서도 제법 유명한 로비스트 마크 켄고는 새해 직전에 일본유도협회의 간부, 마시로와 마쓰이를 만났습니다. 자, 여기 보면 두 사람이 긴자에서도 알아주는 고급 술집에서 같이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조합이 이상하죠? 네, 알아본 결과 대학 동문입니다, 세 사람은. 그리고 꽤 가까운 친척 사이기도 합니다.”
“음, 포드사가 일본유도협회를 감시했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기자의 성급한 질문에도 나탈리는 웃었다.
“그건 브리핑이 끝난 이후 말씀드릴게요. 성급하신 기자분, 급한 남자는 매력이 없답니다?”
대놓고 조롱하는 말에 그 기자의 얼굴이 벌게졌지만, 오히려 주변 기자들에게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지영과 강한결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는 동안, 나탈리의 브리핑은 이어졌다.
“본사는 이 셋의 만남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셋 다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새해인 1월 1일, 마크 켄고는 이 남성을 만납니다. 브로커 히무라입니다. 그리고 이 히무라는 요코하마 항에서 또 다른 브로커와 접선합니다. 그리고 이 캐리어를 넘기죠. 이 브로커는 그대로 배를 타고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여기서 다시 브로커와 접선. 자, 이제 빠르게 움직여 볼까요?”
나탈리는 사진을 움직이며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러시아에서만 다섯 번. 동유럽에서 두 번, 중유럽에서 두 번, 서유럽에서 세 번을 거쳐 스페인까지 왔고, 스페인에서 다시 배로 쭈욱. 뭔가가 담긴 캐리어가 이동했다.
“드디어 이렇게 돌고 돌아 아메리카에 옵니다. 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참 많은 시간이 걸렸네요. 대단합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들였다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남았습니다. 보스턴에 도착한 캐리어는 이어서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샬럿, 애틀랜타, 잭슨, 올랜도, 마이애미 등을 거쳐 바하마로 이동합니다. 휴, 기네요, 진짜. 그래도 끝까지 가봐야겠죠? 자, 바하마에서 숨을 고르고 출발한 캐리어는 이어서 쿠바를 넘어 케이맨 제도까지 건넜고, 파나마에 도착합니다. 네, 슬슬 종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남아리카에 도착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래도 종점까진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여기서 목을 축이는 나탈리.
저 사진은 지영도, 황금세대도 전부 본 사진이었다. 그걸 보고 진짜 감탄했다. 시작점을 찾지 못했다면, 그리고 진짜 전문가들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게 분명한 증거들이었다.
나탈리는 느긋하게 목을 축이고, 다시 포인트를 손에 쥐었다.
폭로 쇼는 이어졌다.
“파나마에서 다시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수리남, 기아나 등을 거쳐 드디어 브라질에 도착합니다. 캐리어가 드디어 주인의 곁에 가까워졌네요! 브라질리아를 통과해 드디어 남미 동해안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리우, 상파울루까지 왔어요. 남미에서만 총 15명의 브로커를 통했어요. 이야, 이 정도면 진짜 대단하죠? 그렇게 도착한 캐리어가 드디어 최종목적지인 이번 대장정의 주인공, 페페 씨에게 도착합니다.”
드디어 기자들은 나탈리 포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완전히 깨달았다.
강지영과 강한결.
어제 있었던 세계 선수권의 폭력 사고.
그리고 하루 뒤인 오늘 열린 기자회견. 이 상관관계를 모르면 기자명함은 조용히 찢어버리는 게 좋았다.
“그런데 이쯤 되니까, 궁금해지지 않아요? 이 캐리어에 뭐가 담겼는지? 돈일까요? 금괴? 아닙니다. 좌표입니다.”
휘릭.
넘어간 사진은 저번 오심의 주인공 페페가 캐리어를 열고, 그 안에 담긴 한 장의 서류 봉투를 확인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이어졌다.
캐리어를 연다.
서류 봉투를 꺼낸다.
안에 좌표를 확인한다.
주변을 둘러본다.
그런데 이미 그를 관찰하는 자는 카메라 줌을 당겨 좌표까지 확인했고, 덤으로 얼굴도 제대로 담았다.
서류는 불타올랐다.
이어서 차에 오른 페페는 좌표로 향했다.
그리고 차에서 삽을 꺼내 땅을 파길 잠시, 묵직한 가방을 꺼냈고, 그 안에 담긴 비닐로 쌓인 돈다발을 꺼냈다. 현금은 달러였다.
“네, 페페 씨가 받은 건 씁쓸하지만, 우리 미국의 달러였습니다. 그럼 종합해 볼까요? 좌표가 담긴 봉투는 지구를 빙 돌아서 남아메리카까지 향했습니다. 반대로 달러는 요코하마 항에서 한 사람이 배를 타고 상파울루에 도착해 목적지에 심어두죠. 이 귀찮은 일의 중심은, 이 자, 마크 켄고입니다. 그리고 마크 켄고가 만난 사람은 재팬 유도협회의 마시로, 마쓰이와 만났습니다. 감이 잡히시죠? 참고로 이런 식으로 돈이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착한 캐리어는 제법 됩니다. 저, 나탈리 포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적어도 세 명이 더 있었으니까요.”
포드가 아니라, 개인의 이름을 거론한다?
지영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탈리 포드가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설 일은 아니라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돈을 받은 페페 씨는 그럼, 무엇을 제의받았을까요? 페페 씨는 음, 따로 알아볼까 했는데 그러진 않았습니다. 그건 너무 뒷조사 성향이 강해서.”
이미 다 알아봐 놓고?
나탈리의 말에 기자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데 굳이 뭘 사주받았는지 알아볼 필요는 없었어요. 그는 어제, 자신이 사주받은 짓을 충실히 이행했으니까요. 동부에서 서부로 오는 동안 좀 알아봤습니다. 유도는 어떤 경기인지, 페페 씨의 당시 판단이 과연 합당한지. 음, 딱 보니까 페페 씨는 옥타곤의 심판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제가 연결해 줄까 고민 중이에요.”
하하.
나탈리의 조크에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확실히 한국의 기자들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었다. 참 기자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어서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하고 압박하지는 않았다.
‘과연, 자유의 나라라는 건가?’
하는 정답 아닌 생각을 지영이 떠올릴 때쯤. 나탈리의 입이 다시 열렸다.
“전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베 히후미의 행동은 명백한 반칙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반칙이 아니었어요. 격투기에서나 나올 법한 가격을 선보였으니까요. 참고로 그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 분석한 것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풀도록 할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페페 씨는 이런 반칙을 용인하고, 오히려 편을 들어주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걸 위해서 미화 100만 달러를 받은 거예요. 아, 달러의 출처는 미쓰비시 그룹입니다. 마크 켄고가 달러를 받은 사람이 미쓰비시 인사거든요. 이것 또한 증거 자료로 짧게 보고 갈게요.”
나탈리는 한쪽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두두둑 던지면서, 오히려 혼란을 조장했다. 상황을 굳이 복잡하게 짜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해 지영은 의문스러우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건 강한결도 마찬가지였다.
미쓰비시 그룹 비서실에서 마크 켄고에게 돈다발이 든 가방 네 개를 전달하는 모습이 사진과 영상으로 짧게 이어졌고, 마크 켄고가 다시 그 가방을 네 사람에게 전달했다. 페페 말고도 세 사람이 저 가방을 더 받았고, 그 가방의 주인들은 어제오늘, 세계 선수권 대회의 심판으로 나왔을 거다.
그리고 지금 이 생방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면, 심장이 졸리다 못해 터지기 시작일 거고.
“잘 보았습니다. 나탈리 포드 씨. 자 그럼, 이제 왜 포드사가, 아니면 나탈리 포드 개인이 일본유도협회를 주시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타이밍 적절하게 한 기자가 끼어들며 그렇게 물었고, 나탈리 포드는 씩 웃으며 지영과 강한결을 힐끔 봤다.
사실, 기자들은 전부 눈치챘다.
어제 지영이 던진 초대형 폭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영은 자신의 광고모델 퍼스트를 두고 모두의 앞에 거대한 폭탄을 던졌다. 찾아오면, 여태껏 거절했던 모델을 서주겠다! 이런 폭탄이었다.
왜 그런 폭탄을 던졌나 조사해 본 기자들은 말도 안 되는 경기 내용을 알게 되었고, 이미 그걸로 기사를 뽑아 단물을 빤 이들이 상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물어본 거다.
나탈리의 입에서 나오는, 강지영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 그래야 자기들이 유추, 예측만 하는 게 아닌 팩트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 이 믿기지 않는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것 같았다는 대답을 하면, 당연히 안 믿겠죠?”
“하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후후, 좋아요. 진실을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우린 차세대 제품 한 라인의 시작을 여기 옆에 있는 미스터 강이 해주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줄기차게 모델 제안을 보냈지만 네, 줄기차게 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아, 어떻게 해야 미스터 강의 퍼스트를 살 수 있을까.”
오, 위험한 발언이군요.
하는 한 기자의 농담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미스터 강에겐 신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에 따라, 그는 천만 달러를 내질러도 모델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신념은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게 신념, 신념 때문이었지. 그래서 저는 그 신념을 살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렇게 궁리하다 나온 게…… 미스터 강의 ‘적’이었습니다.”
“……적의 약점을 찾아서, 미스터 강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돕는다? 혹은 거래 보상으로 제안한다?”
“네, 바로 맞췄어요. 저는 그런 생각으로 작년부터 미스터 강과 적대하는 집단인 한국의 언론 ‘소수’와 ‘일본유도협회’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본 바처럼, 저는 미스터 강의 신념을 사들일 총알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아아…….”
“그렇게 총알을 모아서 이걸 언제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어제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마, 나탈리에게는 극적이었을 거다.
지영이나 강한결에겐 욕설이 나오는 일이었지만, 나탈리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가 손아귀에 잡힌 것과 같았다. 그걸 알지만, 그렇다고 나탈리 포드가 싫지는 않았다. 그녀가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진짜 눈 뜨고 코 베일 뻔했으니까 말이다.
여기까지면, 이제 거의 이 기자회견이 왜 일어난 건지는 다들 알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탈리 포드가 준비한 게 있다면, 지영도 지영 나름 준비한 게 있었다. 어제의 일이 문제가 될 소지가 분명히 있고, 이미 포드사가 법적 검토에 들어갔지만, 지영은 그것과는 별개로 여론, 민심을 얻을 방법을 궁리했다.
황금세대는 악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지금까지 지켜온 신념은, 이어져야 한다.
지영은 솔직히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그 방법을 찾아냈다.
물론 그 방법은 아직 밝힐 때가 아니었다.
나탈리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는 사건이 터지고, 미스터 강이 절대 서지 않았던 카메라 앞에 서서 한 울분에 찬 얘기를 듣고, 뉴욕에서 즉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왔어요. 그리고 접선했고, 같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건 양측이 거래가 있었고, 거래가 성사됐다고 봐도 좋은 겁니까?”
“네, 미스터 강과 우리 포드는 1년 750만 달러, 3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서류는 이미 교환했고, 이 기자회견은 제가 미스터 강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이 증거가 있는데도 1년 750만 달러요?”
한 기자의 질문에 나탈리는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웃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흔들릴 사람은 아니니, 의도된 연출이었다.
“이걸로 그를 강제로 서류에 사인하게 협박했다면, 제가 일본유도협회와 다를 게 뭐죠? 저는 그런 양아치가 아닙니다.”
“아, 실수. 미안합니다.”
“받아들일게요. 대신, 부디 조심해 주세요.”
“네, 그럼…… 미스터 강은 이제, 포드의 모델이 된 셈이군요?”
“네, 그걸 전 세계에 공표하기 위한 자리기도 합니다. 치열한 전쟁의 승자가, 우리 포드임을 알리는 자리죠. 후후.”
“그런데 이거…… 문제가 될 소지가 크겠는데요?”
“모든 법적 책임은 당연히 포드가 질 겁니다. 이미 법리 팀이 검토에 들어갔고요. 법무팀이 대기 중이죠.”
“흠, 그렇다고 해도, 음, 어떻게 될지는 봐야겠군요. 그래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슬슬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움직일 시간이다.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간 뒤에, 암만 봐도 나탈리와 한 팀인 것 같은 기자가 이번엔 지영을 향해 물었다.
“어제 일어난 가슴 아픈 사고는 저도 나중에야 확인했습니다. 음,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까?”
“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지영에게 들어온 질문을 컷한 건 강한결이었다.
“아, 이쪽 분도 미스터 강이군요. 하하. 오늘 시합이 있지 않았습니까?”
“불참했습니다. 참가했다가는 누가 제 목을 분지르려 해도 저항하면 반칙패를 당할 것 같아서요.”
“하하……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미스터 강, 아니, 지영에게 묻습니다. 신념이 꺾였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사고와 더러운 거래 때문에. 심정이 어떻습니까?”
참으로 시기적절한 질문이었다.
지영은 오늘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별로 문제없습니다. 신념은 지켜질 테니까요.”
“네? 하지만 포드와 이미 계약했다고…….”
“네, 계약했습니다. 저는 광고모델에 서겠지만, 제게 이런 선물을 준 포드와 나탈리 부인을 위해, 이곳에 저도 선물을 두고 가겠습니다.”
“그, 무슨 선물을요?”
“계약금에서, 회사 몫을 제외한 금액 전체를 이곳, 미국의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가겠습니다.”
“……네?”
왓,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