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12화
312화. 세계 선수권(8)
-성진이는 괜찮니?
“네, 이제 막 수술 끝나고 나왔어요.”
-수술은? 잘됐다니?
“네. 담당 의사가 잘됐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후우, 그러니. 다행이다, 얘. 다행이야, 정말.
이른 아침에 소식을 접한 어머니의 전화에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진은 이제 막 나왔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
수술 집도의가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세 손가락에 드는 의사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냥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도 냄새지만, 이 공간 자체가 가진 기운 자체를 지영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색해서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지영에게 병원은 익숙한 공간이었다. 회귀 전 사고 때문에 병원에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재활 때문에 또 한동안 있었고, 퇴원하고 나서도 통증 때문에 주기적으로 찾아야 했었던 게 병원이다.
그러니 병원 자체는 익숙하다.
익숙하지만, 그래서 싫었다. 그냥 병원이 싫어졌다.
이성진의 일도 있고 해서,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병원이란 공간에 들어오면, 심적인 안정을 찾기가 힘들었다.
-성진이 잘 챙겨주고. 아들 그리고 대회는 너무 신경 쓰지 마. 알았지?
“네. 기자들 찾아가고 또 그럴 건데, 집에서 조금만 쉬세요.”
-그래, 그럴게. 직원 두었으니까 엄마는 집에서 쉴게.
“죄송해요. 자꾸 이런 문제 일으켜서.”
-아니야. 잘했어, 우리 아들. 엄마도 영상 봤는데, 잘한 거야. 안 나섰으면 다음엔 한결이가 될 수도 있고, 내 아들이 될 수도 있겠더라. 그러니 잘했어. 그렇게 해야 못된 마음들 안 품지.
“……네. 감사합니다.”
-남은 얘기는 집에 와서 하자.
“네.”
어머니와의 전화를 끝낸 지영은 한숨과 함께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로 돌아가니 이성진은 그사이 깨어나 있었다.
“지영이 왔네.”
“어, 그, 크응…….”
코에 피가 찬 건지, 물이 차는 건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성진. 하지만 그래도 눈빛은 또렷했다.
“괜찮아?”
“크으응…….”
대답하면서 낸 소리 때문에 통증이 올라왔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이성진. 지영은 저런 통증을 아주 잘 안다. 살만 찢어도 아픈 게 수술인데, 뼈까지 건드리면 진짜 답도 없는 고통이 정신을 흔든다.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은 진짜 그 자체로도 악몽이고 절망이었다. 그걸 잘 아는 지영은 더 말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지영은 강한결을 보며 물었다.
“이제 대답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해. 의사는? 왔다 갔어?”
“응, 잘됐대. 이틀 정도 일단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될 거래. 퇴원할 때 데이터 챙겨줄 건데 그거 가지고 한국 가서 병원 가라더라. 연락처도 받았어.”
“그래. 이틀이라. 꼼짝없이 이틀간 여기 있어야겠네.”
“그래야지. 참, 시합 끝났고, 이쪽으로 온다던데?”
“누구? 감독님?”
“응. 감독님이랑 선수들.”
지영이 선수들이라고 말한 강한결을 잠깐 가만히 바라봤다. 보통은 동료, 혹은 선배,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선수들, 이라고 딱 선을 그었다. 지영은 그렇게 선을 그은 친구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려들 수도 있고, 서운하기도 할 테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당시에 황금세대에게 온 선수들이 하나도 없었다. 시합 준비하느라 몰랐다? 뭐 오늘 시합을 같이 뛰는 선수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관중석에 있던 선수들은? 설마 그때 전부 자고 있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아무도 안 내려왔다.
이성진을 챙겨 병원으로 갈 때까지도,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와…… 너무하네.”
그게 이제 생각나자, 서운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상식적으로 같은 팀 동료가 다쳐도 내려와서 안부를 묻게 마련인데, 어떻게 한 명도 안 내려왔을까? 너무 놀라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영이 난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 얼어붙어 있었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심판한테 개겼으니 같이 징계받을까 봐 선 그은 거네?”
이제야 떠오른 그 행태를 지영이 말하자.
“그렇다고 봐야지.”
이어서 톡방으로 괜찮냐고 묻긴 했는데, 그게 끝이었다. 음, 그래. 이해했다. 지영은 자신과 친구들이 벌인 일이 진짜 엄청난 문제였다는 걸 자각했다. 수십 년의 유도 역사상, 감독이 난입해 깽판을 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선수가 난입해 이런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하게 모든 스포츠에서 심판이 가지는 권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무슨 그 순간만큼은 절대권력자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 정도 권위가 있는 종목이 있기도 했었다. 축구만 해도 그랬다가, VAR이 생기고 나서 그래도 좀 축소되긴 했다, 그런데 여전히 기계의 힘을 빌리면서도 권한은 상당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기계가 파울과 실력을 기록하는 경기가 아닌 이상 심판의 권위는 매우 강력했다. 유도도 마찬가지였다.
유도도, 심판의 권위가 가장 강한 종목 중 하나였는데, 이런 것 때문에 심판에게 항의하는 건 기껏해야 코치진이었다. 선수가 항의할 수 있는 수준은 그냥 작게 이게 왜 파울이에요? 하는 정도의,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가 끝이다.
그 이상 했다가는, 반칙으로 게임이 터질 수도 있었다.
축구처럼 옐로카드 두 장이나 레드카드를 받지 않는 이상 퇴장당하지 않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99.99%의 선수가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큰 항의 없이 넘어간다. 괜히 대들었다가 지도를 하나 더 받으면 시합이 너무나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심판의 권위가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미친 심판이 코가 수술받아야 할 정도로 뭉개졌는데 누르기를 선언하지 않나, 그쳐를 하고도 엎드려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성진에게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하지 않나. 이게 전부 심판의 권위에서 나온 짓이었다.
그렇게 해도 강력한 항의는 할지언정, 시합을 완전히 터뜨리지는 못할 거란 계산 덕분에 나온 거였다.
그렇게 강력한 게 심판이다.
그래서 이런 심판에게 찍히면, 진짜 피곤해진다. 이미 찍힐 대로 찍힌 지영이나 황금세대는 심판이 지랄해도 그걸 엎을 능력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가 태반이 아니라 전부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몸을 사린 거지.’
괜히 강지영을 챙겼다가, 이성진을 챙기러 나섰다가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몸을 사렸다. 괜히 엮이기 싫어서. 그걸 안 강한결도 선을 그은 거고.
이성진은 좀 더 쉬게 두고, 지영과 친구들은 일단 병원 측에서 제공해 준 미팅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뭐든 비용이 청구되는 미국답게, 당연히 룸을 이용하는 비용도 병원비에 정산됐다. 매니저로 함께 온 임은진이 현재 상황을 알려줬다.
“뭐 당연히 인터넷은 난리가 났고, 세계 유도 협회는 너희들 중징계하겠다는 발표도 냈어.”
“예상했던 대로네요.”
“그리고 지영이 발언도 좀 문제가 됐고.”
“…….”
지영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뒷거래를 잡아달라는 말을 한 건 정말 순간적으로 생각난 거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강한결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영이 가진 이름값을 이용 좀 하자고 했는데 당시에 생각났던 게 딱 그거였다.
자신이 나서는 건 솔직히 한계가 있었다.
지영이 회귀자라지만 막 그런 뒷조사 방법까지 다 알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강한결이 이름값을 이용하자고 해서, 불쑥 생각이 나버렸다. 아, 내 이름값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 거다. 그래서 가장 혹할만한 조건이 뭘까? 고민했더니 곧장 떠오른 게 바로 광고모델이었고.
그래서 질러버렸다.
찾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벌써 몇몇 기업이 의뢰를 받아들인다는 공식성명 같은 걸 낸 만큼, 앞으로 지영이나 친구들을 건드릴 땐 최소한 뒤가 탈탈 털릴 각오는 해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될 것이다. 그것만 해도 지영은 이 문제를 충분히 감당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유도를 계속하는 전제하지만.’
하…….
유도는 정말이지, 계속 실망만 안겨준다. 훈련받고, 시합하는 그 순간까지는 정말 만족스러운데 이상하게도 외압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외압이 계속 조금이지만 다치다 보니, 이제는 유도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적이 또렷했다.
강한결이 말했던 그랜드 슬램은 회귀 이후에도 또렷하지 않았던 지영에게 명료하게 보이는 목표가 됐고, 그게 더러워도 참고하잔 동기를 부여해줬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니까, 그런 것도 다시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당한 모든 수작과 공작에서 지영은 언제나 승자였다. 패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없이 당했지만, 지영은 언제나 그걸 아주 훌륭히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갔고, 지금의 위치에 섰다.
하지만 그런 지영도 사람이고, 인간이었다.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겪어 일반인보단 그래도 멘탈이 세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었다.
사람이라서, 이런 문제에는 역시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른 것도 아니고 몸이 직접적으로 다치는 문제는 그의 트라우마를 쉬지 않고 건드리고 있었다. 야, 우냐? 울어? 하고 깐족이는 철없는 친구처럼. 짜증까지 제대로 자극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게 여전히 스트레스였다.
그런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있는 중 팀이 도착했다. 지영처럼 대회를 보이콧하지 않고.
경기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동메달 하나.
전원 입상을 노리고 나왔는데 결과는 7체급 중에서 동메달 하나였다. 이성진과 지영도 기권패 처리되면서 연승행진까지 끝났고, 분위기는 여러모로 안 좋았다. 거기다가 황금세대의 눈치를 보는 불편함도 보여서, 더욱 그랬다.
이성진이 잠들어서 면회도 못 하고, 잠시 뒤 눈치만 보던 선수들이 떠났다.
내일 시합 뛰는 선수들도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당연히 강한결과 임효중, 황석은 떠나지 않았다.
대표팀이 떠나자 다들 조금 쉬기로 했다.
사고가 터진 뒤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과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 같은 걸 생각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배도 매우 고팠다.
꼬로록.
지영은 자신의 배에서 울린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배를 빤히 바라봤다.
“하하. 밥 먹으러 갈까?”
“응. 배고프다. 누나 가요.”
지영은 짐을 챙겨 일어났다.
“지하에 푸드코트 있던데? 거기로 가자.”
“네.”
임은진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다양한 음식을 파는 푸드코트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감량 중이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배가 많이 고픈 상태인데 음식 냄새까지 맡자, 장난 아니었다. 배 속 식충이들이 일시에 잠에서 깨,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각자 흩어져서 원하는 걸 시켜서 돌아왔다.
지영은 햄버거와 치킨, 중식코너에서 담아온 볶음밥을 내려놓고 친구들을 기다렸다. 잠시 뒤 친구들이 왔는데, 다들 장난 아니게 음식을 담아왔다. 지영은 그걸 보면서 쓰게 웃었다. 본래는 내일 시합인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이만큼 사 왔다는 건, 내일 시합을 확실히 포기했다는 뜻이었다. 당장 저녁에 계체인데 지금 이렇게 먹으면 계체는 끝이었다.
지영은 굳이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친구들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그냥 묵묵한 식사가 시작됐다. 간만에 간이 세게 된 음식이 들어오니 짜릿한 전율이 일어났다. 스트레스받을 땐 맛있는 거 앞으로 가라는 명언처럼, 정말 간이 센 햄버거와 켄터키 할아버지 치킨을 먹자 그래도 오늘 하루 간 받았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렸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좀 쉬기 시작하자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이 다가왔다. 사실 밥 먹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에 끼는 강지영이다.
그런 지영이 푸드코트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연히 병원 내에 이미 한 바퀴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좋은 일로 찾은 건 아니기 때문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밥을 먹으러 나오자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찾아온 아이들이었다.
밥을 다 먹자 용기를 내 찾아온 아이들.
아파서 입원했던 아이들도 보이고, 그 아이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병원 간호사, 의사와 함께 온 아이들에게 지영은 그래도 웃으면서 사인을 해줬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환자복에 빵모자를 쓰고 내려온 아이들을 보면 더더욱.
유도가 인기 종목은 아니라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많이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영은 거의 다 알아봤다. 운동선수가 아니라, 연예인 강지영을 아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사인을 해주고 다시 미팅 룸으로 올라갔는데 룸 앞에서 척 봐도 고급스러운 티가 나는 정장을 차려 남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강.”
“저, 누구……?”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임은진의 질문에 곧장 명함을 꺼내서 건네주는 두 사람 중 여자. 임은진이 받아서 든 명함으로 모두의 시선이 쪼르륵 몰렸고, 적혀 있는 글귀를 확인한 모두의 입이 오…… 하고 벌어졌다.
영어로 적혀 있는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비서실장 나탈리.
앞에 포드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굉장히 의뭉스러운 명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