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11화
311화. 세계 선수권(7)
언론 때문에 황금세대는 한 번 은퇴했었다.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들은 유도를 등지고 떠났었다. 다시 간절히 불러 복귀한 이후에 이들은 단 한 차례도 언론에 서지 않았다. 멤버 전원이 연예인으로 활동하는데도, 단 한 번도 마이크 앞에 서지 않았다.
제작발표회부터 시작해, 정말 무수히 자신들을 괴롭힌 언론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기자들도 그런 황금세대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지 않았다. 어차피 대봐야 아무런 멘트도 없으니 헛수고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쯤엔 솔직히 한 인간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많은 사건·사고를 겪은 친구들이고, 거의 전부가 언론과 연관이 있는 만큼, 이 애들을 이제 배려해 주잔 의식이 피어나서였다.
그러던 차였지만, 오늘 사건에는 당연히 반사적으로 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강지영의 폭탄 발언. 강지영은 일본 유도 협회와 감독의 거래를 100% 확신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이크를 댔던 기자는 물론이고 경기장에 있었던 관중과 경기를 지켜본 시청자들도 알 수 있었다.
모를 것 같지만, 보면 안다.
사고냐, 고의냐는 눈에 보인다. 선수는 은근슬쩍 한다고 했겠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면 그냥 티가 났다.
스포츠맨십과 매너는 아예 저세상에 처박아 둔 비신사적인 행위.
축구로 따지면 각도 높은 백태클이었다. 그것도 무릎을 대놓고 노린. 선수 생명이 끊어질 수도 있는데 그게 뭐, 내가 알 바냐? 무서우면 알아서 피하시든가. 하는 느낌으로 때려 박은. 그건 스포츠에 무지한 이들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티가 확 났던 니킥이었다.
대회는 이어졌다.
문제가 있었지만, 그걸로 오래 준비한 선수들의 도전을 막을 수는 없으니 대회 자체가 멈출 수는 없었고, 당연히 대회는 이어졌다. 그러나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이성진을 데리고 나가기 무섭게 심판은 뻔뻔하게도 이성진 자리에 반칙패를 줬고, 아베 히후미에게 승자 선언을 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관중석에서 물병을 시작해 온갖 것들이 날아왔고, 아베 히후미는 급히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야유, 욕설이 심판과 아베 히후미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심판은 정말 대단하게도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퇴장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배정받은 경기에 또 나왔다. 그리고 아베 히후미도 3회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거대한 불길을 만들었다.
이 졸렬한 모습에, 강지영의 이름값에 힘입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 세간의 이목이 쏠렸기 때문에 단숨에 거대한 여론이 형성됐다.
또한, 거기에 강지영이, 이 악물고 던진 폭탄이 터졌다.
1. 저런 말도 안 되는 판정이 나온 건 일본 유도 협회와 심판 사이에 더러운 거래가 있는 게 분명하다.
2. 그 더러운 거래의 증거를 찾아주면, 그 국가나 기업의 광고 모델이 되어주겠다.
딱 이런 골자의 폭탄인데, 이 폭탄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강지영은 몸값이 어마어마했다. 일개 운동선수치고, 아니, 비인기 종목인 유도선수치고는 몸값이 진짜 어마어마했다. 그런 이유는 그가 연예인, 유명인으로서의 명성이 운동선수의 명성보다 월등히 높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련의 사고로 인해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섰고, 1년 100억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 돈을 지불하고도 지영을 모셔가고 싶은 회사는 지구상에 쌓이고 쌓였다. 그의 퍼스트, 첫 광고라는 상징성은 100억이 우습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거다.
증거를 찾아주면, 공익 광고든 상업 광고든 뭐든 모델로 서주겠다고. 기간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어쨌든 단발성이라고 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강지영의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그를 포기하지 않았던 기업 여러 군데에서 SNS를 통해 참전 의사를 밝혔다.
모든 거래는 증거가 남는다.
증거가 남지 않으면, 그런 방법이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범죄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작정하고 털면 다 털렸다. 제대로 못 숨겨서? 아니, 최대한 숨긴다고 숨겼는데도 전문가들은 그걸 뚫어내고 증거를 찾아내는 거다.
그리고 기업은, 그런 일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지영이 던진 폭탄은 심지에 불도 안 붙은 상태에서 아래에 화약만 켜켜이 쌓여갔다. 다이너마이트의 체급이 순식간에 불었다. 이에 일본 측은 대회가 끝난 뒤 말도 안 되는 폭거라며 강지영을 맹비난했다.
선수의 기본 자세도 안 되어 있고, 경기장에 난입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며 이는 협회에서 영구 제명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에 여론은, 일본이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른 이유가 황금세대가 참지 못하게 만들어 제명하는 게 목적이구나! 라며 역으로 비난했다.
거센 불길.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불길이, 지옥의 업화처럼 전 세계를 다시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맹렬히 불타는 사고를 보며 평론가들은, 역시 미스터 강이다란 평가를 내놓았다.
뭘 해도, 상상 그 이상.
절대 평범한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트러블 계의 기린아.
그 말에 사람들은 씁쓸히 웃으면서도, 동조했다.
심지어.
사고를 일으킨 지영 본인조차도 인정했다.
* * *
이 작금의 불길에 가장 화력을 많이 대고 있는 이들은 당연히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목도해 버렸다. 샌프란시스코의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면, 한국 시간은 새벽 한밤중이다.
그런데도 중계를 보겠다고 안 자고 기다렸던 이들이 봐야 했던 건, 말도 안 되는 폭력이었다.
중계 채널의 채팅창은 정말이지,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온갖 욕설은 애교고, 그냥 찢어 죽여버려야 한다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늦은 밤인데, 그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은 황금세대의 개인 팬 아니면 나머지는 전부 유도 팬이었다.
이들은 보는 순간 다 알았다. 그게 얼마나 고의성이 다분한지. 보는 순간 아 저건 고의구나, 의도적으로 무릎으로 깠구나! 전부 알아차렸다. 그래서 화가 났다. 많은 스포츠가 정신수양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 안 두고 있어도 그냥 슬쩍 넣으면 된다.
그런데 유도는 기본 이념 자체가 예시예종이다.
예의로 시작해서, 예의로 끝난다는 거창함이 유도란 종목에 진하게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 종주국인 일본의 선수가 이렇게도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그게, 유도 팬으로서, 혹은 유도인으로서 말문을 상실하게 만들어버렸다.
아침이 되자, 더욱 크게 타올랐다.
-와……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어요? 선수 맞아요?
-가능함. 해외 스포츠 보면 저런 말도 안 되는 반칙 많이 나옴. 쓰레기들.
-와 썅, 제천 풋살팀 생각나네.
-아 그 미친 새끼들…….
-이 새끼들도 잊지 말아야지…… (링크)
일본은 물론 아베 히후미의 SNS 테러가 이어졌다.
그는 실수로 인해 이렇게 욕을 먹게 되어서 슬프다란 글을 그날 올렸다가, 아마 백 년은 장수할 정도의 온갖 욕을 처먹고 급히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딱 거기서 그의 인성이 나왔다며 고의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는 종결되었다.
-영상 보니까 1도 실수 아니더만 개X끼야.
-무릎으로 찍을 때 발 뒤로 빼는 거 보임? 이랬는데도 실수라고? 이 새끼가 사람을 X신으로 보나?
-이름부터 X 같은 새끼 진짜 아오.
-이딴 게 금메달리스트라니, 아니, 진짜 안 부끄럽나? 우리나라 선수가 저랬으면 나 같으면 창피해서 내가 미안하다고 하겠구만. 하, 진짜.
-우리 성진이 ㅠㅠ
-맞다. 이성진 어떻게 됐대요? 영상 보니까 코 주저앉은 것 같던데…….
-긴급 수술 들어갔다는 것까지만…….
-수술이요?
-네, 코가 완전히 주저앉고, 비틀려서 그거 바로잡아야 한다고…….
-와 X발…….
-성진아 ㅠㅠ
이성진의 팬덤은 거의 누님 팬이다.
그것도 30대 이상의 누님 팬들. 그리고 이런 누님들은, 전투력이 아주 왕성하시다. 육아란 전쟁을 겪으며 떨어지는 나뭇잎만 봐도 꺄르르 웃거나, 눈물을 훌쩍이던 감수성 폭발 소녀에서 온갖 수라장을 거친 전사로 거듭나기 때문에, 전투력은 가히 최강급이다.
다만 전투력이 풀릴 방법은 모르지만, 이들 중엔 아이돌 팬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들이 또 다수 있어서, 이들을 중심으로 뭉쳐 이성진을 지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영이 발언도 문제 있는 거 아닌가요?
-ㅇㅇ 저거 청탁임. 일본도 지금 그거 걸고넘어지고 있고.
-그런데 문제는 돼도, 법적으로 진짜 크게 문제는 안 될 거임. 문제가 될 거면 아무래도 유도 협회에서 문제가 될 거고.
-거긴 일본 입김이 진짜 세서, 징계 먹일 건데.
-징계가 위험하죠. 반년 짜리 징계 때리면 애들 올림픽은 다 물 건너간 거임.
-아 그렇죠.
-지금 중론이, 일본이 그걸 노렸다는데요
-아 애들 흥분하게 만드는 거?
-네, 다른 애들은 몰라도, 강지영은 성격상 저렇게 하면 반드시 나설 거라고 예측한 거죠. 비매너 반칙으로 함정 판 것 같다고…….
-근데 지영이뿐만 아니라, 전부 ㅠㅠ
-강한결 지금 실시간 인터뷰 시작함! 링크 가보셈!
-진짜?
-강한결이?
사람들의, 전 세계의 이목이 그쪽으로 몰렸다.
가장 유명한 건 강지영이지만, 그 강지영이 속한 그룹의 리더가 강한결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마이크 앞에 섰다.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심의 집중 속에, 강한결은.
* * *
수술.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지영은 이를 악물었다.
“지영아.”
“후우, 후우, 후우…….”
당연히 함께 따라온 임은진이 급히 지영을 부축했다. 열이 너무 과도하게 올라와 호흡이 가빠졌다. 이런 걸 과호흡 증후군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그건 아니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문제였다.
특히 지영에겐, 이성진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
회귀 전 고1. 그 끔찍한 기억들.
당시 사고에 지영은 함께 있지 않았으나, 이미 지영도 그땐 만신창이였다. 그런 만신창이인데도 이성진의 뇌사 판정은 지영을 너무 힘들게 했다. 그리고 끝끝내 호흡기를 뗐을 때는, 당시 지영의 한 세상이 무너져 내린 충격을 줬다. 실제로 무너진 거다. 이성진의 죽음은.
그래서 회귀 후에도 지영은 이성진의 부상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예전에 회귀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연습 시합에서 이성진이 한 대 얻어맞았을 때도 반사적으로 반응했을 정도로, 지영은 이성진의 부상에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난 것이다.
그게 지영에게 다시 과도한 스트레스를 선사했다.
트라우마가 자극되면서, 이전처럼 호흡이 살짝 올라왔다. 그러나 지영은 그걸 잘 이겨냈다. 그렇게 지영은 이겨냈지만.
쾅! 콰앙!
“아베 이 개……!”
항상 서글서글하게 웃는 친구가, 순수하고 착한 웃음에 소녀 팬을 몰고 다니는 임효중이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화를 내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곧장 수속하고, 사진을 찍었다. 결과는 안 좋았다.
코뼈가 주저앉아 짓눌리고 비틀리면서, 이걸 바로잡는 응급수술이 결정됐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부상은 아니나, 그대로 두면 코가 이상하게 굳어 잘생긴 얼굴이 죄 망가질 게 뻔해서 당연히 현지 응급수술이 결정됐다.
참고 서울로 가서 하기엔, 문제가 심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알아주는 외과 쪽을 소개해 줘, 그쪽으로 이동해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미국이니 비용이 어마어마하겠지만 돈이야 뭐, 문제가 될 게 아니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지영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친구들 옆에 앉았다. 분위기는 진짜, 끝내줬다.
죽을 상황은 아니다.
그냥 코가 짓눌렸고, 그거 다시 예쁘게 펴는 수술이다. 뭐 심장을 건드리거나 뇌를 건드리는 그런 수술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세상이 아작난 것처럼 무거웠다.
임은진이 보고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지영은 고백했다.
“나 사고 쳤다. 한결이가 사고 치라고 해서.”
“뭐라고 했는데?”
“일본유도협회랑 심판의 뒷거래 증거 잡아주면 국가건 기업이건 광고 모델로 서주겠다고.”
“……제대로 쳤네. 잘했어.”
힘없이 피식 웃은 강한결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저 친구는 이제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할 거다. 지영은 불쑥, 강한결이 리더가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강한결을 믿고 의지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라고 생각해 봤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나?
그때 한 반에 운동선수를 몰아넣었다. 그런데 그때 강한결은 반장을 했다. 반장이니, 강한결의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었고, 그게 지금까지 왔다.
강한결은 초딩 때도 리더십이 넘쳤던 거다.
“지영이 너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그래? 나라지 뭐. 야, 네 말처럼 이런 유도계라면, 몸담고 있는 것도 같이 썩는 기분이야.”
지영의 대답에, 임효중과 황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번에 그냥 넘어갔으면, 다음은 더 심했을 거야. 알잖아. 우리 다 겪어봐서.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워. 그리고 독해지고. 우리 이번에 나서지 않았으면, 다음엔 무릎으로 맞는 게 아니라 허리가 꺾였을걸.”
“맞아. 아마, 지영이가 대상이 되겠지.”
두 친구의 말에 강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황금세대의 위치는 너무나 특별했다. 운동선수지만, 운동선수만은 아닌. 그래서 오히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그 부분을 노린 거다.
유명인이니까, 대놓고 나서지 못할 거라는. 그리고 반대로 대놓고 나서주면 오히려 그걸 문제로 삼는. 뭘 해도 이득인 판이었고,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그 판에 대놓고 발을 들인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진창, 수렁에 발이 빠진 기분.
모두의 머릿속에 ‘은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