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05화
305화. 세계 선수권(1)
빅 매치.
강팀, 혹은 강자끼리 붙었을 때 사람들은 빅 매치라는 단어를 쓴다. 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매치가 그랬다.
지영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그냥 제일 유명한 사람이 맞았다.
배우와 선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강지영은, 몇 번의 사건을 통해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강지영은 본래 유도 선수라는 직업도 놓지 않았는데, 실력은 이미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레벨이었다.
아니, 어쩌면 세계 최소일 수도 있었다.
선수 전부와 붙어본 건 아니지만, 현재 세계랭킹 1위인 미야모토 신지를 잡은 유일한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미야모토 신지도 천재였다.
유도 쪽에서는 가히,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신지는 지영이 드라마 촬영을 하며 쉬는 근 1년간 세계를 씹어 드셨다. 아시안 게임 1위를 시작으로,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날고 긴다는 선수들 전원이 미야모토 신지 앞에서는 그냥 평범한 선수가 되었다. 전 경기 한판승. 몇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그냥 기술로 전부 한판을 따냈다. 그런 미야모토 신지가 세계로 나와 유일하게 패배한 경기가 바로 청소년 아시아 선수권과 청소년 세계 선수권이었다.
그리고 패배를 안겨준 사람이 바로 강지영이었다.
물론 쉽게 패배한 건 아니었다.
두 선수의 시합 영상은 이미 모든 선수가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봐도 경기는 혈투였다. 미친 재능의 두 선수는 연장까지 가서 치고받고를 유지했고, 그 끝에 승자는 언제나 지영이었다. 유도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이 영상을 보면, 실력 차이는 없었다.
거의 없었는데, 진짜 조금 지영이 더 잘했다.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고, 한순간 생긴 틈을 놓치지 않은 게 강지영이었을 뿐이었다. 기회를 신지가 살렸다면 승자는 신지가 되었을 거다.
그런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한 번도 붙어본 적이 없었다.
아시안 게임이란 메이저 대회에 나간 신지와는 다르게 강지영은 당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조차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맞붙는 건 거의 요원해졌다. 그리고 일본이 두 선의 맞대결을 회피한 것도 있었다.
자국이 자랑하는 천재가 또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어쨌든, 이런 두 선수는 확실히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다음 올림픽에서 우승도 두 선수 중 한 사람이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그래서 맞붙기를 아주 여러 사람이 바랐는데, 세계 선수권 1회전에 떡하니 붙었다.
이러니, 한국 팬들은 물론이고 일본, 세계 팬들도 불이 붙었다.
-대박, 이거 미리 보는 올림픽 결승전 아니냐?
-ㅇㅇ 그렇다고 봐야지. 현재 73보면 이변 없음 두 사람이 무조건 결승이다. 물론 그렇게 대진이 나올 경우에만.
-둘이 한 라인 타고 있음 결승이 아니라 16이나 8강에서 붙겠지.
-아님 준결이나. 어쨌든, 진짜 재미는 있겠다 ㅋㅋ
-지영이 이번 대회 중계해 주나요, 근데?
-강지영 대회니 해주겠죠? 지영이뿐만 아니라 황금세대 애들 팬도 상당하니.
-MBS에서 이번에도 하겠죠? 거기가 애들 선수일 땐 전담하잖아요.
-ㅇㅇ 아마 해줄 거임. 근데 진짜 기대되네. 신지 영상 찾아보니까, 진짜 시합 놀러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놀러?
-ㅇㅇ 그냥 다 가지고 놈. 게임이 안됌 다른 선수들은.
-헐, 그 정도임?
-www…… 여기 링크 가서 봐보셈. 신지 작년 스페셜인데, 보면 암.
-오 땡큐!
한국에서도 지영은 유명하니, 당연히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현재, 일본 유도의 영웅인 오노 쇼헤이를 그들의 심장부에서 꺾었다.
그것도 치욕스러운 반칙패로.
뒤이어 하시모토 소이치까지.
줄줄이 꺾였다.
그렇게 되니 일본 유도 랭킹 1위부터 3위까지 전부 꺾어버린 게 됐다. 그러니 당연히 강지영이라면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엔 압도적인 기량으로 더 챌린지라는 큰 대회에서 우승한 이시카와 사오리를 빼가기까지 했으니, 지영을 향한 악감정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서로 맞붙어 분탕을 치고, 난장판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팬끼리도 날이 섰고, 예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지영도 날이 바짝 섰다.
* * *
지영은 시합 전에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편은 아니다, 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체중 감량? 그건 익숙해서 뭐 딱히? 스스론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아니었다. 사실 이는 지영만 그런 게 아니라 감량하는 모든 선수가 그랬다.
감량은 사람 피를 말리는 일이다.
선수마다 전부 다르지만, 지영의 경우는 일단 73을 찍고 다시 2에서 3킬로 정도 불려 유지하다가 계체 전에 쫙 뽑아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번 찍고 나야 안도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그냥 천천히 빼놓고, 마지막에 쭉 빼서 체중을 맞춘다. 지영처럼 한 번 찍고 나서는 고생을 안 한다는 뜻이었다.
이유는, 힘들어서였다.
말했듯이 감량은 사람 피를 말린다. 실제로 몸에서 수분을 뽑아낸 다음, 거기서부터 다시 목표 체중까지 빼는 작업은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니 사람 성질 버려놓기 딱 좋았다. 그러니 자신은 아무리 난 안 예민한데? 하고 말해도 다른 사람이 보면 여배우 뺨치는 성깔을 보여줄 때가 많았다.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감량 기간이 길어지고, 계체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성질머리는 조금씩 더러워졌다. 그런 상황에 정말 오랜만에 미야모토 신지와의 일전이 잡혔다. 세계 선수권이라 신지도 포기할 수 없는 대회였다. 그리고 지영도 그랜드 슬램과 점수를 생각하면 당연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붙게 된 일전.
이게 지영의 긴장감을 확 끌어올렸다.
지영이 아는 미야모토 신지는 진짜 천재였다.
‘나는 회귀라는 치트키를 쳤지만, 신지는 아니지.’
그 친구는 진짜 본인의 실력이었다.
반대로 지영의 지금 유도 실력에는, 회귀자란 치트키가 적용된 상태였다.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통해, 남들과는 다른 실력을 일신에 갖췄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자신은 반칙 같은 존재였다.
‘이레귤러? 그런 거지만 신지는…… 그냥 태생 자체가 괴물이야.’
지영은 솔직히 신지와 회귀하지 않았다면 신지와 승부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냥 단순한 이전의 삶이었다면, 어쩌면 패배했을지도.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이전의 지영은 어땠을까?
회귀 전, 사고가 없었다고 쳐도 지영은 천재는 천재였다. 지금 배우로서의 인지도는 없었겠지만 유도 선수로서는 이미 충분히 명성을 쌓았을 게 분명했다. 지금 지영의 유도 실력은 확실히 회귀자 특전 치트키 적용으로 올라오긴 했지만, 그 베이스는 당연히 회귀 전 강지영의 본신 실력이었다.
그때도 지영은 이미 고등부엔 적수가 없었다.
고1 때도, 이미 체급을 싹 쓸어버렸다.
당시에 이우진과는 1학년 때 붙어본 적이 없지만, 실력 자체로만 봐도 지영이 위였다. 이는 회귀 직후 체전에서 붙어봤을 때 확실히 승패가 나왔다. 아무리 당시의 지영이 회귀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기본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승리는 요원했다.
‘심지어 심판 백까지 받았던 이우진이었으니까.’
그러니 회귀 전 강지영의 유도 실력도 상당했다.
그러나 지금 객관적으로 살펴본 결과, 미야모토 신지는 그보다 위였다. 특전으로 이긴 거지, 그걸 뺐다면 진짜 아마도 한 수 정도는 아래에 있었을 거다.
그런 미야모토 신지의 실력은 작년에 더욱 물이 올랐다.
지영도 신지의 경기를 전부 살펴봤다.
이우진과 붙은 것도 봤고, 다른 경기도 챙겨봤다. 신지도 결국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지영의 카운터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것 같았다. 이걸 대체 어떤 형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지는 만들었다.
그걸 지영은 경기를 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니, 날이 안 설 수가 없었다. 지영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잘못하면 진다…….”
패배가 무서운 건 아니었다.
스포츠 종목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패배란 잘 때 베고 자는 베개와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뒤통수 뒤에 있는 것. 그만큼 가깝다는 소리였다.
필연이고, 숙명이란 뜻이기도 하다.
운동선수에게 패배란.
패배가 두려워 연승 중에 은퇴하는 비겁자가 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러니 지영도 패배가 무섭지 않았다. 지금의 공식전 연승이 끊기는 게 두렵지도 않았다. 그런 거에 두려워하기엔, 지영의 정신이 너무 단단했다.
그런데도 지영의 날을 세우는 건, 순수한 신지의 실력이었다.
지영은 유도에 목말랐었다.
사고 후 먹고살기 위해 코치가 되었을 때, 타고난 지도자의 재능으로 방과 후에만 훈련을 시켜 전국 소년체전에서 입상자를 다수 배출하고, 기어이 우승자까지 배출했을 때, 그때도 지영은 괴로웠었다.
지영은 관객도, 코치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강지영이란 인간이 유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플레이어였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들 때문이었다. 그것만이 중요했기에 지영은 결국엔 코치직마저 그만뒀었다.
그날 이곳으로 돌아왔지만, 그런 성격은 여전히 잠재의식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년 동안 잠들어 있던 그 의식이 신지와의 맞대결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지영의 정신을 바짝 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날이 섰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지영은 굳이 조심하지 않았다.
왜?
체중은 혼자 빼는 게 아니고, 뺄 때는 다들 예민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다 같이 날을 세운 고슴도치처럼 시간을 보내다가, 시합장으로 출발했다. 이전부터 이미 화제가 되어 출국장엔 팬이 많이 와 있었다.
이제는 선수지만 연예인이라, 지영은 팬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줬다. 카메라 불빛이 미친 듯이 터졌지만, 이제는 그 불빛마저도 익숙해진 지영이었다. 카메라 불빛이 좀 잦아들자, 빤히 자신을 보는 팬들이 보였다.
뭔가 말해주기를 바라는 눈빛들이었다.
지영은 인터뷰를 하지 않은지 정말 오래됐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출국하는 걸 보러 온 팬들에겐 한마디쯤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기고 올게요. 감사합니다.”
꾸벅.
정중하게 인사하자 힘내라는 파이팅이 담긴 박수가 들렸다.
지영은 더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게이트로 들어섰다. 이번 세계 선수권은 미국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이번 시합지였다. 오랜 시간을 날고 날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영은 짐을 풀고, 짧은 휴식을 얻었다.
지영은 옷을 챙겨 입었다.
“어? 운동 가게?”
“응. 앞에 해변에 러닝 코스 좋던데? 가서 좀 뛰고 오려고.”
“그래? 같이 가자, 그럼.”
룸메이트 임효중이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리곤 얼른 캐리어를 풀어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먼저 옷을 갈아입은 지영은 전기정 감독에게 조깅하고 오겠다고 알린 뒤, 신발을 신고 준비를 끝냈다.
로비로 나와 잠시 기다리자, 친구들이 전부 내려왔다.
재밌는 건 장대호까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는 점이었다.
“나도 몸이 좀 무거워서 그런데, 같이 뛰어도 될까?”
우르릉.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울림이 큰 장대호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야 뭘 그런 걸 허락을 맡아? 그냥 같이 뛰면 되지.”
“그, 이상하게 넌 어려워서.”
“뭐래. 동갑인데.”
툭.
자신보다 커도 훨씬 더 큰 장대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친 지영은 주변에서 몰리는 시선을 뒤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해가 지기 전이다. 선선한……은 절대 아닌, 해안가의 바람을 맞으며 지영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뒤이어 여자 대표들도 나와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다는 아니고, 셋만.
몸을 풀고 이국의 러닝 코스를 따라 뛰기를 잠시, 정면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새하얀 단복 가슴에 박힌 새빨간 동그라미. 일장기였고, 근처에 숙소를 잡은 일본 대표팀이었다.
“…….”
“…….”
가장 뒤에서 뛰던 신지와 스쳐 가는 순간 지영은 직감할 수 있었다.
‘쉽지 않겠네.’
독이 잔뜩 오른.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치는.
단언컨대, 회귀 이후 만난 선수들의 눈빛 중 가장 살벌하게 빛나는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 덕분에 장기간 비행으로 풀려 있던 지영의 눈빛도, 각오로 사납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