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01화
301화. 유도 챌린지(14)
강유진.
이시카와 사오리.
지영이 나서서 귀화시키고, 직접 후견인까지 하는 중인 교포 3세다. 한때 귀환 문제로 정말 시끄러웠고,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었던 친구였다. 이 강유진을 지영은 마이너스 90과 70 시합이 열리는 본선 전날, 서울에 올라와 직접 만났다.
장소는 회사였는데, 오랜만에 본 강유진은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오빠!”
지영에 비해 피지컬이 별로 밀리지도 않는, 안자이 히카리와 거의 판박이의 체형을 가진 강유진은 컸다. 길쭉하고, 늘씬하기도 했다. 그런 히카리가 달려와 가슴에 폭 안겼다. 오랜만에 보는 이시카와 사오리다. 아니, 이제는 강유진이다.
그런 강유진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 비해 역시 많이 달라졌다.
일단, 엄청나게 밝아졌다.
지영이 바쁘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아직 강유진이 재활하고 있을 때였다.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 때문에 그래도 침울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나이 때 아이들처럼 밝은 모습도 아니었다.
강유진은 일본에서 수술받았었다.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아서, 한국에서 재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수술은 잘 끝나서 그때부터 재활을 시작했다. 거의 반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그렇게 증발했다. 선수에게 반년이 넘는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그 불안감 때문에 강유진은 지영을 볼 때마다 최선을 다해 웃었지만, 지영은 강유진이 힘들다는 걸 그 웃음으로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봤을 때도 강유진은 그 불안감을 이기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이겨냈다.
이겨냈고.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원래 이런 애였나? 싶을 정도로 밝은 모습을 보니 지영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잘 지냈지?”
“네!”
밝은 대답에서 감정표현이 지극히 순수하고, 솔직한 여고생. 그런 느낌이 딱 들었다.
이제 고2.
남녀 공학인 연희고 2학년생 강유진이었다. 가볍게 포옹 후에 떨어진 지영은 자리에 앉아 질문을 했다.
“컨디션은 어때?”
“지금, 완전 좋아요!”
“그래? 감량 좀 했는데도?”
“네! 근데 전 감량하면 에, 에또, 아! 더 막! 에너지가 솟아요!”
한국에 제법 오래 있었지만, 십 년을 넘게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특유의 어조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아니, 이 정도면 솔직히 환골탈태 수준이었다.
“그래? 내일 잘할 수 있겠네, 그럼?”
“네! 그럼요! 우승해서 차 타면, 오빠 드릴게요!”
“나? 에이, 아니야. 아버님 드려야지.”
“아니에요! 오또 상이 오빠 주라고 했어요! 오까 상도요!”
“하하, 괜찮다니까.”
받으면 받는 대로 또 문제가 된다.
무조건 말이다.
지영은 그래서 일단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동생은? 현정이는 적응 잘했어?”
“현정이요? 현정이 기획사 들어갔어요! JPY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어? 진짜?”
“네, 이제 두 달 됐는데, 아! 동생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하. 괜찮아. 말 안 할게. 그래, 기획사에 들어갔다는 거지? 아이돌 전문인?”
“네, 동생은 저랑 다르게 예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강유진의 표정엔 동생에 관한 질투나 시샘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자매간의 우애가 좋다는 느낌이 드니, 그것도 기꺼웠다. 강유진은 그걸로 그치지 않고 폰을 꺼내 동생의 사진을 보여줬다.
연습생이 된 이후, 춤 연습하고 땀에 흠뻑 젖은 이시카와 유리코. 이제는 강현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영은 시합장에 강유진의 도복을 들고 왔던, 문학소녀의 느낌이 충만하던 유리코가 저렇게 아이돌이 되기 위해 기획사에 들어갔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다.
“몸 쓰기 정말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동생도 운동신경 좋아요. 아마, 저보다 더 좋을걸요?”
“진짜?”
“네. 근데, 동생은 운동은 싫대요.”
“춤은 괜찮고?”
“춤은 스포츠가 아니라던데요? 하하!”
“아, 그건 또 그렇대?”
“네!”
춤은 스포츠가 아니라니.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다.
지영은 여러 주제로 강유진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7시쯤 일어섰다. 슬슬 컨디션 체크하고, 쉴 시간이었다.
“그럼 준비 잘하고. 내일 시합 파이팅!”
“네!”
처음에 봤을 때는 밝긴 밝았어도 긴장한 모습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1시간 남짓한 대화로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유진을 보내고 나자 임은진이 찾아왔다.
“유진이 갔지?”
“네, 지금요.”
“음, 유진이 인터넷 자주 하는 편인가?”
“이제 고2니까 많이 하지 않을까요? 인터넷 관심 별로 없는 저도 꽤 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왜요?”
“그게, 기사가 많이 났네?”
“기사요?”
“응. 여기.”
임은진이 건네준 태블릿을 보니 정말 기사가 정말 많이 올라와 있었다. 강지영 하면 연관 검색어에 뜨는 게 강유진이다. 이런 강유진의 전 이름인 이시카와 사오리도 같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MBS에서 예고편을 낼 때,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팬들은 기가 막히게 강유진이 그때 지영 때문에 한창 시끄러웠던 귀화 선수, 이시카와 사오리임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이 알아차리면서, 그녀는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다.
하지만 기사에 댓글 달린 걸 보면, 찬양까진 아니더라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대박. 강지영 선구안 뭐냐, 진짜? 강유진 이제 고2인데, 16강 본선 진출…… ㄷㄷ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에이스라고 하더니 ㅋㅋ 진짜였네요!
-심지어, 저게 체급 올린 거임. 수술 두 번 하고, 재활하면서 6개월 넘게 날렸는데 그때 체중이 많이 올랐다고 함. 그리고 키도 조금이지만 크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체급 올린 건데, 선배들 다 박살 내고 유일하게 본선에 오른 고등부 현역 ㄷㄷ
-나 예선전 경기장 가서 봤는데, 미쳤음. 특히 그 뭐냐. 서브미션. 아니지. 유도에서 뭐라고 하더라?
-굳히기?
-ㅇㅇ! 그거 굳히기! 굳히기 개잘함! 우연히 경기장 바로 앞 관중석에 앉아서 봤는데 경기 절반을 굳히기로 끝냈음. 누르고 꺾고, 와 뭔 진짜…….
-ㅇㅇ 저도 봄요 ㅋㅋ 몸 겁나 유연하고, 미꾸라지처럼 겁나 잘 꼼 ㅋㅋ 상대들 막 허둥지둥하다 졸리고 눌리고 꺾이고 ㅋㅋ
-그러니까 결론은, 강지영이 진짜 천재를 귀화시켰다, 이거지?
-ㅇㅇ 원래 이시카와 사오리로 불리던 시절에도 안자이 히카리? 지금 일본 여자유도의 여제로 불리는 선수와 유일하게 비벼볼 만한 재능의 선수라는 평판이 자자했대요.
-안자이 히카리면, 그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 선수 박살 냈던?
-ㅇㅇ 그 히카리 맞음.
-와, 강유진이 그 정도예요?
-그 정도래요. 근데 보세요. 이미 검증 끝남. 고2이고, 수술 두 번으로 공백 기간도 있었을 건데 유일하게 고등부서 혼자 본선에 진출함. 예선도 솔직히 엄청 압도적이었음. 그래서 다들 누군지 했는데, 알고 보니 강유진…….
-강유진 이게 첫 대회래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아직 대회 나간 적도 없고, 훈련만 했다고 들었음.
-미쳤네 ㄷㄷ
-그럼 여자 판 황금세대임?
-여잔데 황금세대는 좀 그렇지?
-? 그럼?
-같이 묶을 애들 없나? 묶어서 몇 공주파로 가자 ㅋㅋ
-아, 아재요…….
-누가 저 양반 틀니 좀 압수해…….
중구난방의 댓글을 보면 그래도 강유진을 욕하는 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쪽바리 아님? 하는 댓글이 몇 개 있었는데, 그건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헛소리 ㄴㄴ
-교포임. 교포끼리 결혼해서 유진이 태어난 거고.
-강씨 성도 조부모? 성씨라고 함. 그리고 당연히 진주 강 씨고.
-강지영이랑 친인척 관계 아니냐고 하는 사람 있는데, 아님. 진주 강 씨 좀 파보면 알겠지만, 어쨌든 아님. 전혀 연관이 없음. 졸라게 돌고 돌아 찾다 보면 어딘 가서 만나기는 하겠지만 ㅋㅋ
-알아봤는데, 강점기 시절에 노역에 시달리시다가 해방되고, 한국에 못 돌아오고 안착하게 됐다고 함.
-그럼 저 나이 때면, 교포 4세여야 하지 않음?
-3세라고 함. 근데 모르죠, 뭐. 결혼을 엄청 늦게 하셨을 수도 있으니.
-3세건 4세건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한국인이라는 게 중요하고, 저런 천재가 제 자리로 찾아왔다는 게 중요하지.
-ㅇㅇ 그게 맞네 ㅋㅋ
-고로, 강지영 엄지척!
-진짜 얘는…… 크으!
-주모오! 오늘도 샤따내려! 내가 쏜다아!
-은퇴한 주모 좀 그만 찾아! 맨날 그렇게 불러대니까 과로로 다들 은퇴하시잖어!
-과로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다행이다.
국적에 관한 문제도, 핏줄에 관한 문제도 다행히 잘 해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은 기사만 나온 건 아니었다. 일본발 기사도 있었고, 그걸 옮겨 놓은 기사도 당연히 있었는데, 일본은 강유진이 본선에 진출한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유진을 사진을 걸고, 우라기리모노! 배신자! 하면서 기사를 올려놨다. 그리고 댓글은 차마 읽기 힘들 정도로 구역질이 났다. 일본에 있었을 때 강제로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다느니, 하는 그런 댓글을 보면 진짜 토가 나왔다.
이지메.
일본의 현대 문화 중 가장 토악질이 나오는 문화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끔찍한 것들이 더 있지만 그건 옛날이고, 현대는 이 이지메만한 게 없었다. 그런 풍조가 그들의 기사엔 가득 달려 있었다.
물론, 그러지 않은 사람이 많을 거다.
저렇게 극성인 것들은 보통 극우인 경우가 많다. 지영은 그걸 알지만, 아는데도 저 나라는 실망보단 경멸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쁘진 않네요. 우리나라 네티즌은 되게 호의적이고.”
“실력이 있으니까. 와일드한 몸에 비하면 외모는 또 예쁘장하고.”
“음, 그건 그렇죠.”
동생인 유리코가 아이돌 캐스팅을 받을 정도의 외모인데, 언니인 사오리의 외모가 꽝일까? 아니었다.
‘자긴 동생보다 못났다고 말하지만…….’
정확히는 둘의 외모는 결이 달랐다.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쳤을 때 유리코, 강현정은 차분하고, 지적인 냉미녀의 느낌이고, 사오리, 강유진은 톡톡 튀는 귀여움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즉, 둘 다 외모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강유진은 운동을 오래 했고, 재활 기간에 잘 먹어서 피지컬이 확 좋아졌다.
그렇게 좋아진 피지컬에 신장도 170이 훌쩍 넘다 보니까, 몸은 정말 와일드한데 외모는 또 귀염상이다. 이 괴리감이 또 이상하게 호감을 줬다. 외모가 거부감을 많이 상쇄시켰고, 실력은 남은 걸 깨끗이 지운 다음 물을 뿌려 헹궜다.
“내일 우승하면, 진짜 베스트인데. 힘들겠지?”
임은진의 질문에 지영은 그냥 웃었다.
글쎄?
힘들까?
일단 내일 까봐야 알겠지만, 지영은 어째 내일 더 챌린지의 가장 큰 스타가, 이연두와 버금가는 인기를 얻을 스타가 탄생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지영은 사실 오늘 강유진의 경기를 조금 봤다.
조용히, 몰래 가서 내빈석에서 강유진의 경기를 세 게임 정도 봤는데, 강유진의 실력은 진짜였다.
왜 일본이 안자이 히카리의 대를 이을 천재라고 했는지, 지영은 강유진의 경기를 보면서 대번에 깨달았다. 강유진의 재능은 진짜였다. 예전에도 영상을 보면서 느꼈지만, 강유진은 남자유도를 했다.
여자유도와 남자유도는 경기를 보면 그냥 차이가 난다.
일반인도 보면 어? 좀 다른데? 하고 생각할 만큼 분명히 경기력이나 시합 스타일에서 차이가 났다.
오늘 예선전?
예선에서도 강유진은 압도적이었다.
예선 전체를 좀 살펴봤는데, 눈에 띄는 선수가 있긴 하지만 그게 강유진 정도는 아니었다.
‘피지컬과 재능이 이미 완성된 상태지.’
거기에 노력까지 한다.
노력까지 하면서,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미친 괴물인 거다.
지영만 해도 즐기는 영역에서 놀지는 못한다. 감량은 감량대로 괴롭기도 하니까. 대한민국 레전드 농구 선수도 방송에서 그랬다. 자기는 단 한 순간도 즐겨본 적이 없다고. 대신 이 악물고 죽도록 노력했다고.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농구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과언이 아닌 대기록을 세웠다.
그만큼, 운동이란 건 일이 되는 순간부터 즐길 수가 없는 거다.
체육관까진 즐길 수 있다.
그곳은 취미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엘리트 체육의 길에 들어서면 그건 일이다. 무조건 성적을 내야 하고, 성적을 내지 못하면 도태된다. 도태되면? 더 이상 도복을 입을 일이 없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도 시간대로 날리고, 몸도 몸대로 망가지지만 이룩한 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다. 그러니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시카와 사오리, 강유진은 유도를 즐겼다.
정말 순수하게.
그래서 승리 후 짓는 환한 미소는 그 누구보다 빛났다. 지영은 그 미소를 보고, 사실 경기장에서 거의 확신했었다.
그런 지영의 확신은.
[아! 강유진 선수! 그대로 잡아 돌립니다! 상위 포지션 잡았어요! 다리만 빼면 그대로…… 누르기! 강유진 선수 누르기 들어갑니다! 한판! 강유진 선수! 경기 시작 1분 만에 누르기 한판으로 8강에 진출합니다!]
이튿날 바로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