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00화
300화. 유도 챌린지(13)
결국,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이어진 시상식을 보면서 모두가 정말 사성이 작정하긴 작정했구나란 걸 알 수 있었다. 시상식은 남자, 여자 같이 올라갔다. 그런데 시상식 복장은 일반 대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턱시도와 드레스라니…….”
시상대에 올라갈 선수들의 등장에 다들 박수 칠 준비를 하다가, 등장한 선수들을 보고는 넋을 놓았다.
남자, 여자 선수는 같이 들어왔다.
3등 선수들부터 2명씩 짝을 지어 들어왔다. 물론 팔짱을 끼고 등장한 건 아니고, 깔아 놓은 두 개의 레드카펫을 따라서 보폭을 맞추어 나란히 들어섰다. 2등 선수도 그렇게 들어섰다. 하지만 1등 선수는 달랐다.
1등은 장진명이 먼저, 이어서 이연두였다.
철저하게 인기에 차별을 주는, 쇼다 보니까 대회의 공정성보단 흥행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이런 시상식은 당연히 선수들에게 쇼크로 다가왔다.
“와…… 이, 이거는 진짜…… 대박인데?”
강한결이 놀라서 말을 더듬었을 정도였고, 지영도 등장한 선수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보통. 아니, 모든 대회의 시상식은 백색 도복으로 통일이거나, 아니면 각 나라의 단복으로 통일된다.
올림픽 같은 경우는 각 나라의 단복을 입지만, 일반 대회는 시상식용으로 챙겨온 깨끗한 흰 도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 부분은 당연히 그렇게 진행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쇼는, 쇼다.
사성은 작정하고 일반적인 유도 대회와 우린 다르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건지, 시상식도 틀어버렸다. 이건 지영도 이전에 고지받지 못한 거라, 전문가의 손길로 풀 세팅하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선수들의 모습에, 쇼킹함을 감추지 못했다.
메이크업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극히 평범하신 분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가족도 몰라보도록 만들 수 있는 게 작금의 메이크업이란 마법이다. 그런 메이크업을 제대로, 수치로 따지면 100까지 받고 나왔으니 사람이 달리진 건 기본이었고, 몸에 딱 맞는 턱시도와 라인을 제대로 살린 드레스의 장착은, 말 그대로 변신에 가까워서 관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기획 측은 본선에 진출한 선수들의 사이즈를 체크해 딱 맞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전부 공수해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대단했다.
“인정, 이게 기획이라는 거구나.”
기획의 힘이 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 지영은 이번에 진짜 제대로 알게 됐다. 아름답고, 멋있었다. 특히 이연두는 장난 아니었다. 이미 외모도 뛰어나서 그쪽 업계에서는 소수지만 팬덤을 몰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전문가들이 붙어 작정하고 꾸미니, 유도복을 입었을 때의 이연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만 해도, 기존의 유도 대회와는 너무 달랐다.
지영은 이런 대회를 만들어준 사성과 사성이 고용한 이벤트 업체들에 정말 감사했다. 지영이 그런 마음을 먹은 대회는 시상식과 함께 끝났다.
시상식 장면의 시청률은 무려 33%를 기록했다고 했으니, 쇼 흥행 면에서는 대박 중의 초대박이었다. 그렇게 첫날 대회가 끝나고, 이튿날 이어진 남자 마이너스 66과 여자 마이너스 52도에서도 스타가 탄생했다.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 한 명씩이 이연두의 뒤를 이었다.
* * *
성대하다는 것.
규모가 크고 푸짐하다는 뜻이다. 토, 일요일 주말 이틀간 치러진 더 챌린지를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성대하다는 문장이었다.
사성은 돈이 많은 기업이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그룹일 것이다. 그런 사성이, 회장이 작정하고 밀어주는 상태로 하나의 대회에 집중했다.
사성의 기획과 금력, 그리고 이름이 가진 힘으로 인해 대회는 정말 미친 규모를 자랑했다. 저게 가능해? 저렇게까지 한다고? 돈이 남아도냐? 싶을 정도의 돈지랄을 마구 뿜 냈다. 관중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간단한 샌드위치와 음료 같은 걸 넉넉하게 챙겨줄 정도였다.
물론, 사성 자체의 브랜드는 없지만, 협력 그룹과의 연계로 사성에겐 또 손해가 아니었다.
기사가 나왔다.
대회에 스폰을 대기 위해 한국의 모든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고. 당연한 거다. 경기장 주변에 설치하는 판넬만 해도 스폰서 그룹이 아니면 절대 넣을 수 없었다. 첫 대회 이틀간 사성은 그 모든 걸 자사의 브랜드로 꾸몄다. 예를 들어 에어드레서, 갤럭시 등등으로 분류해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혹은 대회 경품에 자사 브랜드 제품을 넣기 위해 주말 간 관련 부서 직원들이 전부 출근해 사성에 매달릴 기획을 짰다.
일종의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사성은 마음껏 누렸다.
주말 내내 화끈했고, 평일이 되었는데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왜?
대회가 열리는 시기가 방학 기간이라서, 학생들이 대거 예선전이 열리는 경기장을 찾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첫 주엔 거의 팀 관계자나, 가족이나 지인이 대부분이었던 예선전 체육관이 만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예선은 본선과는 다른 열기가 있었다.
일단 선수가 많았다. 이 선수들은 전부, 주말에 열린 본선의 열기가 어땠는지를 봤다. 총 세 명의 스타가 탄생했고, 규모부터 시작해 정말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엔 상금만 좀 탐이 났었는데, 이제는 다른 것도 욕심이 났다.
본선 자체만 올라가도, 그것만 해도 대회에 참가한 목적의 절반은 이룬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어제 열린 본선만 해도 우승자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간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신도 그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수가 더 많기도 했지만, 꽤 많은 선수가 그렇게 욕심을 가지고 나니 대회의 열기를 확실히 업시켰다.
그렇게 이틀간 치러진 예선전에서, 본선 진출자들이 결정되었다.
본선 진출자들은 좋아했지만, 이어지는 쇼는 솔직히 제법 힘든 준비가 필요했다. 왜? 일단 계체가 두 번이었다.
예선전 전날에 한 번, 본선 전날에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의 계체를 해야 했다.
선수들은 이때까지 당연히 식단을 조절해야 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불만은 상금과 첫 주의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 아래 가루처럼 부서져 흩날렸다.
남자 73과 여자 57 예선전이 끝나자, 재미있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시작은 미국에서부터였다.
언제 접촉했던 건지, 사성의 기획을 미국의 한 회사가 사 갔고, 곧장 미국유도협회와 연계해 참가 모집을 뿌렸다.
미국은 마초의 나라였다.
화끈하다 못해 잘못하면 뒤질지도 모르는 스포츠에 목숨을 거는 인간들이 있고, 또 그런 인간에게 열광하는 양반들이 가득한 나라였다.
비록 퍼스트는 아니었지만, 엔터테인먼트의 나라답게, 미국은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줬다. 미국은 나라가 크다. 주 하나가 대한민국보다 크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선수가 있겠나. 미국은 반년 후 시합 개최를 천명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주 단위로 예선을 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예선의 입상자들로만 본선을 따로 치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당연히 스케일이 큰 만큼 상금도 엄청났다.
총 3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렸고, 부상으로 속속 밝혀지는 것도 엄청났다. 사성보다 돈 많고, 추진력이 좋은 양반들이라 그런지 속속 계획을 오픈했고, 화제를 잡아당겼다. 미국은 나라가 크고, 인구도 많은 만큼 선수도 많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신청자가 한국보단 많아도 막 장난 아니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미국의 스포츠 시스템은 미친 거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짜여 있었다. 일본이 미국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서 몇 년에 걸쳐 싹 갈아엎었을 정도로, 제대로 짜여 있었다. 그러나 그 시스템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기종목이란 게 있었다.
미국의 중, 고등 스쿨에서 가장 먹히는 건 길게 잡을 것도 없이 두 개로 압축된다.
농구와 미식축구.
수많은 영화에서도 조명한 게 바로 이 두 종목이다. 이 두 종목에 비하면 유도의 인기는 한참 아래에 있었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유도보다 인기가 한참 아래다 보니, 신청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한국보다는 많았다.
그래서 대회 기획 측은, 룰을 확 뒤집었다. 어차피 이벤트 대회다. 년에 한 번 치를지, 아니면 이번으로 끝날지 잘 모르니 눈치 볼 것도 없이 룰에다가 칼을 댔다.
1. 시합 시간은 5분으로 변했고.
2. 허리 아래, 다리 잡기를 허용했다.
이렇게 되자, 주짓수를 배우는 이들이나 레슬러들까지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유도 룰만 지켰을 때 이 두 스포츠 섭렵자들은 절대 기존 유도 선수들을 이길 수 없지만, 다리 잡기를 허용하면 그때부터는 말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허리 아래 꺾기를 허용하잔 말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가진 않았다.
그건 아예 유도 자체를 파괴하는 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다리 아래를 잡아 기술을 거는 건 어차피 그 자체가 유도의 출발이었다. 지금이야 스포츠로 완전히 변하고 종주국이 태생의 불리함을 지우기 위해 날려버린 룰이기에 건드려도 크게 반발은 없을 터다.
아니, 반발하긴 했다.
성스러운 유도를 건드리지 마라! 하고.
하지만 미국은 그냥 무시했다.
뭐, 어쩌라고.
이게 정식 대회도 아니고 이벤튼데! 이벤트를 우리가 우리 입맛대로 좀 바꾸겠다는데 뭐!
하고 으르렁! 하자 깨갱! 하고 물러났다.
솔직히 건드릴 명분이 없었다. 일본유도협회는 한국의 더 챌린지 시상식이나 메이크업, 여자 선수들이 안에 받쳐 있는 티셔츠 등을 문제 삼았지만 역시 사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딱.
너는 씨불여라.
나는 무시한다.
이런 스탠스를 유지했다.
그렇게 연일 화제와 관심의 집중되는 대회는 성황리에 쭉쭉 진행됐다. 중간에 시청률이 잠시 주춤했지만, 그래도 기본 20% 이상은 매번 기록하며 MBS는 싱글벙글, 최선을 다해 경기를 라이브로 중계했다.
그 결과, 몇 주에 가깝도록 한국은 더 챌린지 속에서 살았다.
전 국민의 태반이 이제는 유도가 어떤 룰을 가졌고,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를 알게 됐다. 오죽하면 넘어가는 걸 보면 저건 절반이네, 저건 한판이네. 하고 딱 답이 나왔다. 이른바,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학부모들이 자식 시합을 따라다니다 보면 반강제로 준전문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시청자도 하도 유도 경기를 TV에서 틀어주니까 딱 보고 점수를 내릴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그렇다 보니, 아주 당연하게 유도 붐이 일어났다.
물론 전문적인. 엘리트 체육의 길로 빠지는 건 부모들이 크게 원하지 않았다. 애들과는 다르게 부모들은 ‘강지영’을 비롯한 황금세대가 지독하게 특별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아들이, 내 딸이 아무리 잘해도 강지영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아이들은 이상과 꿈을 꾸며 살지만, 부모는 현실을 산다.
그래서 부모들이 풀어줄 수 있는 영역은 당연히 체육관이 한계였다.
덕분에, 체육관 전화가 입관 문의로 터지기 시작했다.
즐거운 비명이었다.
한 종목이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는 건 확실히 황금세대의 공도 컸지만, 그것보다 큰 게 사성의 기획이었다.
2주 차, 3주 차가 쭉쭉 진행됐다.
그러던 차에, 다시 한번 이연두에 버금가는 대형스타가 탄생할 조짐을 보였다.
이시카와 사오리.
한국 이름은 강유진.
실제로 한국인일 때도 조상의 성이 강 씨라서, 개명한 이름이 강유진이 된 이시카와 사오리의 등장이었다. 재활을 완벽하게 끝낸 그녀가 다시금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첫 무대는 선발전이 아니었다. 바로 더 챌린지였다.
이런 이시카와의 등장에.
일본유도협회는 딱 한 줄 논평을 내놨다.
우라기리모노(うらぎりもの).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모습에, 한국인들의 입가에는 편안한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