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9화
299화. 유도 챌린지(12)
-이열, 장진명이 아직 안 죽었는데?
-크, 삼천에 QM6! 선수 시절 1년 연봉 그냥 벌었네요, 진명 선배 ㅋㅋ
-진명 오빠 ㅊㅊㅊ! 이번 주 모임 오빠가 다 쏴요! ㅋㅋ
장진명의 우승이 확정되자 중계 채널에 그의 지인들이 열렬한 축하를 보냈다. 이로써 60체급이 완전히 끝났다. 더 챌린지는 선발전이나 세계 대회처럼 패자전을 따로 두지 않았다. 그러니 60은 이로써 끝, 이제 대망의 여자부 경기 차례다.
진행요원이 하나밖에 없는 경기장을 다시 정비했다.
땀을 닦고, 살짝 벌어진 매트들을 다시 쳐서 빈틈이 없게 했다.
이전 경기는 워낙에 한 번에 끝나 열기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개최 측은 마지막 경기에 딜레이를 주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래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 시간은 이제 막 6시 50분을 달려가고 있었다.
주말이기 때문에 보통 중계를 빨리 끝내주기를 바랄 수도 있지만, MBS에서 정말 오랜만에 나온 시청률 30% 돌파 때문에 누구도 빨리 시합을 진행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일 마지막 경기엔 여자부 마이너스 48킬로 체급은 19시 정각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안내…….]
결승전 시간이 정해지자, 다들 한껏 긴장한 얼굴이 됐다.
하이라이트였다.
이미 오늘 하루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지고, 가장 많이 이름이 불렸을 이연두가 단순히 핫해진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결승전에서 우승까지 거머쥐며 화룡점정을 이뤄줬으면 했다.
“지영아, 어때? 이연두가 이길 것 같아?”
이성진의 물음에 지영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지영도 이연두가 이겼으면 했다. 그게 본심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건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거였다.
“상대편이 좀 세긴 한데, 봐야지.”
결승까지 올라온 다른 선수는 강은정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삭발 투혼을 보였지만, 끝내 세계의 벽 앞에 좌절해야만 했던 유도 팬에겐 익숙한 선수였다. 그런 강은정은 자격 요건이 됐다. 그녀의 국내 랭킹은 8위였다. 올림픽 이후 폼이 떨어져 성적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왔다.
폼을 회복한 건지, 아니면 일시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결승까지 온 실력자라는 점이었다. 아예 이름도 없던 선수도 아니고 올림픽까지 출전했던, 그러니까 세계구에서 놀던 선수라는 점이었다.
실력은 모르겠지만 일단.
“경험 면에서는 강은정이 압도적으로 위지.”
“그건 그런데. 경험이 절대적인 건 또 아니니까.”
강한결의 반박에 지영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유도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당연히 다른 것도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당연히 기술 자체를 보는 실력이겠지만, 또 모르는 거다.
“이연두가 기세를 너무 탔잖아? 이건 지고 싶어도 지기 힘든 판일걸? 보니까 분위기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닌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나는 이연두 승리에 한 표.”
“오…… 같은 스타라 이거지?”
한 여자 선배의 놀림에 지영은 그냥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거에 일일이 반응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그리고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적당히 무시해 주는 게 최고였다.
의견이 갈렸다.
누가 이길 것 같냐가 아니라,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로 변했지만 그래도 남자팀은 이연두를 응원했고, 현역 여자팀은 친분이 있는 강은정을 응원했다. 그렇게 7시. 천천히 장내가 암전되어 갔다.
마지막 경기라서가 아니라, 이연두의 경기라서 개최 측은 역시 신경을 제대로 썼다.
등장은 강은정부터였다.
삭발 투혼 당시의 영상이 스크린에 뜨면서 그녀가 누군지 관중들도 금방 알아봤다. 올림픽 기간 한정이지만 그녀는 당시 가장 유명세를 치른 선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올림픽 이후엔 예능에도 종종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런 예능 때문에, 즉, 방송물 먹고 허파에 바람 들어서 감이 떨어진 거 아니냐는 말을 했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송물 먹고 폼이 떨어진 선수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은정은 폼이 떨어질 만큼 예능에 자주 나간 건 아니었다.
그러니 그건 틀린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떨어진 폼은 어찌 되었든 한동안 올라오지 않았었다는 게 중요했다.
강은정을 알아본 팬들은 환호를 보내줬다.
요즘 갑자기 유도가 좋아진 팬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유도를 사랑하는 팬에게 강은정은 제법 유명한 선수였다.
강은정이 먼저 청도복을 입고 자리에 서자, 이어서 다시 한번 암전되었다가, 스포트라이트 위치를 바꿨다.
우와아!
언니! 꺄아아!
이연두! 이연두!
환호성의 급이 달랐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오늘 오프닝 때 깜짝 등장한 우정혁의 등장만큼이나 큰 환호성이었다. 그런데 그런 환호를 받으면서도 지극히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선 이연두는 자리에 가서 서서, 별로 시합 전 버릇인 것 같은 동작을 조금 한 뒤에, 경기 준비를 끝내고 섰다.
신기했다.
그녀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강은정을 보는 순간, 연호는 정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치 연기처럼, 거품처럼 사라진 연호 뒤에는 묵직한 침묵이 찾아와 그 자리에 섰다.
체육관 전체에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긴장감이 서렸다.
오늘 마지막 경기인 것도 있지만, 이연두의 승리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뭉쳐서 만들어낸 분위기였다. 그리고 선수들이 전신으로 내뿜는 기세도 똑똑히 한몫했다.
“와, 불붙었네, 불붙었어.”
누군가가 한 그 말처럼, 확실히 두 선수는 제대로 불이 붙었다. 이걸 형상화하면 아마 강은정은 붉은색, 이연두는 푸른색일 것이다. 용호상박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지영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는 순간에 심판이 들어왔다.
하지메!
심판은 오래 끌지 않았다. 자기 자리에 서서 두 선수가 시합 준비가 됐다는 걸 확인한 순간, 바로 입장시켰고, 결승전을 시작시켰다.
아악!
강은정이 넣은 기합이 고요한 은은한 진군가가 휘감고 있는 체육관 내를 시원하게 울렸다. 반대로 이연두는 그런 기합도 없었다. 그냥 꾸벅, 살짝 고개 숙여 인사만 한 뒤 곧장 자세를 잡았다.
격렬했다.
서로 너무 잘 알아 눈치를 보던 남자부 경기와는 역시,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강은정은 시작과 동시에 자세를 잡곤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너무 앞으로 치우치지 않은, 파이팅 넘치는 인파이터처럼 쭉 밀고 들어왔다.
그걸 이연두는 맞받아쳤다.
“스타일이 변했어. 밀리면 답이 없겠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강한결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 강은정이 보여준 시합 전체를 철저하게 파악했겠지.’
분석파다.
지영은 이연두가 절대 감각에 의존하는 타입이 아님을 확신했다. 황금세대 내에서도 감각에 의존하는 파는 확실히 있었다. 일단 이성진이 그랬고. 임효중과 황석이 그랬다. 이 셋은 본능이 앞서는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강한결과 지영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시합을 펼쳤다.
상대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약점과 장점을 파악한 뒤, 대응 방법을 모색하고, 모색해 만들어진 것을, 연습을 통해 심장과 뇌에 습득시키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지영은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확인했다. 특히 상위랭커 들의 영상은 빼먹지 않고 돌려봤다.
어떻게 시합하는지 완전히 눈에 익혀 놔야, 연습을 통해 습득시킨 대응책이 실전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게 가능한 건 유도 선수의 스타일 한 70% 이상이 비슷해서이기도 했다. 야구나 축구처럼 진짜 천차만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 노력해도 완벽하게 대응법을 갖추는 건 솔직히 매우 힘들다.
그래서 아, 쟤는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해볼 만한데? 하고 생각하지만, 시합 땐 죄 날아가 천장을 보는 게 그런 연유에서였다.
맛테!
40초가 순식간에 지났다.
“시도! 시도!”
심판이 마치 법관처럼 엄중한 목소리로 지도를 주고는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하는 것처럼 단호하게 하지메를 외쳤다.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그러는 것 같았지만.
“아따, 그 양반. 분위기에 거하게 취하셨네.”
하하!
이성진의 혼잣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합을 보면서 생긴 긴장감이 이성진의 혼잣말에 어느 정도 희석됐다. 졸리던 심장이 이제는 좀 자유를 되찾았다. 자유를 되찾은 심장 덕분에 시합이 이제는 좀 더 잘 보였다.
시합은 백중세였다.
강은정도, 이연두도 유리한 상태가 아니었다. 반칙은 서로 하나씩 받았고, 강은정이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피지컬에서 이연두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그러니 압박은 통하지도 않았다. 기술을 넣어 유효 공격을 넣으면, 이연두는 날이 바짝 선 칼처럼 춤을 췄다. 이연두의 기술은 예리했다.
강은정이 피지컬을 베이스로 일단 상대를 제압한 다음 기술을 거는 스타일이라면, 이연두는 순간적으로 홱! 기술을 파고드는 게 일품이었다. 그런 기술을 한 번 유효 공격에 당하면, 곧장 자신이 먼저 움직여 갚아줬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전 경기를 복기해 봐도, 꽤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성격 있으시네.”
저건 성질머리가 좀…… 나쁜 거다.
본능적으로, 한 번 당했으니 갚아줘야 한다는 게 머리나 몸에 각인이 되어 있는 거라고 봐야 했다.
[강은정 업어치기!]
근처에 있는 배영우의 커다란 외침.
그 외침처럼 강은정이 업어치기를 걸었다. 그걸 빙글 돌아 나오면서 피한 이연두. 하지만 제대로 피하지 못해 중심이 좀 무너졌다. 그 틈을 타고 덮치듯이 일어나며 덧걸이를 걸지만, 이연두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파앙!
당연히 파공성은 안 들린다.
하지만 어찌나 시원하게 차는지, 마치 영화에서 무림 고수들이 광목천을 휘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시원시원한 허벅다리였다.
“와, 다리 길쭉하시네.”
이성진의 감탄은 뭔가 핀트가 어긋난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기술에 걸리긴 걸렸지만, 너무 제대로 걸려서 강은정은 아예 한 바퀴를 돌아 앞으로 떨어졌으니 어긋난 건 아니었다. 제대로 잡고 찬 것도 아니라서 시원하게 공중에서 팽이처럼 돌아 바닥에 떨어진 강은정이었다.
특별한 게 아니다. 유도에서는 종종 나오는 모습이었다.
우와아!
이연두! 이연두!
그러나 일반인에겐, 정말 짜고 친 ‘쇼’처럼 순간적으로 느껴졌을 광경이었을 거다. 그래서 조용하던 체육관이 다시금 환호로 뒤덮였다. 뜨거웠다. 지영은 그동안 나갔던 그 어느 대회보다 뜨거운 열기에 손에 땀이 찼다.
‘하…….’
몸이 뜨겁게 달궈지는 느낌이었다.
관중의 환호? 그거야 몇 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지영이 데뷔 이후 처음 해본 팬 미팅은 열기가 어마어마했었다. 자신을 향한 환호, 연호, 너무 좋아서 눈물을 펑펑 터뜨리던 팬들의 열기를 받아봤었던 지영이었다.
‘하지만 여긴 다르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관중의 규모도 규모지만, 시합장이 가진 마력이 또 다른 느낌을 나게 했다. 그리고 그게 지영의 심장을 저격했다. 큰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인가? 그런 것 같았다. 지영은 그걸 인정했다. 그래서 그 욕심을 숨기고, 이어지는 경기를 바라봤다.
3분이 지났다.
심판은 그쳐를 시키고 다시 지도를 하나씩 줬다.
이제 지도 두 개.
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이 두 선수도 낭떠러지를 뒤에 두게 됐다. 빠지면 무조건 죽는 배수진? 뭐, 시합에서 져도 죽는 건 아니니 그런 느낌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런 관심 높은 대회에서 지는 건 추락과 비슷할 수도 있었다.
4분. 정규 시간이 다 지났다.
하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이제는 다들 조용히 시합에 집중했다.
신기하게 관중들도 탄성 같은 걸 가끔 낼 때를 빼면 조용히 결승전을 관람했다. 심지어 배영우마저 마이크의 소리를 최대로 낮추고 시합을 이어갔다. 그렇게 조용해진 이유는 이제 무조건 한 번에 끝나기 때문이었다. 반칙을 받든, 절반을 따든, 아니면 한판을 따든 무조건 점수 하나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그래서 그 조마조마함 때문에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악!
강은정이 업어치기를 걸고, 기합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연두는 앞으로 떨어졌다. 그냥 대충 봐도 앞으로 떨어졌으니 여기서 점수를 줬다간 장담하는데, 오늘 저 심판은 무조건 테러당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심판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맛테!
하지메!
다시 시작된 시합.
강은정은 역시 공세로 나왔다. 좀 전에 점수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유효한 기술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상대에게 반칙이 들어갈 확률이 적어도 90%쯤은 된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잡고, 툭툭 끌어서 다시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강하게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빙글 돌아 나온 이연두가 역으로 아직 자세를 풀지 못한 강은정에게 밭다리를 찍었다.
“어! 걸렸다!”
이성진이 반사적으로 외친 순간, 강은정은 사력을 다해 버티려고 했지만 이연두는 밭다리에서 다시 몸을 틀어, 그대로 손 밭다리에서 뽑아 업어치기로 연결했다. 타악! 타악! 끊기듯 강하게 연결되는 동작. 뚝뚝 끊기는 로봇같이 들어간 기술이지만. 이연두의 힘에 강은정의 상체가 제대로 와서 업혔고, 이윽고 부웅…… 떠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그 마지막 기술을 향해 쫓아갔고, 콰앙! 우와아……!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에 피어난 함성이 장내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