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8화
298화. 유도 챌린지(11)
주먹 불끈!
“오오! 팀장님! 30%까지 1% 남았습니다!”
“크! 조금만! 조금만!”
오랜만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스포츠 종목이 시청률 30%를 향해 가는 건.
요즘은 올림픽을 해도 워낙에 인터넷 자체로 보는 사람이 많아 2%는커녕 10%만 나와도 잘 나온 거라고 할 정도의 시대였다. 예를 들어 이전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여자 배구도 방송 3사 전부 합쳐서 38%였다. 단독이 아니라, 3사 전부 합쳐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올림픽도 아닌 이벤트 쇼가 단독으로 무려 30%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일어난 일이 맞았다.
조정실을 찾은 이번 더 챌린지 중계 기획팀장 이석도는 곧장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바쁜데!
“야 씨! 시청률 30%보다 그게 중요하냐?”
-어, 중요해. 하, 이 새끼들 반성의 기미가 없어. 아무래도 실명까지 까발려서 조져야겠어!
“어? 아아, 성람 푸드?”
-응, 이 미친 것들이 반성은 안 하고, 오히려 날 고소할 거라네?
“푸하하!”
이석도는 동기의 말에 크게 웃어젖혔다.
그가 아는 동기는, 취재를 시작하면 나름 예쁘장한 여성임에도 미친개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동기가 얼마 전에 파서 고발 프로그램에 실은 곳이 성람 푸드인데, 거기서 오히려 동기를 까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과도 싸워서 이긴 게 무려, 동기 이선영이다. 그 당시 그쪽 오너 일가가 모조리 갈려 나갔을 정도의 피 터지는 싸움이 있었고, 승자는 동기였다. 물론 이선영도 고향으로 좌천됐지만, 그래도 당시 그 그룹이 받은 타격에 받으면 조족지혈이란 말도 부족했다.
그런 동기한테 싸움을?
이석도는 장담할 수 있었다. 성람 푸드가 반년 안에 문 닫는다는 것을.
“문 닫고 싶어 안달 난 모양이니 도와줘라. 하하!”
-그러려고. 그보다 30%? 시청률 그거 지금 그렇게 좋게 나와?
“어, 미쳤다. 와 씨. 장정구의 재림도 아니고. 와.”
스포츠 경기 중에서 가장 임팩트가 컸던 건, 아마도 장정구 선수일 것이다. 그 선수의 경기 시청률은 무려 50%가 넘게 나왔다. 그래서 PD들에겐 당연히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헐.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난 지영이 이름빨이 있으니 10%는 그래도 나오겠거니 했는데. 이야, 석도 대박 났네? 어때, 누나 말 듣고 맡길 잘했지?
“흐흐, 그래. 다 네 덕분이지. 어디냐? 이런 날 한잔해야지?”
-나 지금 회사 들어가는 길. 대회는 끝났고?
“아직, 이제 준결 끝나고 결승만 남았다. 근데 금방 끝나겠어. 길어야 30분?”
-그럼 평양 족발집으로.
“오케이! 그쪽으로 간다!”
-응. 지갑 두둑하게 하고 오려무나?
“흐흐, 법카 이미 받았다.”
-야, 네 카드로 쏴야 의미가 있지! 그건 애들이나 사주고, 넌 따로 해. 오케이?
“오케이!”
이석도는 이번엔 무조건 동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원래는 안 맡으려고 했다. 준비하고 있던 게 있어서, 그냥 안 하려고 했었는데 이선영이 와서 자기 믿고 맡아보라고 해서 속는 셈 치고 했는데, 대박이 났다.
시청률 30%가 눈앞이다.
“시청률 30%!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흐흐, 흐흐흐.”
이석도 PD는 기분이 좋았다.
간만에 팀장이라 불리는 것도 좋고, 시청률을 30%나 찍은 것도 기분이 좋았다. 이번 기획은 된다고, 황금세대의 존재를 확인한 뒤 위에 계속 어필해 미친 편성을 받아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았다.
“흐흐, 간다. 흐흐흐. 고생, 흐흐흐!”
“하하, 네. 저희…….”
“넉넉하게 올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니다, 그냥 일주일간 야식은 내가 책임진다!”
“넵! 감사합니다!”
넙죽 인사하는 조종실 실장의 인사를 뒤로하고 이석도는 밖으로 나섰다. 날은 이미 졌지만, 이상하게 세상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시청률 때문이었다. 시청률 30%? 말이 30%지, MBS는 근래 아침 드라마는 물론 일일 드라마에서도 그런 시청률을 뽑아내지 못했었다.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는 물론, 100억을 때려 박은 특별 기획 드라마로도 안 됐고, 작정하고 밀어준 대하사극도 15%에서 왔다 갔다 했다.
국민 MC 우정혁이 끌고 가는 주말 예능을 제외하고는, 타 방송사에 비해 낫다 싶은 작품을 하나도 내놓지 못했었다.
그게 알게 모르게 그들의 자존심을 뭉개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30%가 터졌다.
15도 아니고, 20도 아니고, 무려 30%다. 올림픽도 아닌데, 월드컵도 아닌데 나온 미친 시청률에 벌써 사내 톡은 이미 난리가 났다. 이 모든 게, 동기 덕분이었다. 이석도는 그 당연한 걸 잊지 않았다.
‘암암, 옛날에 가문 회장이랑 이름 같다고 놀린 것도, 다 잊어야지. 흐흐.’
놀림 받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 그때 이선영이 놀린 게 아직도 앙금이 좀 있었지만, 오늘 시청률로 깨끗이 청산하기로 한 이석도였다. 마지막 결승전은 같이 고생한 프로젝트팀이랑 같이 보려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바로 아래 PD가 달려왔다.
“저, 팀장님? 일본 후지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후지? 거기가 왜?”
“중계권을 사고 싶다고…….”
“후지가? 그 새끼들이?”
“네. 일본에서 지금 난리랍니다. 유도가 일본이 종주국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회가 열리고, 이렇게 세계적으로 화제인데 우린 대체 뭐 하냐면서 원성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그래? 흐흐, 흐흐흐…….”
이석도가 음침하게 웃자, 팀원들 눈빛이 비슷하게 변했다.
일본이 숙이고 들어왔다니, 이걸 어떻게 갚아줘야 할지 벌써 즐겁고 신이 나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미국 PBS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프랑스도 왔고요.”
“그래? 거기도?”
“네, 미국이야 워낙에 마초의 나라 아닙니까. 이런 마초적인 이벤트를 놓칠 리가 없지요. 프랑스는 뭐 요즘 강지영 선수랑 사이가 좋은 편이고.”
이석도의 머리가 파바박 돌아갔다.
솔직히 이번 기획 때문에 다른 PD들에게 많이 깨졌다. 황금시간 대 편성이라, 그들은 자기 연출작들이 편성에서 밀리는 건데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윗분들에게도 많이 찍혔다. 틀에 박힌 그 양반들에게, 이런 편성은 이해할 수 없는 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강행했고, 최고의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평판을 올리기 좋은 기회도 왔다. 가뜩이나 곱지 않은 눈초리다. 실제로 시청률 30%인데,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두 개밖에 오지 않았다.
‘선물을 주지 못할 거면, 아예 최대로 이름을 올려놔야지.’
그래야 음, 석도가 그럴 만했네. 하고 수긍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최대한 뽑자. 너 그런 거 특기니까 잘할 수 있지?”
“넵, 맡겨주십시오. 흐흐.”
“그래, 잘하자. 흐흐.”
비슷하게 웃은 두 사람은 이내 의자에 앉아, 예뻐 죽을 것 같은 더 챌린지의 결승전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타이밍 좋게도 앉는 순간, 남자부 60 결승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방송사는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인원을 차출해 팀을 만들어 사성으로 보냈다.
그러는 이유는 당연히,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간 히트 칠 더 챌린지의 중계권 때문이었다.
* * *
남자 60.
작지만 단단한 체구의 장진명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오, 선배님 나오셨다.”
장진명 파이팅!
이성진이 일어나 장진명을 큰 목소리로 응원했다.
장진명.
정확하게 말하면 지영이나 황금세대의 선배는 아니었다. 연희 초중고 출신이 아니라 대성중, 청석고, 청주대로 이어지는 청석 재단 졸업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같은 청주에 있는 학교였고, 종종 와서 훈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장진명은 당시에도 몇 안 되는 현역 선수였다.
한국마사회에 입단했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배였다.
‘그리고 내가 자세를 많이 참고한 선배기도 하고.’
지영의 기본자세는 장진명의 스타일을 상당히 참고했다. 잡기 싸움이 싫은 건지, 귀찮은 건지 모르지만 심각하게 불리하게 잡은 게 아니라면 적당히 잡고 시합을 풀어가는 게 장진명이었다.
지영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어떻게 잡든, 자신이 걸 수 있는 기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밖으로 어깨 깃을 잡든, 안으로 가슴 깃을 잡든, 자신이 자신 있는 기술을 구사할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잡는 건 아예 필요가 없었다.
장진명은 허리기술도 허리기술이지만, 누우면서 던지는 기술을 아주 잘 구사했다. 허벅다리 모션에 움찔한 상대의 안으로 파고들어, 원심력을 이용해 홱 뒤집는 안오금 띄기 같은 기술은 그 당시에는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공격적이었다.
지영처럼 수비적이지 않다는 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보고 배울 게 많았던 선배.
지영의 기억 속에 장진명은 그런 선배였다.
그런 장진명의 상대는 현역 선수였다.
예전부터 국가대표급의 선수들을 항상 보유했었던 남양주 시청 소속 선수였다.
이름은 황보찬.
보기 드문 황보 성씨의 선수였다.
한 명은 은퇴했고, 한 명은 현역이지만 사실 두 선수의 나이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유는 황보찬이 노장급의 선수기 때문이었다. 이제 서른다섯의 장진명과 서른둘의 황보찬. 이 둘은 사실 현역 때도 상당히 자주 맞붙었었다. 심지어 지영도 몇 번 경기를 본 기억이 아주 어렴풋이 날 정도였다.
하지메!
그래서 경기가 시작됐을 때,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나머지 누가 봐도 소극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일반인에게는 저게 정말 루즈하게 보이겠지만…….”
“아는 사람은 다르지.”
일촉즉발이다.
조금 감이 좋다 싶은 이들은 파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도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잡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그래서 루즈하게 보이는 거고. 하지만 지영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시선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두 선수의 노림수는 명확했다.
한 선수는 틈이 나면 파고들 생각이고, 한 선수는 파고드는 걸 이용할 생각이고. 그렇게 이미 준비가 둘 다 끝나 있었다. 상대에 관해 잘 아니, 파악도 이미 옛 저녁에 끝났다. 그리고 서로가 노리는 게…….
‘뭐인지도 이미 알고 있고.’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경기가 흘러가는 거다.
웅성웅성.
잘 모르는 관중들은 당연히 경기 시작 1분인데 서로 기술 한 번 안 들어가는 경기를 즐겁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한 마음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기가 나오니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유도란 스포츠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었다. 파이팅 있을 때는 장난 아니게 파이팅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또 더럽게 지루한 게 유도 경기였다. 그런 주제에 시합 시간은 또 꼴랑 4분밖에 되지 않았다.
어?
하다 보면 끝나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저렇게 재미없게 날려 먹으니, 보는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약점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응?”
황석의 되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앞으로 유도가 변했으면 해서.”
“어떻게?”
“음…… 아직 정리는 되지 않았는데, 지금보다 좀 더 여유를 주면 좋지.”
시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는 게 지영의 생각이긴 했다. 그렇게 되면 시합을 뛰는 선수들은 죽어 나가겠지만, 애초에 경기 절반이 넘게 연장전에 들어간다. 그만큼 4분 안엔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5분은 길고. 긴 만큼 선수는 부담이 크다.
대신.
체력이 떨어지면 승패는 명확하게 갈릴 거다.
‘차라리 일반인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아, 지영은 거기에 이제는 없어진 유효를 추가했으면 했다.
절반보다 작지만, 유효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애매한 점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경기를 굉장히 스피디하게 만들었다. 확 티가 나는 절반이 아니라 애매하게 센 정도로 넘어가 유효를 뺏기고 나면, 공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심판의 자질도 문제겠지만,
‘어차피 이벤트잖아?’
그럼 심판도 리그에 올리면 된다.
가장 공정하게 심판을 본 사람이 누군가. 하는 느낌으로 투표에 올리면 해결될 문제 같았다. 거기에 상금이 좀 짭짤하면, 최선을 다해서 판정을 볼 테니까 말이다.
“어, 움직인다.”
누군가가 한 말에 지영은 상념에서 깨어, 시합에 집중했다. 점수판을 보니 반칙이 이미 두 개씩 들어갔다. 그러니 두 선수의 뒤에는 배수진이 자연스럽게 깔렸다. 밀리면 낭떠러지로 뚝, 떨어지는 거다.
그러니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의 노림수를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극단적인 느낌이 났다.
오오!
그에 관중들도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호응이 아직 절정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상대를 몸 쓰기로 흔든 장진명이 주특기기술인 안오금을 띄우러 자세를 낮춰 파고들자, 기다리고 있던 황보찬이 안뒤축을 거칠게 쓸었다.
하지만 그게 노림수였다. 안오금의 카운터인 안뒤축을 치게 하는 것.
발바닥을 슬쩍 피한 장진명의 모두걸기 카운터에, 파앙……! 황보찬의 신형이 그대로 매트에 빨려가듯 뚝 떨어지며 경기의 끝을 알렸다.
잇폰!
주저 없이 손을 번쩍 드는 심판.
첫 3천만 원의 주인공이 결정됐다.
그렇게 첫날 경기가 거의 끝나고, 마지막 메인 매치 하나만을 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