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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87화 (28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7화

287화. 마스터즈(6)

준결승이 전부 끝났다.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전원은 결승에 안착했다. 1년을 쉬었던 선수들인데, 마스터즈란 큰 메이저 대회의 결승에 무리 없이 안착하는 걸 본 관계자들과 선수들의 표정은 참 가관이었다. 이 대회는 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기존 랭커들이야 이미 점수가 충분해서 마스터즈를 건너뛰었다지만, 그 아래 선수들은 이 대회에서 점수를 올려야 올림픽이란 꿈의 무대에 도전할 자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간절하지 않은 선수가 없었다.

그런데…… 1년 가까이 쉬었던 배우인지 선수인지 모를 인간들이 고작 한 달 다시 바짝 운동하고 나와 1년 내내 밥만 먹고 운동만 하는 기존 선수들을 모조리 털고, 결승에 올라갔다.

“빌어먹을 재능…….”

“갓뎀…….”

그게 선수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운동선수가 훈련을 매일같이 할까?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가 당연하다. 하지만 실력 이전에, 기존의 실력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쓰이지 않는 지식은 보통 사장된다.

이건 인간의 뇌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었다. 초중고 때 그렇게 열심히 배워도 대학 이후 사회에 나가게 되면 그 직종과 관련이 없는 기억은 흩어지든가, 기억 아주 깊숙한 곳에 잠들어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몸에다가 쌓은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익히는 건 머리에 쌓는 것보다 빠르다고들 한다. 그건 얼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익힌 만큼, 빠르게 잃는다. 몸으로 쌓은 기억이 그렇다. 그래서 크게 다치었던 선수들이 오랫동안 쉬고 나면, 재활에 그렇게 시간을 들이는 것도 다 몸이 기억을 잃어서였다. 그런데 재활하는 선수들은 살아나겠다는 욕구라도 있으므로 빠르게 기억을 되찾는 거다.

그런데 황금세대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예 유도복을 벗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고작 두 번에서 세 번이 끝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대부분, 각자의 연예계 활동에 집중했다.

그럼 필연적으로 감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 근처로 떠났어야 정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실력의 하락 정도는 무조건 있었어야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 거다.

다들 힘들 거로 생각했다.

관계자들도, 선수들도 아무리 재능이 있지만, 훈련에 매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이번 대회는 감을 찾으러 나왔다고 생각했다.

우승이 목적이 아니고, 시합의 감을 찾는 것.

그게 코리안 황금세대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깨끗하게 틀렸다. 아직 강한결과 황석이 시합을 하진 않았지만, 황금세대의 3인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결승에 안착했다.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였지만, 전문가인 선수들이 볼 때 그들의 경기는 전부 일방적이었다.

시간을 가장 많이 쓴 강지영도 크게 힘들어한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1회전부터 4회전까지 전부 그런 기색으로 결승에 올랐다.

그럼 선수들의 실력이 부족해서일까?

랭킹 후반의 선수들이니 앞 열의 선수들보다 떨어지는 건 객관적으로 봐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급이 뚝!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사실 국가대표 1선발이나, 2선발의 실력 차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실력은 비슷해도 상대성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세계라는 무대를 두고 본다면, 오히려 2선발이 더 잘 먹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떨어진다고 해도 진짜 큰 차이는 아니었다. 애초에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었다. 상향 평준화된 지 오래인 유도 종목에서, 압도적이란 단어는 사라진 지 제법 되기도 했다.

“빌어먹을 빵즈…….”

그런데 그런 단어를 써야 할 것 같은 선수가 나왔다.

한 중국인의 입에서 나온 멸칭 대로 한국인이었다. 아니, 한국인들이었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선수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 자신의 경기가 끝나고 나면 홀가분한 표정들을 하는데, 오늘은 표정이 정말 무거웠다. 그리고 그런 표정들은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애들 멘탈 나갔네.

-보통 지면 저런 표정들 아닌가?

-아니죠. 시합에서 성적을 못 냈으면 침울해하는 건 맞는데, 저렇게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은 안짓죠 ㅋㅋ

-저거 꼭 예전 우리나라 선수들 보는 거 같은데?

-ㅇㅇ 그래 보이네요.

-어이없지? ㅋㅋ

-우리도 그랬다…….

-아 저거 보니까 옛날 생각나네…… ㅋㅋ

익숙한 모습에 한국 팬들은 웃으며 놀렸지만, 예전에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던. 혹은 직접 겪어봤던 선출들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모습이었다.

-근데 진짜 잘하네.

-마스터즈가 작은 대회도 아닌데 저렇게 쉽게 결승까지 가는 게 진짜 놀랍다…….

-보니까 올림픽 준비하느라 1위부터 20위권 선수들은 거의 안 나왔는데, 그래도 다들 이름 있는 선수들은 맞음.

-타고난 거라는 게 저런 거.

-타고났다는 말이야 저기 있는 선수들은 전부 수없이 들어봤을거임 ㅋㅋ

-ㅇㅇ맞음. 보통 마스터즈 정도 나가는 선수들이면 그 나라 첫 번째나 두 번째 실력자들이죠. 그런 선수들은 전부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 들으면서 컸을거임 ㅋㅋ

-똑같은 신동에도 급이 있는 거죠

-그냥 저 선수들은 신동이었고, 강지영이나 쟤들은 신동 중에서도 진짜 천재들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 쉬울 듯.

-그렇네요. 신동 중에서도 천재. 와 씨 ㅋㅋ 생각해 보니까 진짜 기분 뭐 같긴 하겠어요. 저 미술 전공인데, 1년간 접었던 친구가 갑자기 다시 돌아와서 나보다 잘하면, 진짜 붓 내던지고 싶을 듯요

-어후……. 유도랑 연기만 해줘 ㅠㅠ 노래로는 오지 마…….

-효중이 가창 죽이던데?

-아…….

-오늘 시원하게 한판승 달리고 있고?

-하……

-프로젝트로 방송 3사 1등, 음원 올킬……. 너는?

-연습생…….

-그만햌ㅋㅋ 애 울잖앜ㅋㅋㅋ

-나쁜새낔ㅋㅋㅋㅋ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유쾌한 한국의 중계 채팅창이었다. 그들에겐 아, 꼭 우리나라가 우승해야 하는데! 같은 간절함은 조금도 없었다.

* * *

그러나 그런 유쾌함은, 현장에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간절함은 있었다.

싸늘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것처럼.

황금세대의 전원 결승 진출은, 결승전에 오른 다른 선수들까지 당연히 같이 자극했다. 결승까지 온 실력자들도, 설마 황금세대가 전원 결승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 올라는 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결승이고, 상대다. 여기서 자신들이 지면 1년 가까이 쉰, 중간중간 몸을 풀었다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훈련 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게 연습한 황금세대에게 전부 무릎을 꿇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미 면면이 익숙한 다른 선수들에게, 수없이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절대 지지 마라.

반쪽짜리한테 전부 지면, 진짜 수치다.

네가 마지막 희망이다.

반드시 코리아의 황금세대를 꺾어줘라.

이런 부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결승에 오른 그들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특히 강지영과 결승에서 만나게 된 프랑스의 마리옹 트레제는 한쪽에서 차분히 패자전 경기를 관람 전인 지영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디, 부담스럽기만 한가?

솔직히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꼭 지영을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라피앙 파벨로의 일 때문에 프랑스에서 ‘선고’와 나의 무사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마리옹도 두 작품의 팬이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 주말만 되면 나의 무사님과 자막이 올라오기를 매일 같이 기다렸었다. 주인공인 강지영이 유명한 유도 선수라서, 그리고 자신도 유도 선수라서 팬심은 매우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런 강지영이 프랑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

강지영을 보는 순간, 마리옹은 달려가서 사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팀 동료들과 코치, 스태프들 때문에 그런 마음을 최대한 억눌렀다. 시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대진이 좋아서 결승까지 올라온 마리옹은, 결승전에 올라온 강지영을 보며 절망과 환희를 거의 동시에 느꼈다.

우상과도 같은 강지영과 맞붙게 된 점은 좋지만, 강지영과 시합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거기다가 자꾸 다른 선수들이 와서 절대 지면 안 된다고 부탁하고, 격려하고, 협박 같은 말을 하고 가서 더욱 부담스러웠다.

‘도망갈까?’

나의 우상과 경기하는 건 영광이지만, 그만큼의 부담 때문에 마리옹은 결승전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래저래 흔들리는 와중에 시간은 잘도 흘러, 남자부 패자 결승과 결승전 차례가 됐다. 차례대로 60경기가 진행됐고, 66차례가 됐다.

“와 진짜 멋있다…….”

66㎏ 체급의 결승전.

마리옹은 강지영의 친구인 이성진의 그림 같은 업어치기 한판승에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러자 같이 있던 스태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마리옹의 등을 짝! 소리가 나게 쳤다.

“정신 차려라, 마리옹!”

“아, 네. 코치!”

“그래도 저 중에서 강지영이 가장 약하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정신만 차리면 이길 수 있어. 마리옹. 너는 프랑스의 73을 이끌어갈 차세대 에이스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 그래야 다음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지.”

“……네.”

다음 올림픽이라.

그땐 나갈 수 있을까? 친형인 마르스가 그때 은퇴하지 않으면, 자신에게는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텐데. 그걸 아는 코치가 그리 말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놀림 받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73 패자전이 시작됐다.

3회전에 자신에게 졌던 이란 선수와 강지영에게 졌던 안데르손이 나란히 동메달을 확정 지었다.

이윽고 시작된 결승전.

강지영의 테마곡이 먼저 나왔다. 인기로는 강지영이 압도적이지만, 마리옹은 자신이 프랑스 선수라서 뒤에 붙여줬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야간 훈련할 때 매일 듣는 흩어지는을 속으로 흥얼거렸다.

차분한 피아노곡이라 안정을 줘야 하는데.

“후우.”

떨렸다.

손발이 너무 떨려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마리옹.”

“네, 코치.”

“나는 네가 형보다 더 실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

코치의 말에 마리옹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언제나 형과 비교하며 자신을 몰아붙이기만 했던 코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치는 말을 이어갔다.

“재능은 네가 위야. 너의 그 성격이 그 재능의 개화를 막고 있어. 그러니 이번이 기회다. 네가 강지영의 팬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너는 지금 팬 미팅 장에 있는 게 아니야. 이곳은 매트 위다. 승부를 겨루는 장소지. 너는 유도 선수고, 강지영은 너와 결승전에서 만난 적이야!”

“…….”

“그러니 이겨 내라. 팬심? 그건 끝나고 사인을 부탁하면 된다. 사진도 찍어! 내가 다 찍어주마. 안 해주면 바짓가랑이라도 물고 늘어져서 받아주마. 그러니 너는 시합에 집중해. 우상과의 경기? 그게 뭐! 아주 많은 축구선수가 호날두와 메시를 우상으로 삼고 커왔다. 그러나 그들과 붙으면 져주기라도 하던? 아니! 인정받기 위해서 더 열심히 넘어서려고 노력해!”

“…….”

“그러니 너도 보여줘라. 너의 우상을!”

“…….”

“뛰어넘어!”

“…….”

“우상에게 인정받는 거다, 마리옹!”

코치의 말에 마리옹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뛰어넘으면 된다. 코치의 말처럼, 우상에게 인정받는 것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할 수 있지?”

“네! 코치!”

“좋아! 가서 금메달을 가져와! 그걸 가지고 올림픽에 가자!”

“네!”

다음에 가자며?

하지만 이미 기세를 탔다.

자신이 지정한 테마곡이 흘러나오고 입장을 한 후, 강지영과 마주 선 마리옹은 그때까지만 해도 용기가 백배했다.

하지만 이윽고 심판이 입장하고, 그와 인사하고 마주 서며, 그의 눈빛을 더욱 자세히 봤을 때. 그 순간 용기는 모조리 흩어졌다. 마치 강지영의 테마곡의 제목처럼, 산산이. 혹은 뿔뿔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어, 어어…… 으으…….’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빛.

아까 대기할 때 보이던, 살짝 나른한 눈빛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극 중 ‘재’가 적을 앞에 두었을 때의 그 눈빛을 강지영은 하고 있었다. 사납고도, 차가운 기세. 뜨거운 불길이 아니라 차가운 얼음이 연상되는 그런 시린 기세. 마리옹은 깨달았다. 저게 시합에 임하는 선수의 자세라는 것을.

필승의 의지.

그런 의지로 강지영이 하지메! 소리에 한발을 앞으로 딛는 순간, 마리옹은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이 하나로,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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