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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84화 (28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4화

284화. 마스터즈(3)

원래, 마스터즈는 중계 예정에 없었다.

메이저급 대회긴 해도, 그렇게 급이 큰 대회는 아니라 이번 대회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다. MBS도, tvM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지영과 레나 파벨로의 만남으로 다시 한번 불씨가 확 살아나자, 가만히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역시 이선영이 있는 MBS였다. 이미 한 차례 교섭했다가 접었던 MBS는 즉시 다시 국영 방송사인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elevisions)에 연락을 취해 이원 중계를 빠르게 확정 지었다. 다음은 편성 차례였다.

프랑스에서 아침 9시에 시합이 시작됐다. 이 시간에 서울은 오후 5시였다. 정규 편성 방송들이 막 시작하는 시간대였다. 그래서 급히 편성을 조정해야 했는데, MBS는 시원하게 시합 전체를 위해 편성을 싹 밀어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방송사는, 시청률을 잡아먹고 사는 괴물들의 집단이다.

시청률, 그걸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도 남을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바로 방송국이었다. 물론 그 표현은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청률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건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래서 시청률이 보장되는 2024 세계 유도 마스터즈 대회를 그냥 통으로 중계하기로 했고, 이는 시청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오 엠븅이 어쩐 일로 ㅋㅋ

-이번엔 인정 ㅋㅋ 울 애기들 시합 볼 때 없어서 정말 가슴 아팠는데 ㅎㅎ

-애기들?

-저 큰 애가 이번에 고3이랍니다 ^^

-아이고 누님…… 편하게 시청하시옵소섴ㅋㅋㅋ

-오냐 ^^

경기 시작 전, 역시나 분위기는 좋았다.

-엠븅이 이런 건 빠르지. 조용했던 걸 보니 원래는 중계할 예정 없었는데, 어제 강지영이 레나 파벨로랑 만나면서 유럽권에서 확 화제가 되니까 급히 프랑스 방송사랑 합의 본 듯 ㅋㅋ

-근데 당연한 거 아님? 우리는 좀 늦게 알았지만, 그날 유럽, 특히 프랑스는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ㅇㅇ 장난아니었음. 저 파리 거주민인데, 온 도시가 지영의 얘기로 도배됐을 정도임. 펍이나 카페, 공공장소 전부가 강지영 얘기로 시끌시끌했어요.

-헐, 그정도였음?

-ㅇㅇ그정도였음. 진짜 장난아니었음. 특히 강지영이 레나 안고서 살짝 웃는 사진을 쓴 기사 조회수가 미쳐서 폭발했을 정도였음.

-ㅇㅇ 그 사진은 인정. 강지영 그런 미소 처음 봐서 좀 놀랐음…… 그런데 핵심쿵;;

-솔직히 되게 멀리 있는 느낌이라 양유진이 그렇게 안 부러웠는데, 어제는 개부러웠어요 ㅠㅠ 양유진은 지영이 그 미소 매일 볼 거 아냐 ㅠㅠ

-아…….

-아 씨 그건 좀 부럽다 ㅠㅠ

-ㅋㅋㅋㅋㅋ

-남자가 봐도 진짜 좀 심쿵하긴 하더라 ㅋㅋ

-레나 볼 때 진짜 꿀이 뚝뚝 ㅠㅠ 그런데 안타까움을 막 숨기는 것 같은 미소같이 보여서 저는 마음이 아팠어요 ㅠㅠ

-ㅇㅇ 나도 그렇게 봄……. 레나 걔 유전병 앓아서 아프잖아요. 그것 때문에 라피앙이 그런 일 벌인 거고.

-그런데 레나 안아준 거 보면, 강지영도 이제 라피앙 용서한 걸까요?

-음…… 아닐걸요. 지영이 성격 보면, 라피앙이랑 레나를 별개로 생각하면 생각했지, 라피앙을 용서하진 않았을걸요.

-ㅇㅇ 저 친구 행보 보면, 진짜 단호함. 그리고 그만큼 뒤끝도 있고.

-저도 거기에 한 표.

-아, 시합 시작함. 오, 지영이 첫겜이네?

-ㅎㅎ 난 나의 무사님 강지영도 멋있지만, 유도복 입은 강지영도 멋있음 ㅠㅠ

-유도복 입었을 땐 왜 막 검사처럼 보이지 않음? ㅋㅋ

-ㅎㅎ 맞아요! 전문직 종사하는 느낌!

-……뭔 개소리들이야?

-쉿. 팬덤 떴음.

-아…….

지영의 팬덤이 일시에 입장했다. 수천이던 인원수가, 순식간에 수만 단위로 튀었다. 그러면서 채팅창이 매우 난잡해졌다. 기존에 있던 이들은 합죽이가 됐고, 지영의 광팬들이 채팅창을 점령한 순간 첫 게임이 시작됐고.

-헐.

-뭐임?

-일본 선수 왜 저렇게 떨어요?

-졸려 가서요 ㅋㅋㅋ

-조르기 한판?

-대박 ㅋㅋ

-쪽바리 새끼 그냥 쫄려갔네 ㅋㅋ

-껄렁하게 나오더만 등신 ㅋㅋ

시작하자마자 끝나면서 수천, 수만의 조롱이 일본 선수에게 쏟아졌다. 뭐, 그래봐야 그 선수가 볼 수 없으니 타격은 조금도 없겠지만, 일본에게 여전한 국민의 정서가 어떤지, 잘 알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스터즈.

지영은 쾌조의 스타트를 시작으로 대회를 부수기 시작했다.

* * *

2회전 스페인.

전에 붙었던 더러운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었다.

마르띤.

성도 보긴 했는데, 까먹었다. 이 선수는 나름의 매너가 있었다. 지영은 씩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마르띤을 보며, 가볍게 잡아주고 뗐다.

시합 시작.

오른쪽 자세. 업어치기 선수였다.

단신의 체구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업어치기가 주특기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역시 힘이 좋았다. 그래서 지영은 마르띤이 그 힘을 이용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봉쇄했다. 이 체급에서 지영이 가지는 가장 절대적인 이점은, 바로 긴 팔을 이용한 잡기였다.

그 잡기로 시작부터 마르띤을 털었다.

잡고, 털고, 치고, 빠지고의 반복은 마르띤의 혼을 쏙 빼놨고, 그가 어? 하는 사이 이미 지도를 2개나 받은 상황까지 내몰렸다. 그제야 어? 하고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게임은 끝나기 직전이었다.

지영은 무리하지 않았다.

지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경기의 뜨거운 열기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데 그렇게 되면 보통은 어느 정도는 흥분하게 마련이었다.

마치 세기의 가수 콘서트장에 가면, 원래는 그 가수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주변의 열기에 휩쓸려 방방 뛰는 것처럼 말이다.

머리까지 차오른 열기는 그런 마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 마력을 컨트롤했다. 조급하게, 혹은 나도 모르게 드는 메치기의 욕구. 특히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이 사방에 가득하면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맛테!

지영은 그러지 않았다.

1분 남겨두고 심판이 다시 시합을 중지시켰다. 그러곤 도복을 고치란 사인을 보냈다. 지영은 풀어진 도복을 그 상태에서 수습하려다가, 그냥 띠를 풀었다.

꺄아아!

띠를 풀자 펄럭이며 벌어진 도복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난 복근과 몸의 테에, 여성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사실 그들은 지영이 이겼는지 안 이겼는지보다, 지영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환호했다. 드러나는 살결과 유도의 마초적인 느낌이 환호의 이유였다. 지영이 띠를 고쳐 매고, 상대도 고쳐 매자 심판이 지영에게 지도를 줬다. 그리고 이어서 마르띤에게도 지도를 줬다.

지영은 지도 2개. 마르띤은 3개.

지영의 반칙승이었다.

인사를 하고 나온 지영은 후,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몸 잘 풀렸지?”

“네.”

이번 대회에서도 전담으로 코칭을 해주는 김재정과 함께 다시 대기실로 돌아간 지영은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고,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두툼한 모포와 패딩까지 입은 다음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제 2회전.

결승까지는 2판이 남았고, 우승까지는 당연히 3판이 남았다.

지영은 몸이 굳지 않게 계속해서 움직이며 대기시간을 보냈다. 쿠웅! 와아! 체육관이 떠나가라 큰 함성이 나서 뭔가 했더니, 여자부 경기에서 프랑스 선수가 엄청난 업어치기를 선보여 한판을 따낸 뒤, 그 환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줄줄이 한판으로 경기가 끝났다.

“오늘 경기 진짜 스피디한데?”

같이 조용히 대기 중이던, 평소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으로 시합에 집중 중이던 이성진이 준비를 끝내고 몸을 다시 본격적으로 풀었다. 그리고 지영도 거기에 동참했다. 어차피 이성진이 들어가고 나면 거의 엇비슷하게 자기 차례가 올 게 분명했다.

쿠웅!

와아아!

그사이 또 한 경기가 한판으로 끝났다.

잡고 부딪치기로 빠르게 열을 올렸다. 한 번에 50개씩, 쉬지 않고 5세트쯤 돌자 몸에 다시 열기가 피어났다.

3회전.

이 정도 오면, 이제 참가자 중 실력자들만 보통 남는다. 원래 실력자들이나, 오늘 컨디션이 정말 좋은 선수들이 남아서 이제 본격적인 메달 경쟁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었다. 3회전이면 져도 패자전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총 여덟 명의 선수가 남았다.

3회전이 끝나고 나면 4명이 남고, 4회전이 끝나고 나면 2명이 남는다. 그리고 5회전은 결승전이다.

지영은 숨을 골랐다.

사실상 결승까지 지영은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가 없음을 확인했다. 마스터즈. 분명 메이저 대회다. 하지만 진짜 실력자들은 이미 랭킹 점수를 충분히 획득했기 때문에 마스터즈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년에 있을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진짜 실력자들은 내년 여름 초입에 있을 세계 선수권에서나 만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지영은 방심하지 않았다. 분명 실력자들보단, 랭킹 후미의 선수들이 많이 나왔지만, 유도는 어? 하면 천장을 보게 되는 경기였다. 아니, 방심하지 않아도 제대로 걸리면 천하의 지영도 피하지 못하는 게 유도 기술이었다.

그러니 방심도 방심이지만,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겨야 했다.

10분 뒤 이성진이 들어갔다.

“지영아. 오늘 이상하게 한판 많이 나온다. 조심해, 알았지?”

“네.”

김재정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보통 유도 경기는 많이 하면 20분도 하고 그런다. 비슷한 실력자끼리 붙으면, 5분에서 10분은 기본으로 넘어갔다. 그쳐 시간까지 합치니 실제 경기 시간이 10분이어도, 총소요 시간은 15분쯤은 훌쩍 넘긴다고 보면 이해가 쉬웠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경기가 거의 없었다.

오늘은 진짜 한판승 파티였다. 유도는 한판이 자주 나오는 경기기는 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경기가 2분 만에 한판으로 끝나는 종목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짜고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것처럼 한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성진이 들어가고, 지영도 거의 동시에 들어갔다.

앞 경기가 역시 1분 만에 한판으로 끝나서였다. 자리에 가서 서자, 상대의 부리부리한 눈빛이 보였다.

노르웨이 선수였다.

아직 20대 중반인데, 수염이 장난 아니었다. 거기에 기골까지 장대하니, 이게 유도 선수인지 아니면 옛 시대의 바이킹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신장도 지영보다 커 보였다.

‘계체는 어떻게 통과했지?’

저 몸으로 73까지 감량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시합이 시작됐다. 잡아보는 순간 지영은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진짜 타고난 거네…….’

미친 피지컬이다.

힘이 장사인 정도를 넘어서, 이건 뭐 웬만한 사내는 멱살 잡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도 남을 정도의 힘이었다.

대단한 힘.

그러나 잠깐 그 힘을 받아 상대해보던 지영은 이 선수가 차라리 유도 말고, 투포환이나 역도 같은, 상대가 없는 종목을 골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

‘유도 지능이 이건 뭐 거의, 천치 수준이네.’

이 선수를 얕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말 그대로였다. 노르웨이의 안데르손은 분명 엄청난 피지컬에 신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유도 지능이 없었다. 이 말은 곧, 기술도 없고 시합 운영이 형편없단 뜻이었다.

그걸 밀려나는 바람에 먼저 지도를 한 개 받는 순간 깨달은 지영은 심판이 다시 하지메를 외치자, 본격적으로 안데르손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유도는 힘이 전부가 아니었다. 피지컬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도의 유는 부드러울 유고, 이는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유술이라서 붙은 단어였다.

애초에 카운터라는 게, 그런 거였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치는 것. 복싱도 그렇고, 유도도 그랬다. 기술을 걸면서 상대가 준 힘을 이용해, 지영은 다시 시작함과 동시에 잡자마자 거칠게 잡아당겨 몸에 붙이는 안데르손의 힘을 이용해 가슴으로 바짝 붙어 툭.

안뒤축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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