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2화
282화. 마스터즈(1)
악!
으아아!
“더! 더 빨리!”
“허리 숙이지 말고! 펴고 호흡해!”
“초 늦어진다! 한 바퀴 더!”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입촌 일주일 뒤부터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아주 많은 유도 전문가들이 유도는 체력 스포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유도는 고작 4분 게임이다. 투기 종목 통틀어서 가장 짧은 스포츠였다.
그런데 고작 이 4분 게임에,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고 나오면 녹초가 된다. 시원하게 한판승으로 돌려세우지 못하면 연장전까지 가기도 하고, 그럼 10분이 될지 20분이 될지 누구도 몰랐다. 그런데 굳이 10분 경기를 다 치르지 않아도 딱 4분 경기면 일단 호흡이 흩어지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체력왕이라고 하는 임효중과 강한결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치르는 4분. 고작 이 4분에 그럼 왜 체력이 바닥날까? 파이팅 있게 잡고 움직이는 건 사실 모든 스포츠가 똑같은데 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전력’을 다한 4분이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실력자끼리 만났는데 힘에 여유를 준다?
애초에 이건 말도 되지 않았다. 태권도처럼 거리를 주는 것도 아니고, 복싱처럼 계속해서 대치 상태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레슬링처럼 잡고 부대끼는 것에 가깝지만, 그래도 또 결이 조금 달랐다.
레슬링복은 제대로 잡는 게 어려워 잡기 싸움이 아주 오래 지속되는 편이지만 유도 경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서로 제대로 잡지 않고 조금만 헛돌아도 그쳐를 한 뒤 바로 지도를 줘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빠르게, 쉴 틈 없이 전력으로 맞붙는다.
체력관리? 호흡 관리? 반사적으로 몸에 익힌 것대로 하지만 그게 그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그런데 체력전으로 경기가 흘러갈 때,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기술과 시합 운용이 백중세라면, 남은 건 결국 체력이었다.
물론 ‘운’이라는 요물이 가끔 끼어들어 승패를 결정짓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런 순서로 흘러간다.
그래서…… 유도 선수의 체력 훈련은, 지옥이다.
“우욱! 우우욱!”
새벽이다.
자고 일어나서 막 시작한 운동이라 먹은 것도 없어서 위액만 꾸역꾸역 올라왔다. 여기저기서 바닥에 뻗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나마 상체를 세우고 호흡을 다듬을 정도의 멀쩡한 사람은 임효중과 강한결이 유일했다. 이성진도, 체력이 약한 편이 아닌 지영도, 황석과 장대호도, 그리고 새로 들어온 60의 지윤호도, 전부 거친 숨을 몰아쉬다 못해 위액을 게워내고 있었다.
일주일째, 새벽 운동마다 이러고 있었다.
무식할 정도의 체력 훈련. 이렇게 스케줄을 짠 이유를 지영은 알고 있었다.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전원은 1년간, 제대로 훈련하지 않았다. 각자 방송 일과 드라마, 영화 촬영 등으로 그나마 가장 훈련에 집중한 건 임효중이 유일했다.
그래서 전기정 감독은 기초부터 다시 쌓을 작정이었다.
그 기초는 당연히 체력이었다.
체력.
그리고.
하체.
이 두 가지를 주춧돌 삼아 쌓은 다음, 그 위에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사실 이미 경지에 오른 선수들이다.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실히, 공고하게 쌓았다. 전기정 감독은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정 감독은 국대 선수들의 스타일에 변화를 줄 생각이라고 했다. 전기정 감독이 제시한 방향은 간단했다.
강지영.
카운터.
시합 운용.
이 세 가지였다.
잡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 유도. 아직도 한국 유도의 고질적인 문제는 잡기 싸움이었다. 잡으면 확실하게 승부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지만, 잡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시합 스타일은 황금세대가 없었던 1년 동안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그걸 타파한 선수는 장대호와 이우진이 유일했다.
그래서 전기정 감독은 고심 끝에, 지영의 플레이 스타일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단단한 하체에서 나오는 다부진 중심.
4분 시합은 물론, 10분을 뛰어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
기술의 결을 볼 줄 아는 안목.
그리고 카운터.
전기정 감독이 제시한 이상향이었다. 그걸 위해서 가장 먼저, 체력부터 조지고 있었다. 죽을 맛이었다. 이 정도의 빡센 체력 훈련은 지영도 진짜 오랜만이라서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났다. 휘청휘청. 천하의 임효중도 걷는 게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그런 유도 대표팀을 다른 종목 선수들이 안쓰럽게 바라보며 갈 길을 갔다.
유도팀은 유명했다.
오죽하면 축구 선수들보다 많이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새벽 운동을 끝내고, 아침을 먹고 다시 오전 훈련이다.
오전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밸런스를 깨지 않는 선에서 하체 단련이 주목적인 트레이닝이었다. 다행히 웨이트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영은 이미 이 작업을 고등학생 때 끝내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기정 감독이 모신 전문가들은.
“음, 지영 선수는 굳이 여기서 더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지금 비율이 매우 환상적이에요. 여기서 괜히 더 손대는 건, 오히려 밸런스만 망가뜨립니다.”
“맞아요. 이야. 이런 비율을 가진 육체를 볼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네요.”
오히려 전문가들은 그렇게 감탄만 했다.
이상적인 작업을 이미 고등학교 때 끝낸 지영은 당연히 하드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벗어났고, 모두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그런데 지영의 뒤로 줄줄이 밸런스 교정이 필요 없단 진단을 받았다.
지영이 그 고생을 하며 작업하는 동안 황금세대도 놀고 있진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남들 하는 대로 했는데 세계에서 알아주는 선수가 되었겠나? 당연히 아니었다. 다들 신체를 자기 스타일에 맞춰 최대치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즉, 밸런스 조정을 위해 괜히 손대면 오히려 역으로, 밸런스가 망가지는 상황이었다.
“니들은 진짜, 대단들 하다.”
절레절레.
코치진이 예상치도 못한 결과를 받은 황금세대를 보며 다들, 갑자기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런 작업이 다른 선수들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밸런스를 갑자기 건드리는 건 문제가 되니, 앞으로 천천히 조정하는 걸 과제로 삼고 웨이트가 시작됐다.
지영과 친구들은 딱 현상 유지에 목적을 두었다.
체중이 늘지 않는 선에서, 좀 더 오밀조밀하게 만드는 작업. 힘들지만 그래도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났다. 그렇게 훈련하다 보니 12월 말. 마스터즈의 대회가 다가왔다.
지영은 당연히 이 대회에 출전했다.
현재 지영의 랭킹은 30위권 정도였다. 지난 1년간 대회에 나가지 않아 거의 커트라인에 있던 순위가 뚝 떨어진 거다. 이 랭킹은 적어도 다시 10권 근처에는 놓아야 했다. 올림픽은 상위 16위까지 출전권이 주어지니, 10위 플러스마이너스 1, 2정 도가 가장 이상적이었다. 다행이라면 이 순위를 올리기 좋은 대회가 올림픽 전까지 줄줄이 있다는 점이었다.
올해 마스터즈 개최지는 올림픽 개최지였던 파리였다. 파리에서 마스터즈와 파리 오픈 컵이 석 달의 간격을 두고 열리는데, 이 두 대회는 랭킹을 올리기 아주 좋은 대회였다. 그래서 당연히 출전한 지영이 프랑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을 나섰는데…….
꺄아아!
우와아아!
엄청난 환호성이 대표팀을 반겼다.
움찔.
문이 열리자 갑자기 들린 환호성에 지영은 이제 막 부팅한 폰을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보다가 화들짝 놀라 폰을 떨어뜨렸다. 지영도 놀라서 예상하지 못한 환호였다.
강지영! 강지영!
그러곤 지영의 이름을 연호했다.
지영은 반사적으로 이런 스케줄엔 무조건 대표팀과 함께 출발하는 임은진을 찾았다. 그녀는 뒤에서 지영의 시선에 앞으로 오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줬다.
“내가 프랑스에서 너 인기 장난 아니라고 했지?”
“……그게 공항에서 이렇게 할 정도였어요?”
“그럼? 당연하지. 지영아. 너는 프랑스에서는 방탄급이야. 왜 그런지는 알지?”
“아 혹시?”
“응. 라피앙 파벨로의 영향이지.”
프랑스는 지영이란 한 인간에게 미안해했다.
특히 K 문화를 존중하는 이들은 지영에게 죄인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좀 전에 말한 라피앙 파벨로 때문이었다. 이미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이용해 지영을 끌어들여 크게 상처 입힌 사람이 라피앙 파벨로고 그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패션 하면 프랑스다.
프랑스 파리의 패션 위크는 당연히 세계에서도 손꼽혔다. 그런 패션의 도시에, 강지영이 뜬 거다. 무려 루이비통을 포함한 명품 브랜드 전체를 까버린 고고한 새끼가 본진에 말이다. 그러니 마스터즈 대회는 이미 지영이 선발전에서 우승했을 때부터 뜨거웠다. 지영이 파리에 시합을 올까 말까로. 이런 관심은 당연히 기사로도 났다. 하지만 훈련에 매진 중이고, 그때는 거의 인터넷이 없는 오지 생활 모드인 지영은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황금세대 매니저라 스태프 자격으로 함께 출발한 임은진에게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좀 긴가민가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니, 솔직히 좀 놀랍고 어색했다.
공항 관계자는 그제야 얼른 다가왔다. 일단 함께 온 사람들은 전부 빠졌다. 같이 온 선수들도 다른 스태프들의 인솔하에 공항을 빠져나갔다. 당장 내일모레부터 시합이니, 괜히 여기서 잡혀 컨디션 조절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당연히 남았다.
“미스터 강!”
그때 한 사람이 다가오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음, 낯이 익다. 누군가 했더니 예전에 독지가 기사가 나갔을 때 프랑스 국영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왔었던 기자였다. 마귀할멈이 생각나는 코를 가진 전형적인 프랑스인이었다.
이름은 미쉘.
강한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섬세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 미쉘을 반긴 건 강한결이었다.
“반가워요, 미쉘.”
부드러운 불어에 미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프랑스 말이 많이 늘었네요? 그때랑은 확실히 다른데?”
“조금? 공부했어요.”
대단한 놈…….
강한결은 무려 불어로 미쉘과 대화를 시작했다. 차분하게 서서 미쉘과 대화를 나누는 강한결. 그런 강한결을 향해 무시무시하게 터지는 카메라. 눈이 부셔서 뜨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들 이런 스포트라이트는 익숙했다.
배우, 가수 등을 하며 한동안 수없이 받아봤기 때문이었다.
가장 활동 경력이 짧은 임효중도 반년간 질리게 받은 게 이런 카메라 불빛 세례였다.
미쉘과 한참 대화를 나누는 강한결.
강한결은 감독과 임은진, 그리고 지영을 보며 미쉘의 말을 전달했다.
“30분. 팬들도 있으니까 딱 30분만 미팅하자고 하네요. 장소는 밖에 마련했고.”
“흠…….”
전기정 감독은 고심했다.
시합은 내일모레다. 그러니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감량과 오랜 비행으로 선수단은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시합이 끝나고 바로 복귀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팬 미팅을 한다면 시간은 지금밖에 없긴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선수촌을 기자가 그렇게 들락날락했는데도, 지영의 기사를 그렇게 썼는데, 그의 공식적인 기사를 쓴 기자는 없었다.
지영은 기자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래서 전기정 감독도 선수단 훈련 쪽엔 기자들이 얼씬도 못 하게 했다. 비록 1년을 쉬었지만 73체급을 호령 중인 미야모토 신지를 비롯한 선수들을 잡았던 선수로는, 지영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영은 평소에는 무던하지만 기자, 언론과 연관된 일엔 상당히 날카로워졌다. 따로 말은 안 하지만 표정과 기세가 확 변하는 건 보면 그냥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평소에는 없던 성질이 그 순간에만 폭발했다.
그래서 전기정 감독도, 그 순간에만큼은 지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시선이 몰리자 지영은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얼추 천 명에 가까웠다. 이 정도 인원이 그래도 황금세대를 보기 위해 모였는데, 그리고 이렇게 환영해주고 있는데 그냥 훅 가버리는 건 말이 안 됐다.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빠르게 공항 관계자와 미쉘이 장소로 안내했다. 목적지는 주차장 건너편의 공연장이었는데, 확실히 천 명은 넉넉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팬이 들어서고, 이어서 황금세대가 들어서자 30분의 짧은 팬 미팅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