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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81화 (28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1화

281화. 또 다른 일상(7)

백지 수표 CF를 걷어차 다시 한번 인터넷을 달궜던 지영의 다음 행보는 선수촌 입촌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팬 미팅 준비로 일주일만 시간을 더 달라는 거지?

“네, 감독님. 어떻게 안 될까요?”

-안 될 게 뭐 있어? 지영이 네 팬이면, 유도 팬이기도 한데. 당연히 되고말고.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고맙지. 그럼 준비 잘하고, 다치지 말고 입촌해라. 알았지?

“네, 감독님.”

뚝.

다행히 전기정 감독은 입촌 전에 팬 미팅을 가볍게 허락해 줬다.

해외 팬들 팬 미팅만 하고 국내 팬을 소홀히 하면 당연히 말이 나올 게 분명해서 선발전이 끝난 날 소속사 홈페이지에 국내 팬 미팅은 조속히 일정을 잡아 진행하겠다고 해놨다. 그런데 지영이 입촌해 버리면, 한동안 연예계 활동을 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 시간이 적어도 1년 가까이니, 들어가기 전에 미리 공지했던 것처럼 하고 들어가는 게 나았다. 하지만 팬 미팅이란 게 하루 이틀 만에 준비가 뚝딱 끝나는 게 당연히 아니었다. 장소 대여와 팬 미팅 인원 선별에, 프로그램 준비도 해야 하고, 각종 선물부터 이것저것 어쨌든 준비해야 할 게 정말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빅 이벤트인 팬 미팅 준비를 해본 경험이 소속사엔 전무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연예기획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을 서포터하는 작은 회사에서 출발했고, 이어서 장세리가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그쪽 스태프들이 좀 보충이 됐다. 그러다가 이성진을 시작으로 연희고 아이돌이 전원 계약을 맺었고, 스태프가 좀 더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전문적으로 매니지먼트 쪽에서 활동하다가 온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헤드 급이 몇 명 오고, 나머지는 그저 일반 사원 뽑듯이 뽑아 가르쳤을 뿐이었다. 이런 회사이기 때문에 빅 이벤트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 헤드 급도 엔터 쪽 대기업에서 온 인원들이 아니라, 다들 시작부터 헤맸다.

그게 무슨 소리냐면, 원래 소집 날이었던 일주일 후까지는 어림도 없단 소리였다.

그래서 지영은 일주일의 시간을 더 벌었다.

다행히 전기정 감독도 쿨하게 일주일의 말미를 더 줬고, 헤매기는 했어도 이곳저곳에 물어 물어가며 준비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팬 미팅은 지영이 신경 써야 할 것도 상당히 많았다.

“노래는 안 되겠지?”

회의 중 나온 질문에 지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노래라.

그건 효중이가 잘한다.

자기는 젬병이고.

“춤도 힘들고?”

“하하…….”

그것도 효중이가 잘한다.

춤에 관해 지영은 몸치는 아니다. 운동을 그렇게 잘하는데, 심지어 투기 쪽을 잘하는데 몸치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지영은 전문적으로 춤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배워볼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춤이나 노래는 이상하게 창피해서, 아예 손도 안 댔던 장르였다.

“나한테 바짝 며칠만 배워볼래?”

미팅에 같이 참여한 친구들.

그중 임효중이 한 말에 지영은 주먹으로 친구의 옆구리를 툭 쳤다. 헛소리하지 말란 신호였다. 친구는 그걸 당연히 금방 알아챘지만, 입을 닫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냥 간담회처럼 대화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 팬들도 뭐 크게 특별한 걸 기대하지는 않을 텐데.”

“기대하지 않으니까, 서프라이즈로 해주면 더 좋아할걸?”

지영의 말을 칼처럼 자르고 들어온 건 당연히 이성진이었다. 싱글싱글 웃는 이성진과 친구들을 보니, 노래는 넘어가도 춤은 꼭 시킬 작정 같았다. 지영은 빠르게 항복했다.

“……효중이랑 듀엣 무대 하나 만들게요.”

“오케이! 이걸로 20분!”

20분이나?

준비와 이것저것 쓰면 그 정도는 충분히 때울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따로 프로세서가 없다 보니 밑바닥부터 층층이 설계를 해나가는 과정 중이었다. 그러니 이런 작은 서프라이즈 하나가, 설계에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그날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지영이지만, 당연히 지영의 친구들은 전원 참석이었다. 끼가 많은 친구들이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도 제법 됐다.

“참, 더 프로젝트 애들한테 연락은 해봤어?”

더 프로젝트는 임효중이 반년간 했었던 아이돌 팀의 이름이었다. 팀 이름도 진짜 심플하게 더 프로젝트로 지었었고, 반년이지만 제법 유의미한 족적을 남기고 해산했다.

“시간 빼기 힘든가 봐요. 그리고 사이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어서 리더 형 빼면 연락도 잘 안 되고요.”

“아, 그래? 미안.”

“아니요, 괜찮습니다.”

미팅을 주도하는 심은희 팀장의 사과에 임효중은 가볍게 웃는 걸로 받았다. 미팅은 계속 이어졌다. 총 팬 미팅 시간은 3시간으로 잡았다. 멀리서 오는 팬들도 있을 건데 영화 한 편인 2시간으로 잡기는, 너무 성의가 없어 보여서였다.

간담회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느 정도지 계속 대화만 나눌 수는 없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벤트로 코스를 짜는 건 필수였다. 그런데 그걸 막 짜 넣을 수는 없었다. 팬 미팅의 주인공인 지영의 의사가 당연히 들어가야 했다.

“저.”

“어? 어. 한결아. 왜?”

가만히 듣고 있던 강한결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모두의 시선이 몰리자. 강한결은 가만히 생각하고 있던 의견을 꺼냈다.

“지영이 팬 미팅은 그렇게 화려하게 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지영이 이미지 자체가 차분하고, 음.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허수아비?”

“네, 그냥 가만히 서 있는. 불쑥 논밭에 박혀 있으니 존재감은 있는데 가만히 있으니 좀 의욕 없는 캐릭터요.”

“아아…….”

욕이야, 칭찬이야?

지영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지영은 찌릿,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사람들을 흘겨봤다. 물론 장난이 100%인 흘김이었다.

“제가 그래요?”

“응. 너 딱 그래.”

지영의 질문을 받은 건 가장 옆에서 케어해 주는 임은진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장난이었는데, 어째 상처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너무 이해가 갔다.

논밭에 홀로 솟은 허수아비.

‘딱 나네.’

그런 마음에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럼 음, 댄스 이것도 빼?”

“그건 넣어도 될걸요? 허수아비가 춤추면 재미는 있잖아요. 그리고 팬들도 우와, 목석같은 지영이가 춤을 다 추다니, 우리한테 잘해주려고 정말 노력 많이 하는구나, 하고 감동받을 수도 있고요.”

“……그러네? 근데 한결아. 여기 취직 안 할래? 경력직 대리부터 시작하는 건 어때?”

심은희 팀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들 순간 빵 터졌다.

이런 농담에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고 웃음이 터진다는 것 자체가 분위기가 나쁘지 않음을 의미했다.

“좋아. 그럼 댄스 하나 넣고, 나머지는 그냥 편안한 대화의 장을 만들어 보는 걸로 하자. 평소 궁금했던 것도 많을 테고. 아, 밥도 먹어야 하니까 도시락 준비도 하고. 인원은 얼마나 하는 게 좋겠니?”

심은희 팀장의 말에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저야 가능하면 되도록 많은 분을 부르고 싶지만, 그건 솔직히 저희 능력 밖이니까요. 보통 연예인들 하는 만큼은 모시고 싶어요.”

“모시고 싶다라. 말도 참 예쁘게 한다니까? 알았어. 그럼 인원은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추려 모실게.”

“네, 그 부분은 부탁드릴게요.”

“응. 그럼. 그게 우리 일인데. 자…… 그럼 저녁 먹을까요, 이제?”

싱긋.

심은희 말에 미팅에 참여한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하지만 역시, 억지웃음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는다는 것. 그래, 야근 결정이란 뜻이었다. 야근 자체가 자신 때문이라 지영은 슬그머니 빠졌다.

“우리도 저녁 먹으러 갈까?”

“가야지. 앞에 고깃집 가자.”

“오케이!”

신난 이성진을 필두로 우르르 나가 식당으로 향했다. 갑자기 이성진부터 시작해 우르르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저녁을 먹던 사람들의 시선이 곧장 몰렸다. 하지만 띵 소리에 나온 직원이 능숙하게 지영과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이성진이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도 안 보고 고민도 없이 곧장 시켰다.

“여기 삼겹살 다섯, 목살 다섯, 그리고 항정살도 다섯 개 주세요!”

무려 한 번에 십오인 분.

하지만 직원은 역시 이것도 익숙한지 네 삼겹 목살 항정 오 인분씩이요,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 나도 하고 싶다. 팬 미팅.”

아직 밑반찬도 세팅되지 않은 테이블에 이성진이 엎드리며 한 말을 임효중이 툭 받았다.

“하고 싶다고 해.”

“에이, 이번엔 지영이한테 양보해야지. 그리고 아까 봤잖아? 지영이 하나 하는데도 일손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거. 거기에 나까지 한다고 하면 다 멘붕 오실걸?”

“하긴, 그렇긴 하더라. 넌 나랑 올림픽 끝나고 같이하자. 한결이랑 석이는 팬 많으니까 따로따로 하고.”

“아 왜! 나도 팬 많아!”

“알아. 많은 거. 그래도 나랑 같이해.”

“어, 음. 알았어.”

역시, 이성진 케어는 임효중이 최고다.

팬 미팅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누가 문을 노크했다. 이성진이 가서 열었더니 역시 팬으로 보이는 사람 몇 분이 서 있었다. 지영은 그중, 엄마·아빠랑 같이 온 아이한테 시선이 갔다.

귀.

귀가 부어 있다.

벌겋게 부어오른 게 딱 봐도…….

“유도 하니?”

“네!”

아이는 자기가 유도하는 걸 바로 알아봐 주니, 세상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반해 엄마로 보이는 분은 아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영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이제 초등학생 같은데 벌써 귀가 부었다. 초등학생 놀이에 가까운 훈련으로는 저렇게 귀가 부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벌써 전문적인 선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봐도 좀 과했다.

“초등학생 같은데, 벌써 굳히기 연습해?”

“아, 이건 굳히기 잘하고 싶어서 주짓수 배우면서 이렇게 됐어요!”

“아아.”

서브미션을 배웠구나.

그래서 레슬러나 유도선수처럼 귀가 부은 거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역시 그게 불만이었을 거고.

‘하긴, 운동선수보다는 공부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들 하니까.’

운동보단 안전한 공부.

이건 지난 십수 년간 변하지 않은 정서였다. 지영은 그걸 탓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의 편을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그냥 같은 종목에 종사하는, 같은 선수로서 아이를 존중해 줬다.

지영을 필두로 전부 사인을 해주고 나자, 음식이 들어왔다.

15인분.

산처럼 쌓였을 양 같지만 15인분은 순식간이었다. 한창 먹을 나이인 데다가, 이제 막 시합이 끝나 감량이 필요 없었고, 잘 먹기로 소문난 종목인 유도선수다. 똑같이 15인분이 더 들어오고, 인당 공깃밥과 냉면이나 비빔냉면 하나씩은 끝내고 나서야 식사가 끝났다.

이렇게 나온 식사 비용은 갹출이다.

워낙에 많이 먹으니 회사에서 이런 식비를 감당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특히 다 같이 모였을 때는. 물론 리치 누님은 신경 안 쓰겠지만, 직원들은 정해진 가격에서 식사를 하기에 괜히 차별감을 느낄 것 같아, 모여서 하는 식사는 무조건 각출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섯이서 진짜 작정하고 달리면 회사 전체가 회식하는 비용과 비슷했다. 딱, 음식값만 따진다면 말이다.

지영은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헤어져, 양유진을 만나러 갔다.

날이 춥기도 했지만,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웬만해선 꽁꽁 싸매고 다녀야 하는 양유진이 지영이 택시에서 내리자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도도 달려와 폭 안겼다. 팬 미팅이 끝나면 또 입촌이라, 한동안 볼 수 없으니 지영은 매일 시간을 내서 그녀와 만나고 있었다.

“오늘은 뭐 했어요?”

“음, 팬 미팅 준비 회의하고, 밥 먹고, 그리고 지금 여기요.”

“음, 다 같이요?”

“네.”

“좋았겠다.”

그럼.

좋고말고.

여전히 좋다.

그냥 나란히 걸어도 좋고,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도 좋다.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고, 보고 또 봐도 역시 애틋한 마음이 남았다. 지영이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그녀와 앞으로 함께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 건 그녀가 매우 강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양유진은 인생사 전체가 강제로 까발려졌다.

심지어 어느 보육원에 언제, 몇 월 며칠에 버려졌는지까지 언론은 파헤쳤다. 세기의 스타, 강지영의 연인이란 점 때문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을 겪고 나면 멘탈이 너덜너덜해져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양유진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하게 내가 강지영의 연인이다! 라고 외치고 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죄인처럼 숨지도 않았다.

당당하게 다니던 일을 계속 나갔고, 주변에서 물어봐도 현명하게 대답할 건 대답하고, 아닌 건 함구하면서 생활을 이어갔다.

이 자체가, 버텨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겨내고 있단 뜻이었다.

세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지영의 옆에서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지영에겐 더더욱 그게 확신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강한 사람이었다.

‘강하지 않았으면 애초에 동생을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일하지도 못했어.’

누군가를 위한 희생 자체는 단단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진심을 담았다면, 그건 그만한 각오가 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양유진은 진심으로 동생을 위해 희생했다. 자기 삶은 버리고, 동생을 위해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사용했다.

어지간해서는 솔직히, 불가능했다.

그런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지영은 더욱 마음이 갔다.

그런 좋은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고, 팬 미팅 또한 문제없이 잘 치러낸 지영은 12월 초, 선수촌에 입촌했다.

올림픽까지는 채 10개월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의 입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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