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80화 (28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0화

280화. 또 다른 일상(6)

[이변은 없었다. 연희고 황금세대 전원 우승!]

[전원 우승이 이변이라면 이변이었다.]

[모두의 불안을 시원하게 깨뜨렸다.]

[천재는 시간을 거슬러야, 천재다.]

[황금세대. 함부르크 올림픽 출격 준비 완료!]

[배우에서 다시 선수로. 강지영의 변화무쌍한 행보!]

황석에, 장대호까지 선발전 우승을 거머쥐는 순간, 준비되었던 기사가 와르르 올라갔다. 많은 사람이 주목했던 선발전이었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배우 강지영과 방송 활동을 병행하는 황금세대의 천재들이 과연 국가대표로 선발될 것인가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계를 시청하진 못해도 기사로 계속 확인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그리고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결승전 소식과 황금세대의 국가대표 확정 소식은 빠르게 넷상으로 퍼졌다. 어떤 종편에서는 강지영과 황금세대의 시합을 전문가를 초빙해 해석하기도 했다.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니 이런 기획편성을 넣어도 먹힐 거란 예상을 한 건데, 그 PD의 감은 정답이었다.

많은 시청자가 그쪽으로 몰렸다.

무려 전 국가대표 2인이 나와 황금세대의 경기를 분석하고 있으니 전문성과 신빙성이 높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 시작한 거다.

런던에서 말도 안 되는 판정을 받은 전 국가대표이자, 방송인이 지영의 경기를 가만히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 지금, 지금이요.]

[네? 이 부분이요?]

사회자가 잠시 영상을 끊자, 조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부분이요. 이제 다시 틀어주세요. 아, 맞네요. 두 선수가 지금, 승부처라는 걸 알았어요.]

[아, 여기가 승부처입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요?]

사회자가 과장되게 궁금증을 표하자, 조현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표정이 변했어요. 자세랑. 아마 좀 전에 그쳐를 했을 때 지도가 들어가지 않았고, 여기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게 되면 상대에게 지도를 줄 수 있다는 걸 안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본능적으로 그걸 깨닫고, 승부처로 생각한 겁니다.]

조현준의 말에 같이 나온 전 국가대표, 신준섭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기가 승부처. 지영이가. 아, 강지영 선수도 그렇고 이우진 선수도 여기서 우세를 잡는 선수가 경기 분위기를 잡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승부를 봤고, 승자는 강지영이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여기서 승부가 났어요. 막판에 이우진 선수가 쇼부를. 아니, 승부를 보려고 했는데 지영 선수가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서 경기는 그대로 끝나버렸죠.]

아아.

이번에도 사회자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야, 유도가 굉장히 파이팅 있는 종목이라 이런 섬세하고 세밀한 심리전은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요?]

사회자의 질문에 조현준과 신준섭은 후,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리전이 힘든 건 맞는데, 저 친구는 그게 되더라고요.]

[평상시에 몸에 익혀 놓은 기술과 체력으로 본능에 의지해 맞붙는 원초적인 경기. 라고 저는 생각했는데 보니까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하하.]

두 패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아아 그럼 강지영 선수가 특별한 거군요? 하며 강지영을 띄워줬고, 두 패널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특별한 한 인간을 좀 더 위로 올려서 시청률을 잡겠다는 PD의 방법은 당연히 통했다.

연말. 아마 PD는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게 될 공산이 컸다.

그렇게 선발전 자체도 화제로 만든 지영은, 서울의 소속사로 와 있었다. 시합이 끝났으니 내려가도 되지만, 오늘은 또 서울에서 스케줄이 있었다. 방송 스케줄은 아니고, 미팅 스케줄이었다. 지영의 시합에는 팬이 많이 왔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왔는데, 그중 아주 극소수는 그냥 팬이 아니고, 기업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지영은 따로 미팅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먼 외국에서 이곳을 찾은 ‘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하지만 그전에, 지영은 해외 팬 중 기업과 연관이 없는 순수한 팬들과의 만남부터 먼저 잡았다. 또한 국내 팬들이 반발할까 봐, 소속사에 공지로 국내 팬들을 위한 미팅은 따로 성대하게 잡겠다는 약을 미리 쳐놨다.

시합은 끝났지만, 할 게 아직도 많은 지영이었다.

“여기예요?”

“응. 잠깐. 누나 잠깐 보자.”

“네.”

회사에서 가장 큰 지하 회의실에 입장 전, 지영은 임은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임은진은 지영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벌써 부어올랐다.”

“죄송해요.”

“죄송은. 네가 어디 가서 쌈박질하다가 다친 것도 아닌데. 아휴. 이거, 오래가겠는데? 어쩌니. 에고고.”

지영은 괜찮은데, 임은진은 속상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그러는 이유는 지영이 시합 중 잡기 싸움하다가 눈 옆과 아래를 맞아 멍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복싱 선수처럼 눈두덩이가 살짝 부어올랐고, 급한 대로 처치하긴 했지만 이미 부어오른 상태였다.

복싱 선수들이 하는 처치를 하면 좀 가라앉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지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놔주자니 배우 얼굴이 상해서, 속이 상한 임은진이었다.

얼음팩을 눈에 살짝 댄 지영은 그녀가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백 명 남짓한 인원이 꽉 찬 회의실이었다. 전부 지영의 해외 팬이었다. 일본, 동남아 등 가까운 곳에서 온 팬이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멀리 지구 건너편쯤에서 온 팬들이었다.

지영이 들어가자 소란스럽던 회의실이 진짜 거짓말처럼 정적에 휘감겼다.

눈을 반짝이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울기 직전의 팬도 보였다. 나이가 좀 있는 팬들은 좀 의연하게 지영을 봤지만 어린 팬들은 감정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동경하는 스타를 만나고 실신하는 팬도 더러 있으니 그리 특별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런 팬들은 지영의 부상이 나중에 눈에 들어오자, 안타까움에 울상들이 됐다.

지영은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쥐었다.

지영이 앞에 의자에 앉자, 팬들도 같이 의자에 앉았다. 지영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팬들과 2시간 가까이 팬 미팅을 진행했다. 솔직히 대회를 막 치르고 난 뒤라서 컨디션은 좋을 수가 없었다.

감량에 이은 시합은 결승을 끝낼 때까지 시합 시간이 총 10분이 되지 않아도, 몸을 아주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인데도, 지영은 인상을 한 번도 찌푸리지 않았다. 여기 모인 팬들은 운이 좋았던 팬도 있지만, 거의 90% 이상이 지영의 대회를 보려고 비행기를 탄 팬들이었다. 그런 팬이 무려 백이 훌쩍 넘었다. 지영은 임은진에게 교육을 잘 받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팬을 매우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 성심성의껏 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기업의 팬들을 만났다.

첫 기업.

삼각별 브랜드의 대표였다.

* * *

벤츠와 아우디, 그 외의 패션 브랜드 기업 인사들이 지영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CF, 하자!

돈 많이 줄 테니까 좀 하자고!

빙빙 돌리는 사람도 있고, 직설적으로 던진 이도 있지만 일단 기본 골자는 그랬다.

“원하는 금액을 적어주시면, 그에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아예 작정하고, 강지영이란 카드를 선점하기 위해 백지 수표를 던지는 기업도 있었다. 벤츠가 그랬다. 벤츠는 정말 작정하고, 백지 수표를 던졌다. 그래, 무려 백지 수표였다.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벤츠에서 백지 수표를 제시했다.

이건, 지영도 솔직히 놀랐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임은진과 장세리 대표를 바라봤다.

“어, 음. 저기. 그러니까 백지 수표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미스터 강과의 계약에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

당황스러운데?

이전에 제시했던 100억도 솔직히 엄청난 금액이었다. 회사와의 정산, 그리고 세금을 떼도 지영이 최소 수십억은 떨어지는 금액이다. 그 금액에는 솔직히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많이 부자였다. 더 부자가 되는 건 좋겠지만, 많은 돈은 오히려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지영은 모르지 않았다.

지금 당장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 있는 지영이었다.

배우로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진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지영이었다. 그래서 돈에는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100억 정도 되면, 흔들릴 수는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무려 백지 수표다. 뭐 진짜 미친 금액만 아니면 웬만하면 받아줄 게 분명한 백지 수표였다.

지영은 그래서 궁금해졌다.

“제 CF 출연이 그 백지 수표와 비견될 가치가 있어요?”

지영의 질문을 통역사가 전달해 주자, 벤츠에서 나온 미하일이 빙긋 웃었다. 그에게는 지영의 이런 질문 자체가 청신호, 혹은 그린라이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미스터 강의 ‘처음’, 퍼스트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확신에 찬 어조였다.

하지만 지영은 그 확신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다.

‘대신 받아들이면, 백지 수표 이상의 문제도 같이 일어나겠네.’

지영은 자신의 몸값이 이렇게까지 올라간 이유가 모든 CF를 거절해서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생긴 특수성, 희소성이 몸값이 커지게 된 주요인이었다. 그러니 그 두 가지가 빠지면 다시 몸값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혈안들이 된 거지.’

이 순수성을 파괴하고 싶어서.

그다음은 몸값이 급락할 테지만 애초에 거기까진 아마 관심이 없을 거다. 순수성을 확보하고 나면, 그 뒤에 백지에 먹이 묻든 말든 그건 그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영이 내려야 하는 결정이야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런 결정을 말하려고 하는데, 미하일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 자사에서 준비 중인 신작의 이미지가 미스터 강의 이미지와 매우 호흡이 좋습니다. 그래서 신작 홍보를 위해 제가 왔고요. 그 홍보를 위한 카드가 바로 백지 수표입니다.”

어떤 신작인지, 어떤 느낌인지는 당연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건 현재까지 기업의 극비나 마찬가지일 테니 지영에게 얘기해 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궁금하지도 않은 지영이었다.

“혹, 금전으로 받는 게 부담스럽다면 기부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미하일의 말에 지영은 속으로 오…… 탄성을 흘렸다. 확실히 준비를 많이 했다. 지영은 사회복지를 위해 어느 정도 돈을 상당히 쓰고 있었다. 지영이 운동선수 중심 후원 재단의 이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 아예 사회 환원, 복지, 기부라는 카드까지 준비해 온 미하일이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

지영은 차분하지만, 그래서 단호한 거절의 답을 내놓았다. 미하일의 밝았던 표정이 다시 굳었다. 그래도 조금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단호히 거절하는 지영이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설득의 말을 하려다가, 그는 경로를 바꿨다.

“좋습니다. 표정과 어조를 보니 더 설득한다고 될 것 같지도 않네요. 하하. 대신, 이것 하나는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대체 왜, CF를 거절합니까? 그게 나쁜 일도 아닌데요?”

나쁜 건 아니지, 나쁜 건.

기업은 홍보를 위해 돈을 내고, 배우는 홍보를 돕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 기업도 배우도, 중간에 홍보를 위해 투입된 인력까지 전부 윈윈하는 그런 게 바로 CF다. 인기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그 인기로 돈을 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해가 안 가는 거다.

지영은 그 질문에 관한 답은 이미 자신도 했었고, 답을 찾아 놓은 상태였다.

“음, 어린 청년의 치기라고 생각해 주세요.”

사실은 연희고 아이돌의 뒤를 등대 삼아 쫓는 중인,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서였다. 이런 새싹들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순수성’을 지키는 중인 거다. 비록 그게 어린 나이의 혈기와 치기로 인해 시작됐다고 해도, 이미 시작됐으니 끝까지 지켜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황석이 그랬다.

‘열의 아홉이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도, 그중 하나가 우리를 등불 삼아 순수하게 성장해 주면, 그걸로 족한 거 아니냐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도 그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자기가 뭐 그리 대단한 인간이란 자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단 확신은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에서 어리다. 어리석다. 멍청하다. X신이다. 등등 욕을 해도, 지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치기라……. 그럼 차라리 CF로 받은 금액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돕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미하일의 말을, 그대로 일축한 지영. 그에 미하일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감적으로 그는 지영이 설득할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달았고, 애꿎은 힘을 빼기보단 다음을 노릴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떠난 벤츠.

이미 SNS에 한국행에 관한 이유를 설명해 화제가 됐던 그는, 미팅 결과를 짤막하게 다시 SNS에 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뭐, 빤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