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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78화 (27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78화

278화. 또 다른 일상(4)

지영은 짧은 잡기 후 지도를 받은 뒤 깨달았다. 자신이 드라마를 찍으며 다른 곳에서 영향력을 올리는 동안, 이우진은 아주 착실히 실력을 성장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실력은 어느새 자신의 지척까지 온 상태였다.

이전의 지영과 이우진의 실력 차는 최소 열 번 붙으면 지영이 이변이 없는 한 아홉 번 이상은 승리할 수 있는 실력 차였다. 지영의 컨디션이 최고조고, 방심만 하지 않으면 필승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지금 그 실력 차가, 확실히 좁혀졌다. 동률, 동수까지 온 건 아니지만 제대로 긴장하지 않으면 질 수도 있는 수준까지 격차가 좁혀졌다. 지영이 유도에서 잠시 벗어난 사이, 이우진은 이를 악물고 훈련해 자신과의 격차를 좁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지영이 회귀 전에도 이우진은 유명한 선수였다.

고1 체전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었고, 대학교에 올라오자마자 안호진을 잡고 국가대표가 되는 이우진이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2위를 했다. 이우진은 그 정도의 실력자였다. 이런 실력자가 아무리 지영에게 앞을 막혔다고 한들, 그 천재성이 감춰질까? 거기에 심지어 노력까지 하는 실력자인데?

‘격차가 좁혀지는 건 당연한 거야.’

지영은 너무 상황을 낙관했었다는 사실을 반성했다.

안호진도 없고, 이우진에게도 여태 진 적이 없어 솔직히 방심했었다.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1위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손가락이 변형이 올 정도의 부상을 당하고도 훈련을 빼먹지 않은, 노력의 화신이 눈앞에 있었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천재성까지 있다.

하지메!

뇌리에 남아 있던, 안일한 마음이 단숨에 날아갔다.

거리를 좁힌 지영은 자세를 잡았다. 지영 특유의 어깨를 먼저 내주는 자세다. 상당히 큰 신장이 허리를 반쯤 숙이는 모양새라 상대를 얕보는 것 같은 느낌이 나는 자세지만, 지영이 이런 자세를 취한다고 상대를 얕보는 게 아님을 이제는 모든 선수가 알고 있었다.

카운터의 천재.

어떻게 잡아도 어떤 기술이 들어와도 기가 막히게 카운터를 칠 줄 아는 강지영의 시합 방식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사장된 방어유도를 구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기가 막혔다. 그래서 저 자세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자세가 됐다. 오히려 저렇게 등을 안 주는 자세를 취하면 그게 더 문제였다.

이우진은 찰나간 고민했다.

이걸 잡아, 말아. 하는 고민의 기색이 눈가에 스쳐 가는 걸 지영은 확인했다. 그걸 보고도 지영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어차피 불리할 게 없고, 유리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우진이 어깨 깃을 어쩔 수 없이 먼저 잡는 순간, 흐름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자신에게 넘어온다. 이우진도 모든 기술을 할 줄 알지만 그래도 주력은 업어치기였다. 어깨 깃을 내주면서 지영은 가슴은 오히려 안쪽으로 말았다. 가슴 깃은 먼저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우진은 가슴 깃을 잡고 싶었을 거다.

‘그래야 업어치기를 걸 수 있으니까.’

소매 깃만 잡고 업어치기를 이성진처럼 걸기엔, 지영의 카운터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안전하게 가슴 깃을 잡고 시합을 풀어나가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지영은 가슴은 걸어 잠갔고, 어깨만 풀어놨다.

그러니 순간적으로 든 고민이다.

그리고 주춤거리며 고민을 이어가는 이우진을 보며 지영은 거의 순간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게 낫겠단 판단을 내렸다. 이는 정말 본능이었다. 슥, 일반인보다는 확실히 긴 지영의 팔이 순간적으로 훅 들어오자 이우진은 반사적으로 어깨를 뺐다. 하지만 지영은 이미 예상하고 발을 뻗어 간격을 빠르게 좁혔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 지영은 어깨 깃을 먼저 잡았다.

지영이 갑작스럽게 나오자 이우진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곧장 평온을 되찾았다. 이우진의 장점 중 하나였다. 이우진은 성격상, 원래가 차분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지영의 변화에도 금방 따라왔다.

지영은 갑자기 잡고, 갑자기 끌어 공세를 걸려던 걸 바로 철회했다. 이렇게 차분하게 빛나는 눈을 보니 먼저 잘못 움직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이 또한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이렇게 움직였던 이우진의 1회전 상대가 모두걸기에 제대로 쓸려 날아가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업어치기 선수답게 이우진은 발기술도 수준급이었다.

특히 타이밍에 맞춰 쓰는 모두걸기는 확실히 주의해야 할 기술이었다. 불쑥 성장해서, 턱밑까지 쫓아온 이우진. 이제는 정말 긴장해야 하는 상대가 됐다. 지영은 그래도 좋았다. 애초에 지영이 유도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치열함 때문이었다.

이 치열함 속에서 상대를 넘기고, 쓰러진 상대의 위에서 승자가 되었을 때의 그 희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상대를 내려다보는 그 승자의 포지션도 지영은 너무 좋았다. 축구 선수가 골을 넣고 느끼는 희열과 지영이 상대를 한판으로 던진 다음 느끼는 희열은 비슷했다. 스트라이커가 골 맛에 축구를 한다면, 유도 선수는 한판을 던지는 맛에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감각을 좋아한다. 애증이다. 아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래서 지영은 강한결이 내놓은 그랜드 슬램 후 은퇴라는 시나리오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정말 홀가분하게, 마음을 비우고 도복을 입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임효중은 계속 유도가 하고 싶다지만, 지영은 여기까지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걸 이루려면 눈앞의 이우진이 아무리 성장했어도, 져서는 안 된다. 강한결이 그린 시나리오대로 가려면 여기서 발목이 잡혀서는 곤란했다.

맛테!

심판의 그쳐 사인.

지영은 반칙이 들어오진 않을 거로 생각했다. 이건 그냥 숨 고르기다. 하지만 반칙을 주지 않은 경고이기도 했다. 만약 또 이렇게 잡고 가만히 서 있으면 바로 지도를 주겠다는. 그런 숨은 사인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인은 이우진도, 지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지메! 심판이 시합을 시작했을 때 둘 다 눈빛이 돌변했다.

승부처였다.

이제 여기서 밀리는 선수에게 무조건 반칙이 들어가게 된다. 지영이나 이우진의 현재 실력을 보면, 지도 두 개와 한 개는 천지 차이였다. 실력이 비슷할수록, 이 차이는 더 극적으로 시합에 작용한다.

시합 운용의 귀재라고도 불리는 강지영을 상대하며 먼저 지도 두 개를 받는 게 얼마나 불리한지 잘 아는 이우진은, 필사적으로 맞서왔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전체적인 피지컬은 지영에게 밀리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이우진은 지영에게 신체 조건에서 불리했다.

이우진은 평균 73 선수에 비해 조금 큰 신장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81을 뛰어도 무방할 정도로 컸다. 꽉 채운 180. 그날 컨디션에 따라 179.몇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180이다. 이런 지영의 신장은 73에서도 거의 가장 큰 축에 속했다. 보통 이렇게 키가 크면 근력을 비롯한 신체 피지컬이 떨어지는데, 지영은 그러지도 않았다. 근육을 진짜 최대한 키워놔서, 근력과 지구력, 민첩성도 보통 선수들보다 훨씬 위였다.

그러니 전체적인 피지컬은 비슷하지만, 딱 하나, 신장에서만 밀렸다.

그런데 그 차이가 승부처에서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다. 길이. 리치. 지영은 일반인보다도 팔이 긴 편이었다. 하지만 이우진은 이것도 딱 평균이었다. 뭐 복싱처럼 극단적인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같이 출발해서, 같은 속도로 상대의 깃을 노린다고 했을 때 역시 먼저 잡는 건 팔이 긴 사람이었다.

지영은 이걸 이용했다.

먼저 잡는 순간 팔을 털어 상대의 팔을 툭 쳐올렸다. 그러자 도복을 잡지 못한 이우진이 반사적으로 자기 어깨 깃을 잡은 지영의 손을 쳐냈다. 지영은 팔을 수습함과 동시에 다시 뻗었다. 이우진도 비슷하게 팔을 뻗었지만, 지영이 이번에도 먼저 잡았다. 그리고 잡는 순간 다시 팔의 각을 좁히고 오른손으로 이우진의 손을 막은 뒤, 남은 손은 이우진의 반대쪽 가슴 깃 아래로 뻗었다.

이우진은 그걸 보며 순간적으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좀 전에 어깨 깃을 잡혔을 때 그걸 쳐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쳐낸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심판이 그쳐를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그쳐를 선언한다는 건, 무조건 지도를 주기 위해서다.

이우진은 그 찰나에 어깨 깃을 쳐내려던 자신의 행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 짧은 고민이 지나갔을 때 이미 지영은 이우진의 반대쪽 가슴 깃 하단을 잡았다. 어깨 깃과 반대쪽 가슴 깃 하단을 잡았다고 뭐 특별한 건 아니었다. 어떤 기술을 걸기 위한 자세도 아니었다.

하지만 잡았다는 것 자체는 매우 중요했다.

이우진은 잡지 못했고, 지영은 잡았다. 이 차이점은 유도에서 매우 컸다. 슥! 앞으로 나가려는 모션을 주자 이우진이 움찔했다. 그리고 급하게 팔을 뻗어 지영의 도복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걸 그대로 허용하면 어렵게 깃을 먼저 선점한 보람이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몸 쓰기로 막고, 가볍게 발목 받치기를 걸어 이우진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이렇게 잡았을 때가 사실 기회였다.

상대는 못 잡았고, 나는 잡은 지금 시점이 유도에서는 기술을 걸기 딱 좋은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그거 하나만 생각해서 자세를 한껏 낮춘 상대에게 기술을 걸다가 되치기로 날아간 경우를 따져보면, 수도 없이 많아서 세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렇게 상대가 아예 잡기를 포기하고 숙였을 땐 굳이 무리해서 기술을 걸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맛테!

시도!

상대가 지도 두 개가 됐다는 점이었다.

하나와 둘은 당연히 차이가 컸다. 하나일 땐 하나 더 받아도 된다는 여유가 있지만, 두 개일 땐 하나 더 받으면 반칙패니 그런 여유 따위는 저 멀리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 버린 상태가 된다.

이는 곧, 시합을 조급하게 풀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2분이 조금 안 된다. 이대로 시합이 끝나도 승부가 나는 건 아니지만, 시합의 유불리가 지영에게 넘어왔다는 건 이견이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시합을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이우진이 지도를 받는 순간, 탄식을 흘렸다. 그들은 강지영의 시합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절반을 따거나, 반칙을 유도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한 선수. 그렇게 유리한 고지에 서면 천천히 상대를 말려 죽여가는 전술을 구사하는 선수. 그런 강지영은 여태껏 무패행진을 달렸다. 애초에 진 적이 없는 선수였다. 그런 무패의 시합을 따져보면 지금처럼 먼저 반칙을 먹게 하거나, 절반을 따냈을 때는 시합이 거의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지금 딱 그런 상황이 갖춰진 거다.

용인대 코치는 상황이 이렇게 됐음에도 따로 오더를 내릴 수가 없었다. 달려들라고 오더를 내려봐야, 그건 타고난 사냥꾼 강지영이 가장 바라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신중하고, 차분하게 하라고 해봐야, 반칙을 하나 더 받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미 덫에 걸려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빠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그렇게 됐다는 건 이우진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그래서 승부처에서 어떻게든 밀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팔의 길이 차이가, 그리고 그 짧은 차이를 자신의 이점으로 확실하게 이용하는 지영의 실력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붙었는데, 결국엔 먼저 지도를 받았다.

“하여간 진짜…….”

심판이 하지메를 외치기 전, 이우진은 지영의 변함없는 실력에 진짜 진저리를 쳤다. 노력했다. 정말 죽도록 노력했다. 가노컵 이후 지영이 대표팀에서 나간 이후, 그는 새롭게 대표팀 주전이 되어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훈련했다.

그 결과 세계대회에서 매우 유의미한 성적도 거뒀다.

비록, 지영의 라이벌인 미야모토 신지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그래도 세계의 물을 먹고, 실력자들과 붙으며 일취월장 성장했다.

그렇게 컸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에 자신도 있었다.

자신이 1년간 그렇게 노력했을 때, 강지영은 배우의 삶을 살았으니 자신이 충분히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최소 반년이나 도복을 입지 않았던 강지영은 고작 몇 주 만에 폼을 회복했고, 이전의 기량을 고스란히 갖춘 채로 나왔다. 그리고 1년 전의 강지영과 붙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그의 뒤에 있었다. 1년의 시간도 그의 뒤를 잡기에는 부족했던 거다. 그게 비참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시합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우진은 각오를 다졌다.

필승의 각오, 필승의 의지.

부족한 실력은, 정신으로 채울 생각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눈빛이 살아나고, 기세도 남달라졌다.

그렇게 다시 각오를 다진 이우진을 지영은 그저, 차분하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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