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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77화 (27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77화

277화. 또 다른 일상(3)

[속보! 연희대 아이돌 전원 결승 진출!]

포털 사이트를 가득 메운 기사의 제목은 보통 위의 것과 비슷했다. 연희고 아이돌, 혹은 황금세대의 결승 진출! 내용은 별것 없었다. 그냥 강지영과 친구들이 유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결승전에 올라갔다. 정도의 기사였다. 정말 별로 대수롭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중계창을 띄워 놓고 기다리는 이들은 좀 충격이었다.

-……전원 결승 진출이라는데, 실화냐, 이거?

-ㅇㅇ 실화임. 전원 전 경기 한판승으로 결승전 진출임 ㅋㅋ

-미친…… X나 양심 없는 거 아니냐,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한 달 쉬고 나가서 쟤들이 전부 결승 간 거면 쟤들이 진짜 잘하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나라 유도가 약한 거예요?

-약한 건 아님. 올해 들어서 한국 유도 성적 상당히 좋았음.

-ㅇㅇ 일본한테 밀리긴 밀렸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들 많음.

-강국이죠. 괜히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불리는 게 아니에요 ㅋㅋ

-그러면 강지영이란 친구들이 잘하는 거예요?

-ㅇㅇ…….

-맞음. 잘해도…… 너무 잘해 ㅅㅂ

-진짜 보면 볼수록 기가 차는 얘들이네…….

-제 친동생 유도하는데, 욕 겁나 함.

-왜요?

-왜겠어요?

-아…….

-어, 양유진이다.

-와, 이쁘긴 이쁘네요.

-아, 결승 시작한다!

인터넷의 분위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영은 결승을 준비했다. 결승전 상대는 이우진이었다. 이우진은 지영이 없는 1년을 국가대표로 보냈고, 세계대회에서 나름 준수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그런 이우진도 아시아 선수권에서 신지에게 깨졌다. 1분 만에 허벅다리 한판패. 통한의 한판패가 아니라, 제대로 기술에 걸렸다.

이우진이 업어치기를 치고 나오는 순간 쫓아 들어가면서 찍어 허벅다리로 그대로 한판으로 돌렸다.

대단했던 건, 가슴 깃만 잡은 외깃 상태에서 찼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제대로 채였는지, 하늘을 붕 떠서 제대로 돌아갔다. 그렇게 이우진도 신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게 아시아 선수권 결승전에서의 일이었다. 또 다른 대회에서 신지를 만났지만, 이우진은 그때도 신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이우진은 잘했다.

파리 오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유도의 강함을 제대로 알렸다. 그런 이우진은 분명 성장했다. 세계대회 경험이 그의 실력에 확실히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았다. 오늘 이우진의 경기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감이 있었고, 그건 기술이나 플레이 스타일에 그대로 반영된 것처럼 보였다.

지영처럼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전부 한판승을 따내기도 했다.

현재 지영이 없는 73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이우진이 최강자였다. 그래서 솔직히 지영은 이번 결승전이 매우 기대됐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 속에서도, 지영은 감정을 천천히 눌렀다. 괜히 들떴다가, 카운터에 맞아 훅 날아가는 경우의 수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패자전 절반이 지나가자 지영은 이성진을 잡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업어치기. 안뒤축, 다시 업어치기, 안다리, 밀어낸 다음 따라 들어가면서 허벅다리. 유도 선수라면 전부 할 줄 아는 가벼운 연결기술 부딪치기였다.

그렇게 몸을 풀고 나자, 슬슬 패자전이 다 끝나 갔다.

첫 게임은 수원 선배다. 수원 선배는 선수촌 지박령이란 별명답게, 이번에도 결승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졌다.

“아…….”

새롭게 결승에 올라온 용인대 4학년이, 정수원을 잡았다. 먼저 절반을 빼앗겼지만, 1분을 남겨두고 들어간 낚시걸이가 정수원을 그대로 붕 띄워서, 대자로 매트에 뻗게 했다. 지영이 봐도 무조건 한판 기술이었다.

-60 왕좌가 변하는 순간이었다.

친분이 있는 정수원이 진 건 아쉽지만, 이게 냉혹한 스포츠 세계였다. 나이를 먹건, 부상을 당하건 뭐건, 실력이 부족한 자는 결국 왕좌에서 내려와야 하는 세상이었다.

“와, 씨. 긴장해야겠네.”

“잘해라.”

“응.”

60이 끝났으니 이어서 바로 66이고, 66은 이성진의 체급이었다. 이성진의 결승전 상대는 신지혁이었다. 무관의 제왕이란 타이틀을 가진 신지혁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신지혁은 이성진이 없는 동안, 66의 국가대표였고 나갔던 대회에서 전부 2등을 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권에선 아베 히후미도 잡았었다. 그러나 결승에서 통한의 카운터에 이기고 있다 한판을 내주며 결국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신지혁이 세계에서 통하는 실력자란 사실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런 신지혁과 한동안 유도보다는 방송에 매진했던 이성진의 대결은 사실 신지혁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영과 임효중, 강한결은 진짜 천재구나. 이런 인식이 있는데 이성진과 황석은 이상하게도 천재보단 노력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실수하는 거지.’

지영이 보기에는 이성진도 두말할 것 없이 천재였다. 이성진에게 주어진 천재적인 재능은, 기술의 영역에 있었다. 이성진의 신장은 동체급에서 가장 컸다. 그런데도 이성진은 업어치기를 주력으로 삼았다. 그게 뭐가 천재적이냐고 하겠지만, 자기보다 10㎝나, 그 이상 작은 선수에게 업어치기를 넣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직접 겪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업어치기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가는 건데, 그러려면 상대의 겨드랑이에 내 팔꿈치를 ㄱ자로 접어 넣어 받쳐야만 했다. 그게 업어치기의 기본자세였다. 그러니 당연히 상대가 크고 넓으면 들어가기 쉽고, 작고 좁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거였다.

그런데 이성진은 역상성 조건에서도 업어치기를 꽂을 줄 알았다. 이걸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이성진은 매일 관절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기르는 스트레칭과 훈련을 매일같이 했다. 그리고 하루에 업어치기를 수백, 수천 번은 연습했다. 거기에 모든 상황에 업어치기를 걸 수 있게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고, 그 이미지대로 실전에 걸 수 있게 훈련하고, 이걸 무수히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해서 훈련해도, 훈련대로 실전에서 효과가 나오는 건 온전히 재능의 영역이었다. 그 재능으로 이룩한 게 결국 실력이었다.

방송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이성진은 매일 고무줄을 수천 번씩 당긴다. 실제로 더 런닝 촬영 중에도 이 같은 훈련을 빼먹지 않았다. 이는, 자신의 재능이 절대 무뎌지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성진의 재능은, 천재성은 오늘 당연히 빛을 발했다.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전부 업어치기로만 한판을 따냈다.

날카로움이 조금도 죽지 않는, 그런 업어치기로 말이다.

그래서 지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친구의 재능은 진짜고, 그 진짜를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치지.’

툭, 끊고. 말아서, 업어치기.

소매를 먼저 줬지만 그걸 끊어내는 동작에서 역으로 신지혁의 소매 끝단을 살짝 말아쥐었는데, 딱 그것만 잡고도 이성진은 업어치기를 파고들었다. 몸으로 상대의 하체를 쓸 듯이 들어가는 그런 업어치기였다. 소매꽂이처럼 살짝 말아 올린 다음, 겨드랑이 안쪽으로 쭉 파고드는 업어치기다. 이런 업어치기는 한 소매만 잡고 하기 때문에 당연히 매치기 각이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는다. 제대로 업혀도 다른 팔이 자유로워 땅을 짚고 버티고 설 수도 있었다. 이성진의 이번 업어치기를 신지혁도 그렇게 버티려고 했다.

중간에 갑자기 회전이 강하게 먹여 몸을 번데기처럼 웅크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걸렸다!’

유도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흐름이 끊겨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최민호 선수가 보여준 메치기는, 만약 상대가 엎드렸을 때 1초만 기술을 연결하는 게 늦었다면 무조건 무효 처리가 나왔을 거다. 그러나 심판이 한판을 준 건 상대가 엎드렸음에도 선수가 곧장 기술을 연결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한판이 나왔다.

잠깐만 주춤했으면 아예 무효가 됐을 텐데 말이다. 지금이 그랬다. 잠깐, 아주 잠깐 주춤했지만, 이성진은 몸을 말아서 허리로 강하게 튕겼다. 그에 몸이 제대로 말린 신지혁이 이성진의 등에 거머리처럼 착 붙어서 데구르르, 굴러갔다.

선수들이 몸을 풀 때 앞구르기 하는 것처럼 그냥 데구르르, 그렇게 굴러갔다.

하지만 유도는 그렇게 넘겨도 점수다.

어? 하고 엉덩방아를 찧어도 점수를 줄 수 있는 게 유도였다. 심판은 잠시 고심했지만, 팔을 가로로 쭉 펼쳤다.

와자리!

절반. 다행히 절반이 나왔다.

“나이스 이성진!”

한판은 아니지만, 절반만 따도 승부를 결정지을 수는 있었다. 물론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이성진은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시합 운용 자체를 지영만큼이나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운영의 마술사로 불리는 지영과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유도를 한 사이였다.

1분에 딴 절반을 그는 3분 내내 잘 지켰다.

지도를 두 개 받긴 했지만, 결국 끝까지 지켜냈다.

“꺄아아!”

“성진아! 와아아!”

이성진! 이성진!

이성진의 누님 팬이 폭발했다.

승자 선언을 하자 아예 체육관이 떠들썩할 정도로 이성진의 이름을 연호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그 속에서 지영은 오히려 역으로 차분해졌다. 친구가 우승한 건 기분이 좋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 들어가니까, 올라온 감정을 내리누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폼이 한껏 올라온 이우진에게 카운터를 맞을 수도 있었다.

“아, 진짜 너무하네?”

이우진이 이우진답지 않게 감정을 조절하는 지영을 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우진도 여유가 생겼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영의 뒤를 보고 쫓아온 이우진이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고, 이제는 이런 농담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지영은 그런 이우진이 대견했다. 자신이야 특수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이우진처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기업은 아니어도 무려 재벌 3세인데도, 유도에 이렇게 진심인 건 확실히 드물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친구였다.

“파이팅.”

“오케이. 파이팅.”

지영이 주먹을 내밀자 씩 웃은 이우진이 그 주먹을 자기 주먹으로 가볍게 치고, 먼저 입장했다. 지영이 대기석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우와! 엄청난 환호성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이성진의 팬이 제일 많았지만, 이제는 지영의 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관중석의 절반 이상이 황금세대의 팬인데, 그중 다시 절반이 지영의 팬이었다.

골 때리게도 지영의 경기를 보려고 해외에서 온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해외에서 온, 업계 관계자들도 눈에 많이 보였다. 그러나 지영은 그런 쪽으로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고 철저하게 시합만 생각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성진이 나오면서 손을 뻗었다.

짝. 그 손을 가볍게 쳐준 지영은 시합장으로 이동했다. 매트 특유의 재질과 오늘 매트에 흐른 땀이 마르며 나는 익숙한 냄새가 지영의 정신을 일깨웠다. 일반인은 눈살을 찌푸릴 냄새지만, 선수에게는 정말 익숙한 냄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리웠던 냄새기도 했다.

이우진과 마주 보고서 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판이 입장하자 환호성이 잦아들었다. 여러 언어로 된 응원이 자취를 감추자, 심판이 두 선수에게 입장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두 번의 인사, 그리고 시작.

시합이 시작됐다. 이우진은 차분했다. 자세는 이전과 바뀐 게 없는데, 신장 또한 예전과 똑같은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 지영은 잠시 생각한 결과 그 출처를 알아냈다.

노는 물이 달라진 거였다.

지영도 그랬지만, 이우진도 이제 세계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보니 가진 기세 자체가 달라졌다.

국내대회만 나가다가, 세계대회에 나가면 당연히 선수의 실력은 급성장한다.

우물에서만 놀던 개구리가 세상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자유로워지겠나. 그리고 반대로, 위험해지고 말이다. 국내에서는 그래도 최고였다. 은퇴한 안호진을 빼면 이우진의 상대는 국내엔 없었다.

그런 이우진이 안호진이 빠지고, 지영이 드라마로 잠시 바빠지자 세계 무대에 섰다.

그리고 고작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지영은 잡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우진, 많이 늘었네.’

놀고 있던 건 아니지만 자신이 드라마를 찍고 있던 순간에, 이우진은 이만큼이나 성장했다. 그래서 경각심이 제대로 들었다.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힘.

그리고 확실히 느껴지는 여유.

언제나 자신을 뒤쫓아 오던 이우진이, 지금은 거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도복을 잡고 놓치지 않는 손을 봐도 그랬다.

아직 스물 초반인데, 벌써 변형이 온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을 두 개 식 당겨 테이핑해 고정해 놓았다.

저렇게 손가락이 변형될 정도의 거친 훈련을 거쳤다는 뜻이었다.

세계에서 비벼보기 위해, 하지만 그 전에 강지영이란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

쇠를 두들겨 단련하듯이,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 단련한 모습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지영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이렇게 성장한 이우진을 진심 전력으로, 깨부숴 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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