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75화 (27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75화

275화. 또 다른 일상(1)

끝.

나의 무사님 시즌2가 끝났다.

최종화 시청률 43.5%.

근 몇 년 동안 나왔던 시청률 중에서 최고였다. 나의 무사님 시즌2는 모든 것을 확실하게 끝내지 않았다. 주인공이 역적에게 상처를 입히긴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시즌2. 그리고 마지막에 재는 돌아온다란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으면 쌍욕을 먹었을 엔딩이었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찝찝한 결말이었지만, 욕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였다.

이미 시즌3에 대한 얘기가 공식 오피셜로 나왔기 때문에 마지막 화를 보면서 어떻게 스토리가 흘러갈지 다들 대충은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무사님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방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어, 음……. 확실한 건, 용두사미는 아님.

-막판에 재의 독주는 멋있었음.

-확실히 액션이 느낌이 다르긴 하다. 현직 운동선수라 그런지 몸 쓰는 건 진짜 대박…….

-제작진 측에서 푼 영상 보니까 저 신 찍으려고 강지영 연습 진짜 엄청 하더만…….

-ㅇㅇ 한 호흡이라도 어긋나면 자신이나 상대나 크게 다친다고, 진짜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연습했다고 함.

-저 정도 근성이랑 끈기가 있으니 국대도 하는 거지. 그리고 강지영 연기도 많이 좋아진 듯. 처음에도 그리 어색하진 않았는데 중반인가? 그쯤부터는 거의 캐릭터랑 물아일체 경지더만.

-그러니까요 ㅋㅋ 인기도 미쳤는데 연기력도 계속 좋아짐…….

-재능 하나는 진짜 타고난 듯요 ㄷㄷ

-그러니까요.

-근데 다들 스토리들은 어땠어요? 난 재밌게 봤는데?

-호불호 없는 스토리가 원래 정은정 작가 특기잖아요. 이번에도 거의 비슷했음. 새롭지 않은데, 그냥 재밌음.

-그래서 특별한 거임. 요즘 드라마 판에서 저 정도로 호불호 없는 소재 가지고 이런 이야기 꾸미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

-그것도 처음 쓰는 시대극임.

-정은정 작가는 노난 거임. 이거 다른 배우들이 했으면 이 정도로 인기 못 얻었음.

-강지영이니까……. ㄷㄷ 이번에 강지영 잡겠다고 벤츠랑 아우디랑 박 터지게 싸운다는데.

-ㅋㅋ 싸우면 뭐 해요 ㅋㅋ 정작 배우가 CF 찍을 생각이 없는데 ㅋㅋ

-그건 그렇네요 ㅋㅋ 근데 진짜 대단하다. 와……. 끝나면 보통 이것저것 하잖아요? CF도 찍고, 그런데 막 촬영 끝난 다음 날, 강지영 도복 입었대요.

-ㄷㄷ벌써?

-선발전 준비한다는데요?

-……미친.

-와 씹…….

-존나, 개쌉멋있네 미친…….

지영의 일거수일투족은 사실 파파라치가 붙을 정도로 자세히 올라온다. 그런 강지영이 마지막 촬영을 끝낸 다음 날 도복을 입었다는 것도 진짜였다. 지영은 진짜 일상으로 돌아갔다.

* * *

힘들었다. 촬영 중반부터는 아예 도복 운동도 빠지고 이쪽에만 올인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돼서, 아예 한쪽으로 몰아버린 거다. 그래서 지영은 근 두 달 만에 도복을 입었고, 훈련을 해보니 쉰 티가 확실히 났다.

쿠웅!

이성진한테 업어치기로 제대로 한 바퀴 날아간 지영은 눈을 깜빡였다.

“뭐야, 너무 녹슨 거 아냐?”

“……미안.”

이성진의 자극에 지영은 순수하게 사과했다. 그동안 몸을 안 쓴 건 아니었다. 나의 무사님 액션 신 때문에 훈련을 하도 해서, 체지방은 진짜 1%도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으면 좋은 상태였는데, 유도 쪽 감은 확실히 떨어졌다.

액션에 익숙해진. 유도 기술 방어와 검을 내려치는 동작을 막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어느덧 액션에 더 익숙해져 있었던 거다. 그래서 시원하게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

딱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완벽하게 예전의 기량으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감을 되찾으니 역시 강지영은 강지영이라며, 다들 엄지를 추켜세웠다.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정말 종방연 안 가도 괜찮아?”

“응? 응.”

이성진의 물음에 지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무사님 마지막 촬영은 당연히 방영분보다 일찍 끝났다. 여유를 두고 시작하긴 했고 촬영하며 딜레이 되는 스케줄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잘 흘러가서 마지막 화 2주 전에 딱 끝났다. 돌아오는 주말 종방연이 계획됐지만, 지영은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에 다들 엄청나게 서운한 표정들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종방연 또한 요즘은 공식 스케줄에 가까웠다. 그래서 거의 99%의 확률로 기자들 앞에 서야 하는데, 지영은 그게 싫었다. 지영은 이제는 그냥 기자가 싫었다. 예전까지만 해도 그냥 상대하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열애설이 나고 난 뒤부터는 기자가 싫어졌다.

완전히 이제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거였다.

지금도 그랬다.

유도장은 오픈되어 있었다. 훈련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지영의 훈련 시간만 되면 기자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사진을 찍어 댔다. 아니,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관중석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 그게 신경이 쓰이지, 안 쓰일까?

이에 다른 선수들까지 피해가 가서 결국 유도장을 잠가 버렸지만 그랬더니 또 지랄지랄들을 해댔다.

지영은 그래서 이제는 기자가 싫었다.

몰래 들어가도 되지만, 그랬다간 또 별 지랄들을 다 해댈 것 같아서 지영은 아예 참석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아쉽다고들 난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그런 걸 이제는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 씻고 저녁을 먹었다.

“석이는 오늘 올라가지?”

“응.”

“한결이도 가고, 성진이도 가고.”

황석의 드라마 촬영도 시작됐다.

후반 4에서 6부 정도 나오는 역할이었는데, 매우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강한결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10% 시청률 드라마의 후반 부스터 역할을 똑똑히 하고 있었다. 그런 둘은 오늘 서울에 간다. 덩달아 이성진도 같이 간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화요일은 더 런닝 녹화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효중이랑 둘이 있겠네.”

“좋네. 지영아, 이따가 치맥이나 할까?”

“좋지.”

둘의 말에 촬영 때문에 몸 관리를 해야 해서 술은 엄두도 못 내는 셋이 치사하게! 하는 눈빛으로 째려봤다. 저녁을 먹은 셋이 서울로 갔다. 지영은 임효중과 함께 중원대의 트랙으로 나왔다.

휴학했기 때문에 기숙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왔고, 대신 황금세대는 운동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작은 정원이 있는 이층집이었는데 방이 1층에 셋, 2층에 두 개여서 황금세대가 쓰기 딱이었다.

트랙에 나와 몸을 푸는데 운동하던 학생들이 마스크를 썼는데도 귀신같이 지영과 임효중을 알아봤다.

“저,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네, 괜찮아요. 대신 저희 여기 있다고 어디 알리지 않으면요. 사람 몰리면 들어가야 합니다.”

“아, 넵!”

“대신 저희 가면 바로 여기저기 올리셔도 돼요.”

지영의 말에 고개가 부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 팬들이었다. 지영은 그런 팬들에게 얼른 사인을 해주고, 빠르게 러닝을 했다. 느긋하게 9시까지 뛰고 싶지만 어째 사람이 몰릴 것 같아 지영은 30분만 임효중과 페이스를 맞춰 뛰기로 했다.

“넌, 활동 안 할 거야?”

“뮤지컬 해보려고 했는데, 이제 시합 준비해야지. 그래서 지금은 맛만 보게.”

“아, 시합. 우리 다음 시합이 11월인가?”

“응. 선발전 11월에 있지. 거기서 선발되면 12월에 마스터즈 있고.”

“마스터즈는…… 나가야지.”

“나가야지. 점수 유지하려면.”

지영의 랭킹은 조금 떨어졌다. 가노 컵 이후 세계대회에 출전한 적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은 상위 랭킹 16까지 선수들이 출전하기 때문에, 이제 랭킹을 위해 A급 대회는 참가해야 했다. 다행히 12월부터 줄줄이 있었다.

마스터즈. 가노컵. 아시아 선수권. 세계 선수권. 오대양 대륙 컵 등등.

내년 8월 올림픽 전까지 두 달에 한 번씩은 대회가 있어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때까지 몸을 만들고, 폼을 유지하는 거다.

“지영아.”

“응?”

“근데 넌 안 아쉬워?”

“응? 뭐가?”

지영은 뛰다 말고 친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었다. 꾸벅, 팬에게 인사를 해준 임효중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너 이번엔 제대로 자리 잡았잖아. 애매한 포지션도 아니고. 한 작품을 이끌어 가는 아주 중요한 배우로. 그런데 그거 다 내팽개치고 이쪽으로 나온 게 아쉽진 않냐는 소리야.”

“아, 그거. 그런데 그건 버리는 게 아니잖아. 잠깐 쉬는 거지. 당장 1년간은 그쪽은 얼씬도 안 하겠지만 그래도 뭐 시즌3 출연도 확정했고. 별로 안 아쉬워.”

“운동선수 말고, 배우가 되는 건?”

“그것도 별로. 그랜드 슬램, 그거 나 진심이거든. 그거 이룩하면 그만둘 거야.”

“진짜?”

“응. 왜, 넌 유도 계속하고 싶어?”

“나야 뭐…….”

지영은 바로 나오지 않는 대답에 깨달았다. 임효중은 그랜드 슬램을 이루고 나서 은퇴할 생각이 없음을. 그런데 그건 지영이 관여할 게 아니었다. 약속하긴 했지만, 내 마음이 그러니 너도 그때 은퇴해!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지영은 속도를 올렸다.

말없이 속도를 올렸지만 임효중은 그 속도에 금방 맞췄다. 반 바퀴를 달리고 나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숨이 조금 차지만, 헉헉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괜히 나나 한결이 따라서 은퇴할 생각 안 해도 돼. 너 인생이잖아. 우린 함께 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고자 하는 지점이 다르면 중간에서 갈라져야지. 그리고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뭐 아예 안 보고 살 것도 아니잖아.”

“음…… 그렇겠지?”

임효중의 대답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사실 임효중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었다.

“넌 진짜 유도 좋아하는구나.”

“난 뭐…… 응. 하하.”

겸연쩍게 웃는 임효중.

지영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지영도 유도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영은 자신의 이 마음이…… 애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주 당연했던 것을 타인 때문에 강제로 빼앗기면서, 없던 간절함이 생겼다.

빼앗기고 나서야 아, 그게 너무 나에겐 소중했던 거였구나.

하고 깨달아버린 거였다.

그래서 회귀했을 때 지영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이 길을 그대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영은 이미 회귀 전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임효중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유도라는 운동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싫고, 지긋지긋한 건 아니었다.

간절했지만, 간절했기 때문에 미웠었다. 지영이 괜히 그날 사고 전에 임효중과 통화를 하며 코치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던 게 아니었다. 그때 지영은 이미 유도가 미운 상태였다. 바로 앞에 있는데,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지도자가 아니라, 천성 자체가 플레이어 쪽이었다.

그랬던 유도라 회귀 이후, 당연하게 이 길을 걸으며 집착할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그렇지도 않았다.

한 번 싫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지, 강한결이 말한 그랜드 슬램 후 은퇴가 가슴에 확 꽂혔다. 지영에겐 유도도 애증이지만, 보통 또래의 친구들이 아주 당연하게 했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뭐 이번 생도 글러 먹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해보고 싶었다.

배우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가족, 우정 등등, 다 그랬다. 그런데 그건 지영만 그런 거고, 지영과 같은 일을 겪지 않았던 임효중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넌 아이돌이랑 유도 선수 중, 뭐가 좋아?”

지영이 슬쩍 그렇게 묻자.

“유도 선수?”

즉답이 돌아왔다.

이런 친구라면 유도를 당연히 더 하는 게 맞다.

“성진이도?”

“아니, 성진이는 힘들대. 걔 감량 살벌하잖아.”

“내 자리로 올 수 있잖아.”

“73으로 오면 그땐 지금처럼 못하잖아? 이우진도 만만치 않고.”

“아, 하긴.”

이성진이 지금처럼 군림할 수 있는 건, 그게 66체급이기 때문이었다. -73으로 오면 또 그땐 완전히 느낌이 달라진다.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대회는 대학연맹이라 그랬던 거지, 선발전에 나가서 실업 선수들과 붙으면 81은 확실히 버거운 체급이었다.

그러니 이성진도 박수 칠 때 떠날 생각 같았다.

“석이도 비슷한 생각일 거고. 그럼 너만 하는 건데 괜찮아?”

“응, 뭐. 나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선수 하면서 이런저런 활동하는 지금이.”

“그래. 네 마음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응원한다.”

“하하, 고마워.”

고맙기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고마워하는 것 같은 표정이라 지영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개인의 삶이다.

그걸 지영은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그랜드 슬램은 꼭 다 같이 달성하고 싶었다.

시간은 다시 훌쩍 흘렀고, 낮에도 찬 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이 왔다.

11월 초.

선발전이 성큼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