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71화
271화. 나의 무사님S2(18)
컷!
“어흐!”
“켁! 케엑!”
우르르!
마치 무덤 속에서 일어나는 좀비처럼 감독의 컷 사인에 모든 배우가 일시에 우르르! 일어났다. 지영도 다르지 않았다. 사인에 맞춰 벌떡 몸을 세운 지영은 나뭇잎을 치우고 코와 입으로 들어온 흙을 죄 뱉어냈다.
우르르!
그런 배우들에게 스태프와 각 배우의 매니저들이 전부 달려들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물티슈로 일단 급히 응급처치만 하는 배우들. 지영도 다르지 않았다. 임은진이 건네준 물티슈로 일단 눈과 입술 주변만 닦았고, 물로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냈다.
무식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은신, 은폐엄폐를 가장 이족의 전사다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직접 땅에 묻히는 거였다. 흙을 적당히 파낸 다음,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실제로 어느 특수부대가 이런 식으로 은폐엄폐 한다는 얘기를 어떤 배우가 하기도 했다.
개고생이다.
이 신을 위해 거짓말이 아니라 무려 삼백의 배우가 진짜 동원됐다. 실제로 이족의 전사 역을 맡는 배우들과 엑스트라를 모집해 고된 장면을 연출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실제로 찍었다. 장면이 잘 살았으려나 모르겠지만, 잘 나왔기를 부디 바랐다.
지영도 웬만한 건 찍어봤지만, 이건 정말 힘들었다.
“괜찮아?”
“네, 괜찮은데. 두 번은 못 하겠네요.”
아무리 예술을 위해서,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이런 무식한 연기는 사양이었다. 충분한 회의 끝에 결정됐고, 지영도 오케이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찍었기 때문에, 장면은 제대로 살았다.
“다들 고생했어요!”
짝짝!
전부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랄까? 대대적인 준비를 해서, 한 번에 끝내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재촬영은 없었다. 이걸로 오늘 촬영은 끝. 다들 철수 준비를 했다. 지영도 대충 얼굴만 털고 바로 산에서 내려왔다. 입구에서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서 세수만 대충 하고 차에 오른 지영은 바로 다시 몇 시간을 달려 서울의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은 다시 세트장 촬영이고, 모래 다시 산에서 촬영이다. 왔다 갔다 하는 일정이 힘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 사다 줄까?”
“아니요. 제가 챙겨 먹을게요.”
“알았어. 내일은 오전 10시니까, 8시까지 데리러 갈게.”
“네. 참, 저 잠깐 유진 누나 보고 오려고 하는데, 괜찮죠?”
“괜찮지. 이제 뭐 공식 연인이잖아? 그래도 너무 사람 많은 곳은 가지 말고, 최대한 가리고 다녀. 알았지?”
“네.”
임은진이 떠나고, 지영은 올라가서 바로 씻었다.
씻고 나오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내일 양유진도 출근이니 잠깐 얼굴 보고, 자주 가는 그녀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가볍게 늦은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씻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톡으로 연락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출발했어요?
“네, 지금 막. 20분쯤 걸려요.”
-네! 나가 있을게요!
“추우니까 시간 맞춰 나와요. 공원으로.”
-헤헤, 네!
전화가 끊겼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양유진은 분명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양유진은. 공원에 도착하자 역시 양유진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영이 택시에서 내리자 마스크를 썼는데도 한눈에 알아본 그녀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시간 맞춰 나오라니까.”
“괜찮아요.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이 좋아요.”
방긋 웃는 양유진은 열애설이 난 이후 불안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원을 잠시 걷고, 공원 뒤쪽 포장마차로 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이모 저 왔어요!”
무뚝뚝하신 이모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답을 대신했다. 항상 먹던 거로 시키고 온 양유진이 앞에 앉아 지영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회사는 어때요? 이제 좀 괜찮아요?”
“네. 언니들이 잘 막아줘서, 이제는 막 곤란한 질문 하는 사람도 없어요.”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었다.
양유진은 열애설이 나고 며칠 회사를 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회사를 퇴사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강지영이란 연인이 있음에도, 그녀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지영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만나는 사람이 연예인인데, 그것도 강지영이란 사실은 그녀의 삶 자체를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이미 삶 전체가 재조명됐을 정도였다.
버림받았을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의 삶 전체를 뒤졌다. 기자들은 그 정도로 집요했다. 그리고 공장에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50명이 넘는 사람들 전체가 좋을 수는 없었다. 분명 이상한 소문을 내는 사람이나,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녀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했다.
지영은 그걸 알면서도, 괜찮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거지.’
주어진 문제와 상황을 자신이 이겨낸다면 말이다. 당장 지영만 해도 회귀자이면서 유도를 다시 선택했다. 유도를 선택한 것과 그녀가 다시 사출 공장에 나가는 걸 택한 것은 비교해 봐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도움과 위안을 얻었고, 그렇기에 끝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러니 이건 말려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녀는 일주일 정도가 지나 다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좀 곤욕스러웠다고 했다. 주변에서 지영에 관한 얘기를 너무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영이 양유진을 데리러 온 날 보였던 행동 때문에 다들 양유진을 크게 내외하지 않고 받아줬다.
그렇게 유별나지려던 그녀는 다시금 일상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선택에 많은 사람이 엄지를 척 들기도 했다. 지영이 너무 잘나가는 배우니 좀 붙어먹어서 편하게 살아도 될 텐데, 결혼을 안 했어도 충분히 도움을 바랄 법도 한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멋’으로 승화했다.
멋진 여성.
양유진은 그런 사람이 됐다. 지영 때문에 덩달아 유명해졌지만, 그녀의 일상은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돌아갔다. 축하해 줄 일이었다.
“축하해요. 그리고 미…….”
“안 하단 말은 금지!”
“하하, 네.”
사과가 막히고, 우동이 나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매콤한 닭발이 나왔고, 지영이 좋아하는 육회도 나왔다. 맛있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부 맛있었다. 늦은 저녁이지만 그렇게 배를 채우고, 공원을 잠시 걸었다.
정말이지, 특별한 거라고는 조금도 없는 데이트였다.
하지만 양유진도 더없이 좋아했고, 지영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은 성향이 같았다. 데이트라고 뭔가 특별한 걸 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건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둘 다 그걸 중요시했다.
연락이 잘되고, 서로 보고 싶고, 그러니 만나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만난 지는 제법 됐지만 자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순수하기만 한. 뭐 그렇다고 세상 순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일단은 두 사람 다, 어른이었으니까.
짧은 데이트는 그렇게 끝났다. 숙소에 돌아오니 1시, 언제고, 언제나 함께하는 날을 상상하며 지영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두근두근.
호위군 일부가 척후로 협곡을 건너왔다. 그 수는 서른. 고작 서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서른은 매우 많은 숫자였다. 특히 제국제일검 진이 키운 호위군 서른이면, 웬만한 집단은 그대로 깨부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런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니, 방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숨이 턱턱 막혀서,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정도 흙이야 당장 뚫고 일어날 수 있긴 하지만, 그랬다간 이틀째 이렇게 있는 게 모두 물거품이 된다. 대단했다. 이족의 전사들은 이렇게 땅을 뒤집고 숨어서, 정말이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통 사냥법 중 하나라는데, 재가 보기에는 이럴 거면 차라리 활로 잡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끈기.
그것도 지독한 끈기가 없으면 저래도 못 할 짓이었다. 하지만 재는 참아냈다. 자신도 그 시궁창에서 긴 시간을 견뎌왔고, 이 악물고 노력해서 일신의 무위를 몸에 장착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노력과 끈기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걸, 견뎌온 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정신을 다듬으면 참아냈다.
꾸욱, 꾸욱.
신기하게도 호위군의 발걸음 자국이 느껴졌다. 묘한 진동을 타고 오는데, 어찌나 집중하고 긴장했는지 대략적인 거리까지 가늠이 될 정도였다. 한 놈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일어나면, 뒤에서 유령처럼 일어나 목을 돌릴 수 있지만, 재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이곳에 아무것도 없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호위군에게 줘야 했다.
그래야 이 척후의 신호를 받은 본대가 넘어올 것이다.
승상이 건너온 뒤, 그때가 시간이었다.
재는 부디 다른 이족의 전사들도 끈질기게 참아서, 이 순간을 넘기길 바랐다. 얼마나 시간을 흘렀을까. 반 시진에 가깝게 주변을 돌아본 호위군이 협곡으로 물러갔다. 그걸 느끼며 재는 팔 부 능선은 넘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호각이 날카롭게 울었다.
아마 본대에 보내는 신호인 것 같았다.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체감상 또 반 시진쯤 되는 것 같았다. 그쯤, 처음에 울린 호각과는 다른 신호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쀠이이익!
좀 더 짙고, 둔중한 느낌의 호각.
유일하게 땅에 묻히지 않고, 높은 나무를 타고 대기 중이던 선고의 호각 소리였다. 이는 약속된 신호였다. 이 소리가 울리면 후가 타고 오는 중일 거라 예상되는 마차가 통과한 직후에 울리기로.
벌떡!
길고 긴 시간을 견뎌서, 재는 몸을 세웠다. 제대로 풀지 못한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일어선 재는 곧장, 이미 파악해 두고 있던 호위군을 향해 내달렸다.
“적이다!”
쇄애액!
퍼억!
재의 칼이 목과 몸통의 경계에 난 틈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두터운 철갑주이고, 호위군의 약점 중 하나다. 그곳을 노려 베는 게 아니라, 그냥 짓이겼다. 제가 하나를 그렇게 정리하는 사이 일제히 일어난 이족의 전사들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일부는 선고와 함께 미리 작업해 놨던 협곡의 다리를 끊었고, 나머지는 그 임무를 맡은 이를 지키고, 재처럼 호위군을 상대하는 임무였다. 고요하던 숲이, 비명과 함성으로 난무했다.
슈아악!
툭! 투두둑!
빠지지직!
꽈득!
선고를 필두로 나무를 타고 올라간 이족의 전사들이 작업해 줄을 화살로 정확히 맞춰 잘라 다리를 끊고, 그사이 재는 경계를 서던 호위군을 전부 정리했다.
후우, 후우.
뚝, 뚜두둑. 이틀간 땅에 묻혀 있어서 굳었던 근육이 일제히 움직이며 악을 써 댔다. 너 나한테 왜 이래! 이렇게 갑자기 움직이면 어쩌자는 거야! 항의하는 것처럼 근 경련이 왔다. 하지만 재는 그냥 무시했다.
저벅저벅.
조금은 절룩이는 걸음으로 천천히 협곡의 앞으로 이동하는 재.
‘있어라, 제발…… 있어라.’
승상이 탔을 마차에서, 후가 나와야 한다. 만약 놈이 나오지 않았으면, 이틀간의 개고생도 개고생이지만 뒤에서 좁혀오고 있을 포위망에 갇혀 토끼나 사슴처럼 몰이 사냥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갈 때 가더라도.
“빌어먹을 개자식을 길동무로 잡아가야지.”
번뜩.
시린 눈빛에서 토해지는 살기.
척! 척저저저적!
그런 살기에 반응한 승상의 호위군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단단히 앞을 막았다. 그러나 재는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호위군의 뒤, 그 너머 화려한 마차에 시선을 뒀다.
“후. 언제까지 숨어 있을 참이냐.”
재의 조용한 목소리에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진 또한 보이지 않았다. 함정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드는 찰나.
“이 목소리는…… 그래.”
스윽.
마차 문이 열리면서, 승상 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이었다. 함정이 아니고 진짜 후가 탄 마차였다. 하지만 그런 다행이란 안도도 잠깐이었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후의 모습에 재는.
“……빌어먹을 역적 새끼가 감히!”
황제의 상징 ‘용포’를 입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일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