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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70화 (27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70화

270화. 나의 무사님S2(17)

샨강은 추웠다.

변방, 이족의 땅은 본래 따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뜻한 남쪽 지역에 속하는 이곳 샨강만 추웠다.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드는 한기. 각오 단단히 하라는 선고의 경고 그대로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절로 이를 악문 재는, 순간적으로 치솟는 짜증을 참기 어려워질 지경이었다.

족쇄.

빌어먹을 족쇄.

재는 이 족쇄를 어느 순간부터 느꼈다. 연에게 실망하고, 그녀를 떠나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고개를 치켜드는 족쇄의 존재를 느끼고 나서부터, 이 족쇄가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하지만 양부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족쇄였다. 그래서 벗겨낼 수가 없었다.

친부, 친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재에게 양부는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일종의 신.

유년 시절에는 그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애초에 재가 칼을 쥔 건 암살에 돌아가실 뻔했던 양부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마음. 하늘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아래에서 그 하늘을 떠받치기 위해 재는 칼을 들었다.

그 정도로 양부의 존재는 재에게 절대적이었다.

그런 양부의 유언이었기 때문에 생성된 게 족쇄였다. 거기에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를 빼고도 백적파 전체의 부모이기도 했어.’

어려서부터 도성의 골목을 주름잡던 재가 친우를 사귀는 방식은 간단했다.

부모가 없을 것.

심성이 밝을 것.

재능이 있을 것.

이 세 가지였다.

본능적으로 ‘재’는 저 세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자신과 함께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모의 존재는 애매하지만, 넣은 이유는 하나였다. 부모가 있으면 굳이 재가 챙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간절함이 없을 거로 봤다. 심성은 배신에 관련된 문제였다. 야비하고 비열한 성향을 지닌, 같은 골목 출신의 아이들을 다치게 하고, 알량한 힘이 있다고 그 힘으로 군림하려 드는 놈은 그냥 철저하게 짓밟았다.

재능은, 그냥 당연히 봐야 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재는 집단을 만들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재가 제국 최고 명망가의 양아들이긴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골목을 헤집고 다녔지만, 문제가 될 만한 사고는 철저히 피했다. 그런 재가 무슨 돈이 있다고 백적파 전체를 거뒀겠나.

돈은 당연히 양부에게서 나왔다.

수십에 가까운 백적파를 유지하는 모든 비용은 당연히 양부가 댔다. 나중에 어느 정도 기량이 올라오고, 육체가 성인에 가깝게 올라왔을 때는 자체적으로 의뢰받아 해결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진 전부 양부의 도움이 있었다.

즉, 양부는 백적파의 대부였다.

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양부가 없었으면, 백적파도 없었다.

그렇기에 족쇄는 강력했다.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해 재의 심령을 묶어놨다. 재는 그 족쇄를 이번에 풀고 싶었다. 푸는 방법은 지극히 어려울 거라 예상됐다. 연의 목숨. 연을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해방시키는 것. 재가 생각했을 때 그걸 이루는 가장 빠른 방법은 후의 죽음이었다.

후를 정리하면, 그 누가 후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충분히 연이 이겨내고 그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연은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분명 삐끗해서 판을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그녀는 분명 능력이 있었다. 능력이 있는데도 상황이 이런 건, 아직도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건 후라는 강력한 적이 있어서고. 그러니 후만 정리하면 연은 충분히 날개를 펼쳐 본인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재에게는 해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게 이렇게 작전에 나온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말리려는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 연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냥 곧장 출발했다. 스윽, 스윽. 강을 빠져나오자마자 잡생각은 빠르게 사라졌다. 재는 손을 들어 이동을 멈췄다. 그러자 한 이족이 땅바닥에 귀를 대고 기울이더니, 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이동 중인 병력은 없다는 뜻.

사사삭.

수풀을 건드리는 소리까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재는 빠르게 강을 이탈했다. 샨강을 넘었다. 여기에 후가 목격된 장소와 이동 속도를 생각하면 지금쯤 강에서 육일 거리까지는 좁혔을 것으로 생각됐다.

재는 강에서 멀찍이 떨어졌지만, 안심하지 않았다. 샨강은 이미 점령당했고, 건너면서 봤는데 곳곳에 초소가 세워져 있었다. 초소들 주변으로 분명 진지도 구축되어 있을 거고, 그 진지에는 적지 않은 병력이 있을 거다. 이쪽의 병력은 소수도 아니고 삼백이나 되니, 이동하면서 분명 흔적을 남기게 된다.

흔적을 지우고 움직이는 게 최선이긴 하나, 지금은 차선을 택해 빠르게 이곳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정보가 부디 후에게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무리다. 후는 그렇게 어리숙한 인간이 아니라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분명 자신이 받아보는 설계를 끝냈을 것이다.

그래서였다.

재가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래서 재는 자원한 이족의 전사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후를 이길 수 없어.’

후가 누군가.

당대는 물론, 제국의 역사를 뒤져봐도 머리 쓰는 거로는 상대가 없다는 평을 받는 괴물이었다. 이런 괴물이 직접 군권을 쥐는 순간, 제아무리 연이라고 해도 파죽지세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갖춘 게, 제국의 승상이자 역적 후였다.

그래서 재는 그가 궐이 아니고, 본대에 합류하기도 전인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 여겨졌다. 이번에 실패하면…….

‘별수 있나. 그냥 제국은 후의 것이 되는 거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할 일은 해놓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 재는 이 말이 싫었다. 일은 인간이 했는데 왜 결과를 하늘에 기댄단 말인가?

일을 시작했으면 그 성공도, 실패도 오롯이 인간이 감내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말은 패자의 변명이지.’

아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하늘이 안 도와줬다.

이런 변명을 할 생각은 없었다. 재는 만약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인간 후가, 인간 재와 연보다 더 뛰어나 넘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봤다. 이것도 무책임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 또한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약 두 시진을 쉼 없이 이동했다.

후욱, 후욱.

입에서 단내가 났다.

거친 평야와 숲, 산에서 살아남은 야생동물보다도 체력이 좋다는 이족의 전사들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라, 재는 손을 들어 이동을 멈췄다. 더 움직이면 퍼진다. 이동을 멈춘 재는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주변 경계를 시켰다.

이족 전사들은 군말 없이 재의 명령을 따라 삼삼오오 뭉쳤다.

그리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경계를 섰다. 재는 같이 작전을 나갔던 이족 전사들을 불렀다. 일당백의 전사들. 샨강에서 적과 대치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작전에 나가, 함께 생환한 전사들이었다.

그런 전우들을 불러놓고, 재는 말했다.

“여기, 그리고 여기. 아마 후는 이 둘 사이에 있을 거야.”

재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족 전사들. 재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 손가락을 좀 더 내렸다.

“그리고 우린 이쯤이고, 여기서 산을 타고 계속 북상해서, 이곳, 협곡에서 후를 친다.”

“후가 넘어올 때 치기는 힘들지 않을까?”

선고의 말에 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다.

후가 등신도 아니고 위험한 협곡을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건널 가능성은 한없이 영에 수렴했다. 그러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재라고 머리가 엄청 잘 돌아가는 건 아니라서, 딱히 엄청난 방법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그러나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을 택할 머리는 있었다.

“후의 호위군은 분명 협곡의 뒤도 지키고 있을 거야. 아마 선발대가 먼저 건너고 전방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후가 건너겠지. 그렇다면 적어도 호위군의 절반은 먼저 넘어올 수도 있어. 우린 먼저 도착해서 은폐한 뒤, 기다린다. 절반이 건너오게 두고, 후가 건너오면 그때 협곡을 끊는다.”

“건널 때 끊으면 되지 않아?”

“그래도 되긴 한데, 후를 확인해야 해. 그림자가 대신 타고 있을 수도 있어서 반드시 후를 확인해야 해.”

“어떻게?”

“내가 나서면 돼. 놈이 탔을 마차가 건너오고, 내가 나서면 반드시 후는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럼 기습의 묘가 사라지지 않나?”

한 이족 전사의 질문에 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맥. 하지만 맥, 놈들은 기습한다고 먹힐 놈도 아니야. 철저하게 변칙적인 전사들을 대비해 만들어진 부대니까.”

애초에 기습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재는 차라리 전면으로 자신이 나서 후를 확인하고, 그 뒤에 협곡 다리를 끊은 뒤 남은 호위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게 재가 봤을 때, 가장 승산이 있는 방향이었다.

재가 제시한 방향에, 모두 수긍했다.

그리고 수긍과 동시에 눈을 빛냈다. 그 방향의 끝엔 사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마 지금도 뒤쪽으로 포위망이 형성되고 있을 건데,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퇴로는?”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 이족이 던진 질문.

재는 그 이족을 가만히 보다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퇴로는…… 없다.

후의 성격, 능력을 생각하면 아마 지금쯤 자신은 점점 독 안의 든 쥐 신세가 되고 있을 가능성이 지독히 농후했다. 후를 정리해도, 수천 이상으로 구성된 포위망을 뚫어야 한다. 이게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전사들의 눈과 귀가 재를 향했다.

재는 그런 전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구라도 후를 죽이는 순간 호각을 불어. 한 차례 울린 이족의 호각은 후가 죽었고, 이탈 신호로 설정한다. 들리는 순간 모두 뒤도 돌아보지 말고 전장에서 이탈해서 부족으로 알아서 복귀한다.”

지독히 가벼운 작전 같지만, 세상 어려운 작전이었다.

아마 관영이 이 작전 내용을 들었다면.

‘X신 같은 새끼야, 이게 작전이냐?’

하고 쌍욕을 했을 거다.

관영이 떠오른 순간, 재는 관영의 존재가 정말 아쉬웠다. 실제로 백적파를 이끈 건 자신이지만, 단의 살림과 작전을 짜는 건 전부 관영의 몫이었다. 그래서 부단주였고, 재가 가장 믿는 친우였다.

아마 그가 있었다면, 이런 미친 작전은 짜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관영은 이제 없다.

멍청하게도, 그러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목숨을 버렸다. 재는 관영의 생각을 얼른 고개를 털어 날렸다.

“숙지했으면 이제 최대한 쉬어. 협곡까지 거리 좁히려면 밤낮없이 이동해야 하니까.”

스르륵.

대답 대신 다들 편한 자세를 잡고,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재가 가르친 것들이다. 작전 중 휴식을 주면 무조건 눈을 붙이라는. 잠이 오지 않으면 최소한 감고라도 있으라고. 그래야 회복된다고. 그렇게 가르쳤고, 지금은 눈을 붙이면 다들 뻗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다.

귀신같이 시간에 맞춰 일어난 결사대는 곧장 이동을 시작했다. 숲은 모든 이족의 터전이었다. 그래서 이동은 정말 거침이 없었다. 보통 병사들이 갈 거리의 두 배를 하루에 움직였다. 힘을 쓰는 게 다르고, 근육이 성장한 게 다르고, 디디는 법, 호흡법 전체가 다르니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휴식은 물론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달리고 달린 끝에 다행히 협곡에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협곡에 도착한 결사대는 마지막 준비에 들어갔다. 몸에 흙을 발라 체향을 죽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은신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넓게 퍼졌기 때문에 영역이 겹치지는 않았다.

그렇게 흩어져 땅을 파고 숨은 결사대. 마지막까지 그걸 지켜보던 재는 감탄했다. 진짜 감쪽같았다. 사람이 숨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야생동물은 기척이나, 흔적, 그리고 냄새와 소리에 매우 민감하거든. 그래서 이족의 전사들은 기본적으로 저렇게 숨는 방법을 전부 익히고 있어.”

“너도?”

“당연하지. 재는 참기 좀 힘들 거야. 하지만…… 참아야겠지?”

“…….”

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고는 만들어 둔 특수한 진흙을 재의 몸에 치덕치덕 발랐다. 그러곤 직접 터를 골라줬다. 재가 안에 들어가 눕자, 선고는 재의 위에 올라와 가볍게 입을 맞췄다.

“…….”

“…….”

눈빛을 타고 흐르는 서로의 감정.

재는 그 감정을 받아 가만히 미소 지었고, 선고도 히죽 웃었다. 인사였다. 어쩌면…… 작별의 인사였다.

인사가 끝나자 재의 위로 덮어지는 흙.

다리부터 흙에 묻히기 시작했고 어느새 커다란 나뭇잎을 덮은 얼굴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선고는 멈추지 않았고, 재의 세계는 검게 물들었다.

이어진 것은, 어둠을 동반한 기나긴 기다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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