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7화
267화. 나의 무사님S2(14)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갑자기 뒤에 골목에서 이성진과 임효중이 툭 튀어나와 달려왔다. 오면서 사전에 서로 연락했다. 임효중은 스케줄이 있어서 서울에 있었고, 이성진은 청주에 있다가 기사가 열애설이 터지자 바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둘이 먼저 만나,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지영이 내리자 바로 합류했다.
딱히 위로도 뭐도 없이 그냥 옆에 서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됐다. 그렇게 친구들의 힘을 가득 받아 걷기 시작하자, 기자들이 대번에 무리로 뭉친 지영을 알아봤다.
“어! 강지영이다!”
“강지영 씨! 양유진 씨 만나러 오신 겁니까?”
“양지원 선수 후원을 빌미로 만났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멈칫.
카메라에 잡히고, 지금 자기 모습이 방송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영은 걸음을 멈췄다. 상상도 못 했던 질문이었다. 양지원 후원을 빌미로 만나? 듣기에 따라서 굉장히 독한 말이었다. 아니, 그냥 미친 말이었다. 앞에서 길을 열던 강한결도 서서, 그 기자를 돌아봤을 정도였다.
천하의 강한결이 이랬을 정도다.
기자의 질문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지영도, 강한결도 딱히 기자의 말에 대답하진 않았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저런 질문을 하고, 여기서 지영이 욱하면 그때부터는 언론이 짠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
‘멱살이라도 잡으면 천하의 쓰레기, 패륜아처럼 보도하겠지.’
그게 목적일 것이다.
애초에 지금 이런 행태는, 선을 넘은 거였다. 선을 넘어도 너무 거하게 넘어주셨다. 목적은 하나. 강지영 자극이다. 여자친구를 건드려서 빡친 강지영을 만들 거나, 아니면 여자친구를 건드렸는데도 등장하지 않은 강지영을 바랐을 거다.
그럼 어떻게든 신나게 물어뜯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잠시 기자를 노려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재차 날아드는 질문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단어만 순화됐을 뿐이지, 이건 뭐, 마치 지영을 범죄자 바로 아래까지 묘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교묘하게.
예를 들면, 이런 질문.
“후원을 빌미로 양유진 씨가 먼저 접근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입니까!”
이런 질문 말이다.
말만 먼저 접근했다지, 이건 어떻게 앞뒤를 서술하는가에 따라 천지 차이로 변하게 된다. 아니, 딱히 앞뒤로 뭘 하지 않아도 저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백했다. 임은진은 얘기했다.
분명 선을 아슬아슬 넘는 질문을 할 거고, 거기에 넘어가면 지는 게임이 된다고.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들어가서 공주님만 구해오면 된다고.
그럼 무조건 이기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임은진은 서울로 올라오며 아주 신신당부했었다.
지영은 그걸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예측한 임은진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멋있고, 멋있다 못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인파를 헤치고 정문에 도착하자, 아까 멀리서 보였던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가장 먼저 보였다. 지영을 가만히 보던 그는.
“기본은 됐구먼.”
들어와.
하고는 문을 조금 열었다. 강한결이랑 이성진이 먼저 들어갔고, 지영이랑 임효중, 황석 순으로 들어왔다. 뒤에서 강지영 씨! 인터뷰 좀 하시죠! 국민은 사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같은 헛소리를 계속해서 떠들었다.
진짜, 이가 갈렸다.
임은진에게 왜 기자들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요?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자란 족속들이 그랬다.
아니, 이는 기자란 분들에게 죄송한 거다. 기레기들이다. 그들은 알 권리란 총칼에 면죄부를 가져다 붙인 다음 상대를 무참히 난도질했다. 그런데 그게 먹히지 않은 게, 강지영이었다. 처음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지영이었다.
그러나 한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강지영이란 한 인간이 가진 파워는 감당하기 힘든 만큼 커졌고, 그 과정에서 기레기들과 대대적으로 전쟁이 붙기도 했다. 이 전쟁의 승자는 지영이었다. 강한결의 계획으로 이기긴 했지만, 그 뒤로는 계속해서 서로 맞붙었다. 지영에게, 정확히는 황금세대에게 이를 갈았던 이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전체가 자신에게 초점 맞춰지듯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다른 친구들은 내버려 두고 자신만 공격했다.
‘그게 언제부터였지?’
예인 다음인가? 나의 무사님 땐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어느 순간부터, 기레기의 주적은 강지영이 되었다. 굴복시키지 않으면 할복이라고 하겠다는 것처럼 건수만 찾으면 물어뜯으려고 안달이 났었다. 지금 여기 모인 수십의 기자는 전부, 임은진이 작정하고 탈탈 턴 인터넷 언론매체 출신들일 게 분명했다.
‘이런 독기로 비리를 쫓았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대한민국에 정계와 재계, 공직계도 정말 청렴하게 돌아갈 텐데 말이다.
지영은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어차피 저들은 자신이 고민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속성 자체를 이해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생각은 낭비였다.
그리고 저 멀리, 그녀가 보였다.
빼꼼.
건물 정문 쪽의 기둥에서 고개만 내밀었는데 지영은 대번에 알아봤다. 거리가 멀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냥 그녀라는 걸 알았다. 지영은 천천히 걸었다. 기둥 뒤에 숨은 양유진은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막 울거나 그러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 근심이 얼굴에 한가득했다.
“괜찮아요?”
양유진의 첫 말은, 괜찮냐는 질문이었다.
지영은 픽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근심과 걱정이, 전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자기 말고, 본인 말고, 스스로한테 가는 근심과 걱정이 아니란 소리였다.
‘이러니까, 이러니까 진짜…….’
지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 뒤쪽으로 유리문에 붙어 지영을 우와, 우와 하며 구경 중인 직장 동료들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안에 잠깐 들어가도 돼요?”
“어? 네? 들어가려고요?”
지영의 말에 양유진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안 돼요?”
그녀의 반응에 나선 건 이성진이었다. 그렇게 되물은 이성진은 꺄아! 어떡해! 어떡해! 하는 유리문 너머의 팬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누나 팬이 압도적인 이성진이었다. 지금이야 지영이 많지만, 이전 사건이 있기 전까지 연희고 아이돌 최고의 스타는 이성진이었다.
그런 이성진의 등장에, 난리가 났다.
큼, 크흠.
그때 문을 열고 슬쩍 나오는 중년의 노신사.
“안녕하세요. 강지영입니다.”
지영은 그 노신사에게 바로 예를 차렸다.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시급도 시급이지만, 복지도 좋고 무엇보다 직원을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는 마인드가 정말 일품이라고 했다. 특히 양유진의 사정을 알고는 예전부터 조금씩 더 챙겨주기도 했고, 그 모든 게 당연히 대가 없는 도움이었다. 그래서 양유진은 가능하면 이 공장에서 오래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들게 일조한 분이시다.
그래서 이렇게 먼저 예를 갖추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장송좁니다. 날도 찬데, 안으로 좀 들어오세요. 안 그래도 어수선해서 기계도 껐고 하니, 조금 쉬다 가세요.”
세상 차분한 목소리였다.
지영은 그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지영이 양유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자 어머! 어머! 하며 다들 놀라 호들갑을 떨었다. 지영은 다시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진 씨와 만나는 강지영입니다.”
“어머, 세상에! 진짜였네, 진짜였어! 호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가장 앞에 있던 두 분이 세상 좋아하는데, 지영이 보니 이 두 사람이 아마도 큰언니와 작은언니 같았다. 안에서 부르는 호칭 같은 건데, 고3에 처음 태성 사출에 와서 가장 의지했던 두 사람이라고 했다. 불량을 잡아내는 팀을 이끄는 두 사람은 다른 의미로 양유진에겐 기둥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솔직히 언제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양유진이 말렸다. 왜 말렸는지 그때도 이유는 알았다.
자격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을 믿지만 그래도.
그녀는 괜히 공장에 다니는 자신 때문에 지영이 구설수에 말리는 걸 경계했다. 그래서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한눈에 봐도 좋은 사람 같았다.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비록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아픔이 있지만, 그래도 그 대신 좋은 사람‘들’을 얻은 양유진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마음이 놓였다. 식당으로 이동한 지영은 50 남짓한 직원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사인 도중 들어오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려운 걸 빼면 성심성의껏 받아줬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정말 유진이랑 사귀어요?”
“네.”
“왜요?”
이런 질문은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는 동안.
인터넷은 난리였다.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마왕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용사처럼 지영의 행동이 묘사됐다.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서 혈기가 머리를 지배한다고 해도, 이 행동은 솔직히 쉬운 게 아니었다.
사람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직접 갔다.
기자들이 작태는 정말 별로였지만, 지영의 행동을 볼 수 있어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태성에 몰려간 언론은 당연히 전부가 아니었다. 그 기레기들을 혀를 차며 보고 있던 기자들은 이런 상황을 빠르게 기사화했고, 그 결과 지영의 이미지는 더더욱 위로 고공 행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리우드도 아닌 한국에서 연애는 확실히 인기에 도움이 되질 않았다. 여기에 그 대상이 일반인인 것도, 같은 연예인인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연애와 결혼은 그 배우의 주가 하락을 불러올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연애하면, 연예인은 끝이다!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소폭, 낮아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열애 문제로 기자들 앞에 서지 않으려고 하는 게 보통이었다.
거기다가 지금 같은 상황은 매우 특수했다. 연예계에 적을 두지 않은 완전한 일반인. 동생이 유명한 운동선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은 카메라 앞에 단 한 번도 서본 적이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런 일반인을 작정한 기레기들 사이에서 구하는 일이었다.
저널리즘 따윈 버린 기레기들은, 솔직히 좀비 떼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지영은 그곳에 나타나 길을 열었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연인을 구하러 간 모습이었다.
이게, 사람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특히 여자들 심장에 제대로 불을 질렀다.
수많은 여성이 한 번은 상상했을 모습이었다.
백마 탄 왕자님이 인파를 헤치고 곤란에 빠진 자신을 구하러 오는 모습을.
그 상상 속의 모습을, 장면을 지영이 고스란히 재현했다.
-미쳤다, 진짜…….
-와 저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ㅠㅠ
-지금이라도 내 동생한테 잘하면, 나도 저 반의반쯤 되는 남자 만날 수 있을까? ㅠㅠ
-존잘…….
-나 지금까진 솔직히 얘 팬 아니었는데, 오늘부터 팬 됐음
-능력 좋고, 성격 좋고, 여자한테 잘하고…….
-그저 완벽! ㅎㅎ
여성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지영의 모습은 충분히 화제가 됐다. 이쯤 상황이 변했을 때, 지영은 슬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 누나. 지금 나가려고요.”
-알았어. 나오면 바로 앞에다가 차 댈게. 그리고 인터뷰는 지금까지처럼 금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계산에 넣었었는데 지금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럴 필요도 없겠다. 타면 바로 회사로 출발할 거야.
“네.”
-참, 나가면 분명 기자들이 막 몸으로 막으면서 쇼할 거거든? 그러니 절대 몸에 손대지 말라고 해. 밀지도 말고. 슬쩍 밀어도 날아갈 거야. 자해공갈단처럼.
“음, 그럼 어떻게 해요? 사람 제법 있던데?”
-걱정하지 마. 그냥 뒷짐 지고 나가. 정문 바로 양옆의 건물에 선영 씨가 와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 배우 지키려는 건데. 그럼 준비되면 문자만 주고 바로 나와.
“네.”
원래는 기자들 앞에서 연인 맞다. 이런 식으로 짧게 인터뷰도 하는 것도 고려해 뒀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안에서 짧은 팬 사인회를 여는 동안 변한 여론은, 굳이 그런 것 따위는 필요 없다는 판단이 회사에서 나오게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모를 자해공갈 역시, 임은진이 이미 충분히 대책을 세운 상태였다. 그걸 지영은 친구들에게 전부 알려줬다.
“그럼 지금 나가면 된대?”
“응. 슬슬 나가자.”
“알았어.”
강한결과 대화를 끝낸 지영은 양유진의 직장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갔다. 쌀쌀했다. 찬 바람이 불었다.
“누나, 모자 써요.”
“네? 아니 괜찮아요. 어차피 뭐…….”
얼굴도 다 공개됐는데요. 이런 뒷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거기까지 얘기하지 않고 말을 삼키는 양유진. 지영은 미안했다.
“지영아. 슬슬 가자.”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양유진의 손을 잡았다. 정문으로 향하자 다시 카메라 불빛이 번쩍였다.
보무도 당당하게 앞에 이성진과 황석이 서서 걸었고, 그냥 힘으로 인파를 뚫었다. 기자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이쪽은 유도 국대가 다섯이다.
“어어! 아이고! 나 죽네!”
한 기자가 자기가 뒷짐 지고 있는 황석에게 부딪쳐 놓고 나동그라진 다음 죽는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기자는 이쪽만 모은 게 아니었다. 지영에게도 든든한 공중파 기자가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근처 건물 옥상에서 아예 ‘팀’을 데리고 온 이선영이 이쪽을 제대로 찍고 있었다.
이렇게 나올 거라는 것도 임은진은 예상했고, 정신없는 지영을 대신해 이미 판을 완벽히 통제 중이었다. 기자는 많지 않았다. 지영을 묻어버릴 작정으로 온 것치고는, 끽 해봐야 서른 정도. 그 정도 인원이니 구멍이 숭숭 났고, 카메라는 여지없이 현장을 제대로 잡았다.
지영은 그렇게 자해공갈단의 방해를 뒤로하고, 차에 오른 다음 바로 출발했다. 지영이 떠나자 연희고 아이돌이 사람을 쳤네 마네 하는 기사가 떴지만, 이선영 기자 발 현장 영상이 뜨면서 올라왔던 기사는 전부 내려갔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일어난 강지영 열애설은 그렇게 크게 화제가 됐고, 그날 방영한 나의 무사님의 시청률을 40% 넘게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40%.
후반부에 폭발하는 시청률의 원인엔, 기레기들만의 ‘저널리즘’이 있었다. 아, 물론, 그 기레기의 저널리즘보다 더 큰 공헌을 한 건 그의, 강지영의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