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5화
265화. 나의 무사님 S2(12)
차가 출발하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한창 일할 시간이긴 했다.
“안 받아?”
“응, 안 받네. 일할 시간이야.”
“아, 맞네. 점심시간이 몇 시부터지? 보통 12시인가?”
“응.”
지영은 반사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친구들도 지영과 똑같이 각자 폰이나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3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보통 12시 전후로 점심시간을 가지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럼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아니면 먹고 나서 폰을 확인할 것이다.
후.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 지영은 자신도 강한결처럼 언젠가는 양유진과의 연애가 걸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좁고, 또 좁다. 그런데 인구는 많고, 가십에 매우 관심이 높은 나라였다. 특히 인터넷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해서 웬만한 일은 몇 분이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나라에서 강지영이란 한 인간에 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유명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끼어들어 생긴 일이 구르고 구르더니 뭔 설산 정상에서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처럼 되어버렸다. 구르고 구를수록 몸집을 불리더니, 웬만한 것들은 그냥 부수고 지나갈 정도로 거대하게 변했다.
거품.
사실 업계 관계자들이라면 지금 강지영이란 배우에게, 운동선수에게 과하게 거품이 꼈다고들 생각했다. 그건 냉정하게 생각하면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 봐도, 그래도 지금 강지영의 명성은 최고였다.
특히 프랑스에서 보여줬던, 노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금세기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했던 그 장면은 가히 전설로 남을 거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을 지영도 교육받아 알고 있었다.
배우는, 연예인은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지금 이 급한 상황에서도 표준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는 임은진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자신의 위치를 알았고, 자신과 더불어 황금세대 전체에 붙은 ‘시선’에 대해서도 알았다.
‘시선이 붙는 건, 숙명과도 같다고 했지.’
연예인이다.
이 직업은 누군가가 봐주지 않으면 의미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시선이 따라오는 건 숙명이었고, 자신의 연애도 언젠가는 걸리게 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조심했었다. 양유진이 공개되는 건, 그녀를 생각해서도 사실 좋은 일이 아니기에 가능하면 늦게, 한참 뒤에 좀 알려져도 알려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겨우겨우 시간을 내 만나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했음에도, 결국 걸렸다.
지영은 기사를 좀 더 확인했다.
혹시라도 반박할 수 있으면 하려고 했다. 그게 양유진에게는 좋으니까. 하지만 이건 뭐 빼박이었다. 모자이크도 없이, 그냥 옛다. 강지영 연애한다. 여자친구는 이 사람이다. 반박은 받지 않는다. 하는 느낌으로 던진 기사다.
“사진은 기가 막히게 찍었네.”
“하하, 내 말이.”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그냥 시원하게 웃고 인정했다. 사진은 진짜 잘 찍었다. 뭔 예술적인 혼까지 담았는지, 지영의 허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양유진과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자신을 진짜 완벽하게 담았다. 따로 화보로 써도 될 정도의 퀄리티였다.
그 한 컷이 아니라 같이 손을 잡고 걷는 사진도 있고, 서로 나란히 앉아서 얘기 중인 사진까지, 그냥 사랑하는 연인의 감정을 담은 얼굴들이 워낙에 적나라하게 나와서 이건 뭐 어떻게 해볼 건더기 자체가 없었다.
“공개로 갈 거지?”
“당연하지.”
지영도 그녀와 찍어서 올렸던 사진을 공개로 돌릴까 하다가,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강한결이 그때 비공개를 공개로 전환한 건 양지원과 합의가 있고 나서였다. 양지원도, 강한결도 서로를 믿었고 그래서 공개로 전환 후 알콩달콩한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은 당당히 영화도 보고, 손잡고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하고 있었다.
그게 솔직히 부러웠던 지영이었다.
연애 초기에는 지영도 그럴 수 있었지만, 아시아 선수권 이후부터 터진 문제들 때문에 지금은 꿈도 못 꿨다. 그러다 올해 사건으로 아예 숨어서 만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지영도 지은 죄는 없지만 좀 떳떳하게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양유진의 대답이 있어야 했다.
자기 욕심이 ‘네, 제 여자친구입니다.’ 이렇게 공개해 버리는 건 그녀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러니 연락이 닿기까지는 일단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중에, 강한결에 네, 어머니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네, 저 지금 지영이랑 같이 있어요. 아니요. 지금 사정 얘기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에요. 네. 잠시만요.”
그러면서 폰을 내미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엄마 같았다.
지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아들 서울 올라가고 있어?
“네, 전부 끝나고 가는 건 늦어서, 사정 설명하고 지금 올라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기자들이 몰려갔을 거고, 누나는 이런 경험이 없으니 분명 많이 놀랄 거예요.”
-그래, 잘 생각했어. 엄마도 지금 올라가고 있어.
“네? 엄마도요?”
-딸 문제를 아들한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잖니. 그 순진한 애가 얼마나 놀랐을지도 빤하고.
“…….”
말문이 조금 턱, 막혔다.
지영의 일엔 사실 응,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거의 모두 맡기는 분이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양유진의 일이라면, 이렇게 흥분하는 기색을 보였다. 사사건건 터치하고 간섭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혹시 상처받을까 하는 일엔 전에 없이 강하게 나서셨다.
예전에 지영이 물었을 때도, 그때도 어머니는 강하게 양유진의 편을 들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게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조금은 흥분한 어조로 다시 말문을 여셨다.
-유진이는 너와는 달라. 걔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있어.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에서 사라졌지. 그 이후부터는 오직 세상에 둘만 남은 거야. 그래서 가족에 대한 갈망이 있어.
“네, 그건 알아요.”
-너한테도 얘기했니?
“네.”
예전에 얘기했었다.
진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 양유진은 가족에 관한 갈망이 있다고 했다. 특히 그중 엄마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 부릴 수 있는 엄마, 그렇게 투정 부리면 우리 딸 힘들어? 하고 말해주는 엄마. 그런 엄마란 존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시상식 때 어머니를 보고 좀 놀라서 바로 가까워지지는 못했지만, 지영의 노력 덕분에 한 번 충주에 와서,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좀 파격적이었지만,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란 존재에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허락하고 내려온 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그 이후 어머니와 양유진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번호를 교환하고, 지영이 바쁘면 양유진만 충주에 내려가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면서 어머니는 양유진에 대해, 지영보다 더 잘 파악한 것 같았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때가 없어서 유진이는 언제나 그걸 갈망했어. 나한테 가끔 투정을 부릴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고.
“……그랬어요?”
-그러더라. 엄마처럼 대하고 싶은데, 내가 진짜 엄마는 아니잖니. 그런데 관계가 가까워지니 진짜 엄마처럼 응석을 부리고 싶은 욕심이 계속해서 커지고, 잘못하면 혼도 내주고, 그랬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응석.
“아…….”
조용한 차 안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따로 스피커 폰으로 돌리지 않아도 조용한 차 내부를 제대로 울렸다. 그렇게 울린 목소리에 강한결도, 황석도, 운전 중인 임은진도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한 여인의 아픈 사정이지만, 그걸 아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르면 실수하지만, 알면 실수하지 않고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네가 가서 중심을 다잡아줘야 해. 하지만 엄마가 옆에 있다는 걸 보면, 심적으로 크게 안도감이 들 거야.
“……네.”
솔직히 말하면 전부를 이해한 건 아니다.
어려운 얘기였고, 복잡한 얘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서울행이 맞다는 확신은 들었다.
-아, 버스 왔다. 엄마 버스 타고 이제 출발하니까, 도착하면 연락할게.
“네, 엄마. 그,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어. 아들 일이지만, 딸 일이기도 하니까.
“……네.”
한 번씩 폭발하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에, 지영은 정말이지 자신은 참 축복받은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화를 끊자.
“어머님이 정말 대단하시다.”
임은진의 감탄이 즉각 들려왔다.
뿌듯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어머니 아들이라는 게.
임은진은 고속도로를 타는 순간부터 회사와 통화를 끊이지 않고 이어갔다.
“네, 저희 왜 준비해 놨던 보도자료 있잖아요? 그거 스탠바이 해주세요. 아니요, 바로는 말고요. 준비만요. 지금 서울 가는 중인데, 유진 씨 만나서 의견도 들어봐야죠.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지만 당장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잖아요. 네네. 결정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유진 씨, 아. 맞아요. 양지원 선수 친언니 맞아요. 음, 양지원 선수 개인사는 이미 언론에 많이 나왔으니 따로 조명하지 않기로 해요.”
전문가들이 다른 게, 미리 예측하고 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 내에 지영의 연애야 비밀도 아니었다. 같이 소속되어 있는 황석의 연인 한은정은 시간이 나면 회사에 찾아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여, 직원들 입에서 자기를 살찌우는 ‘악마’ 사육사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양지원과 강한결의 관계야 당연히 알고 있었고.
애초에 아이돌 전문 기획사도 아니었다.
이 엔터 회사는 골프 선수였던 장세리가 방송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 방송 일을 도와줄 직원 몇 명을 고용하며 시작된 회사였다. 본래 골프 쪽과 그쪽 관련 일은 인터내셔널 팀이 하고, 장세리가 방송을 시작하며 사람을 구하기 시작한 게 시발점이다.
그러다가 지영을 포함한 연희고 아이돌이 들어서며 대폭 인원이 보강됐다.
그러나 그래도 전문성은 확실히 떨어졌다. 실장급이야 경력직이지만 그 외는 다들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연희고 아이돌이 받는 관심은 솔직히 웬만한 아이돌은 감히 비벼보기도 힘들었다. 처음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그저 ‘완벽’하다는 강한결만 해도 웬만한 그룹은 화제성만으로 그냥 씹어먹었다.
지영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아이돌의 화제성과 비벼볼 만하니까. 그런 지영을 맡아 몇 번 사건 사고를 겪고 나더니, 이런 일에는 이제 빠삭해졌다.
사전에 지영의 연애가 걸릴 걸 대비해 이미 충분히 논의와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양유진의 마음이 결정되면 이제 공식적으로 보도자료가 뿌려질 것이다. 서울로 가면서, 양유진과 통화가 됐다.
놀란 그녀를 안심시키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경주에서 서울은 멀었다. 멀어도 너어무! 멀어서! 어머니가 먼저 서울에 도착해 양유진의 회사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는 얼마 뒤 다시 전화해서, 푸념하셨다.
-얘, 회사 앞에 사람이 가득해. 기자 말고도 막 구경하러 온 사람도 엄청 많아. 못해도 몇백 명은 되겠어.
“네?”
-어디 다른 문이 없나 찾아봤는데, 들어갈 방법이 없다, 얘.
“……알아보는 사람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근처 카페에 들어가 계세요. 날도 찬데. 저 이제 반 조금 넘어서, 한참 더 가야 해요.”
-그래, 과속하지 말고, 천천히 와, 천천히. 알았지?
“네.”
과속, 음주는 어머니에게도 트라우마다.
아버지에게 났던 사고도, 그랬던 사고였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자, 임은진은 오히려 속도를 조금 높였다. 그래 봐야 규정 속도 아래에서 조금 더 오른 정도였다. 급하지만 지영은 보채지 않았고, 급하지만 임은진도 과속하지 않았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서울에 도착했다.
회사 근처로 가자, 사람은 좀 빠졌지만,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자들을 회사 경비로 보이는 사람과 덩치가 엄청난 민머리 중년? 장년? 사내가 막고 있었다.
“아 거! 그냥 질문 몇 개만 한다니까요!”
“어차피 알려진 거 아닙니까! 차라리 지금 질문 몇 개 받고 끝내는 게 낫다니까요? 안 그러면 여기 사람들이 계속 쫓아다닐 건데 그럼 회사에도 문제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네? 사장님. 그냥 인터뷰 10분만 하게 해줍시다. 그럼 깔끔하게 물러간다니까?”
기자들.
저건 솔직히 뭐라고 하기도 뭐했다.
생각해 보면 참 악연으로 뭉쳐 있지만, 저러지 않으면 저들은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는 자들이었다.
저들의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
이긴 하지만…….
“헛소리들 말고 냉큼 꺼져! 너! 그리고 너! 억지로 문 열려고 하면 아주 내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릴 거여!”
민머리 아저씨의 박력에 기자들이 흠칫 물러났다. 마치 장판파의 장비 같았다. 그러다 아, 장비는 민머리가 아니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긴장감 없는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자, 이제 어떡할 거니?”
멀찍이 떨어져서 회사를 보던 임은진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리고 장시간 차에 타 좀 피곤한 기색이던 강한결과 황석도 눈을 빛냈다. 지영은 그 시선에 피식 웃었다. 서울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달려오며 지영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할까 당연히 고민했다. 여기서 버티는 건 의미가 없었다.
버텨봐야, 저 기자들의 눈을 피해 안에서 양유진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일단 지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여자를 저 안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
억압에서, 자유를 찾아주는 것.
그게 가장 먼저였다. 경찰을 부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실제로 경찰이 몇 명 나와 있지만, 기자들을 만류하진 않았다. 문을 막고 있을 뿐. 그러니 직접 들어가서 데리고 나와야 했다. 그럼 지영이 직접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뭐, 정해져 있었다.
“제가 들어가야죠.”
직접 들어가는 것.
그 말에 임은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매니저로서는 절대로 반대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특수하니까.”
임은진의 허락에 지영은 웃었다.
저렇게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회귀 초기에는 이선영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면, 지금은 임은진이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럼 나는 호위무사군.”
“이번엔 우리가 재가 되는 건가?”
“에이, 석아. 그래도 재는 아니지. 재 아래 백적파 단원이 되는 거지.”
“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다.”
친구들의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다행이었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데 혼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너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