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4화
264화. 나의 무사님 S2(11)
나의 무사님 제작비는 빵빵했다.
워낙에 관심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선고와 합쳐 100억 가까이 들어갈 거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말은 90%쯤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100억은 아니지만 거의 90억쯤 제작비가 책정됐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 절반 정도였지만 몇 번의 이슈로 작품에 관한 화제성이 어마어마한 정도로 폭발하면서, 제작비가 훨씬 더 많이 내려왔다. 그리고 제작비 말고도 투자금이 붙었다. 아무리 망해도 중박 이상은 칠 거라는 게 확실할 거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니 투자계 큰손들이 당연히 달라붙었다.
웹플릭스와 앗챠, 월트지니에서 어떻게든 계약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작품이 나의 무사님과 선고였다.
그랬던 작품이기 때문에 제작비는 넉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장면을 해외 로케로 쓸 수는 없었다. 필요하다면 쓰긴 쓰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국내의 장소로 정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왕릉 배경이 필요한 신이었고, 왕릉 하면 또 경주였다.
경주의 한 지역에서, 지영은 한창 촬영 중이었다. 이번 장면은 극 후반에 나올 장면이었다. 선대 황제의 무덤을 찾은 재가, 후의 처단을 다짐하는 장면이고, 이곳을 찾아온 제국군과 교전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후반부의 연은 각성했다.
정말 혀를 내두를 전략으로 제국군을 다시 샨강 너머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 올린 신뢰로, 다시 군을 형성한다. 후의 역습은 이전까지 전부 보여주고 마지막엔 연의 각성 차례가 이어지는 것이다.
시즌3가 메인 스토리의 완결이라서, 2부는 다시금 후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을 회복하는 걸로 끝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연과 재의 관계는 철저하게 망가진다.
연은 이전처럼 재를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지도 않았다. 그냥 서로를 돌보듯이 했다. 무너진 신뢰였고, 연은 그 신뢰를 따로 복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제국의 부활에만 모든 심력을 쏟기로 정하면서부터였다.
시즌3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당장 극의 흐름은 그랬다.
지영은 그런 극의 흐름을 이해하며, 오늘도 열심히 촬영 중이었다.
“어, 어! 아니지. 거기서 뒤로 빠지면 위험하다니까?”
요즘 제국제일검으로 극 중에서나 현실에서나 인지도가 엄청나게 오른 김진우의 지도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빼려던 몸을 얼른 다잡았다. 나의 무사님 모든 액션 합은 김진우의 지도하에 이루어졌다. 관장인 왕주형은 새롭게 계약한 작품 때문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부관장이고, 작품에 출연하는 김진우가 모든 것을 총괄했다.
물론 아무도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가 짠 액션은 매우 간결했지만, 카메라로 담았을 때 정말 박진감이 넘치는 장면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실전적이었다. 화려함을 걷어낸 액션. 나의 무사님 시즌1 때는 지금은 목이 날아간 감독이 액션으로 시선을 확 끌어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홍진아로 바뀌고 나서 액션도 느낌이 변했는데, 그녀는 액션에도 섬세함을 넣었다.
어떤 섬세함이냐면, 말도 안 되는 장면은 걷어내는 섬세함이었다.
개연성.
액션에도 개연성을 부여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막 공중에서 세 바퀴 돌아서 칼질하고 이러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다. 그러는 동안 주변에서 창만 내질러도 꼬치가 되기에 십상이고, 이 당연한 걸 홍진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격렬한 액션일수록 현실적으로 짜주길 바랐고, 김진우는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으로 액션을 짰다. 실제 현역 때 세계에서도 알아주던 검도 고수였던 김진우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재의 액션은 멋있으면서도 처절했고, 때로는 극한으로 내몰리면서 찌질해지기도 했다. 땅바닥을 구르고, 개처럼 기고, 이런 장면은 예사로 나왔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멋’ 따위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홍진아는 의외로 그걸 보고 아주 좋아했다.
이런 김진우 표 액션은 팬들에게도 정말 인기가 많았다.
시즌1 초기에 보여줬던 말도 안 되는 액션이 사라지고, 진짜 현실성이 있는 액션 때문에 몰입이 훨씬 더 잘된다는 평이 자자했다. 그래서 지금은 김진우의 액션을 모든 스태프가 믿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7 대 1.
김진우는 자세를 다잡아주며 지영에게 물었다.
“지영아. 실제로 7 대 1로 싸움이 나면 어떨 것 같아?”
숨을 몰아쉬는 지영에게, 김진우는 그렇게 물었다.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마…… 상대도 안 되지 않을까요?”
“네 생각도 그렇지?”
“네. 그럼요.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훈련받은 사람이면…… 어림도 없죠.”
이게 지영의 실제 마음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운동한 사람들. 특히 투기 종목 사람들을 무슨 인간 흉기 취급하고는 했다. 그리고 실제로 맞긴 맞았다. 일반인에게, 투기 종목 선수들은 흉기나 마찬가지였다. 야생에서 만난 호랑이나 사자만큼이나 위험할 것이다. 만약 시비가 붙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훈련받았다면?
그것도 거의 비슷한 세월을?
같은 투기 종목 선수 일곱과 시비가 붙었다면, 이건 진짜 굳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총을 들었으면 모를까, 작은 칼 정도는 도망치지 않고 정말 제대로 붙었다는 가정을 넣으면, 그래도 7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누군가가 칼에 맞고도 그를 붙잡아야 한다는 희생이 뒤따른단 가정이 붙긴 하겠지만, 그것만 되면 그래도 7이 무조건 우세다. 아니, 우세 정도가 아니라 필승이다.
훈련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다.
김진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했다.
“우린 칼까지 들었잖아. 그런 상황에 사방에서 한 번씩만 칼을 찌른다고 생각해 보면, 애초에 이건 그냥 상대도 되지 않는 거야. 그런데 극 중 재는 이 말도 안 되는 걸 뒤집어야 해. 처절하지만, 그래도 이겨내야 하는 거지. 그런데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압도적으로 이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음…….”
김진우는 이런 식으로 지영이 액션 자체가 가진 의도를 읽어 내기를 바랐다. 전에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런 이해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천지 차이라고 했다. 기계처럼 합을 맞추는 것보다 합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며 좀 더 그림이 산다고도 했고. 지영도 이해했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답을 내놨다.
“바닥을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뒤는 주면 안 되겠네요?”
“역시, 똑똑하다니까. 하하. 맞아. 이런 일 대 다의 검도는 절대로 뒤를 줘서는 안 돼. 이건 뭐 기본이겠지만, 뒤를 주면 눈먼 칼이 날아오는데 그걸 피하는 건 솔직히 감각으로는 불가능하거든. 당장 눈앞에서 칼이 아른거려. 그러면 당연히 거기에 모든 감각 초점이 맞춰질 건데 뭔 수로 뒤에서 날아오는 걸 피해? 그러니 가능한이 아니라 살고 싶으면 무조건 뒤통수는 비워 둬야 하는 거야.”
“아하, 이해했어요.”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우가 특유의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여줘. 뒤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그냥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처절하게 막아서 보여줘. 그런데 단순히 뒤로 빠지기만 하면 의미가 없어. 상대는 일곱 명이거든. 그럼 멀찍이 돌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돌아야겠네요. 포위망이 느슨한 쪽으로.”
김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액션 합에 나왔다. 실제로 김진우는 한쪽으로 재를 움직이게 해서 포위를 막아가는 합을 짰다.
그렇게 한차례 합의 의미를 성찰한 후에 시작된 연습.
역시 다르긴 달랐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아니까, 행동 자체에서 좀 더 ‘간절함’이 뿜어졌다. 뒤를 막아야만 피할 수 있으니, 절대로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팍팍 눈빛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는 실전에서도 드러났다.
지영의 연기를 본 홍진아는 매우 흡족해했다.
그녀는 섬세함도 있고, 화면을 유려하게 잘 뽑긴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허망한 것을 담지 않는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그녀의 작품에, 판타지 요소가 없는 건 그런 성향 때문이었다. 이는 나의 무사님과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폭풍처럼 연습과 촬영을 끝냈더니 임은진이 황석, 강한결과 함께 급히 다가왔다. 두 사람은 드라마에 들어가기로 했다. 선고 때 지영처럼, 극의 중후반에 등장해 4에서 6화 정도 등장하는 비중 있는 조연 역이었고, 드라마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알고 싶어 오늘 새벽부터 함께 나와 견학 중이었다.
그런 둘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지영의 근처에 있었지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그저 말 그대로 견학만 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기 시간에 어떻게 하는지 등등을 눈에 담고 피부로 느꼈다.
지영은 반사적으로 황석이 건넨 수건을 받아 땀을 닦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표정 보니까 또 뭐 터진 것 같은데.”
임은진에게 그렇게 묻자. 그녀는 한숨과 함께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그녀가 보여준 태블릿엔,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알려지리라 생각했던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스캔, 아니, 열애설이네요.”
“응, 너랑 유진 씨. 사진 보이지? 이건 빼박이야, 지영아. 호호.”
임은진은 힘없이 웃었다.
그녀는 자기가 맡은 배우의 연애를 막는 성격은 아니었다. 연애는 배우의 인기와 이미지에 어느 정도 타격을 주는 건 맞았다. 하지만 젊은 청춘남녀를 맞다 보면, 선남선녀끼리 만나 호감을 느끼게 되는 건 거의 자연의 이치처럼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걸 막으면, 거의 100이면 100 문제가 생겼다.
막는 것 자체가 억압이었다.
이 억압은. 해방되는 순간에 더욱 강렬한 에너지로 주변을 초토화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어봐서, 정말 문제가 되는 ‘만남’이 아니라면 그녀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지영과 양유진.
둘의 시작은 사실 둘 다 일반인에 가까울 때 시작됐다. 그러다가 강지영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의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셀럽이 되면서 사소한 일 하나도 기사가 나간다. 이미 양유진의 신상이 털렸다. 작정하고 따라붙은 기자는 지영의 연애를 확인한 다음 그가 아니라, 양유진에게 붙었다.
그래서 그녀의 나이, 학교, 직장, 가족 등등까지 전부 캐낸 상태였다.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결국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맡은 이 배우가 굉장히 이성적이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리고 임은진은 어째, 어떻게 나올지 알 것 같았다.
가만히 기사를 읽는 지영.
지영의 행동에 뭔가 터졌다는 걸 직감한 스태프와 관계자들도 각자 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했고. 올해,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남자 강지영의 열애설을 확인했다. 그리고 역시나 확인 즉시 소란이 일어났다.
“대박, 고아 출신이래…….”
“야 이, 고아 출신이 뭐야. 돌았냐?”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입조심 해. 그런 말 잘못하면 한 방에 훅…… 아이고.”
들렸다.
지영은 고아 출신이란 단어에 이미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생각 없이 그 말을 내뱉은 스태프를 가만히 바라봤다. 화가 났다. 고아 출신? 순간적으로 치솟은 열 때문에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지영아.”
“…….”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견학 온 친구 강한결, 지영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인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새 옆으로 와 지영의 소매를 가만히 잡았다.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 있지만, 강한결의 악력은 황석보다도 위였다. 옷이 찢어지면 찢어졌지, 그가 놓칠 일은 없었다.
뭐, 뿌리칠 생각이 없기도 했다.
“지영아, 일단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이거 지금 기사 올라온 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여기 주소 좀 봐봐.”
“…….”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곤 강한결이 보여주는 걸 확인한 지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스타일을 잡아주는 스태프가 봤다면 발을 동동 굴렀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소가 노출됐다.
집 주소 말고, 양유진이 일하는 공장 주소가 오픈됐다.
특히 회사 정면을 찍은 사진은 지영도 그녀를 배웅 나간 적이 있어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맞아?”
“응.”
“……지금 아마, 기자 엄청나게 몰려가고 있을걸.”
“…….”
그렇겠지.
후우, 지영은 반사적으로 임은진을 바라봤다. 이런 일이 생기면 믿을 사람은 임은진밖에 없었다. 지영의 시선에 그녀는 한숨과 함께 씩 웃었다.
“그럼, 가야지. 공주님을 구하는 왕자를 놓칠 수는 없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뭔가 그림을 그렸나 보다.
임은진은 바로 홍진아에게 갔고, 사정을 설명했다. 홍진아는 군말 없이 오케이했다.
“여기 신도 끝나서 우리도 파주 세트장으로 움직일 거예요. 수습되면, 그쪽으로 오세요. 아, 따로 촬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나도 지영 배우 연인이 궁금해서. 호호!”
홍진아의 너스레에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현장 인원 전체에게도 똑같이 인사를 한 지영은 곧장 서울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