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2화
262화. 나의 무사님S2(9)
폭풍처럼 처박힌 시청률.
네티즌은 냉정했다. 말이 안 되는 전개는 아니지만, 말이 되는 전개라고 이해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와 썅, 여기서 이렇게 똥을 싼다고?
-아니, 있을 수는 있지. 그래, 염병, 그렇게 대신 칼을 맞아주니까 당연히 마음이 가지. 아는데, 안다고…….
-졸라 잔인한 게, 오히려 역으로 재는 지극히 현실적인 놈이라서 지키는 대상으로밖에 생각을 안 하잖아. 그래서 선고랑 연애하고. 정은정 작가는 이 부분을 만들면서, 연을 오히려 처박을 생각이 만땅이었다는 거 아냐.
-정은정 작가가 이런 부분을 잘 안 쓰긴 해도, 각 쓰고 쓰면 X나 또 잘 쓰지.
-이거 타이틀이 후의 역습이었나? 근데 이 정도면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연의 삽질으로? ㅋㅋ
-인정, 보는 내내 딥빡 진짜 아오. 어머니도 저년 저거저거, 쌍년이라고 욕을 욕을 하심 진짜.
-이렇게 조롱당할 거 알았는지 타이틀 내렸어요 ㅋㅋㅋ
-아 근데 진짜 빡친다 ㅋㅋ 재가 그렇게 개고생해서 겨우겨우 군대로 만들었는데 그걸 한 방에 말아처먹네 ㅋㅋ
-이쯤 되면, 캐릭터 붕괴라 그냥 쳐내야 하는 거 아님?
-무려 주인공임. 쉽게 내칠 수가 없음. 이제 여기서 반전을 줘야 하는데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크게 말아먹었는데 기회를 줄 수 있겠냐고.
-시청률이 2화 만에 10% 처박힘 ㄷㄷ
-그러니까요. 와 씨, 40이 눈앞이었는데 미친……
-그러니까요 ㅠㅠ 진짜 바로 코앞이었는데 ㅠㅠ
시청률 37%였다.
여기서 뚝, 떨어져 다시 27%대로 돌아갔는데, 솔직히 27%만 해도 대박은 대박이었다. 하지만 37과 27은, 아예 급이 달랐다.
그래서 시청자도, 관계자도 전부 아쉬움에 몸부림쳤다. 솔직히 9, 10화는 반대가 많았다. 잘 가고 있는데 왜 경로를 틀어 똥통에 빠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단 얘기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반응이 그렇건 말건, 지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부분의 대본은 이미 촬영 전에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영은 이해했다. 인정도 했다. 극의 흐름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였다. 극의 긴장감, 추락을 위해서 충분히 쓸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는 배우들 전체의 의견이었다.
심지어 그 대상인 이연도 극 중 연의 삽질을 이해했고, 인정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연기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천하의 쌍년이란 쌍욕이 날아드는 현재 결과가 말이다. 그녀는 발 빠르게 SNS를 닫았고, 외부와 소통을 끊어버렸다. 오직 현장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그게 좀 걱정스럽기는 했다.
“누나, 괜찮아요?”
지영이 조용히 묻자, 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충분히 예상한 일이니까. 누난 걱정하지 말고, 연기에만 신경 써. 너 요즘 자꾸 나 배려한다고 힘 빼고 그러는데, 그러지 마라?”
“넵.”
역시 이연이다.
아이돌 할 때부터 욕을 하도 먹어서, 내성이 상당한 그녀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다. 심지어 방영 직후에는 현장에 국민 쌍년 이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사람 난감하게 만드는 드립을 치며 놀기까지 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즐기는 눈치였다.
시청률 하락은, 사실 9화 10화를 찍으며 다들 예감했다. 아, 이게 나가면 시청률은 하락하겠구나. 이전처럼 시청률이 잘 나오길 기대할 수는 없겠구나. 다들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충격이 크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욕을 먹는 이연을 많이, 과하게 챙기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긴장감이 쭉 빠졌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더 분위기가 좋았다. 시청률이 빠지니, 오히려 편해진 마음으로 다들 연기하니 그림도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나왔다.
“과하게 찼던 게 덜어지니, 다들 눈빛들이 다르네.”
황덕수의 말에 지영은 어느 정도 공감했다.
막내를 빼고는 다들 뭔 신병처럼 각 잡고 긴장한 모습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긴장이 빠지고 나니 다들 연기력이 확 살아났다.
나의 무사님 후반부는, 속죄의 장이다.
이연은 여기서 버려질 수 없었다.
세계관 상, 연은 버려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걸 기회로 삼아 각성하는 캐릭터였다. 연은 이후 철저하게 자신을 죽인다. 감정을 버리고, 마치 기계처럼 제국의 탈환을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골 때리게도 그런 모습에 다시 천천히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숲을 이용한 철저한 타격전.
지형지물을 이용해 샨강을 너머 진군하는 제국군을 상대하기 시작하며, 전황의 역전을 노리는 연의 모습이 후반의 내용이었다.
과연, 이 모습에 이미 천하의 쌍년이란 욕을 먹는 연의 평판이 되돌아올까? 이게 후반부의 관건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간 11, 12화는 시청률을 다시금 회복했다. 30 중반대의 시청률까지 끌어올렸는데 이 과정에서 그래도 다행히 연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구원을 받았다. 그러면서 다시 시청률이 궤도 올랐지만, 이제 그만큼 몸이 힘들게 구를 때였다.
무릎을 꿇고, 아예 철저하게 숙이는 연과는 달리 극 중 재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그래서 지영은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이 늘어갔다. 지영은 이 액션 신을 정말 철저하게 준비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액션을 찍다가 다치는 선배들이 없게끔 최선을 다했다. 사극이고, 극 중 재는 칼을 쓰기 때문에 잘못 맞으면 진짜 크게 다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창 촬영에 집중하고 있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호출이 왔다.
“네? 누구요?”
“문체부 직원이라는데?”
“……문체부가 왜요?”
“뭐, 빤하지 않니?”
호출받고 현장으로 가기 전, 회사로 가면서 왜 부른 거냐고 물었더니 뜬금없이 문체부란 얘기가 나왔다.
“나도 정확한 건 아직 몰라. 그쪽에서 급히 봐야겠다고 해서, 오늘 일찍 찾아온다고 했거든.”
“아, 뭔가 귀찮은 일일 것 같은데요?”
“그렇지? 누나 생각도 그래.”
에휴, 한숨을 내쉬는 임은진.
교통 체증이 막 끝났을 시간인데, 그녀는 앞이 차로 꽉 막힌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질색이에요?”
“내가 이 바닥에 20년 가까이 있으면서, 정부랑 엮여서 좋은 꼴 난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지금도 그래요?”
“지금이라 더 그렇지. 별의별, 진짜. 이름 좀 등에 업어보려고 지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장난 아니야. 진짜 힘이 끗발 나지 않으면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무려 문체부잖아? 방통위 통해서 막 압박 넣고 그러면 진짜 답도 없어.”
“…….”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
질색팔색하는 임은진의 반응에 지영은 슬그머니 녹음기를 챙겨 목에 걸었다. 그걸 본 임은진이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는 엄지를 척 들었다.
“지영이 넌 부당하면 그냥 들이받을 거지?”
“하하, 글쎄요?”
지영도 그렇게 막 나가는 성격은 당연히 아니었다. 가끔 보면 진짜 천둥벌거숭이처럼 막 나갈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떻게 해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단 확신이 있을 때나 막 나갔다. 그게 아니면 몸을 사리긴 사리는 성격이었다.
라고 스스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니었다.
“딱 보니 그럴 표정이네. 뭐 일단 들어나 보자. 무슨 얘기하는지.”
“네.”
몇몇 가지 가정이 떠오르긴 한다.
나의 무사님이 폭발적으로 뜨면서 정부에서는 이미 몇 번의 협조 공문이 왔었다. 두 번인가 세 번은 정부 주관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거였는데, 당연히 거절했다. 한 번은 CF였고, 그것도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CF 건은 나중에 알려지면서 욕을 퍼대기로 얻어먹기도 했다.
물론 지영이 아니라, 정부 부처가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봐도 그쪽은 지영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체부에서 찾아왔다? 지영은 이번에도 좀 피곤할 것 같은 느낌이 팍 들었다.
30분쯤 달려 회사에 도착해 위로 올라간 지영은 일단 회의실로 향하기 전 장세리를 먼저 만났다.
“아무래도 뭔 행사 참석 때문에 온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좀 큰가벼.”
“행사가요?”
“응. 슬슬 가을이잖아. 그리고 그 어디냐, 어느 나라랑 수교도 맺는다고 얘기도 있고.”
“아, 수교…….”
지영은 정치 외교에 정말이지,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유도와 연기. 그리고 가족과 친구, 양유진, 이정도가 관심의 전부였다. 그래서 요즘 시대의 외교나 정치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다. 아예 관심 밖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약 정말 행사나, 정치 외교 목적으로 자신을 찾은 거면 정말이지 아주 크게 실망할 것 같았다.
‘나름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강압적으로 나온다면……. 흠.’
뭐, 아직 결정된 건 없으니,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임은진, 장세리와 함께 회의실로 가자 50대 초반의 중년 사내와 30대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들어가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데.
‘얼씨구?’
50대 사내는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다. 눈빛에 깃든 거만함을 보면 딱 어떤 느낌인지 감이 즉각 왔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그 사람은 무시했다.
“정책실장이십니다.”
그러자 부하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얼른 소개했는데, 무슨 정책 실장인지, 이름은 뭔지, 깡그리 생략된 소개였다.
“장세리입니다. 자 그럼 얘기 시작할까요?”
이에 장세리도 정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장세리가 누군가.
대한민국의 여자 골프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1등 공신이었다. 정말 어려웠던 시절 장세리 덕분에 많은 국민이 위로받기도 했었다. 야구의 투머치 토커 형님과 해버지, 피겨 퀸 등등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레전드였다.
그런 레전드 앞에서도 저 양반은 고개가 빳빳했다.
누가 봐도 대화하러 온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장세라마저 무시하는 걸 보니 아마 족보가 대단한 것 같았다. 운동선수나 배우처럼 예술 하는 사람을 하찮게 생각하는.
‘아, 피곤하겠네.’
절로 머리가 아팠다.
이름도 듣지 못한 사내는 가만히 있었고, 이번에도 남자 직원이 설명했다.
“저, 그 이번에 정부 주관 가을 행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번에 새롭게 수교를 맺을 나라의 대사와 대사 부인, 그리고 그 나라에서 온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입니다.”
수교.
관계자들 참석. 그리 어렵지 않게 내용은 이해했다. 이해했기 때문에 짜증이 났다. 분명 그쪽에서 지영의 참석을 요구했을 거다. 그 사건 이후, 아직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 지영을 향한 열기는 상당히 많이 식었다.
애초에 계속 타오르려면 그럴 만한 장작이 있어야 하는데, 철저하게 정보를 감추는 편인 강지영이라서 아무리 태우고 싶어도 태울 수 있는 건덕지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CF나, 각 기업의 러브콜 등이 이어지며 아직 불이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선고와 나의 무사님이 방송을 시작하며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마이웨이를 걷는 지영에 관한 기사는 하루에 수십 개씩 올라온다. 그래서 인기는 예전보다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진 않았다.
“그쪽 관계자나, 관계자 가족 중에 지영이의 팬이 있나 보네요?”
장세리가 그렇게 묻자, 남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 따님이 K팝 팬이고, 여기 지영 씨 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 때 꼭 좀 봤으면 좋겠다고…….”
하아.
이럴 줄 알았다.
지영은 그냥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름도 모르는 정책실장의 인상이 슬쩍 찌그러졌다. 지영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 여실히 느껴졌다.
‘또라이 보존 법칙이 있다더니…….’
생각이 짧아도 어떻게 이렇게 짧을 수 있을까? 애초에 강지영은 참 건드리기 쉽지 않은 인간이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건드렸다. 몰라서? 지영은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짧은 생각으로 본인의 자리를 본인이 위협하는 경우는 꽤 있었다. 당장 나의 무사님 시즌1 때만 해도 그랬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홍진아 이전의 감독은 거만함에 취해 지영에게 갑질을 했고, 깔끔하게 날아갔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싹싹 빌었지만 이미 배에서 내던져진 이후였다.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깨달아봐야, 늦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여기 눈앞에 또 찾아왔다.
‘관료병 말기 환자.’
정책실장?
그 직책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거만함을 부릴 정도는 아마 될 거다. 고작 사무실 만년 과장 정도였다면, 이런 모습은 말도 되지 않았다.
“네,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영아, 어쩔래?”
장세리가 공을 돌렸다.
“거절할게요.”
그리고 지영은 그 공을 받아 도로 빵! 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