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61화 (26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1화

261화. 나의 무사님S2(8)

왜.

그리고 어째서.

솔직히 말하면 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작전으로 인해 이족의 젊은 전사 수십 명이 죽었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 이들이었는데, 전장에서 그렇게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 작전을 계획한 연을 욕하기는 애매한 게, 이 두 번의 작전으로 제국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두 번째 작전에서는 제국군의 보급창고를 태웠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삼분지 일을 소실시켰다.

첫 번째 작전인 제안 성주의 멱을 땄던 작전으로 제국 남부의 귀족들이 모두 주춤하기 시작했다.

당시 따로 작전을 나갔던 선고가 제안성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필적하는 두 개의 성 성주를 저격했기 때문에, 제국을 도우면 암살당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다른 남부의 성주들은 지금 후의 명령을 뜨뜻미지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자체가 전공이었다.

위험하지만, 성공하면 확실한 성과를 거두는 작전이었고, 작전 성공으로 충분히 이점을 받은 상태였다.

이게 문제였다.

공주 연이 내놓는 계략은 위험하지만, 확실한 성과가 나온다는 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이쪽에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후였다. 그런 후를 호위하는 제국제일검의 호위대가 현재 전선으로 향하는 중인데, 연은 그 호위대를 중간에서 잘라먹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다시금 재에게, 작전을 맡겼다.

일백의 용사를 선발해 제국제일검이 이끄는 호위대를 쳐라.

바로 이런 명령이었다.

사실 제국제일검이 합류하면 정말 위험하긴 했다. 제국제일검 ‘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을 갖춘 인물이었다.

예전과 같은 권세를 등에 업을 수는 없지만,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사기의 충천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국에는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리고 단순히 그 위상이 허상도 아니었다.

강했다.

제국제일검 진과 이미 한 차례 칼을 맞대 본 적이 있는 재는, 아무리 이족의 전사들이 개인 기량이 뛰어나도 후가 작정하고 키워낸 호위대를 넘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재에게 한 번 박살 난 호위대는 철저한 방패병이다. 절대 뚫리지 않는 철갑을 두른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강력한 창의 역할을 하는 진이 있었다.

아직 절정의 기량을 갖췄을 때가 아니지만, 당시 진은 재를 압도했다. 재가 상처 입고,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의 재를 아예 가지고 놀 정도였다.

‘정상이었다고 해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인물. 아니, 내가 두 수는 밀린다고 봐야겠지.’

그런 생각이 들게 했던 게 제국제일검 ‘진’이었다.

그런 진을 상대로 백적파보다 훈련되지 않은 이족 전사들을 이끌고 가서 친다?

‘이건 죽으라는 뜻인 거야.’

그걸 연이 모를 리가 없었다.

공주는 병법보다, 실제로 무예를 먼저 익혔다. 다만 나이가 차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고 서예, 서화, 서적으로 옮겨가야 했지만 그래도 아직 감을 잃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곳으로 넘어와서 싸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감을 읽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연이, 그런 곳에 자신을 보내려고 한다.

답답했다.

물을 예정이었다.

왜 이런 작전을 기획했고, 실행하는지.

‘왜 나를 죽을 자리로 보내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기에, 오늘 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주마마, 연의 표정은 매우 심상치 않았다. 어떤 감정에 휘말려, 무너진 표정. 연의 표정은 그랬다. 시시각각 변하는 연의 표정을 보면서 재는, 머릿속에 품은 얘기를 오늘도 꺼내지 못할 것 같단 예감을 진하게 받았다.

그런 재를 보면서 연은 또 입술을 꾹 깨물었다.

희고, 고운 입술이 이빨에 물려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어째서, 의문을 품지 않지?”

“…….”

갑자기 나온 말에 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문? 지금도 머릿속에 가득 들이 차 있었다. 그런데 그걸 꺼내지 않는 건, 본인의 의사로 맺은 것은 아니나, 주종의 관계가 이미 성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궁창에서 자신을 꺼내준 양부의 유언이 그랬다. 마지막까지 제국을 생각하셨던 양부는, 제국의 핏줄이 그날 그 궐 안에서 끝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재에게 연을 맡겼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주기를 바랐다. 그런 유언을 남기고는, 그날 생을 다했다. 그렇기에 유언은 앞으로 영원히 철회될 일이 없으며,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연의 생존.

재에게 채워진 족쇄의 이름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주종관계다. 재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연의 말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삶, 생존이 걸려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철저하게 그녀의 말을 따랐다. 본디, 호위란 것은 그런 거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에 금이 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호흡을 맞춰도 모자랄 판인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재는 씁쓸했다.

“재.”

“예, 공주마마.”

“어째서 의문을 가지지 않지?”

“저는 공주마마의 호위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질문을 이상하게 했네. 어째서 품은 의문을 내게 묻지 않지?”

“…….”

재는 연이, 자신이 불만을 품었고 이상하게 생각 중이라는 걸 이미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걸 얘기하지 않고 고스란히 왜 따르는가. 그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정말이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대답해, 재. 어째서 그대는 이렇게 내 말을 따르는 거지? 이번 작전이 얼마나 부당한지 알고 있으면서!”

“……공주마마의 명이기 때문입니다.”

“내 명령? 나를 따르기 때문에? 내 말을 따른다?”

“예.”

그것밖에는 이유가 없었다.

자신도 좀 답답하긴 했다. 양부가 걸어놓은 족쇄가 설마 이렇게도 강력하게 작용할지는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재, 그대의 헌신에는 진심이 없어.”

“…….”

헌신에 진심이 없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애초에 진심이 없이는 헌신 자체가 불가능했다. 헌신하는, 혹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진심으로 일어났을 때나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저 말은 성립되지 않는 얘기였다. 하지만 연은 자신이 한 말에 추호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

애초에 재가 목숨을 걸었다는 게, 진심이다.

그런데 그걸 의심한다?

이건 그동안 재의 헌신을 모조리 짓밟는 발언이기도 했다.

“공주마마.”

“재. 어째서지?”

“…….”

듣지 않는다.

듣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해도 먹힐 리가 없었다. 재는 깨달았다. 연의 마음이 언젠가부터 고장 났음을. 그리고 그게 언제인지, 그걸 생각해봤다. 사실 이렇게 변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그러니까 재의 일신상에 변화가 일어난 직후부터니…….

‘……질투?’

복잡한 심경의 연을 앞에 둔 재의 머릿속에, 근래에 마음을 확인한 선고의 얼굴이 훅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둘은 전혀 다른 성향이었다. 선고는 밝았다. 연은 언제나 고심했다. 사실 연도 밝았었다. 궐 안을 헤집고 다니던 전적이 있는 연이지만, 역모 이후 모든 신경이 제국을 되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그런 말괄량이 성격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연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반대로 선고와 있으면 기분이 상쾌했다.

선고는 솔직했다.

자신의 감정에 숨김이 없었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하고, 실망이면 바로 실망이라고 했다. 그게 신선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같은 칼잡이라는 점이었다.

고귀한 혈통을 이은 연이다.

게다가 지금은 적자들이 모조리 죽었다. 심지어 후는 방계 혈통까지 싹 잡아다가 씨를 말렸다. 그래서 제국의 혈통을 잇고 있는 건 현재로서는 연이 유일했다. 이런 연과 시궁창에서 실제로 태어났고, 커온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재는 냉정한 성격이었다. 재는 애초에 그쪽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재 혼자뿐이었다.

‘…….’

재는 그간 연과 함께 하며 있었던 일을 떠올려 봤다.

그래, 있을 법했다. 목숨을 걸고 지켰고, 여기까지 왔다. 얼마나 많이 붙어 있었겠나. 그 행동에서 충분히 오해할 법도 했다. 재는 이해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연은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이미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이 재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재는 다른 여인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면서, 사무치는 질투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을.

재는 연이 본인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당연히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서,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재가 취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함구.

혹은.

침묵.

재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재를 보는 연의 표정은 격렬하게 일그러졌다.

* * *

컷!

홍진아 감독의 외침에 재였던,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시청자들의 복장이 ‘터지게’ 만들 이 신은, 솔직히 찍는 자신도 심적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 의미로, 지영은 눈앞의 이연이 정말이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영은 좀 전에 합을 맞추면서 이연이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을 전부 느꼈다.

질투, 연정, 후회 등이 섞인 복잡한 심층 심리를 끄집어내서 제대로 앞에 앉아 있던 지영이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줬다. 놀라웠다. 이연의 연기는 그동안 보여준 감정 연기 중에 정말 최고였다.

굉장하단 느낌을 연기하는 내내 받았는데도, 신기하게도 지영 본인의 연기도 호흡이 흩어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그래, 이게 이 누나의 장점이었지.’

이연이 연기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대라면 몇 가지 있겠지만, 전문가나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유로는 바로 좀 전과 같은 감정 신이었다. 지영은 작정한 이연의 감정 연기를 사실 처음 봤다. 그동안 그녀가 고민하고, 고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등의 연기를 안 본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각 잡고, 진짜 제대로 보여준 연기는 진짜 감탄할 정도였다.

“와 씨…….”

“역시 이연이네. 와…….”

“정은정 작가가 이연의 감정 연기 보고 뮤즈로 삼았다더니. 진짜 대박이네.”

스태프들도 놀라 웅성거릴 정도의 연기력이다.

“후우…….”

그런 이연이 눈을 살짝 반개한 채,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단하고, 멋있었다. 이런 사람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상황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했다.

“볼만했어?”

씩 웃으며 웃는 이연.

지영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영상을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지영은 캐릭터 ‘연’이 보여줘야 하는 복잡미묘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부 느꼈다. 영상에도 그렇게 담겼을지는 솔직히 의문이지만, 스태프들의 반응만 봐도 이연의 연기에 찐으로 놀란 게 분명해 보였다.

뭐 당장 지영만 해도 그랬다.

“아, 이거 나가면 난 이제 국민 쌍년 당첨이네.”

“하하…….”

감정을 추스른 뒤 던진 이연의 푸념에 지영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냥 웃었다. 지영이 보기에도 이연의 이런 연기는 나가면, 단순히 손가락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장면이 방영되는 날, 이연은 발 빠르게 SNS를 닫았다.

그러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천하의 쌍년이라며, 어마어마한 분노가 캐릭터 연을 향해 날아갔다.

모두 작품이 잘 된 탓이지만 그게 너무 과하다 보니, 어떻게든 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은정 작가는 고작 그 정도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끝끝내,

“재, 후를 암살해 다오.”

“…….”

연은 선을 넘었다.

하지만 진짜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일.

주변의 만류로 그 발언은 겨우 철회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연과 재의 갈등이 제대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느낌이었다.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해도 부족할 판에 안에서 일어난 내전.

그리고 그걸 놓칠 후가 아니었다.

어수선한 틈을 타 스르륵, 제국의 정예가 상류에서 야음을 타고 도강해 이족의 군대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이어지는 후퇴.

재는 필사적으로 연을 지켰다. 통솔이고 뭐고 전부 뒤로하고 오직, 연의 안위만을 챙겼다.

저 멀리, 선고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도. 재는 연을 챙겨 전장을 이탈했다.

나의 무사님 중반, 10화까지의 내용이었고, 이 내용으로 시청률 10%가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