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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53화 (25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53화

253화. 선고(4)

현장 분위기라는 게 있다.

잘되는 드라마는 현장 분위기가 죽여주는 경우가 많고, 안 되는 드라마는 뭐, 그 반대인 경우가 많고.

선고의 현장 분위기는 그럼?

2화 만에 20%를 찍었는데, 말해 뭐하겠나.

치이익!

드럼통 수십 개에서, 고기가 가열 찬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었다. 인원도 인원이지만, 쉽게 이동하기 힘든 배우가 있어 회식 장소는 현장이 됐다.

하루 스케줄을 조정해 5시에 신을 마무리하고, 공수한 드럼통에 불을 피워 아주 익숙하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자, 다들 잔 채우세요!”

감독 홍진아의 외침에 네! 하고 우렁찬 대답이 나왔다. 다들 회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분이 완전 업되어 있었다. 무려 2화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으니,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간 tvM에서 나온 드라마 중, 20%를 넘긴 작품은 당연히 있었다.

종편이긴 하지만 웰메이드 드라마의 성지라고 불리는 걸 넘어 지금은 아예 최강자 자리를 뺏은 지 오래였다.

공중파의 아성은 응답 시리즈로 넘었고, 돗가비와 님의 곁으로 불시착, 선샤인 등으로 영역을 완전히 다졌다. 그 이후 등장한 많은 작품이 tvM을 넘버원 드라마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기본적으로 공중파를 넘어서는 시청률이 나오는 게 tvM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런 tvM에도, 오프닝 스코어 20%를 넘긴 작품은 없었다.

10도 아니고, 15도 아니고, 단 2화 만에 20%였다. 이는 앞서 말한 유명한 작품들도 해내지 못한 말도 안 되는 스코어였다. 황석이 잠깐 출연한 총명한 시리즈도, 이 정도의 시청률을 내진 못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난리가 났다.

관계자들은 물론 제작사는 아예 덩실덩실 춤을 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춤을 추며 축배를 들긴 했다. 어쨌든, 선고는 하루 간 어마어마한 기사를 쏟아지게 했다. 1, 2화의 주된 내용이 원탑 주인공 ‘선고’가 정글에서 살아남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심 미친 스코어였다.

그러나, 이유가 있는 스코어였다.

-와, 선출 양궁선수라더니, 활 쏘는 건 진짜 미쳤다.

-끝나고 NG 장면처럼 보여준 활 쏜 영상 봄? 진짜 제대로 날아감 ㄷㄷ

-보우 액션이 진짜 끝내주네 ㄷㄷ

-이러니 리얼리티가 확 살지! 그리고 솔직히, 난 여배우가 이렇게 망가지는 건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요. 와 비비도 안 바른 민낯에, 구르고 찢기고…… 예쁨은커녕 그지도 이런 상그지가 없음 ㅠㅠ

-솔직히 어느 정도 화장은 할 줄 알았는데 아예 민낯…… 진짜 작정했다는 거지.

-이게 소속사에서 콜이 나왔다니 그게 더 신기해요 ㄷㄷ

-그만큼 배우가 자세가 되었다는 거! 솔직히 예쁜 척하는 배우가 생존물 찍어봐야 뭐 얼마나 재밌겠어요 ㅋㅋ

-그런데 심수정은 아예 작정하고 개망가짐…… 그래서 오히려 더 몰입감이 생김

-드라마가 아니라 난 리얼생존다큐보는줄…….

-역시 믿고 보는 tvM!

심수정이었다.

1, 2화는 심수정의 독무대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 2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곤 심수정을 포함한 이족 배역의 조연 몇몇이 전부였다.

전사가 되기 위한 성인식.

그 성인식은 정글에서 살아남기였다.

선고는 강인한 여전사였다.

악착같이 살아남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이미지와 아름다움이란 두 가지를 전부 포기했다.

지영도 대본을 봤는데 정은정 작가는 1, 2화에 주인공에게 최대한 메이크업을 자제해 주기를 부탁했다. 실제로 지문에 있긴 있었다. 하지만 심수정은 그걸 보고, 아예 노메이크업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정글이다.

이런 정글에서 반짝이는 메이크업?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애초에 나의 무사님 S1에서도, 메이크업은 최소한으로 했다. 이유는 극 중 배경이 역사로 따지면 조선 시대보다도 이전인데, 현대의 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걸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얀, 기녀 분장 느낌의 메이크업은 나왔어도 화사한, 현재 유행하는 메이크업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이를 먼저 시작한 게 작품의 주인공인 이연이었고, 이연이 이렇게 나오자 다른 여배우들도 자발적으로 최소한의 메이크업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시대적 배경, 극 중 상황에 맞춘 선택.

이게 정말 베스트 초이스였다. 심수정은 연기도 연기지만 이런 자신을 내려놓은 모습으로 극찬을 받았다.

여배우에게 아름다움이란, 검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배우가 쓸 수 있는 하나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검을 버린 대신, 심수정은 정말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이런 결정에는 심수정이 운동선수 출신이란 점이 크게 한몫했다.

지금은 배우지만 이전엔 운동선수였던 그녀는 자신을 꾸미는 것보단 언제나 성적이 먼저였다. 성적이 먼저인 선수가, 훈련이나 대회에 나가는데 풀메이크업으로 나간다? 그런 일은 없었다. 하더라도 선크림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노메이크업에 대한 부담이, 다른 배우들보다도 확실히 적었고, 그 선택은 그녀에게 찬사라는 반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1, 2화에서는 극 중 선고는 전사가 되기 위한 성인식으로 작중의 시간 1년을 보여줬다.

화려하지도 않은 영상미다.

그렇다고 처절하고, 막 그런 것도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킬링 포인트도 없이 지나갔는데, 2화는 오히려 1화보다 더 시청률이 올랐다. 이는 아주 좋은 신호였다.

그래서 2화가 나간 직후 회식이 결정되고, 지금 다들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지영도 기분이 좋았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주는 술을 뺄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나의 무사님 S1을 찍을 때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회식 때도 술을 마시진 못했지만, 지금은 스무 살. 법적으로 성인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지영에게 술을 너무 건네, 따로 임은진이 철통같이 방어했을 정도였다.

“자, 우리 마지막까지 다치는 사람 없이! 끝까지 가도록 해요! 선고를 위하여!”

“선고를 위하여!”

위하여!

즐거운 회식이었다.

비록 장소는 촬영 현장이었지만, 아주 좋은 등급의 고기와 드라마의 성적이, 회식을 더없이 즐겁게 밝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달이 지고 다시 해가 떴을 땐 언제 그렇게 밝고 즐거웠냐는 것처럼 현장은 무겁게 돌아갔다. 지영도 당연히 변한 각오로 맡은바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록. 혹은. 역사.

지영은 이번에도 그 중심에 있었다.

사실 선고는 걱정이 많았다.

여주인공 원탑 체제기도 하고, 오프닝 당시의 인기에는 역시 후반부에 나올 강지영의 힘이 더해졌을 거라는 시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선고의 인기는 강지영이란 배우의 인기가 크게 작용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관계자 중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심수정 또한 오롯이 본인의 연기력과 시나리오의 힘으로 지금의 인기를 구가하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 2화의 힘이 3, 4화에서는 빠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아무리 심수정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강지영이란 배우의 임팩트에는 견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전문가들은 이후 시청률이 좀 빠졌다가, 강지영이 등장하는 후반 4부쯤 다시 차오르지 않겠나 전망했다.

그리고 실제로…… 3화는 조금 빠졌다.

19.8%

약, 0.2% 정도 빠진 스코어였다.

하지만 4화에서 독기 품은 선고의 활약으로 다시 시청률이 찼다. 5화부터는, 다른 이족과의 전쟁을 치르며 선고가 전투단의 중심에 서는 모습을 그렸다.

번뜩이는 혜안이나, 지혜는 없지만, 선고는 동물적인 감각이 살아 있는 전사였다.

그런 선고의 활약으로 다른 이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밀림 최고의 이족으로 우뚝 서는 모습이 담겼다.

그리고 시점이 갑자기 널뛰기하듯이 훅 건너뛰더니 재와 연이 이족으로 흘러들어 오는 모습이 후루룩 지나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지영의 등장. 이전까지 23%이던 시청률은 9화가 나가자마자 단숨에 25%까지 치솟았다.

* * *

“어머, 어머어머.”

예고편이 삭 스쳐 갔다.

요즘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선고와 재가 얼굴을 포개는 장면이었다. 그에 놀란 양유진이 손으로 눈을 덮었다. 손가락은 당연히 갈라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언니를 힐끔,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양지원.

“언니, 괘, 괜찮지?”

“응? 나? 뭐가?”

헤.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언니.

양지원은 순간 흠칫 놀랐다. 언니는 정말 맑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 웃음에 양지원은 정말 오랜만에 한기를 느꼈다. 언니는 지극히 맑은 사람이지만, 세상 밝게 살지만 그렇다고 질투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드물게도 고집을 부리거나, 질투하거나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딱 지금과 같은 미소가 나왔다.

‘질투하네.’

언니의 남자친구인 지영은 일단 기본적으로 세계 수준의 유도 선수지만 그, 잘나도 너무 잘난 외모로 배우도 겸업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키스 신은 사실…… 어쩔 수 없었다. 감초 역할을 하는 배우도 아니고, 주인공 역할을 하는 배우니 키스 신은 당연히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원아. 너도 음, 막 이상했어?”

“나? 아니, 괜찮았는데?”

“진짜?”

“응.”

언니의 물음에 양지원은 쿨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자기 남자친구인 강한결도 청춘 로맨스 영화를 찍었고, 개봉도 했다. 관객은 딱 90만 정도밖에 안 되지만 워낙에 적은 자본이 들어가 손익분기점은 충분히 넘긴 수치였다. 뭐 그런 건 그녀에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영화에서도 강한결의 키스 신이 있었다. 손잡는 신, 공주님 안기 신 등등, 스킨십 장면이 당연히 많이 나왔다.

하지만 양지원은 처음엔 좀 질투가 났다가 저게 일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훅 가라앉았다.

그래서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언니는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딱 봐도 질투한 기색이었다.

“언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응? 왜?”

“예고편만 봐도 이 정도인데, 본편 보면 언니 진짜…….”

“…….”

시무룩.

대번에 찌그러지는 언니를 보며 양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지영 오빠의 키스 신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12부 마지막, 결국 지영의 키스 신은 나오고 말았다.

가볍게, 소프트하게 겹치는 입술.

마음을 확인하는 가벼운 키스였다. 강한결이 자기에게 해준, 그런 키스였다. 하지만 키스는 키스였다. 그래서 양지원은 힐끔 언니의 기색을 살폈다. 그런데 오히려 직접 장면을 보는 양유진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해탈했나?’

그런 걱정이 들어.

“언니 괜찮아?”

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고개를 돌린 양유진이 해맑게 웃었다.

“응. 괜찮아.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아, 그래.”

“응. 일하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 헤헤.”

“그렇다니 다행이네. 아 근데 언니 혹시…… 지영 오빠랑 설마 아직인 건 아니지?”

“뭐가? 저런 거? 키스?”

“응. 에이, 설마. 아직 아닌 건 아니지?”

만난 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 설마?

양지원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렇게 물었다.

솔직히 1년이 넘었다. 자신이 아는 지영이나, 그리고 언니나 순수하긴 해도 완전 숙맥들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언니는 맹하지만 어엿한 사회인이고, 거기다 괄괄한 어머님들과 함께 일해서 알 건 다 알았다.

언니가 일하는 반은 한 명 빼고 전부 어머님들이고, 그 틈에서 일하는 언니가 세상 순진할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그런 자기의 생각은 맞았다. 맞긴 맞았는데, 너무 크고 제대로 맞아버렸다.

하아.

눈을 깜빡이던 양유진이 동생을 가만히 보더니, 한숨을 포옥 내쉬고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지원아.”

“으응?”

“언니는 성인이야.”

“어, 그건 알…….”

대꾸가 싹둑 잘렸다.

“연예인님도 성인이고.”

“……응?”

뭐지, 이 멘트는?

무슨 뜻이지? 성인이란 말은?

눈을 깜빡이는 동생의 어깨를 툭툭 친 양유진이 씻으러 먼저 들어갔다. 화면에서는 다음 주, 나의 무사님 S2가 방영됩니다. 하는 자막과 함께 최종 29%의 시청률을 기록한 선고가 끝나고 스태프 롤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양지원은 움직이지 못했다. 성인이란 뜻이 뭔지, 머리가 맹렬히 쫓아가며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너무 함축적이고, 넓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그 어떤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화장실로 가 문을 두들겼다.

쿵쿵.

쿵쿵.

“언니? 성인이란 게 뭔 뜻인데?”

쿵쿵쿵!

언니!

그게 뭔 뜻이냐고!

시청률의 역사를 새로 쓴 선고가 끝난 날, 서울의 한 반지하 집에서 일어난 자매간의 작은, 아주 작은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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