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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52화 (25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52화

252화. 선고(3)

컷!

살짝 붙었던 입술이 떨어졌다. 사인은 났지만, 여전히 카메라는 돌고 있을 테니 표정은 유지했다. 가볍게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프트 키스. 극 중 유일한 키스 신은 딥하지 않고 매우 소프트했다. 그래서 지영도 첫 키스신이지만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떠오르는 해를 바탕 삼아 지영은 첫 신을 끝냈다.

지영은 그렇게 첫 신을 끝내고, 장면을 확인했다.

“역시 턱선이 예술이라니까?”

홍진아 PD의 말에 지영은 그냥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작게 웃기만 했다.

현재 체중은 74. 당장 시합을 뛰어도 될 만큼 몸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턱선은 당연히 살아 있었다.

“힝, 저 왜 이렇게 부어 나오죠?”

하지만 그런 지영 때문에 상대 배우인 심수정이 피해를 봤다. 심수정도 이 신을 위해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하기는 했다. 하지만 애초에 두상 자체가 좀 동글동글한 느낌이 있고, 얼굴도 살이 잘 안 빠지는 체질이라서 살을 빼면 쫙 마르는 느낌의 지영과 비교하면 확실히 부어 보였다.

“확실히 많이 부어 보이긴 하는데. 흠.”

“감독님! CG는 안 되겠죠?”

“고려는 해볼게. 그런데 그냥 나갈 수도 있다?”

홍진아의 말에 헉! 하는 표정이 되는 심수정.

남자 배우보다 뚱뚱하단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단 생각에 좌절하는 표정이 되는 심수정. 그런 심수정이 어이가 없는지, 홍진아가 한마디 더 했다.

“지영이 입술 훔친 죄로 팬들한테 욕먹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섭니?”

“아 그럼요! 그거야 부러우니까 욕하는 걸 테니 괜찮아요! 근데 그래도 지영이보다 뚱뚱하게 나가는 건 너무 굴욕이라…….”

역시 만만치 않은 심수정이었다.

멘탈.

흔히 양궁을 멘탈 스포츠라고 했다. 아주 사소한 멘탈의 흔들림에 경기의 결과가 결정되는, 극히 예민한 스포츠였다. 그리고 심수정은 나름 그 과녁에 10발을 쏴 10발 전부 10점에 넣을 수 있는 실력자였다.

물론 그렇게 해도 국대 선발이 안 된다는 게 무섭고, 심수정이 그렇게 쏠 수 있는 건 극히 컨디션이 좋을 때뿐이라는 점 때문에 그녀가 여기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팬들의 분노?

그녀는 거기에 조금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표정이었다. 멘탈 스포츠를 오랫동안 한 선수다웠다.

지영은 그쯤에서 대기실로 다시 움직였다.

아침 일찍 있는 신은 이게 끝이고, 다음 신은 오전쯤에나 있을 예정이었다. 시간이 텅 비지만 이것도 드라마 촬영의 일환이고, 그래도 두 번의 작품을 했던 지영이라 이제 기다림은 익숙했다.

그러나 대기실에 박혀 있는 건 너무 심심하니까 지영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도 푹 눌러 썼다.

이렇게 해도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자들은 정해진 선 안으로 입장이 불가능할 예정이시라, 근처에서 촬영을 구경하는 건 크게 문제가 없었다.

“들킨 것 같으면 바로 들어와. 알았지?”

“네.”

임은진은 바쁜 와중에도, 지영에게 그렇게 주의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다시 대기실 밖으로 나간 지영은 현장 구경에 나섰다. 오랜만에 온 현장이었다. 그래서 현장을 쭉 둘러보는데, 지영은 예전과는 다른 뭔가를 발견했다.

‘음, 외국인이 많네? 관계자들인가?’

현장 여기저기에 외국인이 많이 보였다.

지영의 팬인 관광객들이 안으로 들어온 건 아닐 테니, 이쪽 업계 관계자라는 뜻이 된다. 궁금증이 일어 지영은 슬그머니 홍진아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외국인이 많이 보이는데, 누구예요?”

“아, 저 사람들? 웹플릭스랑 월드지니랑 그런 거 플랫폼 관계자들. 그리고 그쪽에 들어갈 작품 관계자들.”

“전자는 이해했는데, 후자는 왜요?”

“왜긴 왜겠니?”

홍진아의 되물음에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도출해 냈다. 그런데 그 답은 자기 입으로 꺼내기는 좀 민망했다. 그래서 다시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촬영이 시작됐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배우들의 열띤 연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기는 확실히 지영이 이전에 느꼈던 것보다 더 뜨거웠다.

일견 과하게까지 보여서 홍진아가 몇 번이나 NG를 외쳤을 정도로 연기는 과잉된 양상을 보였다. 지영은 이미 그 이유를 깨닫고 있었다. 현재 이른 아침인데도 이 바닥 종사자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는 상태였다.

이유야 지영의 현장 등장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영 때문에, 이들은 다른 업계 관계자들에게 어필할 기회를 받게 됐다. 조연 중에서도, 자리를 완전히 잡은 조연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선고엔 조연이 상당히 많이 출연했다.

이들 중에 선고 말고 다른 작품에 들어가는 게 결정된 사람이나, 아니면 같이하는 사람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나머지는 전부 간절함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드라마 관계자들이 대거 현장에 찾아왔다? 이는 기회였다. 자기를 어필할 기회. 뭐 목적이야 지영이었겠지만, 지영의 성격을 아는 이들이 설마 지영 하나만 보고 이 자리를 찾아왔을까?

‘그것도 아니겠지.’

분명히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고 해도 작품을 같이 했으면 그 흥행은 같이 나눠 가지게 마련이었다. 그 화제성의 크기는 분명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를 캐스팅함으로써, 그가 했던 작품의 화제성을 어느 정도는 안고 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여주인공 역인 심수정이 그랬다.

아직 선고는 방영 전이었다.

하지만 선고는 이미 역대급으로 화제성을 탄 상태였다. 다음 주에 나갈 1, 2화는 tvM에서도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할 거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여주인공 원탑 체제의 스핀오프지만, 여기에 출연하는 게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강지영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게임 끝났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니 이건 기회였다.

이 드라마가 뜨면, 같이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아주 많은 기회가 생길, 그런 기회였다.

‘폐를 끼치지 않는 정도만 해선 안 되겠네.’

그래서 지영은 반성했다.

지영이야 이제는 잡기도 힘든 거물이 되었다지만, 그래서 먹고살 걱정 같은 건, 배역, 연기 같은 건 고민도 안 했다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여주인공인 심수정조차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작품을 쉬지도 않고 연달아 찍는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영은 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안일한 생각이란 건.

폐만 끼치지 말아야지.

바로 이거였다.

지영은 정말 폐만 끼치지 않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액션 신에서는 서로 다치지 말아야지. 조심해야지. 정도가 전부였다. 아니, 그게 전부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가장 큰 각오와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 각오와 다짐은, 지영이 한 발자국 책임에서 멀어져서 보고 있단 뜻이었다.

왜?

“최선이 빠졌잖아.”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가짐이 빠졌다는 걸 지영은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이 상황에 자신만 한 발자국 물러나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거다.

저들은 저렇게, 작품에 목숨을 걸었는데.

“강지영…… 이 등신이.”

그런 깨달음이, 아주 짧게나마 자기혐오를 불러일으켰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지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조연 배우들이 모여서, 아주 열띤 모습으로 연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눈빛은 정말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저들이 정말 아까 자신이랑 농담 따먹기 하면서 얘기하던 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저 중에서 가장 연차 경력과 내공이 깊어 여기저기서 자주 ‘불러주는 조연’ 황덕수나 장선식도 기회를 잡으려는 의지가 철철 넘쳐 보였다.

애초에 지영은 기자들을 안으로 들이는 것도 허락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한발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대로 보였다. 자기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왜 그런 표정이야?”

“아, 누나.”

몇 신 없지만, 하루에 찍을 신이 하나밖에 없어도 일찍 현장에 나와 준비하는 이연의 질문에 지영은 자기가 느꼈던 깨달음을 얘기했다. 그러자 씩 웃은 이연이 지영의 등을 팡팡 쳤다.

“괜찮아. 촬영 중후반도 아니고, 이제 시작이잖아. 알았으면 고치면 되는 거야. 그거면 돼.”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녀 말처럼 촬영 중후반이 아니라, 시작인 오늘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이제 알았으니, 고치면 되는 거다. 이 작품이 잘되면 잘될수록, 배우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테니까. 적어도 그들을 위해서라도 대충 설렁설렁하는 모습만큼은 싹 뜯어고쳐야 했다.

마음가짐이 변하니, 각오는 자연스럽게 섰다.

그런 지영을 뿌듯한 시선으로 보는 이연.

주인공의 마음가짐이 변하니, 촬영장에 도는 생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밝아졌다. 그리고 그건 현장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모두가 기다리던 ‘선고’의 1화가 방영됐다.

19.1%.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였다.

* * *

호위 대상에게 연정을 품는 건, 사실 보디가드 물에서는 왕도에 가까웠다. 호위가 목숨을 걸고 대상을 지키고, 그 지고지순한 모습에 반해 신분의 고하를 초월하여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아주 자주 쓰이는 클리셰였다.

하지만 그거 아나?

비슷하지는 않지만, 영화 노팅힐이 현실에서 벌어질 확률이 슈퍼볼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지극히, 훨씬 더 낮다는 사실을? 뭘 말하고자 하는 거냐면, 이상과 현실은 매우 다르다는 점이었다.

정은정 작가는 이 부분에 집중했고, 그래서 비틀었다.

여주인공 연은 남주인공 재에게 호감을 느낀다.

당연했다.

정말 몇 차례나 목숨을 걸어서 자신을 구해주니까, 그 지순한 모습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쓰리기가 될 테니 당연히 넣어야 하는 카드였다. 하지만 연은 망국이 될 운명에 처한 제국의 마지막 핏줄이었다.

황위 혈통을 이을 수 있는, 마지막 적자가 연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제국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독한 역할 또한 한다. 그게 연이었다.

그래서 연은 그 사이에서 흔들린다.

재를 향한 호감.

제국을 되살려야 한다는 사명.

그런데 재는 반대였다.

재가 연에게 가지는 마음은, 사명이 전부였다. 자신을 거둬준 은인의 유언이었기에, 그 은인이 생전에 부탁한 유일한 바람이었기에 그 은을 갚기 위한 사명이었다. 그래서 제국을 되찾는 데 일조하고 연을 목숨을 바쳐 지킨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 안에 연정은 없었다.

철저한 일적인 관계, 딱 그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과연 주인공과 주인공이 연결되지 않는 것에,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사실 연은 그런 내색을 나의 무사님 S1에서도 자주 보였다. 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감정을 담아서 내보냈으니 연이 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드라마를 본 시청자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고에서 재와 선고의 키스 신이, 아주 흐릿한 느낌으로 설마? 둘이? 하는 그런 모습으로 티저에 등장하니, 연과 재가 이어지길 바라던 사람들은 대번에 헐…… 하는 표정이 됐다.

기존 클리셰의 가벼운 파괴.

주인공은 주인공과 연결된다.

둘이 연결되기 위해 주인공이다.

떼 배우 물이 아니라면 남주와 여주의 연결이 당연히 지극히 상식이었다. 그 어떤 작품도 남주와 서브 여주를 가져다 붙이지 않았었다. 작가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거나, 주인공 배우가 심각하게 연기를 못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이는 거의 ‘정석’에 가까웠다.

요즘 들어 정석이 파괴되는 작품이 정말 많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떼 배우 물도 아니면서 대놓고 여주를 치우고, 서브 여주와 붙인다? 스핀오프라는 한 작품을 맡을 정도로 비중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줄거리에선 그래도 서브 주인공인데?

주연이 아닌, 조연인데?

정말 이 둘을 러브라인을 태운다고?

선고의 공식 티저, 그리고 1화와 2화가 나갔을 때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집중하고, 논란이 됐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정은정 작가가 노렸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작부터 화제를 제대로 탄 선고는, 2화 만에 시청률 20%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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