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51화
251화. 선고(2)
지영의 촬영 스케줄은 사실 그다지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현장 스태프가 너무 많아서 애초에 그들을 전부 통제하는 건 말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현장 위치나, 날짜는 최대한 숨긴다고 숨겼는데 역시…… 소용없었다.
이미 숙소에서 출발했을 때 언질을 받았기에, 주차장으로 올라가지 않고 근처에 차를 댔는데도 팬들이 보일 정도였다.
“와…… 장난 아닌데, 진짜?”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그러게요. 하고 짧게 답했다. 겉이야 담담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지영도 많이 놀란 상태였다. 지영은 회사 차원에서 이미 한차례 교육받았다. 그 교육이란 바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것에 중점을 둔 교육이었다.
이름값이라고도 하고, 혹은 몸값이라고도 한다.
지영은 그게 지금, 대한민국 내에서 최고였다.
그동안 연예계에 군림하며, 엄청나게 몸값을 불린 그 어떤 연예인들도 현재 지영의 위치에는 올라간 적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화제성 자체가 엄청나서, 지영을 잡으면 십억을 들여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영에게 들어오는 단발성 CF 두 개만 합쳐도 10억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국외에서 날아든 CF 제의에 비하면 정말 애교였다. 지영은 지금 한국을 벗어나, 할리우드에서도 최고 레벨 연예인만큼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게 지영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이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짜 조심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괜히, 네. 나중에 같이해요. 라는 선심성 멘트도 잘못 던지면 강지영이 구두 계약으로 하겠다고 했다! 같은 기정사실 어조의 기사로 돌변해 나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걸 교육받은 지영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다녀온 이후 지영은 당연히 공식 석상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 숙소에서 연기 연습과 액션 스쿨을 다니고, 다시 청주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복을 입고 훈련하는 정도의 스케줄만 해왔다.
그 결과, 실제로 피부로 인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지영의 스케줄 자체를 모르니 따라다닐 수 있는 팬도, 기자도 없었던 거다. 훈련 스케줄이야 밖으로 돌기도 하지만 지영은 아예 선수촌에서만 훈련했다. 그것도 날마다 다르게 잡아서 가고, 훈련장 자체를 전기정 감독이 강력하게 통제해줘서 기자들에게 노출되는 일은 없었다.
그런 강지영이, 현장에 나타났다.
프랑스에 갔다 오고, 3주가 조금 안 된 시점에 강지영이 촬영을 나간다는 소식이 업계에 쫙 퍼진 거다. 게다가 현장 위치까지 아주 자세하게 돌았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촬영 현장에 가는 거지만, 그걸 탓하기는 해도 안 간다고 하는 기자는 없었다.
그런데 재미난 건, 이 기자들을 통해 팬덤에게도 정보가 유출됐다.
새벽녘에 유출된 정보에, 지영의 팬이 대거 움직였다. 지영의 팬은 많았다. 이번 사건으로, 특히 누나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유입됐다.
비에 젖어, 파벨로 부인의 고백을 들으며 일그러지던 지영의 모습이 엄청난 동정심을 유발시켰다.
안아주고 싶다.
지켜주고 싶다.
지영은 사실 그리 병약하지 않은데……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지며 화력 좋은 누님 팬이 대거 들어서며 아침 일찍인데도, 현장을 인산인해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좀 얼떨떨한 지영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팬 서비스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밖에 나가지는 말아줘. 너 밖에 나가면 누나 혼자서 절대 너 커버 못 해.”
능력 있고 강단 있는 임은진이지만 그녀의 몸 쓰는 레벨은 처참할 정도로 바닥이었다.
완전히 스탯이 두뇌 쪽으로 몰빵된 것처럼, 몸 쓰는 건 가히 처참한 수준이라 저런 인파에 휩쓸리면 임은진은 행사장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잘못하면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그래서 지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히 있을게요.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러면,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게요? 주차장 입구 여기밖에 없는데?”
“……그걸 이제 해결해야지.”
한숨을 내쉰 임은진이 바로 현장 측과 연락을 시도했다.
그쪽도 이미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대응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어, 통제 인원이 없다고요? 아, 새벽이지. 그럼 어떻게 해요? 괜히 지금 움직이다 지영이 차인 거 걸리면 아예 입장 못 할 수도 있는데. 아니요. 앞에 인파 보니까 빵빵거린다고 길 비켜줄 것 같지도 않아요.”
끙.
임은진이 잠시 듣다가, 혀를 찼다.
그러곤 죄송해요. 하고 사과했다.
“그건…… 저희가 죄송하죠. 지영이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앞에 나서지 않은 건데, 그게 아직 화제로 이어질 줄 알았나요? 네? 외국인들이요? 그냥 운 좋게 여행 왔다가, 소식 듣고 온 거 아닐까요? 서울이랑 파주랑 가깝잖아요.”
외국인?
그 말에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봤더니, 진짜 심심치 않게 외국인이 보였다. 지영은 한 외국인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아서, 슬그머니 커튼을 도로 쳤다. 다행이었다. 벤은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그냥 평소 이용하던 카니발을 타고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만약 밴을 타고 왔으면 이미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결국,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이 출동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정리해 주고 나서야, 지영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장 안쪽에서 내려, 곧장 안으로 들어간 지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 연예인이다! 사인해 주세요!”
드럼통에 피워 놓은 불.
낮엔 더워도 5월의 새벽은 당연히 쌀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피워 놓은 전통적인 드럼통 모닥불에서 불을 쬐던 심수정이 쪼르르 달려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외친 말에 시선이 와다다 달려들었다.
지영은 그녀의 장난에 반응하기 전에 일단 인사부터 했다.
꾸벅, 꾸벅.
자신의 위상이 변했음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까지 변할 필요는 없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도 러브콜을 보내는 게 지금 자신의 위치라고 해도, 지영은 그냥 덤덤했다.
“여. 오자마자 고생했다며?”
이족 부족장으로 출연 중인 황덕수 배우의 말에 지영은 난감한 표정을 가득 지었다.
“조마조마했어요. 걸리는 줄 알고. 하하.”
“세계적인 스타신데, 그 정도는 당연하지. 야, 여기 앞에 터서 착륙장 만들까?”
황덕수의 장난에 지영은 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생각인데요? 근데 헬기는 사주시는 거죠? 저 세계적인 스타 된 기념으로.”
“어, 어흠. 우리 아들이 요즘 흥미 잃은 헬기 한 대 있거든. 그거 주마. 하하!”
보나 마나 RC카? 그런 리모컨 조작용 장난감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거 저 탈 정도로 키워서 주시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지영의 너스레에 어깨를 팡팡 친 황덕수가 현장 스태프의 부름에 빠지고, 다른 배우들도 다가와 지영에게 아는 체를 했다. 사심 없는 축하. 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질투보다는, 진짜 진심으로 지영을 축하해주는 기색들이었다. 지영은 그게 참 신기했다.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다. 예전에 티저를 찍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또 달랐다. 달라도 정말 너무 달라졌다.
그때도 잘나갔지만, 지금은 아예 세계적인 스타급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뭐, 왔다 갈 관심과 인기지만, 그래도 정말 달랐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 특히 배우들의 눈빛은 정말이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요 며칠 가장 걱정했던 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으면 어쩌나 하는 부분이었다.
시기와 질투.
연예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오는 감정이 바로 시기, 질투라고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그래서 분명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전과 정말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정말 신기하고, 감사했다.
짓궂은 장난은 있어도, 지영을 진짜 건드리는 장난은 없었다.
“야, 근데 너 CF 한 번에 막 10억 이상 준다며?”
“아따 행님, 그건 한국이고요. 세계루다가 나가면 그 이상도 한다 안 하요! 저번에 그 뭐시기냐, 어디는 20억도 썼다고 하던디!”
진짜긴 진짜다.
휴대폰으로 유명한 한국 기업이 작정하고 1년에 20억을 써서 지영에게 던졌다는 얘기는 업계에 파다했다. 그리고 사실, 그 20억도, 당시 온 계약서에 최고로 높게 부른 회사는 아니었다. 실제로는 그 이상을 부른 회사가 수두룩했다.
사투리가 요상하게 섞인 장선식의 말을 그냐. 하고 받은 이태순이 지영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거 안 아깝디? 눈 딱 감고 몇 번 찍음 100억도 우습겠고마.”
“하하. 그냥, 안 하기로 정해서요.”
여기서 돈은 별로…… 라고 하는 건, 진짜 욕을 퍼대기로 얻어먹을 짓이다. 지금 주변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는 조연들이었다. 이런 배우들에게 돈은, 생계 자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불러줘야만 값어치를 할 수 있으니, 생계가 유지되는 게 배우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일도 겸업해서 해야 하는데, 이들은 다들 연기에 투신해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이들이었다. 그중에는 자리 잡은 배우도 있지만, 아직도 불안한 배우도 있었다. 그런 배우들 앞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아서요. 하는 거 건방의 끝이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약속이란 느낌으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들도 지영이 그런 기색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강지영이란 젊은 청년을 더 좋게 봤다. 돈에 흔들리지 않고, 인기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 솔직히 자신들이 그렇게 갈망하는 게 인기다. 인기는 돈이고, 돈은 생계고, 생계는 곧 연기다. 이런 순환의 고리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이라 벼락스타라는 말로도 부족한 지영의 지금 상황이 당연히 부러웠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서 지영에게 잘 보여야 하고, 이런 걸 담대하게 넘기지 못하면 이 바닥 생활을 끝내야 함도 알고 있었다.
“어린 게 정말 생각하는 게 멋있다, 멋있어.”
배우들의 칭찬에 지영은 그냥 가만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배우들과 인사를 떠들썩하게 하는 중에, 스태프가 와서 지영을 찾았다.
“지영 배우님! 감독님이 찾으세요!”
“네.”
감독이 찾는다니 어여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 지영은 다시 주르륵 흘러서 홍진아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연락을 자주 했던 홍진아는 지영을 보고는 크게 신기해하진 않았다. 그리고 감독은 감독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어수선한 현장 분위기에도 홍진아만큼은 조금도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감독님.”
“아, 지영 배우. 어서 와. 오늘 촬영 콘티 숙지했지?”
“네, 그럼요.”
“역시, 철저하다니까. 참, 기자들이 현장 취재하고 싶다는데 이건 당연히 패스고?”
“……네.”
잠깐 멈칫했다.
자신 하나만 하면 당연히 바로 NO지만, 이곳엔 다른 배우도 있었다. 화제가 될 기회 자체를 날려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영은 사족을 달았다.
“대신 저 신 없을 땐 괜찮아요. 그땐 조용히 대기실에 박혀 있을게요.”
“그래, 그렇게 해도 돼?”
“그럼요. 어떻게 현장까지 와서 저만 생각하겠어요.”
“후, 너는 진짜 생각하는 게, 후후.”
끝까지 말은 안 했어도, 홍진아는 지영의 선택을 정말 기꺼워했다.
연예인은 조금이라도 더 노출되어야 하는 직종이었다. 노이즈 마케팅만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언론을 타는 게 배우에게는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오늘은 그게 간절한 분들도 정말 많으니까…….’
선고는 여주인공 원탑 체제다.
이연, 강서훈 등등이 가끔 출연하지만, 그래도 선고는 대부분 선고 역인 심수정을 조명한다. 애초에 그래서 제목도 선고였다. 그런 선고에는 조연 배우가 정말 아낌없이 등장했다. 선고에만 등장하는 조연도 있고, 나의 무사님에 출연했던 분들도 있고 해서 상당히 많이 이 작품에 등장했다.
아직 사단이랄 것이 없는 홍진아와 정은정 작가라서 배우 중에는 생계가 곤란한 배우도 실제로 있을 정도였다.
그런 배우들에게 기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당장 기자의 사진 한 방이, 기사 한 줄이 배우의 며칠 뒤 식단을 바꿀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걸 알아서 지영은 거기까지 막고 싶진 않았다. 아니,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관심이 필요한 분들.
그래서 지영은 기자의 출입을 막지 않기로 했다. 자기의 신 촬영이 없는 선 한에서. 그런 지영의 선택에 다들 엄지를 척 들었다.
해가 뜨기 전.
아직도 이른 새벽이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나와 있는 팬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무렵, 촬영이 시작됐다.
동트는 새벽.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하고 있는 지영의 선고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 본격적 촬영의 첫 신은, 키스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