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6화
236화. 방송(5)
친구들과 오해 아닌 오해를 풀었지만, 반대로 지영에게 고민이 생겼다.
지금까지 자신이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의문이 고민이었다.
‘나는 잘하고 있나?’
본인이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술이 들어간 이성진의 불만을 들었을 때, 지영은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나뿐일 수도 있어.’
사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지영이 해놓은 것들이, 본인의 기준에서만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이성진은 그랬다.
너무 급한 거 아니야?
지영아. 너 막 쫓기는 애 같아.
이성진은 살짝 풀린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급한 거 아니냐고 했고, 쫓기는 거 같다고 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성진이 술에 취했으니 횡설수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없는 건, 다른 친구들이 이성진의 그 말에 동의했다는 거다. 분명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진의 말을 듣고.
지영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과를 하자 그런 분위기는 다 날아갔지만, 지영의 머릿속엔 그 말이 술자리 내내 계속 남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도 지영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급하고, 쫓기는 모습을 언제 보였을까?’
지영은 그게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본인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어떤 행동이든 자기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합리화를 거칠 게 분명하기에 자기의 모습을 자기가 판단을 내리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도 없었다.
‘나를 잘 알고, 나를 객관적으로 봐줄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누가 있을까?
운전 중인 임은진?
그녀는 지영과 함께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운동할 때도 매니저 역할을 자처해서 주변에 있긴 하지만, 방송 연예계 활동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운동할 때의 자신은 아마도 잘 모를 거다.
그래서 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 친구들밖에 없었다.
양유진과는 사소한 얘기도 털어놓지만, 그녀가 이런 문제를 봐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후우. 결국 친구들에게 물어야 하나?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영의 이런 고민 자체가 다시 친구들에겐 걱정거리가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쉽지 않은 문제.
‘틀린 건 아니야. 분명 틀리진 않았는데…….’
이성진이 조급하다. 쫓긴다. 라고 한 말 뒤에는 분명 이런 말이 있었을 거다.
‘불안해 보인다.’
그래. 바로 불안. 이 단어가 있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성진은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마 거기까지 얘기하면 지영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진은 황금세대 중 가장 밝지만, 그 밝음은 의도적인 밝음이다.
실제로 부모 문제 때문에, 지영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을 품고 있는 친구였다.
그렇기에 생각이 깊었다.
특히, 상처 쪽으로는 누구보다 감이 좋을 게 분명했다. 아니, 좋을 게가 아니라, 실제로 좋았다. 자신과 비슷한 아픔에, 지극히 빠르게 반응하는 게 이성진이었다. 그래서 이성진이 사랑하는 사람도,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영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지금 위치는 고속도로. 서울로 연기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성진은 오늘 더 런닝 촬영이 있어서 이미 서울이고. 다행히 이성진은 지금 쉬는 시간이었다.
단체방에 촬영 중 찍은 사진을 좀 전에 올린 걸 확인한 지영은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 내용은, ‘고마워’였다.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그러자 ‘별말씀을^^!’ 하고 답장이 왔다. 지영은 정말 고마웠다.
이성진이 말한 건, 지금 지영이 가진 불안 요소였다.
강지영이란 인간의 불안한 요소. 그를 뒤흔들 수 있는 약점. 그렇게 봐도 무방했다. 그런 약점을 이성진이 어제 자각시켜 준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해준 이성진이 메시지를 더 보냈다.
[이성진: 지영아, 근데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어, 해도 돼.]
뭐가 더 있나?
그렇게 고민하는 찰나, 답장이 왔다.
[이성진: 어제 얘기하려다가 애들 있어서 얘기 안 했는데, 아직도 힘들어?]
[어? 뭐가?]
[이성진: 이거 봐. 자각도 못 하잖아. 그럼 그 이유 때문은 아닌데. 왜 너는 나랑 비슷해?]
[그러니까 뭐가?]
[이성진: 아버지 사고도 잘 이겨낸 넌데. 왜 나랑 비슷하냐고. 왜 넌 나처럼 아픔을 가지고 있냐고.]
나처럼 아픔?
이성진이니까 가능한 유치 하지만, 한없이 아픈 말이었다.
이성진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언젠가는 생물학적 부모에게 다시 시달리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땐 친구들도 휘말릴 수 있다는 걸 알고는 그걸 대놓고 방송에서 이용했다. 이성진의 가족사는 방송을 탔고, 이제는 수그러들었어도 한때는 국민 태반이 이성진의 아픔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이성진은.
[이성진: 재작년이었나? 그때부터 변했어. 너. 지영이 네 눈빛이, 내가 알던 눈빛이랑은 완전히 달려졌어. 아버지 사고도 이겨낸 네 눈빛이, 왜 나보다 더 아픈 상처를 품은 눈이 됐을까? 솔직히 엄청 궁금했거든? 근데 그냥,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여태 가만히 있었는데. 이젠 안 되겠어. 뭐야? 뭐가 널 궁지로 몰아?]
궁지?
나? 궁지로 몰린 적 없는데?
지영은 손가락 아프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긴 장문의 메시지를 읽으며 그렇게 부정했다. 솔직한 심정이 그랬다. 자신은 정말 궁지에 몰린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눈빛은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궁지에 몰렸다고?’
자신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자신의 심리는, 그렇게 완벽하진 않아도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어제부터, 심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얘기들이 우르르 덤벼들기 시작했다.
[뭔 소리야 ㅋㅋㅋ]
하고 답장을 보냈지만, 지영은 불안해서, 저도 모르게 운전 중인 임은진에게 물었다.
“누나. 저 요즘 불안해 보여요?”
그러자 느긋하게 운전 중이던 임은진이 자세를 고치며 대답했다.
“너? 낸 눈엔 불안까진 아니지만 좀 조급해 보이긴 했지.”
“네? 진짜요? 제가요?”
“응. 그래 보이지. 지영이 너 설마, 지금까지 네 행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어?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누가 너처럼 쉬지도 않고 일만 해?”
“…….”
“너 재작년이랑 작년 행보만 봐도 그래. 시합, 연기, 시합, 연기. 이걸 병행하면서 너 쉰 적 있어?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잖아. 그사이에 공부도 하고, 꿈나무들 후원 상황도 확인하고. 특히 후원은 그거, 아직도 하고 있지?”
“……네.”
후원은 아직도 하고 있다.
아이들이 많아져서 재단 보유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그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하고 있었다. 애초에 금전적 이윤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해서, 슬슬 마이너스로 돌아섰지만 그래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막 처음처럼 아이들이 쏟아지는 단계는 아니었다.
막 퍼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기엔 절대적인 기준이 있었다. 바로 재능이다. 직접 확인해서 대성할, 혹은 최소 한국 정상급으로 성장할 재능이 보이지 않으면 후원은 하지 않는다. 차별하는 거 아니냐고?
맞다.
차별.
하지만 강한결도, 지영도 이 부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츠는 노력과 재능이 전부였다. 돈? 돈으로 여건, 환경은 살 수 있어도 정상급의 실력을 사는 건 불가능했다. 구단주? 이런 건 가능해도 자신이 직접 갖추기는 완벽하게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빠져서도 안 된다.
노력은 하는데 재능이 없어도 반쪽짜리고. 재능은 있는데 노력을 안 해도 반쪽짜리다. 그래서 후원 결정의 필수 요소는 인성과 재능, 그리고 노력이다. 그런데 이 중 두 가지가 아주 까다로웠다.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는 선수가 종목마다 십수 명씩 있는 세계는 절대로 아니었다. 애초에 재능이란 건 타고나야 하는 거라서, 한 종목에 한두 명 찾기도 힘들 때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그 조건을 충족한 아이들이 그리 많이 나오진 않았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좀 널널했고.
하지만 아예 재단 일에 손을 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좀 더 깊숙한 내용도 시간을 내 배우는 중이었다.
그러는 중이지만 지영은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째 분위기상, 혼날 것 같아서였다. 힐끔, 지영을 본 임은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배우들은 많아야 일 년에 두 편에서 세 편이야. 그건 알지?”
“네.”
그건 배우들이니까.
일 년에 두 작품 정도를 확 몰아 하고, 남은 시간은 쉬는. 그런 식으로 활동하는 배우들은 꽤 많았다. 다작을 하는 것보단, 그냥 임팩트 있게 두 작품 빡세게 연달아서 훅 달린 다음 휴식기를 가지는 거다.
“그런데 넌 봐봐. 드라마 끝나면 바로 대회 준비. 대회 끝나면 또 대회 준비. 대회 끝나면 또 드라마 준비. 너한테 주는 휴식 시간이 없잖아.”
“…….”
“이번에도 그래. 올림픽이 밀리면서 시간이 좀 났어. 그런데 그렇다고 너 쉬었어?”
“음…… 아니요.”
입촌이라고 흔히 하는, 대표팀에 들어가진 않았다.
숙소에서 짐을 빼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놀았던 건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엔 황금세대 전부가 워낙 유도란 종목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사일 정도는 청주에서 모여 훈련을 했다.
숙소야 훈련장 근처에 사비로 잡았고, 그렇게 훈련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 자체가 휴식이 아니었다.
그렇게 최소 일주일에 4일을 훈련에 임했다.
나머지 3일은 집에 있었지만, 집에서도 몸에 긴장감을 주는 건 여전했다. 그리고 지금, 올림픽이 터지고 연기되자마자 지영은 나의 무사님 미팅을 가졌고, 바로 연기와 액션 준비에 들어갔다.
쉬는 시간?
올해 들어서도 솔직히 거의 없었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랬다.
훈련 자체가 쉬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누구도 훈련을 휴식이라고 하진 않는다.
“거봐. 안 쉬었지? 지금 나한테 이런 말 묻는 것 보니까 주변에서도 누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제대로 본 거 맞아. 지영이 넌 너무 안 쉬어. 마치 일에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하하…….”
지영은 웃었지만, 속이 진짜 뜨끔했다.
한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한이라……. 맞네. 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짧지도 않았다. 근, 10년이다. 31년 전국 소년체전까지였으니까. 그 긴 시간 동안 지영은 정말이지 힘들게 살았어야 했다. 자신의 자율 의지로, 하고 싶은 걸 마구 하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을 거의 10년이나 느꼈어야 했다.
그래서 지영은 깨달았다.
‘결국 내 기억이 문제라는 거구나.’
근데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도 이게 문제라는 걸 이미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트라우마가 자신을 계속해서 건드리고 있고. 이제는 그게 주변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때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건…….
‘불안감. 트라우마의 근원을 설명할 길이 없어…….’
그래, 이게 문제였다.
자신은 회귀자였다.
시간을 거슬러 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인데, 이걸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어떤 명의도 근원이 설명되지 않은 정신병은 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싸한 변명을 대야 하는데.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아.’
어떤 변명으로 교통사고가 나 무릎부터 어깨까지 제대로 작살 났다. 그리고 후속 차량이 발목을 밟고 지나가며 완벽하게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놨다. 그래서 그걸 치료하는 것도 오래 걸렸고, 정신적인 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그런 일들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다.
그걸 대체 무슨 변명으로 대체할 수 있겠나.
그래서 지영은 정신과에 가지 못했다.
“지영아.”
“네?”
“조용히 상담 한번 받아볼래?”
임은진의 조언에, 지영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괜찮다. 나는 분명히 괜찮다고 느끼는데, 주변에선 이런 자신을 보고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자신을 볼 게 분명했다.
그러니 잡고, 정리하고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날, 연기 연습을 끝낸 지영은 임은진의 소개로 상담을 받았지만 역시, 문제의 근원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좀 지지부진했고, 2회에서 결국 멈췄지만, 완전히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근원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지영은 그래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얻은 지영과 함께 시간은 다시 성큼,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