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35화 (23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5화

235화. 방송(4)

아니, 첫날인데?

지영은 짜증보단 솔직히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자기에 대한 감정을 곧장 내뱉는 친구가 첫날부터 나오리라고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홍해처럼 갈라져서, 자신한테 그런 말을 했던 친구가 지영의 시선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침묵이었고, 그 때문에 자기 목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는 걸 깨달은 그 친구는 얼굴을 붉히더니, 그래도 끝까지 할 말은 다 했다.

“아 씨, 타이밍 X 같네.”

어떤 성격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무시했다. 어차피 여기에 있는 친구들이 다 들었으니까, 이건 문제가 된다고 해도 자기편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니 따로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딴소리하면 뭐…….’

지영은 돌아서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이 목걸이는 임은진이 구해다 준 목걸이였다. 지영이 워낙에 트러블이 많이 일어나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역할을 위해, 외형도 괜찮지만 실제로는 녹음 기능이 달린 목걸이였다. 사생활 침해에 가깝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사람 많은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 이때 대처를 위해서 지영은 그런 부담도 감수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이렇게 자신을 욕하는 친구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 녹음된 음성은 나중에 문제가 터지더라도 지영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상호 동의가 된 게 아니라면 법적 효력은 없겠지만, 녹음이 있는 것과 없는 건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시작해 천지 차이였다.

“지영아. 괜찮아?”

밖으로 나오는데, 황석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지영은 이 정도는 정말 별거 아니라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야 뭐. 익숙하잖아. 너는 이제 뭐 하려고?”

지영이 화제를 돌리자, 그걸 알면서도 황석은 잘 받아줬다.

“은정이 보고, 숙소 가려고. 지영이 넌 서울 가지?”

“응. 가야지. 오늘도 연기 연습 있고, 액션 연습 있잖아.”

이미 드라마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지영이었다.

대학 입학 첫날이라 마음이 들뜨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영은 뭐가 먼저인지 잊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임은진에게 전화를 걸어 끝났음을 알렸다.

“애들은?”

“과 동기들이랑 밥 먹고, 따로 움직인대.”

“그래? 그럼 우리도 여기서 흩어지자.”

“응. 근데 뭔가 이상하다.”

“뭐가?”

주차장으로 내려가려던 지영은 잠깐 멈춰 섰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그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우리 계속 같이 움직였잖아. 그런데 이제는 다 따로 움직이니까. 그게 좀 어색하고 이상하다. 하하.”

“아아.”

황석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지영 말고, 다른 친구들도 다 느끼고 있는 어색함이었다. 지영이야 이미 회귀 전에 충분히 따로 생활했기 때문에 혼자 움직이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아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주말을 제외하면 거의 함께 움직였다. 한 숙소에서 밥도 같이 먹고, 수업에 들어갈 때도 같이 갔다.

그러나 이제는 뿔뿔이 흩어졌다.

강한결은 사회복지학과 쪽이고, 임효중과 이성진은 예대 쪽이다. 반대로 지영과 황석은 사범대라서, 주로 움직이는 동선이나 반경 자체가 달랐다. 예대는 학교 서문 쪽이고, 강한결은 북문 쪽이다. 반대로 지영과 황석은 남문이라 할 수 있는 정문 쪽이고.

대학교 자체가 커서, 남문 근처인 이곳에서 서문까지 가는데도 30분 정도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함께하기 힘든 거리였다.

그래서 당연히 밥도 다 따로 먹거나 그래야 할 텐데, 황석은 아무래도 그게 어색하고,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왜, 서운해?”

지영이 그렇게 묻자 황석은 소 같은 눈망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하기도 하고, 그냥 좀 그래.”

“그래도 슬슬 적응해야지.”

“그게 어디 쉽나. 너는 괜찮아? 어제 들어보니까 효중이도 그렇고, 한결이도 좀 그렇다던데.”

그래?

효중이랑 한결이도?

이성진이나 황석은 상당히 감수성이 뛰어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임효중이나 강한결은 지극히 이성적인 친구들이었고. 그래서 둘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다는 소리에 지영은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한결이?

“지영이 네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혼자 움직이는 거 보고 좀 서운하다고 하기도 했고.”

“내가?”

“응.”

“…….”

역시,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싶었다. 일이 년도 아니고, 무려 육 년이다. 초등학교 때 붙어 다닌 것까지 합치면 거의 10년이다.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의지하고, 도와주고, 도움받고 하며 함께했다.

이 정도면 솔직히 가족보다도 훨씬 더 자주 본 사이였다.

그래서 거짓말 조금 보태 표정만 봐도 오늘 친구의 컨디션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관계까지 됐다.

그런데 지영은 요즘 거의 밖으로 돌았다.

대학교에 숙소를 신청했고, 짐도 가져다 놓았다. 룸메이트인 황석은 며칠간 벌써 혼자 잠을 잤다.

사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연희고에서 짐도 뺐다.

그 숙소는 이제 후배들이 사용할 숙소가 됐다. 연희고는 남녀 공학이라, 지영과 친구들이 쓰던 숙소는 강유진을 비롯해 연희고로 진학을 희망한 여고부 유도 선수 셋이 함께 쓰기로 결정됐다.

숙소에서 짐을 뺐으니, 다들 집에서 따로 움직였다.

그게 꽤 오래전 일이라 지영은 크게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 같았다.

자기 자신, 그러니까 지영 본인은 떨어져서 움직이는 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은 아닌 것 같았다. 소속감? 함께 움직일 때 나는 그런 특별한 뭔가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운한 것 같았고.

지영은 친구들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다. 지영이 지금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회귀 전에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지영이 먼저 사고가 나고.

‘친구들도 사고가 나서 결국 팀이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졌을 때.’

임효중과 강한결은 재활에 매달리고, 황석은 포기하고 공부를 시작하고. 이성진은 침대에 의식 없이 누워있을 때. 그리고 지영이,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았을 때. 그렇게 흩어졌다가, 어느 순간 지영은 느꼈다.

외로움.

무릎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끙끙 앓으면서, 보조 침대에서 주무시는 엄마가 놀랄까 봐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지영은 외로움을 느꼈다. 친구들이 보고 싶었고, 아프다고 칭얼거리고, 징징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도 그러지 못했다.

자신만큼이나 친구들의 상황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상실감도 있었다.

솔직히 지영이야 그런 것들을 이미 전부 겪고 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니었다.

“미안.”

“아니아니! 지영이 네가 잘못한 건 없지!”

아니, 잘못했다.

친구들이 알아서 각자의 길을 잘 가고 있기에 지영은 따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예대로 진학한 이성진과 임효중. 임효중은 의외로 뮤지컬 쪽에 관심을 보였다. 춤과 노래가 되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이성진은 예능을 좋아했다.

연기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벌써 카메오로 두 번인가 드라마에 나갔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항상 웃을 수 있는 예능이 좋다고 한 이성진이었다. 황석은 특유의 이미지와 느낌으로 영화 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강한결도 영화 쪽에서 러브콜이 대단했다.

지영은 반대로 영화보단 드라마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그렇게 서로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지영이 물꼬를 튼 길이었고, 그 길을 따라서 잘들 조각배를 타고 항해에 나섰으니 큰 문제가 없겠구나. 이렇게 은연중 생각했다. 하지만 지영은 그걸 생각해야 했다.

‘그래 봐야 조각배인 거지. 언제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그건 그 배 위에 오른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그 배에 탄 사람이 가장 불안하지 않을까? 함께 있다가 뿔뿔이 흩어져서 움직이려니 그 부분이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지영은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강한결이, 서로 맡은 임무가 다른 정신적 지주임을.

지영은 지영대로, 강한결도 강한결 대로 팀의 지주 역할을 여태껏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한결도 그렇고, 지영도 갑자기 바빠서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친구들이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이런 건 바로 잡아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잡아줘야 할 필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잡고 가야 했다.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잃은 상실감을 없애지 않으면 아주 작은 부분부터 삐걱거릴 수도 있었다. 관계. 황금세대는 함께해야, 그 진정한 진가가 발휘된다고 보는 지영이었다.

황금세대였기에.

그 일원이기에.

그러니 최선을 다하고, 그 노력만큼의 결과는 뽑아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건 친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시너지 효과.

지영이 지금처럼, 황석이 이전처럼, 황금세대 전체가 예전처럼 좋은 성적을 내려면, 다 같이 함께해야만 했다. 지영은 그걸 잊고 있었던 자신을 자책하고, 반성했다.

“오늘 액션 스쿨은 쉬고 내려올게. 저녁에 늦게라도 보자.”

“어, 괜찮아?”

“그럼 괜찮지. 은진 누나한테 전화 온다. 톡방에는 내가 얘기할게.”

“그래, 알았어.”

그제야 푸근하게 웃는 황석.

이 말을 하기 전까지 이 친구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생각해 보면, 지영은 황석에게도 정말 미안했다. 지영은 손을 흔들고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내려가, 주차장에서 다시 임은진의 차에 올랐다.

차가 대학교를 정문을 빠져나가자, 지영은 액션 스쿨은 쉬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유도 설명하자, 임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함께하다가 따로 떨어지니 어색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겠지. 너희가 겪는 거, 사이 좋은 아이돌 그룹들이 겪는 일이기도 해. 인간형 분리불안의 초기 증상이랄까? 물론 아닌 애들도 있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애들도 있고. 하지만 십인십색이라고. 그런 애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예술을 하는 애들이라 예민하기도 엄청 예민하고.”

“아, 진짜요?”

“그럼? 아이돌이라고 어디 전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이만 있겠니? 사이 좋은 애들도 많아. 그런 애들이 나중에 연차 쌓이고,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소외당하는 것 같고, 그런 마음이 들 거 아냐. 나는 형제고 자매로 생각했는데 쟤들은 아닌가?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처받고. 흔히 있어.”

“아…….”

“그래서 그런 건 초장에 잡아주는 게 좋아. 고로, 지영이 네 선택은 매우 훌륭하단 말씀.”

역시.

바로 해결하려고 하길 잘했다.

그리고 임은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기를 잘했고.

멘토였다.

이선영과 임은진.

두 사람은 지영이 믿고 모든 걸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잘 얘기해서 풀어. 애초에 많이 서운한 것도 아닐 테니 금방 풀리기는 할 거야.”

“네. 고마워요, 누나.”

“고맙기는. 후후. 참, 점심은 먹었어?”

“아니, 아직이요. 누나는요?”

“아직이지. 올라가면서 뭐 좀 먹을까?”

“네.”

청주 근교의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지영은 바로 서울로 올라가, 임은진이 잡아준 학원으로 향했다.

따로 간판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냥 아는 사람을 통해서 들어온 의뢰만 받는 형태의 연기 수업을 진행하는 심명순 선생님의 집이, 지영이 연기 수업을 받는 학원이었다.

심명순.

이제 40대 후반으로, 뮤지컬이나 연극 쪽에서는 이미 엄청난 레전드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드라마와 영화는 잘 풀리지 않은 케이스였다. 그러나 그래도 그녀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왜? 아는 사람만 고이 알고 있을 정도로, 그녀가 연기 수업은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소개받은 첫날 알았는데, 이연도 심명순 선생님에게 연기를 배웠다고 했다.

그녀 외에도 요즘 잘나가는 20대 초중반, 30대 초반까지의 배우들이 정말 많았다. 그녀의 집 지하 연습실에서 목을 풀고 있는데, 심명순이 편한 복장으로 들어섰다.

“지영이 왔니?”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일단 몸 좀 풀고.”

“네.”

지영이 요즘 배우는 건, 딱 틀에 잡힌 연기였다.

말했듯, 지영은 약점과 한계가 명확한 배우였다. 잘하는 것밖에,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밖에는 살 수 없는 배우. 나중에 좀 더 경력이 쌓이고, 세상의 풍파가 쌓이지 않는 이상은 다른 배역은 맡기 힘든 배우였다.

특히 코믹한 배역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쪽만 파는 장인의 심정으로, 아예 냉정하고 차갑고, 무거운 역할을 맡는 쪽만 가기로 이미 결정했다.

심명순도 지영의 연기를 드라마로 보고, 딱 한계가 명료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임은진의 요구대로 그쪽 부분의 디테일만 살려줬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연습은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려는데, 심명순 선생님이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하셨다.

“지영아. 너 오디션 한번 안 볼래?”

“네?”

“오디션. 딱 네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더라고.”

“아, 진짜요? 어떤 작품인데요?”

“독립영화고, 예술에 미친 광인 역할.”

“…… 하하.”

내가 그런 이미지구나.

뭐, 이건 지영도 인정하는 바였다.

“시나리오 보고 결정해도 되죠?”

“그럼. 끌리지도 않는 배역을 해보라고 할 순 없지. 은진이한테 보내놓을게.”

“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래, 너도 고생했어.”

꾸벅.

허리를 90도로 접어 인사한 지영은 연습실에 딸린 샤워장에서 씻고, 개운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청주로 출발했다. 친구들과의 오해를 푸는 날. 설레기도 하면서, 걱정되기도 하는 그런 마음으로 지영은 친구들에게 향했다.

스무 살.

술 한 잔.

이 두 가지 버프로 오해와 서운함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