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4화
234화. 방송(3)
연희 대학교.
연희 대학교 캠퍼스는 예전엔 청원군에 속해 있던 지역에 설립했다. 군이라고 시골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사실 그렇게 시골도 아니었다. 거리상 청주랑 그리 멀지도 않았다. 율량동으로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가깝고 해서, 이제 막 개교하는 학교라 정보가 없어서 시골 깡촌이면 어쩌지? 하며 학교에 왔던 입학생들은 나름 나쁘지 않은 입지와 교통편에 나름 만족들 했다.
특히 서울서 온 학생들은 북부 정류소가 그리 멀지 않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동서울과 센트럴 시티 쪽을 운행해 주는 시스템에 매우 만족했다.
다만, 이제 막 개교라 학교 근처에 음식점이나 기타 편의시설은 좀 부족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돈이 흐른다. 특히 연희 대학교는 개교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학교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연희고 아이돌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모두 이쪽에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전원 정시가 아닌 수시로 입학했지만 애초에 수능을 봤어도 성적이 상당했을 거라, 밑에 깔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그걸 뭐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연희고 아이돌도 아이돌이지만, 연희고는 전에 없이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사립 명문.
사립 대학은 진짜 돈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런데 연희 대학교의 등록금은 거의 국립 대학보다도 저렴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욕하고 싶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초빙한 교수진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석학들이었다.
이 모든 데이터를 꾸밈없이, 아주 과감하게 오픈하며 학생을 모았다.
물론, 인서울 대학교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연세, 고려대. 서성한, 중경외시라 불리는 대학들, 그 외에 많은 인서울 대학들은 이미 오랜 세월 자체적인 사회 인프라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 대학의 졸업생이란 타이틀은 사회에 발을 디딜 때 분명 많은 도움이 된다.
반대로 연희 재단은 초중고등학교 쪽에서는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지만, 대학교는 이제 막 개교했기 때문에 그 정도로 힘이 있지는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연희 재단을 믿고, 연희 대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확실히 많았다.
특히, 이 학교가 가장 매력적인 건, 대학교에 올라가기 전 가장 걱정되던 ‘선배’가 없다는 점이었다.
편입생은 있을 수 있지만, 재수, 삼수한 동기는 있을 수 있지만, 선배는 없는 연희 대학교였다. 모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될 테니까, 개똥 같은 선배의 갈굼은 확실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역시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을 응시했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응시한 이들이 태반이 넘었다.
그러나 연희 재단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정원 미달인 곳은, 아예 추가로 인원을 받지 않았다.
50명을 받을 생각인데 30명만 응시했다? 그 전부를 받진 않았다는 소리다. 그들이 정한 선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가차 없이 쳐냈다. 또한 선을 넘었어도 굉장히 타이트한 압박 면접을 통해, 2차로 걸러냈다.
그렇게 걸러내고, 또 걸러내고.
이제 막 개교했으니 어떻게든 인원을 모집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역시 마이웨이를 걷는 연희 재단이었다.
심지어 모델과와 미술은 정원이 30명인데, 응시한 사람이 100명이었다. 그리고 입학한 사람은 각 과당 15명, 10명이 전부였다.
그렇게 본래 모집하려고 했던 학생의 절반 조금 넘게밖에 모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연희 대학교는 문을 열었다.
3월 4일, 월요일.
지영은 그런 연희대의 교정 앞에서 내렸다.
“오늘 수업 일찍 끝나지?”
서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같이 내려온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첫날은 거의 가벼운 미팅 형식이라고 들었던 것 같았다.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거고, 이런 걸 고지하곤 거의 끝난다고 들었다.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언제쯤 끝날까?”
“네. 환영회도 나중에 한다고 하니까, 음, 점심시간 좀 지나면 끝나지 않을까요?”
오늘 입학식이 있긴 하다고 들었던 것 같았지만 지영은 연희 재단의 특성상, 입학식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끝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연희 재단은 쓸데없이 시간을 쓰는 걸 정말 싫어했다.
괜히 애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는 걸 속된 말로 극혐하는 게 연희 재단이었다. 그런 재단의 특성을 생각하면 짧게 후루룩 몰아쳐서 입학식도 끝낼 게 분명했다. 성의 없는 것 아니냐고? 그 안에 있을 게 다 들어가 있으면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알았어. 그럼 다 끝나고 연락해. 누나 주변에 있을 테니까.”
“네.”
차 문을 닫자 그녀는 밴을 부드럽게 돌려 떠났다.
임은진이 올라가지 않고 기다리는 건 다시 서울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영의 스케줄은 요즘 벅차다 못해, 빡셌다. 나의 무사님 촬영을 결정 지어서, 지영은 요즘 다시 연기 연습과 액션 연습에 들어갔다. 한동안 잊고 있었고,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해봤을 때 지영은 몸도, 정신도 매우 무뎌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액션이야 지영이 계속 운동해서 합이 미묘하게 틀린 정도였지만, 연기는 달랐다.
홍진아는, 고작 4화밖에 출연하지 않지만 그래서 보다 디테일한 연기에 초점을 맞출 거라고 했다. 사실, 정은정도 그렇고 홍진아도 그렇고 지영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영도 자신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영이 생각하는 배우 강지영은, 한계가 명확했다.
할 수 있는,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지극히 한정적인 배우. 약점이자 한계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지영은 진지하거나, 무겁거나, 차가운 역할이거나, 이 정도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의 한계였다. 다른 대단한 배우들처럼 작품의 캐릭터에 따라서 코믹해지기도 하고 그러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강지영이란 인간에게는 개그 코드라는 것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코믹해질 수 없었다.
그것만 해도 한계가 최소 삼 분의 일은 뚝 꺾여 버린다.
홍진아도, 정은정도 이런 지영의 약점을 알아서 오히려 잘하는, 어울리는 쪽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디테일이 생명이었다.
아주 사소한 몸짓, 시선 처리, 발음, 감정선 유지 등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임은진이 섭외한 연기 선생님에게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연습을 받고, 10시부터 12시까지 액션 스쿨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1시쯤 숙소에 와서 5시쯤 일어나 준비하고 다시 청주로 출발하는.
미팅이 끝나고 지영은 이런 스케줄을 즉시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도 수업이 끝나면 다시 서울행이었다. 그런 빡센 스케줄 속에서도, 지영은 학교에 나왔다. 솔직히 드라마보다 학교가 더 끌리는 지영이었다. 백팩을 고쳐 매고 교정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왜 대학교 정문은 전부 이렇게 언덕일까?’
하.
그게 참 의문이었다.
힐끔, 힐끔.
지영을 알아봤는지 주변에서 시선이 몰려들었다. 연희고에 다닐 때야 지영은 그 안에서 뭐 그리 신기한 존재가 아니었다. 연예인급 인기를 누렸어도 그냥 학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수업을 받고 그랬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런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교정에서 이런 시선을 받으니 좀 신선했다. 속닥거리는 새내기들을 뒤로하고 지영은 모집장소로 향했다. 교정을 올라가다 보니 보이는 테니스장과 길 건너편의 운동장. 그리고 그 둘의 사이에 있는 돔 형태의 체육관.
실제로 체육관이자, 2층과 3층에 연구실과 강의실을 마련한 다목적 체육관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신입생들이 다들 모여 있었다.
24학번.
자기도 애기지만, 몇 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그의 시선엔 역시 애기들이었다. 지영이 들어오자 신기한 눈빛으로 한쪽을 보던 새내기들의 시선이 지영 쪽으로 훅 몰려왔다. 그리고 지영이 오기 전에 먼저 시선을 받던 친구, 황석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지영도 연예인이지만, 황석도 연예인이었다.
거기다가 이번에 작품의 주연급으로 출연 계약을 마치면서, 대대적으로 기사가 나간 상태였다.
배터런 2.
오승완 감독의 차기작으로, 황석은 거기서 경력 있는 신입 형사의 역할을 맡았다. 경력 있는 신입이라고 한 건 특전사 출신, 플러스 경호실 경험을 가진 채 경찰이 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이게 대대적으로 홍보됐기 때문에 황석도 충분히 유명했다.
그래서 새내기들이 전부 황석을 보다가, 지영이 들어오자 시선을 넘어왔다.
“혼자 있느라 힘들었나 보네?”
지영의 말에 황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난 아직 이런 시선이 적응 안 되더라고.”
“그럼 차라리 은정이랑 시간 될 때까지 같이 있지.”
연인 한은정도 당연히 연희대로 왔다.
그녀는 조리학과 교수 중에, 평소 존경하던 셰프가 다수 이쪽으로 온 걸 보고 고민도 없이 연희대에 응시했고, 당당히 과 수석으로 붙었다. 요리 잘해, 의리 있어. 능력도 있어. 진짜 멋진 연인을 둔 황석이었다.
물론, 지영의 눈엔 그래도 양유진이 더 최고였다.
“저…….”
한 친구가 다가와 말문을 열었다.
신장이 상당히 크고, 몸이 탄탄한 걸로 보아 분명 운동했을 친구였다.
“강지영이랑 황석 맞지?”
“응. 맞아.”
지영과 황석이 연희대 체육교육학과를 선택했다는 거야 이미 기사로도 충분히 나간 얘기였다. 왜 이 시즌만 되면 연예인이 어느 대학에 입학했네 마네 이런 게 이슈가 되는데, 당연히 올해는 연희고 아이돌의 입학이 가장 이슈였다.
“와, 진짜? 와…….”
다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은 확실히 연희고에 있을 때 애들이 보내던 시선과는 달랐다. 불편한 시선도 분명 존재했는데, 그중 몇몇은 대놓고 비웃기도 했다. 당연히 지영은 그런 시선을 이해했다. 모두가 자신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만인의 사랑?
그건 먼 나라 얘기였다.
특히 자신처럼 성격이 둥글지 못한 편이면 더더욱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영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차피 저런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은, 뭘 해도 똑같았다. 그렇다고 선물을 사다 받쳐 관계 개선을 시도할 성격도 아닌지라, 그냥 무시가 최고였다.
“저, 사인 좀 해주면 안 돼?”
몇몇 애들이 용기 내 다가와 얼른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내밀었다.
지영은 같은 새내기지만, 이들에게 자신은 다르게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당연히 그걸 티 내지는 않았다.
체교과 정원은 40명이었는데, 모인 사람은 30명 정도가 전부였다. 역시 체교과도 정원 미달이었다.
그래서 사인을 해주는 건 금방 끝났다. 사진도 찍자고 해서 찍어주고 있자니, 저 멀리서 스물 후반에서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 몇이 다가왔다. 남자 둘, 여자 둘. 딱 봐도 조교 같았다.
체교과.
체육을 접한 친구들이 태반이라 눈치 빠르게 알아서 줄을 맞춰 섰다. 이런 모습을 보면 최소 체육관에서 빡세게 운동해 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 같았다. 그런 새내기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교들이 웃으며 앞에 섰다.
예상대로 넷은 조교였다.
각 교수를 따라서, 기회의 땅으로 쫓아온 이들이었다.
지영은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거고, 어떤 수업이 주를 이루는지 등을 설명받았다. 연희 재단이 뽑은 교수들이고, 그 교수들이 애제자로 생각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인성이 아주 제대로였다. 보통 조교들은 학생을 뭔 아랫것 보듯 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들의 눈빛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물론 이것만 보고 인성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좀 더 지켜볼 일이었다.
그렇게 강의에 관해 전달받고, 30분 남짓 이루어진 입학식에 참여하고 나자 지영은 오늘 학교에서의 스케줄이 전부 끝났다. 동기들이 같이 점심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지영은 서울에 가봐야 한다는 말로 친구들을 달랬다.
다들 아쉬운 표정으로 그래, 다음에 먹자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부류도 있었다.
처음부터 지영을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본 몇몇. 그들은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
“거, 더럽게 비싸게 구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갑자기 확 조용해졌던 터라, 그 목소리는 서른 남짓의 행동을 우뚝 멎게 만들어버렸다.
사건 사고.
트러블은 여지없이 대학 첫날부터 그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