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2화
232화. 방송(1)
2월 2일.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취소가 각 나라의 체육협회에 공식 공지되었다. 정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다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공정하지 못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은 꽤 공을 들여 진행된다.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 위원회의 개최지 접수가 되면, 그 평가를 위해 도시로 IOC 평가단이 가서 후보 도시 실사에 들어간다. 그렇게 진행된 실사는 당연히 보고서로 작성된다. 이걸 토대로 그 나라의 위원을 제외한 이들끼리 투표를 한다.
이 투표에서 최소 과반 득표가 나와야 하는데, 만약 그러지 않는 경우 가장 적은 득표를 얻은 도시를 제외하고 재투표에 들어간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과반 득표를 얻은 도시가 후보지로 선정된다.
그런데 프랑스는 이 투표 과정에 잡음을 진하게 끼워 넣은 거였다.
이 조사 과정에서, 프랑스가 로비에 쓴 금액이 밝혀졌는데 그 금액이 무려 700만 유로였다. 7000 유로도 아니고, 700유로도 아니고, 무려 700만 유로였다. 700만 유로면 한화로 거의 100억에 육박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현금으로 사용된 게 그 정도고, 예술의 도시답게 고미술품으로 분명 더 로비가 있었을 거로 나왔다. 다만 예술품이기에 출처를 밝히기가 힘들었다.
그럼 적어도 100억 이상이다.
인터폴은 적어도 200억 가까이가 로비에 이용되었을 거란 계산을 내놨다. 무려 200억.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해 프랑스가 쓴 로비 금액이다.
그런데 이걸 보면서 일각에선 싸게 먹힌 거라고들 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관광객도 받지 않고, 무관중으로 치른 도쿄 올림픽의 적자는 감히 추산조차 불가능할 레벨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관광객을 과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철도 시스템은 물론, 버스, 그리고 항공 인프라가 잘되어 있는 프랑스다.
지리적 위치를 보면 유럽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만 그 정도 금액은 충분히 뽑아내고도 남을 계산은 충분히 나왔다.
그러나 올림픽을 연다는 건, 명예였다.
자국이, 내 나라가, 내 도시가 올림픽을 열 정도로 선진 반열에 들었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명예를 생각하면, 200억쯤은 쓸 수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쓸 수는 있어도 그게 합법은 아니었다.
엄연히 불법이고, 안 걸렸으면 넘어갔겠지만, 너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바람에 프랑스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 정말 그나마 깨끗한 소수의 중도파는 개최지 문제가 터지자마자, 결국 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힘도 없는 중도파였고. 결국 포기했던 국가에서 압박을 가하자 빠르게 올림픽 포기를 선언하게 됐다.
그렇게 올림픽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프랑스가 받아들인다는 성명을 하루 만에 발표함과 함께, IOC는 후보지 신청을 받았다.
신청 기간은 정확히 2주였다.
그리고 실사팀이 나가서 실사를 마치고, 후보지 선정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문제가 쉬울 리가 없었다.
올림픽은 아주 많은 준비가 필요로 하는 축제였다.
그래서 올림픽 준비 기간을 넉넉하게 주려고 7년 정도 전에 개최지를 선정하는 거였다. 그래서 후보지 참가 신청서엔 한 가지 제약이 따랐다. 바로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을 것. 그래야 늦어도 25년에는 올림픽을 열 수 있으니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도시는 참가를 말아 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개최지 선정 레이스.
한국도 당연히 참가했다.
인천은 아시안 게임을 했고, 부산과 서울에서 고민하다가 항구 도시 부산이 낙점되었다. 물론 이름만 부산이지, 부산에서 모든 경기를 수용할 수 없으니 거의 전국적으로 경기장이 분산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지영은 그게 신기하면서도.
“와, 이게 이렇게 되네…….”
놀라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월 중순에 들어갔을 때, 압축된 후보지는 총 세 곳이었다. 독일 함부르크.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리고 대한민국 부산. 사실상 모든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는 도시들이다. 하지만 심사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어서 실사팀이 바로 나갔고, 곧장 투표에 들어갔다. 그리고 개최지가 선정됐다.
독일, 함부르크.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은, 독일 함부르크 올림픽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이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어 2월의 마지막 주에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이 1년간 IOC도 내부 수습을 해야 하고, 독일에는 1년의 기간을 주어 올림픽 준비를 시작하게 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황금세대의 스케줄이 꼬였고, 연희고 아이돌 스케줄이 다시금 터지기 시작했다.
* * *
연희고 아이돌.
방송가에서 지영을 비롯한 연희고 유도 선수들을 부를 때나, 칭할 때 쓰는 별명이었다. 이런 연희고 아이돌에게는 평소에도 많은 섭외 문의가 매니지먼트에 들어왔었다. 하지만 24년은 올림픽이 있는 해라서 회사 차원에서 전부 거절을 해왔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올림픽이 25년으로 미뤄졌고, 그러면서 연희고 아이돌의 시간이 1년이 비었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방송관계자들이 다시금 연희고 아이돌을 찾기 시작했다.
강한결도, 임효중도, 이성진도, 황석도, 그리고 당연히 지영에게도 제의가 쏟아졌다. 이전의 문제로 이미 움직이기만 하면 화제의 중심이 되는 애들이다 보니, 그걸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올림픽 폭로 사건이 세계적으로는 가장 큰 핫이슈였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강지영의 스캔들이 더 큰 이슈였다.
물론, 그 스캔들도 이제는 거의 진압이 끝났다.
임은진이 결국 관련자들을 찾아냈고, 고소를 때려버림으로써 응징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아이러니하게도 강지영이란 인물을 더욱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다.
트러블 메이커.
일단 움직이면 반드시 사건 사고가 난다는 강지영이었다.
뭐 하나 좋게 흘러간 적이 없었다. 예인으로 살어리랏다도 결국 마지막엔 문제가 됐고,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가만히 있다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물론 좋지 않은 화제였지만 말이다. 이번 가노컵에서도 크게 문제가 있었고, 아시아 선수권은 그나마 조용했지만, 그 대회가 끝나고 찍은 나의 무사님에서는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결국 감독을 내쫓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문제가 생기고 행보를 시작해도 문제가 생기는.
진정한 의미의 트러블 메이커였다.
여기까지 본다면 오히려 기피 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트러블을 살펴보면, 지영의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전부 가만히 있는 그를 건드린 거거나, 아니면 잘하는 그를 건드려서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언제나 피해자 포지션이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포지션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했다. 솔직히 그 포지션 때문에 동정표로 몰려드는 관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잡으면 대박이라는 게,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다.
강지영을 잡으면.
최소한 그달의 최대 화제성은 잡고 출발한다.
이건 방송가에서 PD들이, 작가들이 모두 동의하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기획 단계에 있는 드라마, 영화, 예능까지. 거의 모든 기획서가 회사로 날아들었다.
2월이 끝나가니 지영은 새롭게 개교 준비를 마친 연희 대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교였다. 캠퍼스였다. 이제는 낭만이 사라진 대학이라지만, 그래도 대학교였다. 전생에서 지영은 대학에 다니지 않았다.
사고로 고등학교도 자퇴했고, 결국 방구석 폐인처럼 살았다.
그런 지영을 연희 재단에서 움직여 초등학교 방과 후 유도 교실 강사로 끌어내지 않았으면 지영은 언제까지고 방구석 폐인으로 살았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건 가능성이었다. 지영의 멘탈은 생각보다 강해서 힘들어했던 시기가 분명 있었어도, 회복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연희 재단의 제안보다 분명 먼저였다.
만약 지영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 제안도 거절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지영은 대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못 마쳤는데, 대학교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솔직히 조금 들떴다.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여는 연희 대학교는, 첨단과 전통이 융합된 교정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 한옥 형태의 강의실이 있는가 하면, 21세기 끝을 보고 온 것처럼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느낌이 가득한 강의동도 있었다.
그런 교정이다.
낭만? 청춘? 사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대학교라는 이름이 주는 설렘이 지영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대학교 등교 전에, 지영은 미팅이 있었다.
이성과 만나는 미팅 말고, 작품 때문에 가지는 미팅이었다.
3월 1일. 금요일.
개강을 며칠 앞둔 지영은 서울로 올라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오늘 미팅할 정은정 작가가 먼저 도착했고, 잠시 뒤 이연이 도착했다.
스캔들 이후 처음 보는 거지만 어색함은 거의 없었다.
가볍게 손을 마주치고 나란히 앉아 차를 시켰다. 차가 나오고 잠시 뒤, 나의 무사님에서 멋진 모습을 선보여 주가가 확 뜬 심수정과 나중에 연출을 잡았지만 잘 자신만의 색으로 나의 무사님을 표현한 홍진아 PD가 앞에서 만났는지 같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연 씨 반가워요. 작가님도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지영 씨도. 우와, 연예인이다?”
“왜 이러세요? 요즘 제일 잘나가시는 분이? 하하.”
홍진아의 너스레에 지영은 그냥 웃으면서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가 뗐다.
나의 무사님.
배우의 매니저까지 전원 참석해서 인원이 꽤 됐지만 북적거린단 느낌은 없었다.
“오늘은 가볍게 의견만, 조율해 보는 거니까 너무 긴장들 마세요. 음, 일단 우리 정 작가님 대본이 완성됐습니다. 박수!”
우와!
홍진아의 말에 심수정이 물개박수를 쳤다. 그녀가 그러는 이유는, 2부라 할 수도 있고, 스핀오프라 할 수도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연이 아니라, 심수정이기 때문이었다. 2부의 메인 스토리 주인공은 ‘선고’였다.
나의 무사님 초반에 재가 구한 이족 부족장의 딸이자, 부족 최고의 신궁인 선고의 이야기를 담는다.
“대본은 저도 읽다 말고 나와서 전부 내용은 모르지만, 간략한 시놉을 보니 모험, 시험, 사랑으로 챕터가 분류될 예정이라네요.”
모험, 시험, 사랑이라.
조합이 안 어울리는데? 특히 모험과 시험 부분은, 이걸 같이 겹칠 수 있나 싶었다. 그리고 보통 모험하면 모험, 우정, 사랑 이런 식으로 가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지영은 일단 가만히 듣기로 했다.
“모험은 선고가 신궁으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시험은 여인의 몸으로 부족의 전투부대의 대장으로 인정받기 위한 시험, 사랑은 재와 만남이에요.”
정은정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과 재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연은 재를 마음에 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재는 연을 지키기만 할 뿐, 그 외적인 감정교류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진짜 딱 호위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
그러니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로맨스가 없다는 문제였다. 로맨스가 없는 드라마는 흔히 앙금 없는 찐빵이라고들 할 정도로, 대중의 시선을 외면받았다. 사랑 이야기. 대중이 드라마를 보는 기본적인 요소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사랑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에 로맨스가 없다?
목적이 확실한 드라마를 빼면, 사랑은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무사님에도 사랑은 들어간다.
다만, 이 얘기에선 형식을 깨고 주연과 조연이 연결된다.
재와 선고.
이 둘이 말이다.
틀을 깬 로맨스.
정은정 작가는 2부를 그렇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