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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31화 (23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1화

231화. 스캔들(4)

도착해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 이선영과의 약속 장소를 얘기한 지영은 대번에 한소리 먹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방송국이다. 그것도 상암 MBS 신사옥. 임은진은…….

“일신상의 문제로 가뜩이나 시끄러운 애가, 방송쟁이 그득한 곳에 스스로 기어들어 가겠다니, 참 너도 간이 큰 건지 무심한 건지.”

“……누나가 바쁜 것 같아서요.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보려고.”

“…….”

찌릿.

임은진의 째림에 지영은 슬그머니 말을 멈추곤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보니까 방송국이었다. 기자, PD가 아주 그득한 장소였다. 솔직히 이번 IOC 스캔들 때문에 지영은 그걸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

‘선영 누나가 알아서 해줄 텐데…….’

그녀도 생각이 없진 않으니, 불렀어도 잘 막아주고 그랬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이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임은진은 지영을 거의 전담해 주는 매니저였고, 이쪽 바닥의 생리는 당연히 그녀가 훨씬 더 잘 아니까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방송국에 도착한 지영은 바로 이선영에게 전화했고, 그녀는 기다리라고 하더니 아예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차에 올라서, 미안하단 얘기부터 했다.

“아침이라 잠이 덜 깼나, 큰일 날 뻔했네. 불러도 널 방송국으로 불렀으니. 미안해요. 은진 씨. 많이 놀랐죠?”

“호호, 괜찮아요.”

이선영의 사과를 들은 지영은 문제가 있는 게 맞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방송국은 무방비로 입장하면 안 되는 공간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하지만 상암은 아니었다.

근처에는 방송쟁이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방으로 쏟아져 나올 테니, 가능하면 좀 멀리 떨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아예 몇 개의 스트리트를 건너뛰었다. 점심은 중국집이었다. 나쁘지 않은 맛이어서, 만족한 느낌으로 식사가 끝났다.

그리고 자리를 근처 카페로 다시 옮겼다.

임은진이 눈치 빠르게 빠져주자, 지영은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아니, 본론을 꺼내기 전 다시 한번 고민했다. 사실 이 문제는 이선영이 가장 잘 대답해 줄 것 같아 오긴 했는데, 고심해 보니 사실상 이 고민은 말도 안 되는 고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영의 입장에서만 말이 안 된다.

이 세상에 오직 지영 혼자만이 원래 IOC 내부비리 폭로 스캔들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래의 역사가 흩어지고, 새로운 역사가 써지고 있었다.

본래는 한발 물러났어야 할 이토 츠요시가 다 같이 죽자는 동귀어진으로, IOC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안드레이 위원장 역시 젠틀과는 거리가 먼 마음으로 맞받아쳐 이토 츠요시의 사방을 초토화했고.

거기에 중도파까지 휘말려 IOC는 연일 새로운 스캔들이 터지고 있었다.

‘원래가 아닌, 새로운 역사.’

그걸 아는 건 회귀자인 지영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영에겐 이 문제가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선영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영이 이걸 고민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왜? 일본유도협회가 너를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그런다고 이런 미친 짓을 저질러?

이선영의 입장에선, 지영의 생각이 미친 거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고민했다.

이걸 물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잠자코 있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였다.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그런 지영을 웃으며 보던 이선영이, 얼른 얘기하라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해서 지영은 좀 더 고민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물론, 여기까지 왔으니까 무라도 썰 마음으로 솔직히 오픈하자 쪽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누나.”

“응?”

“한 집단이, 한 개인에게 제대로 물을 먹었어요. 그래서 복수하고 싶은데, 그것도 잘 안됐어요. 이 경우 집단은 어떻게 나올까요?”

“집단? 개인은 너고, 집단은…… 음. 거대해?”

이선영은 자세를 바로 하고 지영의 말을 제대로 들어줬다.

애초에 그녀도 지영이 별것도 아닌 문제로 서울까지 올 성격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지영이 가진 고민이, 적어도 그로선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지하게 임했다.

“네, 커요. 생각보다 훨씬. 대기업 정도는 아니어도, 때에 따라서는 그에 준할 정도로 커요.”

“음, 그런 집단이 너를 적대한다? 대충 어디인지 알겠네.”

“…….”

지영은 그 부분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건 긍정했다는 것과 같았지만, 그래도 그걸 고개를 끄덕여 보여주진 않았다. 뭘 숨기고자 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그녀도 알고 있으니까. 답을 하지 않은 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집단이 원한을 가졌을 경우라.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나온다는 건데? 그걸 알아야 답을 주지.”

지영은 이번에도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생각 이상의 미친 짓이에요. 주변을 초토화해 버릴 정도의.”

사실 이렇게 답하면, 이선영 정도의 빠삭한 눈치를 가진 사람은 대번에 알아차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걸 설명하지 않고서는 대화 자체가 진행되질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대답만 해주자면, 가능해.”

“……가능해요?”

“그럼. 가능하지. 지영아. 넌 설마 집단이라는 것 자체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럼요. 그 정도로 순수하진 않아요. 저도.”

“그런데 지영아. 순수하지 않은 네 생각보다 때로는 현실이 더 무섭단다.”

“…….”

현실이 더 무섭다?

“지영아, 넌 내가 예전에 어떤 사건을 파헤쳤는지 알지?”

“네, 어느 정도는요.”

“내가 진짜 그 그룹 파다가, 진짜로 요단강 건널 뻔했어.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혈안이 된 내가, 그 그룹 입장에서는 정말 눈에 가시 정도를 넘어섰거든.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나를 죽이려고도 했었어.”

“…….”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얘기를, 실제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덕 기업이냐? 그것도 아니야. 시장 정책이나 가격 같은 걸 보면, 지금도 굉장히 합리적이야.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가 거의 그 분야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그런데도,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었어. 왜? 그래야 했거든.”

“그래야 했다고요?”

“응. 내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걸었고, 그들은 받았거든. 그러니 멈추는 순간, 자신은 추락할 수밖에 없었어. 이긴다고 해도 상처가 만만치 않았고. 알지? 나 고향으로 좌천된 거.”

“…….”

“나는 회장 일가의 치부를 온 세상에 까발렸어. 내가 싸움을 건 대상이 회장 일가였기 때문에, 그쪽도 무시할 수가 없던 거야. 애초에 내가 들고 있던 것 중 일부가 그쪽이 도망치지 못할 정도의 거였기도 했고. 그래서 붙었지. 아주 합리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회장 일가와.”

아…….

이해됐다.

이선영의 말은 결국, 집단이 뭉쳤다고 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불합리한 선택도 내리기도 하고.

“물러설 수 없는 제로섬 게임과도 비슷해. 누가 이겨도 남는 게 없는데도 말이지. 이미 시작했으니까, 멈추어 서면 추락이라고 했지? 그건 곧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야. 기업이라면 회장을 포함한 임원 중 주동자들이 갈려 나가겠고, 협회라면 아마 일을 시작한 설계자, 실무자, 그리고 책임자들이 갈려 나가겠지?”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이 끝을 봐야 한다는 거죠?”

“응. 그냥 대충 설계단계에서 멈춘 것도 아니고. 이미 부지 매입하고, 땅바닥 갈아 기반 다지고, 자재 사들여서 공사 준비하고, 사람 뽑고, 설계도면 준비하고, 공사 시작해서 뼈대 만들고 했잖아. 그런데 중간에서 멈춘다? 그럼 손해가 어마어마한 거야.”

“…….”

“그리고 뼈대가 올라갔는데 공사가 중단되면 어때? 겉 외형이 엄청 흉하지?”

“네.”

“그런데 멈추면 흉한데, 끝까지 가면 그래도 건물은 깨끗하게 완공할 수 있어. 너라면 어떻게 할래?”

“…….”

“멈추면 무조건 흉해. 가도 흉할 수 있지만, 완공 가능성은 존재하고. 이러면 답은 나왔지 않아?”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거의 무조건 끝까지 간다는 소리다.

‘생각해 보면 이미 나를 물 먹으려고 이런저런 준비를 참 많이도 했었지.’

그런데 그게, 외부적인 요소와 지영에게 오히려 역으로 다 털려서 깨져나갔고. 그럼 여기서 아, 내가 졌구나. 졌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포기할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었다.

일단 체급 차이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이쪽은 개인을 포함해 몇이고, 그쪽은 집단을 넘어서서 이 정도의 거대한 스캔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체급이고. 물론, 이선영의 이런 말을 대답을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그게 이유고 원인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과민반응. 혹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었다.

사실 지영은 오히려 그랬으면 했다. 이게 자기가 예민하고 반응하고 있는 거거나, 아니면 자기가 뭐 그리 큰 사람이라고,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거나. 차라리 이랬으면 했다.

“대답이 됐어?”

“네, 충분히요.”

“서울까지 온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네.”

“하하, 넘쳐요. 고마워요, 누나.”

이선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

특이하다 못해 특별한 생각과 행보를 보인 지영이다. 그런데도 이선영은 그저 빙긋 웃고는 그래, 내 동생!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는 눈빛으로 바라봐 줄 뿐이었다. 회귀 이후, 가장 고마운 사람 중 한 사람이라, 지영은 불쑥 이런 말이 나갔다.

“누나, 결혼 안 하세요?”

“……아니, 얘가? 대답도 잘 들었고 보람도 있다는 얘가 보답으로 비수를 누나 가슴팍에 꽂아?”

“하하, 고마워서 그러죠. 누나 같아서? 그래서 걱정돼서요.”

“됐거든? 누나가 알아서 할 거야, 그건! 그럼 이제 슬슬 일어날까? 사무실 돌아갈 시간이 다 됐네?”

도망치는 거다, 이건.

지영은 그냥 웃으면서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머리는 아직 복잡하긴 했지만, 얼추 정리는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은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며칠이 더 흘렀다.

상황은, 미쳐가고 있었다.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개최지 선거 당시, 프랑스의 거대한 로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알프레드 위원장이 부위원장이었을 당시…….]

2024년은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었다.

그런데 알프레드 위원장의 여죄를 추적하던 인터폴에서, 당시 부위원장이던 알프레드가 프랑스의 로비를 받아 다른 투표 위원을 섭외해 선거를 조작했다는 내용이 추가로 터져 나오면서, 단순 알력 다툼으로 인한 내부비리 폭로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졌다.

“와, 이게…….”

지영은 TV를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예상도 못 한 사건이었다. 이건 진짜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낸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후보지 부정 투표 논란으로 인해 당시 프랑스와 함께 후보지로 선정되었던 국가에서 이번 프랑스 올림픽은 취소하고, 재투표 이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후보지로 선정되었던 나라로는…….]

이게, 이렇게 흘러간다고?

지영의 기준에서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과 같았다. 올림픽이다. 도쿄 올림픽과는 다르게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도 거의 잡혔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관광객이 모여 현지에 엄청난 소비를 낳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터지기 직전까지 온 것 같았다.

톡방 알림이 떴다.

[이성진: 내가 올림픽 취소되는 거 아니냐고 했었지?]

[황석: 성진이 말이 씨가 됐네 ㅎㅎ]

[임효중: 취소되면,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싫어해야 하는 거야? 이건 뭐 갈피를 못 잡겠네?]

친구들의 톡에 지영도 답장을 보냈다.

[반반?]

이성진이 지영의 답에 무 많이! 를 외쳤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거대해진 비리 폭로사건은 2월 1일, 긴급 속보로 올림픽 개최지 취소! 라는 속보를 모든 방송의 하단에 긴급 속보로 내보내게 되는 파국을 결국, 맞이하고 말았다.

프랑스 파리 올림픽은, 취소됐다.

이는, 지영의 수면 아래 기억에도 없던 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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