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0화
230화. 스캔들(3)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아이 오 씨.
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약자였다.
지영은 이성진이 보내준 링크에 들어가서 기사를 확인한 지영은.
“아 맞다. 이걸 왜 까먹었지?”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사실을 금세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 지영이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건 지영이 베가 제약과 더불어 알고 있던 정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잊고 지냈던 사실이기도 했다.
이건 지영이 회귀 전에도 터진 사고였다.
그런데 당시 지영은 올림픽이란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관심을 주지 않았었다. 그랬던 이유는 당연히 올림픽을 생각하거나, 보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강제로,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만뒀었어야 했던 현실은 먹고 살기 위해 지도자 생활을 하는 그 이상의 관심을 스포츠 쪽으로 가는 걸 강제로 막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회귀 전 IOC에서 커다란 문제가 터진다는 걸 봤었지만,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당연히 현생에서도, 기억의 수면 아래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기사를 보는 순간 아! 하면서 곧바로 떠올랐다.
24년 새해 벽두부터 터진 IOC의 문제는 생각보다 크면서도,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현 위원장과 부위원장과의 알력 다툼이었다.
정확히는 연임을 노리는 위원장과 위원장 자리를 노리는 부위원장의 다툼으로 인해 흑색선전, 즉, 네거티브 전으로 치달으면서 문제가 터져 나온다. 현 위원장은 이탈리아 사람이고, 부위원장은 일본 사람이었다.
이 둘의 다툼은 처음엔 굉장히 커지다가, 1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상황은 마무리가 됐다.
다음 대 권력 이양을 약속받았는지, 부위원장 이토 츠요시가 한 발자국 조용히 물러나기 때문이었다.
관심이 없었지만, 지영은 그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건은 일단락되고, 올림픽은 정상 개최되었다. 그게 수면 위로 올라온 기억이었다.
톡방은 벌써 시끄러웠다.
다른 곳도 아니고 IOC였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 즉, 올림픽 자체를 주관하는 곳이 IOC다 보니 운동선수들은 이 문제를 예민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와는 반대로 일반인들은 혀를 한 번 차는 정도가 끝이었고 말이다.
[이성진: 이거 막 올림픽 취소되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이성진의 톡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이건 설마 정도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걸 알려줄 수는 없으니 지영은 적당히 대답했다.
[설마.]
[이성진: 생각보다 말이 크게 나오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아무리 중요한 부품이 고장 나도 대체하지 못하는 건 없어.]
[강한결: 맞아. 문제가 생기면 두 파벌 말고 중도 파벌 사람들이 올라와서 올림픽은 진행할 거야.]
[임효중: 모든 조직은 수뇌부가 갈려 나가도,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 두니까?]
[강한결: 정답. IOC 정도 되는 국제조직이 그런 시스템도 안 갖췄을 리가 없지.]
데이트 중인지, 황석은 조용했다.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 걸로 보아 아직 글도 읽지 않은 모양이었고. 어쨌든, 이런 이유로 시끄럽긴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게 지영의, 황금세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열흘 정도가 지났을 무렵, 지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황금세대의 생각도,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게 됐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 IOC에서 시작된 내부비리 폭로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협회장 알프레드…….
지영은 새벽 운동을 갔다 와서, 땀을 닦기도 전에 TV부터 켰다. 그리고 역시 자신의 기억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폭로 사건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첫날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지영은 조금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주일도 안 돼서 츠요시 부회장이 한발 물러나며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됐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적어도 그 정도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사건은 분명 그렇게 흘러갔었다. 하지만 일주일을 지나 열흘이 조금 넘은 지금, 사건은 지영의 기억과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일단, 이토 츠요시가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알프레드 회장의 치부를 마구 폭로하기 시작했다. 이에 열 받은 알프레드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둘이 서로 링 복판에서 만나 잽도 아니라, 묵직한 라이트를 서로의 안면에 사정없이 주고받았다.
혈흔이 난무하고, 이가 털려서 비산하는 중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죽일 듯이 폭로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강한결이 얘기했던 게 깨졌다.
중도파.
강한결은 이 중도파 때문에 올림픽은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영의 의견도 같았다. 설마, 한 조직에 소속된 인간 전체가 좌와 우에 치중되어 있진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던 거다.
어느 한쪽에 전부 치우치진 않았지만, 한쪽엔 발을 걸치고 있던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이들까지 신나게 갈려 나갔다. 공금횡령? 그건 그냥 귀여운 수준이었다. 영수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그냥 애교였다.
더럽고, 난잡하게 이용된 예산이 누구에게 향했는지, 거기서 다시 어디로 갔고, 흘러간 허브에서 다시 몇 갈래로 퍼졌는지. 이건 캐도 캐도 끝이 없는 고구마나 감자를 보는 것처럼 끝도 없이 나왔다.
‘애초에 저걸 서로 알고 있어서 물러났던 거였어.’
지금 말고, 회귀 전에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체 이게 왜 이렇게 터졌을까?
지영은 자신이 돌아온 이후 거의 모든 게 자신의 기억대로 흘러갔단 걸 알았다. 여기서 다르게 흘러간 건, 지영 본인이 개입한 일들 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현 세계 유도계와 연예계 곳곳이 연희고 아이돌이자 황금세대로 인해 원래의 기억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나비효과.
이 단어가 즉각 떠올랐다.
‘설마 나 때문에 변한 건가?’
쏴아아아.
지영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과 비교해 달라진 건 솔직히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씻고 나와 다시 방의 PC 앞에 앉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토 츠요시.
검색해 보니 유도 선수 출신이었다.
이제 50대고, 일본의 유도가 전성기였던 시절, 한 축을 맡았던 선수였다. 지영이야 잘해봐야 이노우에 코세이 정도를 아는 게 전부니, 당연히 선수로서 이토 츠요시는 처음 듣는 지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력이나, 세계 대회 입상 같은 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토 츠요시가 유도 선수 출신으로 일본체육협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IOC의 최고위 간부까지 올라갔단 것에 있었다.
유도 선수 출신.
IOC 최고위 간부.
이 두 가지를 알게 되자, 지영은 이제 왠지 이토 츠요시가 벌이는 난타전에 자신이 아무런 연관도 없을 거란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원래는 그런 생각 따위 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치열하게 ‘위원장’ 직을 놓고 싸우는지. 아니면 위원장‘직’ 자체를 ‘무’로 돌리기 위해 발악하는지, 그 이면의 이유에 어째 자신이 끼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엄습했다.
지영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피해망상이기도 했지만, 일본에 당한 게 워낙 많았고, 일본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단 생각 때문이었다.
반성?
그런 걸 할 종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걸 할거였으면, 적어도 협회 인사가 갈려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신지에게 새해 인사 겸 들은 얘기를 보면, 그런 말은 돌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로 계속, 협회가 간다는 뜻이었다.
일본에서 유도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특히 전 올림픽에서 일본 유도는 세계를 휩쓸었다. 어느 나라든 잘하는 종목 협회가 목소리가 큰 법이었다. 혹은 인기가 많은 종목이거나. 그도 아니면 그 스포츠가 종주국이든가. 그와 반대로 비인기 종목은 인기가 떨어졌다.
이는 기본이었다.
그런 기본에 근거해, 일본유도협회의 힘은 일본스포츠계에서 아주 목소리가 컸다. 종주국에, 성적 최고고, 인기도 많다. 이 3박자가 전부 갖춰졌으니 인기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어쨌든 그런 나라다.
단순한 추론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결론에도 도달했다.
‘설마 실권을 쥐어 우릴 물 먹이려고?’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본래는 이시카와 사유리였던 ‘강유진’을 자신에게 데려옴으로써, 이제 자신에게 가지는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일본유도협회일 테니까, 작정했으면 이렇게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장악하면 가능하냐는 건데,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잘! 이런 무책임한 이유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작년에는 맞붙은 적이 없는 미야모토 신지와 자신의 차이는 거의 백지장 차이였다.
그럼 반칙 한 개만 툭 주는 순간.
그 이전에 그게 가능하게 할 권력을 손에 쥐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철저하게 권력을 손에 쥐거나, 아니면 권력을 든 자의 머리를 조종하거나. 이것만 가능하게 만들면 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승부는 거의 갈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승부가 백중세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것도 고민해 봐야 했다.
“그런데 나 하나 잡으려고 이 짓을 한다고?”
이렇게 전 세계 스포츠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추악하고, 흉악한 폭로전까지 하면서?
지영은 이건 한번 의중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런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최소한 권력자나 권력 집단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럼 누나밖에 없네.’
그런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
지영은 바로 이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영아!
“누나 출근 중이에요?”
-나? 이제 막 사무실 도착. 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음, 통화로는 좀 길다. 제가 점심때 찾아가도 될까요?”
-너 서울이야? 휴가 중 아니야?
휴가 중 맞다.
지금도 그래서 충주 집이고.
“아니요. 충주요. 휴가 맞아요. 지금 출발하면 누나 점심시간쯤 서울 도착할 것 같은데.”
-중요한 얘기겠지?
“아니요. 그냥 궁금한 게 있는 것 정도인데 누나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요.”
-그래? 그래, 그럼. 동생이 궁금하다는데 대답해 줘야지. 오면 식당에서 점심 먹자.
“네.”
지영은 전화를 끊고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해 서울에 좀 갔다 오겠다고 연락한 뒤, 바로 준비했다. 사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오늘 내려올 거라 지갑이랑 핸드폰만 챙기면 사실 준비는 끝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지영은 바로 움직일까 하다가, 임은진에게 전화했다. 그러곤 서울로 출발한다고 하니까 당연히 왜? 하고 되물어왔다.
“선영 누나 만나서 뭐 물어볼 게 있어서요.”
-어…… 혹시 스캔들 문제야?
“그건 누나가 알아서 하신다면서요. 선영 누나한테 물어볼 건 그냥 제 개인적인 궁금증이요.”
-그래. 그럼 터미널에서 픽업할게. 버스표 시간 알려줘.
“괜찮…….”
-안되는 거 알지? 너 도복 안 입었을 땐 연예인이야. 그것도 한국 연예계 판이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캐스팅하려는 배우야.
“……넵. 표 끊고 바로 톡 보내놓을게요.”
-그래. 와서 보자.
“네, 누나.”
전화를 끊은 지영은 바로 터미널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이제 8시가 조금 넘었다. 지영은 표를 끊고, 아삭에서 토스트를 두 개 사 먹고 잠시 대합실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올랐다.
출발 시간은 9시.
출발 시간을 임은진에게 알린 지영은 눈을 감았다.
답답할 정도의 후끈한 버스의 열기.
배에 들어온 뜨끈한 토스트 두 개.
새벽 러닝으로 고단했던 몸과 IOC 스캔들로 지친 정신이 까무룩 잠들기 최고의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