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29화
229화. 스캔들(2)
7살 차이 나는 고3 강지영과 이연의 스캔들은 대형 떡밥이긴 했다. 심지어 강지영은 고3이니, 잘하면 이건 미성년자 어쩌구저쩌구 하는 범죄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신년부터, 화르르 또 타오르기 시작했다.
-와 씨, 나이 차가 상당한데 이 정도면 범죄 아니냐?
-ㅇㅇ 진짜면 범죄 맞지. 강지영 얼굴은 저래도 미성년자잖아.
-진짜면 대박이지 ㅋㅋ
-남자랑 여자랑 바뀌었으면 진짜 끝장난 건데. 이 경우는 어떻게 되려나?
-뭘 어떻게 돼? 똑같이 적용해야지!
-아니, 그 이전에, 이 기사가 진짜긴 진짜인 거냐? 열애설이랍시고 난 사진인데, 왜 제대로 된 사진이 내 눈엔 하나도 안 보이냐?
-야, 눈 삐었냐? 저 정도면 빼박이지!
-빼박은 무슨. 몇 장은 드라마 촬영 중 찍은 거더만. 그거 교묘히 주변 지워놓은 것 같고. 그리고 저 사진은 저거, 대본 전해주러 갔을 때라고 하지 않았나? 예전에 연희고 애들 인별에서 본 거 같은데? 이연이 나의 무사님 때문에 직접 강지영 찾아갔었을 때.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는 당연히 의심부터 하고 봤다. 사실 당연했다.
열애설은 원래 기본적으로 의심부터 하고 봐야 했다. 진짜 손을 잡고 데이트하는 사진이 아니라면, 그 사진이 방송 때문에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면, 열애설은 기본적으로 의심하고 보는 게 맞았다.
두 사람이 직접 인정하는 게 아니라면, 중립 기어 세게 박아 놓고 기다리는 게 맞았다.
그리고 그런 네티즌들이 있는 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급발진하는 네티즌도 당연히 있었다. 성급하게 달려드는 무모한 벌떼 같은 네티즌이, 물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1월 1일은 그래서 화끈했다.
새해라 빨간 날이고, 그래서 다들 출근도 안 했기 때문에 더욱 빠른 속도로 타올랐다. 그러나 저녁 무렵, 찬물을 끼얹는 발표가 뒤이어졌다.
-야, 이연 소속사 입장문 떴다.
-대표가 직접 공개방송으로 전문을 읽네 ㅋㅋㅋ
-표정 봄? 진짜 존나 빡친 게 눈에 보이더라 ㅋㅋ
-니네 이제 X 됐닼ㅋㅋㅋㅋ
-아까 떠들던 애들 ㅋㅋㅋㅋ 내가 다 캡처해서 이미 이연 소속사에 쏴줬다 ㅋㅋㅋ
-이연 인별 방송 켰음! 고고!
-방송? 뭔 소리 하나 가봐야지 ㅋㅋ
이연의 소속사는 이번 열애설이 사실무근이며, 말도 안 되는 억측도 아닌 허위사실을 유포한 인터넷 언론사들을 모조리 신고하겠다는 전문을 내놨다. 그리고 그에 맞춰, 이연이 방송을 켰다.
방송을 켠 이연은 열애설에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밝혔다.
말이 되는 소리냐.
지영이 이제 고3이다.
하도 열 받아서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내놓은 곳을 자신이 직접 찾아갔는데 간판만 있더라.
기사를 낸 기자도 없는 사람 같더라.
이런 걸 그대로 밝혔다.
그러면서 좀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화끈하게 타올랐던 오후를 보내고, 늦은 저녁.
지영은 이연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연이 방송을 끝내고 나서 지영이 먼저 걸었고,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누나 미안해요.”
-뭐가? 아아, 열애설? 이거 너 엿 먹이려고 한 기사지?
아마도, 99%의 확률로 맞을 거다.
정확히는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를 노린 허위기사였다. 거기에 이연은 아마도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강한결로 시작해서, 지영으로 끝나는 연계였다. 이는 임은진의 예측도 그랬다.
고작 고등학생에게 제대로 물 먹었다고, 이를 가는 쓰레기들의 발악이었다.
임은진도 알아봤는데, 처음에 기사를 올린 언론사는 간판만 달려 있을 뿐이고, 사람은 드나들지 않는 유령 사무실이었다. 그러니 언론사도 유령회사였다. 등록은 됐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면 꼬리를 자르려고 작정하고 만든 회사였다.
그러니 쳐봐야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네, 아마도요.”
-왜 그런 걸로 누나가 뭐 막 우울하고 그럴 것 같아서 그래? 너 누나 아이돌 때 터진 기사들 못 봤구나?
“……심했었나 봐요?”
-아, 엄청났지. 당시 1티어 남돌이랑 열애설 나는 바람에 누나 계란 한판은 넘게 맞았을걸? 그래도 머리는 망가지지 말라고 삶아서 던져주더라. 하하!
“……그 정도였어요?”
-더했어. 별게 다 숙소로 날아오고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연예계 애들이랑은 절대 안 만나요.
“…….”
-별일 다 견뎌봤으니까. 이런 건 어차피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넌 괜찮아? 너 여자친구는? 괜히 막 오해하는 거 아니지?
이연은 성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화가 날 법도 한데, 그걸 지영에게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화가 나지 않았던 걸까? 그것도 아니었다. 인별에서 방송할 때 그녀의 표정은 진짜 속된 말로 빡이 제대로 돈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연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영에게 그 책임을 하나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여자친구까지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네. 오늘 가족끼리 같이 있었거든요.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 참, 한결이? 걔도 열애설 났던데 걔네는 진짜 사귄다고 했지?
“네. 둘이 잘 만나고 있어요.”
-아하. 그래서 타깃을 너로 바꾼 거구나?
“그것까진 모르겠는데, 아마 저도 타깃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요? 저한테 물먹은 것도 꽤 많아서, 아마 저한테도 이를 갈고 있었을 게 분명하거든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이연의 말처럼, 양지원의 스캔들 사건은 강한결이 인별에 올린 비공개 사진을 공개로 돌리는 걸로 깔끔히 무마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연희 스포츠 이사 강한결. 이라고 적힌 명함을 찍어 인별에 올리면서 양지원이 만나는 연희 스포츠 ‘임원’이 그녀보다 딱 1살 더 많은 강한결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그러자 욕했던 것들은 싹 사라지고, 선남선녀가 만났다며 축하하는 분위기가 훨씬 더 많아졌다.
그게 엊그제 저녁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강원도 향할 때쯤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거짓 스캔들은 제대로 방향을 찾았다.
그리고 이어진 게, 바로 지영의 스캔들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게 전부 그냥 다 계획된 게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는 지영의 기사가 먼저 준비되었다가, 강한결 열애 사실을 어떻게 알아내고는 그걸 앞줄을 세워서 더 크게, 연속으로 건드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애초에 이연은 이용당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칼을 갈고 기다렸다는 뜻이다.
-앞으로 괜찮겠어? 계속 이렇게 유령회사 세워서 공격할 건데. 찾기도 힘들 거잖아.
“괜찮아요. 은진 누나 화 많이 나서, 지금 인맥 전부 동원해서 찾고 있어요.”
-은진 씨가? 아, 은진 씨 유명하긴 하다더라.
“맞아요. 대단하기도 대단하고요.”
이것도 없는 말은 아니었다.
지영은 임은진의 유능함은 일본에서 ‘강유진’ 귀화 건에서도 느꼈었지만, 임은진은 정말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연희고 아이돌을 공격했던 언론사와 관련된 사람들 전원을 전부 데스노트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녀는 그랬다.
언론이란 힘을 맛본 기자들은, 절대 그걸 놓지 못한다고.
그래서 숙이는 척해도, 진짜 숙인 게 아닐 거라고.
뻑하면 언론탄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무조건 잠잠해지면 다시 고개를 치켜들 거라고.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일단 그렇게 의심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도 은퇴라는 카드를 꺼내고, 언론이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얻어맞을 때도 그녀는 그쪽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을 동원해 문을 닫고 폐업한 쪽을 전부 조사했었다고 했다.
그녀의 지론은 간단했다.
만약, 누군가가 또 연희고 아이돌을 건드리면 자신이 작성한 데스노트에 적힌 누군가의 짓이다.
‘그 원한을 잊지 않은 사람이라고, 분명 그랬지.’
임은진은 방긋 웃었다.
새해인데도 강원도까지 올라와서, 모두의 앞에서 이런 얘기를 직접 꺼내면서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허락받을 때도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웃음을 무섭게 봤다. 건드려도 진짜 벌집을 건드렸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은진 씨 하나만 믿고 있긴 그러니까, 누나도 누나 나름대로 알아볼게.
“네, 누나.”
-그럼 즐거운 새해 보내고! 다음엔 이런 일로 통화 말고, 즐거운 주제로 통화하자. 알았지?
“하하, 네.”
-그래! 그럼 끊는다? 아, 서울 오면 연락해! 밥 먹게! 알았지? 끊는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스캔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뉘앙스여서, 지영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웬만한 멘탈로는 어림도 없겠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화를 끊은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통화 잘 끝났어?”
아까 근처에 와서 서성이던 강한결이 폰을 내려놓자 바로 다가왔다.
“응. 안은 뭐 해?”
“아직도 고스톱. 야, 유진 누나가 다 따고 있더라.”
“헐, 진짜?”
명절이나 신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고스톱이다.
양유진은 원래 고스톱을 칠 줄 몰랐지만, 충주 집에 가끔 놀러 오면서 어머니한테 화투 치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 소원 중 하나라고 하셨었지, 아마?’
굳이 화투가 아니더라도, 그냥 같이 딸이랑 뭔가를 하는 게 꿈이라고 하셨었다. 딸에 대한 로망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한테도 있는 법이었고 어머니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셨다. 어쨌든 그렇게 배운 화투로, 양유진은 경력 20년 이상의 고수들의 판을 휩쓸고 있는 것 같았다.
“응, 장난 아니던데? 뒤패가 다 붙으셔.”
“초심자의 운, 뭐 그런 건가 보네. 그래서 넌 왜 나왔는데? 날도 추운데.”
“너는 왜 나왔고?”
“나야 뭐.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까?”
“너한테 문제가 생기면 그건 너만의 문제고?”
“응?”
“나한테 문제 생기면, 그럼 그건 나만의 문제겠네?”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잠깐 눈을 끔벅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니까 그랬다. 연희고 아이돌의 문제는, 황금세대의 문제는 전부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피는 안 섞였어도, 다섯은 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몇 년 전의 99즈처럼, 찐우정을 가진 형제들이었다.
그러니 내 문제는 친구들의 문제고, 친구들의 문제는 또 내 문제나 마찬가지였다.
“쏘리.”
“역시 인정이 빨라서 좋다니까. 그래서 이연 누나는 어때?”
“그냥 화만 잔뜩 났지. 아까 방송 보니까 진짜 열 받은 표정이더라.”
“하긴, 그런 기사가 나갔으니. 누나네 소속사에서도 움직이겠지?”
“그렇겠지?”
따로 알아보겠다고도 했으니까, 아마 이연도 이연 나름대로 응징을 가할 생각 같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한겨울이니 아마 걸리기만 하면 이연이 진짜 가만히 두진 않을 것 같았다.
지영은 대화의 흐름을 바꿨다.
“애들은 뭐한데?”
“석이랑 은정이는 데이트. 효중이랑 성진이는 효중이 누나랑 술 마신다는데?”
“술? 아, 이제 스무 살이지.”
“응, 이제 술집 갈 나이지.”
이성진은 술에 대해 호기심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이건 고등학교 3학년이면 전부 그랬다. 오죽하면 오늘 클럽 앞에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춘남녀가 초저녁부터 진을 쳤다고 했을까. 작년이나 재작년, 그 이전에는 코로나 때문에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잡히고 나자 헌팅포차나 클럽은 자리가 없어 손님을 못 받을 지경이라고 뉴스에 나왔을 정도였다.
“너는 술 별로 안 마시고 싶어?”
“술? 전혀.”
술이라…….
마시는 것에 거부감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류’를 지영은 증오하고, 경멸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인생이 한 번 망가졌던 지영이라서 이러한 심적인 트라우마는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이 마시는 걸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전생에서도 지영은 친구들과 만나서 곧장 술잔을 기울였다.
물론 지영을 생각해서 다들 과하게 마시진 않고, 얘기를 나누기 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넷이서 한 병을 시켜도 한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이성진의 주도는 못 봤지만, 다른 친구들은 믿을 수 있으니까, 지영은 이 문제를 크게 중요히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중에 애들이랑 다 같이 한잔하자. 다들 그러고 싶어 하던데.”
“그럼. 그건 당연히 환영이지.”
그럼, 당연히 해야지.
회귀 전에 가졌던 자리에선, 한 명이 오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술자리에선, 그를 추모했었다. 아무리 떠올리기 싫어도 넷이 모이면 자연히 이성진의 빈자리가 느껴지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성숙해지고 나선 그냥 술자리 시작부터 잘 지내냐, 인마? 하고 인사부터 하고 시작했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다섯이 전부 함께하는 자리는 꼭 하고 싶은 지영이었다.
오빠!
그때 저 멀리서 양지원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둘은 반사적으로 바로 일어났다. 들어가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탓이었다.
툭툭.
강한결은 지영의 어깨를 쳐주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지영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고, 백 원짜리를 수북하게 앞에 쌓아 놓은 양유진을 보면서 헐, 다시 한번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펜션에 놀러 온 이틀째이자,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스캔들이 터졌다.
그런데 이번 스캔들은 지영이나 연희고 아이돌을 노린 기사 같은 건 아니었다.
올림픽위원회.
IOC 내 알력 다툼으로 인한 내부자 비리 폭로 사건으로, 전 세계 스포츠계가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