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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26화 (22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26화

226화. 가노컵(20)

절반.

시작과 동시에 잡기도 하지 않고 그냥 기습적으로 훅, 사랑하는 연인에게 달려가 안기듯이 때린 안다리였다. 안다리 걸기도 아니고, 그냥 원을 그리면서 냅다 후렸으니 안다리 후리기였다.

시작과 동시에 가볍게 손바닥을 터치하며 파이팅을 했지만, 그다음 바로 들어온 공격이 아니니 비매너도 아니었다.

그렇게 절반이 나오기까지 대략 15초쯤 걸렸다.

남은 시간 3분 45초. 굳히기까지 하다가 끝났으니 15초 플러스해서, 30초.

절반을 빼앗기고 남은 시간은 3분 30초.

“괜찮아! 아직 시간 넉넉하니까! 하던 대로만 가자!”

전기정 감독의 사이드에 황석이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잠깐 지영에게 향했다가 돌아갔지만, 지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3분 30초.

제대로 기술에 걸려 한판이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초 정도다. 굳히기나 누르기가 아니고 메치기면 진짜 어! 하는 순간 게임이 끝난다. 그러니 3분 30초는 충분히 여유가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현대 유도의 흐름은 잡기 좀 하다 보면 순식간에 3분은 2분으로 변하고, 2분은 1분으로 변한다.

이걸 선수는 쉽게 자각하기 힘들었다.

왜?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면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면서 뒤늦게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는 시간에 쫓기게 된다. 이게 지고 있는 선수의 기본 시합 사이클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아. 넘길 수 있어. 하는 마음도 나중에는 안 돼! 도망가지 마! 넘겨야 해! 지기 싫어! 로 변하면서 조급하게 변하고 그건 곧 빈틈을 우르르 생산하게 된다.

그러면?

무리한 기술을 걸어오다가 쾅! 되치기 한판이다.

이 사이클은 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지영은 회귀 이후, 지금까지 무패였다.

근 3년간, 단 한 게임도 지지 않았으니 이런 승리 페이스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중 아주 많은 시합이 이런 흐름이었다. 즉, 지영이었다면 이건 필승 페이스였다. 하지만 지영은 상대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지영아.’

시작부터 절반을 빼앗겼다.

이건 황석이 폰세카를 연구한 것처럼, 폰세카도 황석을 연구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합 스타일을 복기했다. 그리고 초반에 여유롭게 한다는 것을 알았을 거고, 상대에 그에 맞춰 시작하면 그걸 역이용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훌륭하게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솔직히 저기서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어도, 황석이 조금만 반응이 느렸어도 이건 그냥 한판이었다. 뒤통수부터 그냥 쾅! 매트로 떨어졌을 거다. 그나마 움찔! 함과 동시에 몸을 빼면서 틀었으니 한판이 절반으로 변한 거였다.

그만큼, 폰세카는 준비를 많이 해왔다.

하지만 황석도 준비를 많이 했다. 폰세카는 정보가 많은 선수였다. 이미 세계 정상에서 오랫동안 군림했기 때문에 데이터가 진짜 많이 쌓여 있는 선수였다.

자세는 오른쪽.

업어치기가 주력이고.

발기술도 기똥차게 차는 선수.

거기에 체력 안배를 포함한 시합 운용도 수준급이다.

이게 기본적인 데이터다.

장점은 보통 이렇지만, 단점도 당연히 있다.

‘딱딱해.’

모든 기술이 상당히 뻣뻣했다.

유도의 유 자는 당연히 부드러울 유자였다. 그러니 당연히 기술에도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디 세상 모든 스포츠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그게 그대로 되겠는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는 게 유도의 기본 모토지만, 때로는 강함이 부드러움을 갈가리 찢는 법도 있었다.

폰세카의 기술이 그랬다.

폰세카의 기술은 송곳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날카롭기도 날카롭지만, 송곳처럼 일자로 쭉 뻗어선 느낌이었다.

즉, 타이밍을 노려서 치는 기술은 일품이지만 기술 자체는 굉장히 딱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송곳, 혹은 작대기가 연상됐다. 일자로 쭉 뻗은 빗자루도 생각났다. 사실 중량급을 넘어서서 마백, 플백 정도 되면 기술에서 부드러움을 찾는 건 솔직히 오버였다.

폰세카도 다르지 않았다.

작대기처럼 빳빳한 기술. 그게 장점이자 약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약점은…… 체력이었다.

폰세카의 나이도 어느덧 유도 선수로서는 중년을 넘어 장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1, 2년이 더 지나면 황혼일 거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체력이 예전만 하지 않았다. 보통 나이 서른이어도 체력이 그렇게 부족하진 않은데, 폰세카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다.

이상하게 급속도로 떨어지는 게, 그가 연장 접전까지 가는 경기에서는 자주 보였다.

그것도 초반이나, 아니면 4분 경기 후반쯤에 호흡이 틀어지고, 어깨가 크게 들썩이는 모습이 자주 나왔었다. 지영은 그걸 놓치지 않고 황석에게 말했었다.

‘2분쯤 지나면, 빠르게 몰아붙여. 정신없이 움직이면 아마 체력 금방 날아갈 거고, 틈도 나올 거야.’

‘알았어.’

그때 황석은 분명 알겠다고 했었다.

지영은 황석이 그걸 까먹지 않았기를 바랐다.

절반이 나오고, 지도 하나씩 주고받은 3분에서, 금방 2분이 됐다.

그리고 황석이 움직였다.

마백이면 헤비급에 속한다. 그래서 솔직히 좀 둔하고, 느려 보일 수밖에 없는 체급이었다. 그런데 황석은 아니었다. 처음엔 가볍게 스텝을 밟더니, 갑자기 뭐에 쓰인 것처럼 폰세카를 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당연히 잡기였다.

헤비급의 잡기는 경량급보다 치열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체력들이 떨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타협을 보는 선에서 잡기가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느리고, 얌전한 느낌의 잡기다.

하지만 황석은 아니었다.

그럴 생각이 진짜, 조금도 없는 것처럼 갑자기 돌변해 폰세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쿵!

물러나는 폰세카를 쫓아가며 모두걸기.

폰세카의 몸이 붕 떴다가 앞으로 떨어졌다.

“절반! 절반!”

이성진이 벌떡 일어나 그렇게 외쳤지만, 심판은 손을 들진 않았다. 아악! 괴로움을 머리를 부여잡는 이성진. 그런 이성진은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다. 지영이 보기에도 점수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흐름을 탔다.

다시 일어난 폰세카는 고개를 한 번 털더니 하지메! 사인에 후아! 크게 기합을 넣고는 맞서 나왔다.

아직 2분.

이미 지도 하나씩을 주고받은 상태에서 한 번 더 밀리면 자신은 지도가 들어오면 절반을 따고 있어도 절대 안심할 수 없게 된다는 걸 폰세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밀리지 않게, 맞붙어 나오기 시작한 거다.

지영은 이것도 기회로 봤다.

시합의 흐름을 갑자기 바꿨다. 그리고 그걸 바꾼 건 황석이고, 황석은 애초에 흐름을 바꿀 작정을 이미 했었기 때문에 준비를 단단히 해놨었다. 하지만 폰세카도 과연 그럴까? 그도 이렇게 흐름이 바뀔 걸 예상하였을까?

아마 못 했을 거다.

물론 정상급에 선 선수라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이미 있을 테지만, 그게 변환 상황에 곧장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나라면…… 지금 노린다, 석아.’

완전히 변한 흐름에 상대가 적응하지 못한 지금이 기회였다. 아마 최대치로 쳐도 그쳐 한 번만 더 심판이 부르면 폰세카는 적응이 끝날 게 분명했다. 이런 게 바로 유도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빈틈이었다.

이걸 놓치면, 또 언제 틈이 올지 모르니 생겼을 때 알뜰하게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러나 그걸 챙겨 먹는 건 전적으로 실력에 달렸다. 아무리 빈틈이 생겨도 그걸 알아보는 안목과, 알아본 뒤에 그 틈을 노릴 실력이 없으면 그냥 꽝이었다.

다행히, 황석은 그럴 실력과 안목, 둘 다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가끔 가장 불안한 시합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황금세대의 일원이며, 지영이 회귀 이후 지금까지 그처럼 무패 행진을 하는 중인 황석이었다.

지영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부족한 재능을, 황석이 얼마나 고심해서 연습해 그 차이를 메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부족한 재능을, 남들보다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채우는 게 바로 황석이었다.

그런 만큼, 실력적인 부분에서는 황금세대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턱!

후웅!

급하게 힘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폰세카의 몸이 붕 떴다. 그가 힘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하려는 걸, 황석이 알고 밀다가 몸을 옆으로 빼서, 틀며 발목받치기를 쳤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맞았고, 중심도 제대로 떴다.

이건 한판이다.

하지만 폰세카는 그래도 버텼다.

괜히 세계랭킹 1위가 아니었다.

쿠웅!

그러나 넘어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고, 와자리! 심판의 입에서 절반이 나오게 했다.

“우와! 황석! 황석! 우와아!”

이성진의 열띤 환호에 동참해 지영도 연신 황석을 연호했다. 다부진 표정에 아까움이 살짝 섞였다가, 빠르게 그 마음을 털어낸 황석이 굳히기로 들어갔다가 멈췄다. 괜히 굳히기를 걸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어서였다.

그렇게 2분 30초에, 절반 하나와 지도 하나씩 받은, 동점 상황을 만들어낸 황석이었다.

그럼 이제 다시 처음으로 변환? 아니었다.

지영은 황석에게 2분대부터 체력을 소모 시키기 위해 빡세게 움직이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황석은 알았다고 했고, 그럼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황석은 마치 복싱선수 같았다.

묵직한 중량의 복싱선수가, 리드미컬에게 잽을 던지는 것처럼 잡기를 진행했다.

“저거 한동안 연습하더니, 결국 쓰긴 쓰네.”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말이 복싱선수처럼 보인다고 한 거지 진짜 주먹을 들고 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간 무조건 퇴장이고, 그 정도는 유도 선수라면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도 복싱 같다고 한 건, 일정한 틀 속에서 손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흐름을 타서 끊어내면 다시 아래, 위, 복싱의 원투처럼 이어지는 잡기는, 제 자리에서 주고받는 공방인데도 황석이 매우 공격적인 모습으로 보이도록 연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황석은 뻗고 폰세카는 계속 막고, 끊어내기 때문이었다.

서로 물러서지 않고 있지만, 이것만 보면, 황석은 확실히 공격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결국 분명 비슷한데도, 그쳐 후 폰세카만 지도를 먹게 했다. 양손을 들어 올리며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지만 주심도 부심도, 판정을 번복하진 않았다.

이로써 폰세카는 지도가 두 개.

황석은 하나.

황석이 유리한 고점을 잡았다.

“와, 저게 되네?”

“……그러게.”

“하하, 임효중에 이어 저것도 입 유도네.”

입으로는 뭔들 못할까?

입으로는 업어치기로 지구도 메다꽂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래서 이성진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거였다. 실제로 지영도 진짜 신기하게 느끼고 있었다.

임효중이 보여줬던 그 기가 막힌 허벅다리에 이어, 황석은 잡기에서 또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미 절반을 빼앗긴 것도 있고, 유도는 언제고 한 방이면 한판이 나오는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조심하면, 이번 승부는 무조건 황석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거라고 지영은 생각했다.

‘차분하게, 지금처럼 계속 밀어붙여. 그러면…… 끝난다.’

지영의 속마음을 들은 걸까?

당연히 그건 아니다. 하지만 황석은 원래가 차분한 편이다. 곰처럼 우직한 느낌을 주는 친구다. 그런 황석은 끈질기게, 우직하게 폰세카를 밀어붙였다.

물론 폰세카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경험이 많은 그는 빠르게 사각에서 피하며 밀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몇 번 통했지만, 1분대로 내려갔을 때는 그마저도 봉쇄당했다. 폰세카가 움직이면 그 앞을 황석이 기가 막히게 먼저 선점해 막아버린 거다.

“워…… 야. 마치 코너에 몰아넣고 뎀프시 롤 치는 것 같지 않냐?”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보니까 비슷해 보이긴 하다. 쟤 근데 진짜 때리는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반칙패지. 어, 그쳐? 어어! 도복 고친다! 아싸!”

심판이 그쳐를 시키고 도복을 고치라고 한다?

그것도 이 상황에서? 100이면 100, 이건 반칙이 들어간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걸 폰세카도 감지했는지, 띠를 풀고 다시 묶기 전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반칙을 직감한 거다. 그리고 그가 직감한 것처럼 결국 서로 지도 하나씩 들어갔고, 그걸로 승부가 났다.

황금세대 전원, 결승 진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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